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소요(騷擾) / 김영교

2011.06.28 05:01

김영교 조회 수:63 추천:1

그날은 한 달에 한 번씩 교회신문이 나오는 날이다.1부에서 6부까지 예배후 신문배부와 1,2부 성경반 출석 점검이며 콩콩 발바닥이 뜨겁던 주일이었다. 한가위 추석에, 고훈목사의 부흥성회까지 겹쳐 성전뜨락은 붐비는 발길로 가득했다. 시인 고훈목사의 연속설교에 4시에는 마지막 부흥설교가 예정되있었다. 나는 참석할 수가 없어 안타까웠다. 왜냐하면 4시부터 시작되는 이날 수필토방의 '나의 수필 쓰기'주제발표가 내 차례였기 때문이다. 오래전에 정해진 순서와 일정이었다. 숨가쁘게 가슴을 쓸어내리며 약속된 장소에 이르니 오랫만에 나온 정 선배의 참석이 문우들 표정을 환하게 불켜 주었다. 뵙기가 뜸해 궁금하던 차에 병력이 암으로 밝혀져 다행히 적절한 치료를 적절한 시기에 다 끝내고 좋아진 표정과 체중으로 예쁜 미소를 활짝 안고 나타나 주위를 안심 시킨것이었다. 열림이었다. 소통이 었다. 한마디씩 '장하다'란 정감어린 표정으로 격려의 악수를 나누었다. 남에게 알리는게 망스려져 나는 속으로 혼자서 껴안고 함께 딍굴며 투쟁하며 발버둥치는 암환자인데 나에게도 저런 날이 빨리 오기를 속으로 얼마나 바라고 바랬는지 모른다. 투병의 전과가 있은지 15년이 지났고 그동안 완치되었다고 믿고 느슨한 생활습관에 젖어있었다. 분명한 것은 쉼이 없었다. 식생활도, 취침시간도 불규칙했다. 방심했던가. 9월 연휴 다음 날, 유방암 판정을 받았다. 놀란사람은 나 자신이었다. 나는 아니야 부정하고 싶었다. 빈약한 내 가슴이 뭐 그리 윤택한 환경이라고 암세포들이 서식하랴 싶었는데 남자도 유방암을 앓는다는 의사의 말에 유방크기는 별개의 건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의사는 부분절개냐 아니면 리컨스트럭션을 병행하는 완전절개냐의 결정을 수술날짜와 정하자고 했다. 10월 초순 고국에서 오는 동창모임이 이곳 LA에서 출발 벤쿠버 여행에 합류, 리유니언 스케줄이 있기에 그 다음으로 미루자 했다. 마침 수필 토방에서 <덤으로 사는 삶> 박복수 문우의 수필이 논제에 올랐다. 나를 두고 하는 말로 들렸다. 하기사 덤으로 한 사이클을 이미 살지 않았던가. 많은 은혜와 감사의 나날들, 귀한 만남으로 이어지던 투병의 터널, 통로 끝은 햇빛 환한 밝음이 기다리고 있었다. 많은 사람에게 암은 분명 위기로 덮칠 수도 있다. 나에게도 위기로 다가왔다. 그런가 하면 또 기회로 다가왔다. 만남으로 가는 열린 문, 그 숫한 유익한 만남을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 음악, 책, 영화, 여행, 음식 등 문은 열리고 또 열리고 열림은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수필토방을 끝낸 늦은 밤 프리웨이 차량의 흐름이 수월했다. 기분좋에 운전하는 내 차창에 환하게 내려앉는 보름달, 청청하게 뿌려지는 교교한 달빛에 내 자신을 맡기며 어쩜 저렇게 터질듯 완벽하게 둥글까 싶다. 사춘기때 보름달을 보고 여드름 없애달라고 빌던 생각이 떠올랐다. 오늘은 이 고통의 언덕을 잘 넘어가기를 기도했다. 나도 모르게 낮예배 중에도 몇번이나 왼쪽 젖가슴을 문지르고 쓸어내리며 기도에 몰입했다. 손끝을 통해 그분의 치유의 기운이 와 닿는듯 무겁던 마음이 우선 가벼워졌다. 1년 365일이 어찌 밝기만 한 보름달이기를 바랄것인가. 저 한가위 보름달도 차고 지지 않는가에 생각이 미치자 한결 더 편안함이 나를 애워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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