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마루와 내 친구
2007.06.03 19:39
글마루와 내 친구 “글마루” 2006년
손잡이만 달린 스타이로폼 관이었다. 딸 하나 멀리 두고 세상에서 가장 외롭게 살다 간 사람이다. 그래도 저런 관에나마 들어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최선을 다해 자기가 마련하고 간 관이다. 정부 보조금으로 상조회에 들었다. 그 돈을 딸에게 안기려고 먹지 않고 쓰지 않고 기를 쓰며 살았다. 그렇게 죽어간 불쌍한 친구가 들어있는 관, 초라해 보이면 안 되었다.
자꾸 눈물이 쏟아졌다. 가엾은 친구, 언제 가도 나를 반겨주던 다정했던 친구, 딸이 그리워 전화에서나마 딸이 웃으면 같이 웃고, 딸이 울면 같이 울고 하던 친구. 우는 일이 몇 갑절 더 많았던 외로웠던 친구는 가고 없다.
그녀와의 대화가 생각났다.
“글마룬가 굴레방아인가 나가더니 통 내겐 들리지도 않네. 나완 이젠 인연 끊을 작정이니?”
“죽기 전에 어찌 그럴 수 있겠니. 숙제 하다 보니 시간이 없어서 그래. 미안.”
“그 나이에 숙젠 무슨 숙제냐. 징그럽다. 얘.”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러나 너무 좋아서 해야 되겠어. 많이 배우고 있어.”
“배워서 죽을 때 가져갈거니?”
“그럴런지도 모르지.”
“아사라. 아사라.”
친구는 대단히 못 마땅한 표정이다.
얼마 후에 그녀는 전보다는 좀 누그러진 목소리로 이런 말을 했다.
“글을 쓴다니, 그럼 내 얘기 써서 책 좀 내 봐라. 괜찮을 거야.”
“난 소설 쓸 줄 몰라. 그리고 쓴다면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만 쓰고 싶어.”
“그럼 내 얘기는 아름답지 않단 말이지.”
“그럴 수 있지 뭐.”
“그만 둬라 그만 둬. 사람 사는데 어떻게 아름다운 일만 있니.”
“있든 없든 아무튼 나는 그래.”
그녀는 또 화가 나 버렸다.
또 그 후의 우리의 대화다.
“얘, 그것이 벌써 칠년 전 일이야.”
“뭣이?”
“너와 내가 녹음한 것 말이다. 앞뒤 열두 테입이니까 꽤 많지. 그 때만 해도 옛날이야. 요새같이 뗑 해서야 어림도 없지.“ 그녀는 어딘가 지쳐보였고 눈은 아래에 깔려있었다.
“네가 하도 소원했으니까 됐지.”
“고맙다. 넌 오기만 하면 열심히 녹음 해 줬어. 너 같은 친구 어디 또 있겠니. 꼬치꼬치 질문 해 줘서 할 말 다 했더라.”
“그래도 나는 네 일은 쓰고 싶지 않아.”
“되게 도도하시네. 그래 그럼 굴레방아에서 굴레굴레 굴레같이 돌며 이뿐 글만 써라.”
“그러려고 해.”
그녀는 글마루를 ‘글의 정상’이라는 뜻 인줄도 모르고 나름대로의 해석을 하며 나를 놀렸다.
이렇게 우리의 대와는 빙정대기의 줄달리기었다. 그러나 허물없이 하고 싶은 말 다 하며 지낼 친구가 이 세상에 또 어디 있었을까. 뒤를 돌아본다. 우리가 밟고 온 들이 그렇게 푸른 줄은 그녀가 가고 나서야 알았다. 이제 많이 허전해서 힘들어질 것 같은 느낌이 밀물같이 밀어 왔다.
**************
글마루에 어설프게 발을 들여 놓은지도 벌써 십년이 되었다. 백촉짜리 전구 밑에서 무릎에 공책을 놓고 쓸 것을 구상하고 있었던 시간들이 얼마나 흐뭇했던지. 교실에 나가 앉으면 가마솥의 밥 냄새를 함께 맡고 있는 행복함과 따스함이 있어 나는 글마루를 사랑하기 시작했다. 각기 자기 껍질 안에서 생각하고 쓰고 하지만 분모가 같은 한 식구라는 것도 알았다.
이 글마루 식구들을 나는 교향악 단원이라 부르고 싶었다. 그 지휘자에 그 단원이라고 생각했다. 연주를 시작하기 전 음을 맞추고, 즉 교수님의 지도로 그날에 써 온 원고를 수정 받고, 그런 작업들이 다 끝나면 지휘봉이 공기를 갈라 내려온다. 멋진 교향악이 연주 되는 것이다. 글마루 문집이 나온다. 글을 처음 쓰기 시작한 사람도 훌륭한 연주자가 되어있다. 한 사람의 음도 빗나감이 없었다. 명지휘자 없이는 이룰 수 없는 연주로써 아름다운 교향곡은 문집으로 엮어 마무리 되었다.
친구에게 안길 수 없는 이번 글마루 문집. 그렇지만 땅속에서 굴레굴레하며 나를 놀리는 소리는 들릴 것 같다. 아니 참 땅속이 아니라 재를 바다에 뿌렸다지. 가루가 된 그녀를 날려 바다 위에 뿌렸다지. 그렇다면 고기들이 그녀가 흘리는 말을 먹고 굴레굴레 태평양을 굴러다닐지 모르겠다. 모두 글마루학생이 되어 굴레굴레 굴러다닐지 모르겠다. 턱없는 생각으로 친구를 그리니 가슴이 컥컥 메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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