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세상이라지만

2007.05.25 04:50

배희경 조회 수:49 추천:1

          
    한 세상이 라지만               “미주문학”  2003년 봄호


   내가 가장 아꼈던 한 친구였다. 그녀가 몇 해 전에 다녀갔을 때, 나는 그 친구가 이렇게 빨리 세상을 뜨리라 곤 생각도 못했다. 그 때 그녀는 별로 달라진 데도 없었고, 있었다면 얼굴에 잔주름이 는 것과, 펄펄 날던 동작이 약간 느려진 것뿐이었다. 아름다웠던 옛 모습도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다.   그랬는데...  갔다니...    그녀는 아마도 복에 겨워서 죽은 모양이다.
   그녀가 여기에 도착한 며칠 후다. ‘로데오 거리’를 가보고 싶다고 했다. 어떤 거리인지 알고 온 모양이다. 몇 십 년을 이곳에 살면서도 나는 가보지도 못한 거리다. 내 한 멋쟁이 올케에게 길을 물어 그 곳을 향해 차를 몰았다.
   보석상 앞에 선 나는 벌써 안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보석들로 주눅이 들었다. 그녀는 달리듯 안으로 들어갔다. 나도 따랐다. 많은 진열장을 훑어 가더니 한 진열장 앞에 섰다. 그리고 안을 열심히 드려다 보고 있었다. 무엇일까 하고 나도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녀가 보여 달라고 손가락질 한 것은 표범 부로찌였다. 다이아몬드와 색색 보석이 가득 박힌 징글맞은 짐승이다. 정가표를 보았다. 내 눈을 의심했다. 3자에다 공이 네 개나 붙은 표가 달려 있다.  잘못 보았나 해서 다시 공을 세어 보았다. 삼 만 불이 틀림없었다.  “저게 사고 싶으니?” 하고 나는 볼 멘 소리로 물었다.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것이 자기에게는 없단다. 없어서 갖고 싶은 것이다. 갖는 것에 한계를 잃었다. 새로운 것이면 다 갖고 싶으니 어떻게 하랴. 그녀는 만져보고 내 어깨에 달아도 보며 몹시 탐 내하다가 사지 않았다. 이유는 표범이 축 늘어져 있다는 것이다.  만약 표범이 내 어깨에서 뛰어 내리기라도 했다면, 한국의 귀한 외화는 또 줄어들고, 부자 로데오 거리는 더 비옥해 졌을 것이다.
   그날 밤 그녀는 내 방에서 지냈다. 감회 깊게 방을 두리번거렸다. 이 집에서 각기 받은 면적에서 더 할 수도 덜 할 수도 없는 친구의 신세가 딱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나는 벌써 최소한의 것으로 만족하는 습성이 몸에 배었다. 만족하며 살고 있었다.  물론 그녀도 만족함에 틀림없다. 이러니 우리들이 서로 다른 것은 하나도 없지 않은가. 만족하고 있다는 것은  똑 같으니까 말이다.
   모자란다는 것도 그랬다. 나는 오 백 불이 모자라서 컴퓨터 ‘랩탑’을 못 사지만, 그녀는 오십 만 불이 부족해서 세계적 바욜리니스트가 된 손녀에게 ‘스트라디배리’의 봐요린을 못 사 준단다.  이것도 그녀와 나와 다른 것이 없다. 모자란다는 것은 둘이 똑 같으니까 말이다.  나는 오백 불이 모자라서, 그녀는 오십 만 불이 부족해서 그렇다.  바라는 크기는 하늘과 땅 차지만,  한 목적을 위해 고심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내가 더 힘들 수도 있고 그녀가 덜 할 수도 있다.  우리가 서로 한치의 차이점을 느끼지 않는 것도 이래서 인지 모른다. 아니면 그녀의 나에 대한 배려에서였을까, 아니면 내 잣대가 너무 짧아서 가늠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까, 우리는 항상  너는 너고 나는 나였다. 스스럼없이 살았다.

   그녀는 갖는 것뿐이 아니었다. 그녀가 품은 포부도 천장이 없었다. 그녀의 교육열은 한국 엄마들 중에서도 으뜸이었다. 아침 네 시면 아이들을 깨워 과외 공부를 보냈다.  밤에도 과외, 아침에도 과외공부로 정신을 빼는 날들이었을 것이다. 어느 날 그녀는 늦잠을 자고 말았다. 고등학교에 들어갈 딸 아이 방에 헐레벌떡 갔더니 아이는 그대로 자고 있었단다. 시간은 늦었는데 깨울 때까지 일어나지 않은 딸이 어찌나  미웠던지 아이의 뺨을 힘껏 때려 붙였다나.  딸은 엄마와 한 달을 말 안 하더라고 했다.
   그런 그녀와 친구라는 나는 아이들께 하는 말이 있었다.  “그만하면 됐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우리 아이들이 공부를 잘 해서가 아니다. 그들이 최선을 다했으면 된다는 생각이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나는 채찍질하는 일이 힘겨워서 일찌감치 포기하고 말았다 해도 그리 틀린 말이 아니다.  
   이런 나와 그녀를 생각하면서 나는 며칠 전에 세상을 뜬 ‘미스터 로저스’ 를 떠올렸다. 친구와 ‘미스터 로저스’의 교육 방도를 비교해 본다. 너무나 다르다.  ‘미스터 로저스’의 교육은 자연 본연에 의한 가르침이었고, 친구의 교육은 최고의 목적을 겨냥한 강한 의지 달성의 교육이었다.  
   삼십 년 남짓,  T.V.앞에서 아동 프로그램을 진행 해 온 거목 ‘로저스’는,  한창 나이의 개구쟁이들을 그의 그 부드러운 말로 진정시켰을 것이라고 했다. 그의 죽음에 대해서 부모가 그들의 아이들께 대처 할 말은, 그가 한 말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은 누구에게나 다 있는 일, 그것은 자연이며 지극히 당연하다” 라고 한 말이다. 아무 것도 아닌 말 같지만, 아이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뜻이 깊은 이 말은 새롭게 내 가슴에 와 닿았고,  마이크 앞에서 조용히 말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또 그에 대해  첼리스트 ‘요요 마’는 이렇게도 서술했다.  ‘미스터 로저스’가 자기 얼굴 바로   3인치 앞에서 자기가 연주해 준 것을 고마워하며 “와 줘서 참 기쁘오” 라고  미소 지었을 때, 자기는 몸에서 진땀이 났다고 했다. 이름 있는, 그것도 나이 든 어른이 딱 달라붙어서 이렇게 인사를 한다는 것은 징그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이것이 바로 그의 인간상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카메라 앞에서 아이들과 일 대 일로 느낌을 같이 한 접근법이다.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가까운 사람에게 ‘사랑해’ 라고 하는 순간과 같았다는 것이다.  그는 진지함, 정직함, 믿음으로 사람들께 다가갔다.  
   다시 “미스터 로저스의 이웃”(Mister  Roger's Neighborhood)의 가르침과,  뺨을 때려가며 강행한 친구의 교육을 비교해 본다.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러나 그 차이로 어느 쪽이 옳고 그르다고 말 할 수 있을까.  없다.  그녀는 그녀대로의 방식으로 다섯 자녀를  이름나게 키웠다. 아이들도 그것을 감사하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진지하게 한 세상을 산 두 사람에게 나는 가슴 뿌듯한 찬사로 내 허전함을 메운다.

   열심히도 자기 삶을 살았던 그녀의 갑작스런 죽음은 내가 생각하는 동(動)의 세계를 앗아갔고,  나는 다시 정(停)의 세계로 남았다.  생각하면 사람의 생은 있어도 없어도, 달려도 걸어도 한 세상이라지만, 그래도 그 한 세상을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것은 나만의 일이 아니다. 모든 사람의 것이다. 넘치는 열정으로 열심히 산다는 것은 아름답다. 나는 내 온 찬사와 경의를 다해 두 사람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