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 세모의 일
2007.05.29 12:46
어느 한 세모의 일 “미주문학” 2006년 봄호
우리의 세모(歲暮)를 일본에선‘도시구레(年暮)’또는‘시하스 (師走)’라고도 한다. 세모나 연모는 둘 다 같은 뜻이지만, 이 ‘시하스’란 말은 뜻이 깊고도 오묘한 단어다. 그동안 삶에 바빠서 만나 뵙지 못한 스승을 연말에서야 생각하며 찾아 나선다는 뜻이다. 그래서 바쁘다. 얼마나 흐뭇하고 아름다운 정경인가. 스승에게서 배우고 이만큼 된 자기를 돌아보며 옛 스승을 떠올리는 감회 깊은 인간상이다. 우리와 꼭 맞는 정서를 일본 사람들은 이런 말로 끌어올려, 세말을 장식했다는 것은 너무나 감동적인 일이다.
십이월로 접어 든 어느 세모였다. 크리스마스와 신년 카드가 부산하게 배달되었다. 모두 아들 내외의 것이다. 그 어느 옛날엔 그렇지 않았었다. 우리의 카드 중, 아들의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서 해마다 그의 카드가 늘어나는 것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랬는데 이제는 그의 것이 완전히 나의 영역을 침범했다. 여전히 기뻐해야 한지 알쏭달송한 기분이다.
TV위에 빽빽이 찬 연하장이 도미노 식으로 넘어져 바닥에 떨어진다. 주워서 하나 하나 다시 읽고 세워 놓는다. 망각의 세월들이 아직도 저편에서 그리움으로 배회하고 있다. 남편이 세상을 뜬 후부터 점점 줄어들던 카드는 그 해에 들어서부터는 한 눈으로 몇 장이라 셀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물론 그 몇 해 전부터 연하장 보내기를 중단한 탓도 있었겠지만, 내가 안 보내도 왔어야 할 사람에게서도 끊겼다. 쓸쓸하다. 그러나 그것이 자연 현상이 아니겠는가. 가을이면 잎이 지듯 사람도 나이 들면 자연스레 망각 속으로 사라져 가야 하는 것이다. 어느 글에선가 이런 말을 읽었다. 나이 육십을 넘으면 투명한 인간이 된다고. 사람들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말이다. 없는 사람이나 같다가 되겠지.
지금 이렇게 투명하게 된 사람도 먼 옛날에는 자주색 옷고름을 날리며 쿠웅덩 쿠웅덩 널을 뛰고, 누가 보아도 엄전한 처녀로 자랐을 내가 있었다. 어머니 턱 밑에서 꾸벅꾸벅 졸며 마지막 마무리인 고름에 인두질 할 때까지 설례이면서도 지루했던 긴 시간들이-. 그 세월 속에는 확실히 설 옷을 입은 내가 있었고 남도 나를 보았다.
세밑이면 일에 밀려서 휘청휘청하시던 어머니. 할아버지와 아버지 마고자에 호박단추를 달면 두 오빠의 한복을 제치고 내 차례가 되었다. 내 성화에 못 이겨 내 옷부터 하시는 것이다. 어떤 해는 진솔로 옷감을 뜨셨고, 어떤 해는 입던 옷을 다듬이질해서 새로 만드셨다. 지금 생각하면 그해 그해의 경제 사정에서 그러신 것 같다. 그러고 나면 이제 설제사 준비가 시작된다.
어머니의 일들에 비하면 내 세밑 준비란 개미 일만도 못하다. 그런 설 준비를 마치고 무료함 속에서 신문을 뒤적이니 연말 대학동문 모임의 광고가 나 있다. 긴 세월 동안 한 번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나와는 무관했던 세월의 일이었다. 그랬는데 그날은 그 기사가 화살같이 내 눈에 와 박혔다. 갑자기 가보고 싶다는 충동에 떨며 수화기를 불나게 들었다. 생각이 변하기 전에 저질러 보자는 의도였다. 1947년에 입학했고, 대학교를 마치지 못했어도 참석할 수 있는가고 전화를 받은 동문회장에게 물었다. 그는 반갑게 내 물음에 답했다. 동문회가 그래서 있는 것이 아닙니까. 꼭 참석해 달라는 권면의 말을 잊지 않았다.
나는 가기로 마음을 굳혔다. 오십 여년 가까이 등한히 잠재웠던 세월 속으로 찾아드는 호기심과 설레임으로 들떴다. 전교생이 천명도 못되던 그 때와, 오십년도 훨씬 넘게 지난 이 학교는 지금 얼마만큼이나, 어떻게 변해 있을까. 또 한국의 교육 왕국에서 슬기롭게 자란 창창한 후배들이다. 이 늙은 여자 선배라 하는 사람을 얼마나 어줍싸리 대해줄까 하는 불안 등으로 약간 위축되어 있었다.
테이불은 연도별로 백여 명 분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2000년대와 90년대 동문들은 물위의 생선 뛰듯 했다. 80년, 70년대는 이제 기반이 잡혔는지 늠늠한 신사들이었다. 그러나 60년, 50년대는 지나온 과정은 알 수 없었으나, 희끗희끗한 머리며 약간 맥 빠진 동작은 같이 늙어 가는 서글픔을 보여 주었다. 후배라는 말보다는 장로님하고 부르면 꼭 맞을 호칭 같았다.
이런 선후배가 앉아서 여흥이 펼쳐졌다. 거기에는 노래 못하고 말 못하는 사람은 나를 빼곤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그들 말 중에 꼭 한마디씩 비치는 말이 있었다. 일류 대학에서 낙방하고 이류에 머문 가슴 아린 사연이다. 한국의 교육 천하에서 이류라는 십자가를 메고 서글프게 산 사람들의 하소연이다. 조금만 더 공부를 했어도, 조금만 더 머리가 좋았어도, 또 운이 좋았더라도 하며 개탄 속에서 산 그들이다. 고속도로에서 앞차를 따라도 앞차가 있듯, 어쩔 수 없는 한계를 숙면으로 알고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들의 아픔을 들으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이들은 일등이 못된 이등의 비애로 사람의 교만이 없어지고, 겸손하게 살아온 자신을 알고 있는지. 그래서 약자의 아픔을 알고 도량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거기에는 풍부한 이간미가 있었을 것이다.
천명에서 십육만 명으로 늘어난 동창들이다. 그 숫자가 너무 엄청나서 자꾸 확인하며, 숫자의 관념마저 혼돈된 수의 동문들에게 말하고 싶었다. 이 땅은 모든 사람의 것이다. 과거의 후회, 아쉬움일랑 버리고 내가 왕이 되어 기쁘게 살아가기를 비는 마음이었다.
세모에 옛 스승을 그리며, 연하장을 주고받고, 세밑 준비에 서성이는 속에서도 동문회에 참석하기도 한다. 이런 바쁜 세모 속에서 묵은해를 보내며, 그 묵은해가 새해가 되고, 새해가 묵은해로 되는 반복이지만, 또 오는 해의 설계를 허술하나마 세원 본 어느 한 세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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