마당

2020.12.11 22:43

구연식 조회 수:6

마당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구연식

 

 

 

  마당은 많은 기쁨과 노여움과 슬픔과 즐거움을 아우르는 장소였다. 우리의 토속문화도 관혼상제의 의식도 모두 다 마당에서 이루어지고 보존되었다. 마당은 개인에게는 살아온 자서전의 한쪽이요, 민족에게는 청사(靑史)의 한 권을 내포한다. 어쩌면 우리의 마당은 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에서 고대 민주정치의 발상(發祥)인 시민들이 모여 다양한 활동을 하는 야외 공간 마당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의 태반(胎盤)으로 의미를 두고 있는 아고라(agora)와 비견된다.

 

 어머니는 날씨가 풀리자 겨우내 모아두었던 유정란(有精卵)을 둥우리에서 꼼작 않는 암탉에게 넣어주셨다. 암탉은 사람이 접근하면 깃털을 세우고 성난 자세로 식음을 전폐하고 20여 일동안 알을 품고 있다. 그때부터 양수도 마르지 않은 병아리들이 알껍데기를 깨뜨리고 온갖 힘을 다해 나온다. 하루만 지나면 개나리 꽃잎으로 염색한 뽀송뽀송한 병아리들이 앙증맞은 다리로 봄 마당에서 꼭꼭 거리는 어미닭 뒤를 아장아장 따라다녔다. 참으로 생명 탄생의 경이로움이 느껴졌다. 20여 일 동안 먹지도 못하고 알만 품었던 어미 닭은 뼈만 앙상한데 어쩌다가 마당 구석에서 모이를 발견하면 어미 닭은 배고픔도 참고 또 새끼를 불러 모아 먹이를 먹인다. 인간이 본받아야 할 모성애의 본능이다. 이렇게 봄날의 마당은 뒤뜰 송홧가루 날리는 장독에서 장 익은 냄새와 빨랫줄에서 제비가 지저귀는 마당에서 어미닭은 병아리를 데리고 논다.

 

 여름 장마에 처마 아래 낙숫물 자리 마당은 동그랗게 작은 구멍이 개미집처럼 패어있고 하얀 작은 모래는 마당으로 펴져 있다. 소나기가 그치자 마당의 지열에서 나는 수증기는 여기저기서 고물고물 올라온다. 소나기 때 기어 나온 지렁이와 달팽이를 지난봄에 부화한 병아리는 얼추 중병아리가 되어 어미닭 없이도 혼자 돌아다니면서 몸보신하기에 신바람이 났다.

 

 농촌의 마당을 가장 긴요하게 사용하는 계절은 가을이다. 지난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 한 해 동안 농부의 땀과 자연이 일궈낸 곡식을 갈무리하는 방법은 마당에서 개상질 치거나, 도리깨로 타작을 했다. 아버지는 콩을 거두어 마당에 펴서 2~3일 정도 뒤집어가며 말려서 도리깨로 콩 타작을 하셨다. 도리깨를 어깨 위까지 올렸다가 시계방향으로 한 바퀴 돌린 후 그 반동으로 콩대를 내리치면 콩대가 박살나면서 콩알이 튀어나왔다. 어머니는 홀태로 벼를 마당에서 훑었다. 가을일은 부지깽이도 돕는다는 말처럼 나는 학교에 갔다 오면 마루에 책보를 던져 놓고 참깨와 들깨를 돗자리 위에 놓고 작은 나뭇가지로 털면서 부모님 일손을 도와드리기에 바빴다.

 

 겨울의 농촌 마당은 월동준비 장소이다. 가을에 탈곡하지 못한 볏단은 물 빠짐이 좋은 마당 구석에 탑처럼 노적을 쌓아 놓아서 노적의 크기와 높이를 보고 그 집의 농사 규모를 측정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 마당 귀퉁이에는 김장 항아리를 묻어서 부식(副食)을 조달했다. 뒷마당 옆에는 겨우내 땔감을 준비하는 아버지의 도끼질 소리가 그치지 않더니 툇마루와 헛간에는 장작더미가 가지런히 처마 끝까지 쌓여서 일 년 내내 눈이 와도 땔감 걱정은 없었다. 밤사이 함박눈이 내려 마당은 하얀 백설기 떡이 소복하다. 그 위로 쥐들의 발자국을 보니 노적가리에서 겨울 양식 걱정 없이 집을 짓고 살 모양이다.

 

 아버지는 동생들이 태어났을 때마다 마당 입구, 대문에 금줄을 달아 부정한 사람의 출입을 금지했으며, 마당 한구석을 싸리비로 정갈하게 쓸어 왕겨 한 삼태기를 붙고 동생의 태()를 태워 뒷동산 깨끗하고 좋은 땅에 묻어 주셨다. 우리 집 마당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환갑잔치를 벌였던 곳이다. 우리 집 마당은 나의 결혼식장에서 예식을 치른 후 처가댁의 상객들을 맞이했던 장소이다. 큰아버지 집 마당은 부상마을 전체에서 제일 크기 때문에, 마을 회관이 없었던 그 시절에는 추석과 설 때면 마을 청년들이 주축이 되어 동네 어른들을 위로해 드리는 효도잔치가 큰집 마당과 대청에서 이루어졌다. 큰집 여산 큰누나도 그 마당에서 신랑 신부가 사모관대와 족두리로 차일 아래서 혼례식이 이루어졌다. 이렇게 큰집 마당은 마을의 중요 행사장이었으며, 동네 아이들의 놀이 장소여서 팔방개 놀이 등 마당에 각종 놀이 코트를 그려놓아서 마당은 늘 사금파리 자국으로 얼룩졌다.

 

 우리 집 마당은 장례예식장이 없었던 시절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장례식을 치르노라 23일 동안 조문객을 맞이하여 마당에서 참나무 장작으로 화톳불을 놓고 밤새운 곳이다. 출상하던 날 어머니는 아버지의 상여를 붙잡고 질질 끌려가며 아버지를 마지막 보내드리면서 통곡하셨던 곳이다. 그 화톳불 자리의 흙은 까맣게 타서 3년 이상이나 검게 남아 볼 때마다 아버지 생각에 가슴이 저미었다.

 

 우리 집 마당은 흙으로 메꾸어진 반질반질한 마당이었다. 아버지는 지게를 지고 대문으로 들어오셔서 마당에서 하루의 짐을 내려놓고 마무리하셨던 곳이다. 그렇게 땀과 눈물과 정으로 다져진 흙마당은 간데없고 딱딱하고 정 붙일 곳 없는 시멘트마당에는 아버지의 지게 대신 트랙터 등 농기계들이 들랑거려 외계인 마당에 온 기분이다. 우리네 마당은 생로병사의 장이었으며, 희로애락의 삶이 개인과 사회와 국가의 하루의 삶과 일생의 삶이 버무려진 태반(胎盤) 같은 곳이다.

 그리스의 아고라(agora)가 권리와 의무를 강조하며 무미건조한 맞춤형의 광장이라면, 우리의 마당은 관용과 봉사 그리고 자비와 양보를 기초로 한 진솔한 삶의 마당이다. 오랜만에 시골집 마루에 앉아 있으니 삐걱 대문이 열리면서 아버지가 들어오시는 환상이 보였다. 아버지는 지나간 세월에 얽매이지 말고 이제는 지게를 벗어 놓고 트랙터로 갈아타서, 다랑논 갈지 말고 대지를 갈아 씨를 뿌리고 가꾸어 더 넓은 세상에서 살라면서 나가시는 것 같았다.

                                                                             (2020.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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