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상의 딱지가 떨어지는 날

2007.06.04 03:30

배희경 조회 수:46


      화상의 딱지가 떨어지는 날                 “문학세계”  2000년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는 것이 있었다. 빨간 다알리아 꽃 위에 흰나비가 날아다니고, 앞뜰 빨래 줄에 고추잠자리가 앉았다. 마당 한쪽에 자리한 두 구루의 미루나무 잎새는 은빛으로 반짝이며 도량에 넘친 은화를 뿌리고 있었다. 오랜 세월 동안 잊고 있었던 광경이 선 듯 눈앞에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김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통일회담이, 잃어버렸던 날들을 이렇게 몰고 왔다.
   이 기쁜 소식을 나누기 위해 나는 구순을 바라보는 한국의 동서님께 전화를 했다. 오십 년 전 꼭 돌아온다는 약속만 믿고, 어린 딸 셋을 이북에 두고 온 분이다. 기뻐서 몇날 몇일 밤잠을 설치고 계신다고 했다. 친구들은 다 세상을 떴는데, 혼자만 갖게 될 기쁨으로 벅차기 만 하다면서도, 시종 웃음의 여운은 태평양을 타고 내 귓전에 울렸다.

   “난 어떡해, 난 어떡하니...” 시댁 문턱에만 들어서면 동서님의 통곡소리로  상가 집이 되어 있었던 날들, 이제 그분의 한을 푸는 날이 다가 왔다. 삶과 마음에 중화상을 입은 딱지가 떨어지는 날이 다가 왔다. 그 동안 그 상처는 깊고도 아팠다. 이 아픔에 신음해 온 헤아릴 수 도 없었던 날들. 가족과 이별한 남북의 많은 사람들은, 데인 상처가 영원히 벌어진 채 세상을 떴다. 그러나 동서님은 남기고 온 자식들이 살아있다는 소식마저 들었다. 얼마나 복 받은 분인가. 시댁에서 가장 기쁜 경사 중의 하나가 될 것이 분명했다.

   이 망향의 공기 속에서 자란 우리 아이들도 벌써 자기 아버지의 고향 땅, 방축에 갈 생각으로 들 떠 있다. 눈을 감기 직전까지 부모님 계신 방축을 그리다가 간 아버지를 대신해서, 찾아가겠다는 마음일 것이다. 내게는 남편의 고향도 있지만, 그래도 나는 내 어머니가 사철을 고달피 빨래하시던 성천강에 가보고 싶다. 어머니 옆에서 물장구치며 놀던 그 강물, 나비와 잠자리와 매미가 어울려 살던 곳, 그 곳에 찾아가겠다. 성천강에서 하얗게 빨아 온 빨래가 빨래 줄에 걸렸고, 그 위에 고추잠자리가 앉았다. 나는 양손으로 잠자리의 두 날개를 잡는다. 하나만 잡으면 손등에서 버둥거리는 것이 무섭다. 동생이 세 마리면 겨우 나는 한 마리, 그런 날들을 찾아 나서고 싶다. 지금도 내 손등에는 잠자리의 움직임이 그대로 있다. 아! 사람은 늙고 세상은 다 변해도 고향에 서는 마음은 변함이 없구나.  


   성급한 사람들은 그 땅에서 여러 일들을 펼쳐 보려고 계획하고 있지만, 우리 실향민은 목 타게 그렸던 사람들을 만나고, 고향의 내음을 맡으면 된다. 고향 땅을 밟는 촉감과 느낌이면 만족하고도 남는다. 우리는 그것으로도 충분히 기뻐서 떤다.

   한시도  잊지 못했던 사람들과 고향을 우리는 이제 정말 되찾으려는가. 숨을 죽이고 바라보는 이 마음은 우리 겨레만이 안다. 내 몸 같았던 사람들, 보석 같았던 고향을 찾는 길은 길고도 멀었다. 삶 속에 마음속에 화상을 입은 사람들이 화상의 딱지를 벗는 날이 과연 오려는가. 오늘 이 같이 꿈처럼 덜렁 찾아온 감격의 날을 맞는 감회는 크고 벅차다. 고추잠자리와 흰나비와 매미가 함께 살던 고향으로 가는 길은 과연 얼마나 가까워졌는지, 우리는 기대와 불안의 피안에서 노구메를 드린다.
(이산가족이 만나게 되는 합의가 이루어 진 날이다.)  6/23/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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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덧 글을 쓰지 않을 수 없다  

   김씨 밑에 위원장 존함까지 붙이며 위의 글을 쓰고, 오늘로 꼭 칠년이 되었다. 전과 달라진 것이 있기는 있었다. 있는 것 퍼 줄대로 퍼 주고, 손발 싹싹 빌어가며 이산가족 상봉을 하기는 했다.  새 발의 피 정도 했다. 이산가족의 수가 그렇게 머리수로 셀 수 있는 숫자인가. 지가 가진 물건 생색내듯, 그 많은 숫자의 사람들의 기대감을 조롱하며, 만나게 해 주고 싶은 사람만 만나게 했다. 가뭄에 콩 나듯 만나게 했다.

   이번은 또 쌀을 안 주면 이산가족 상봉은 없다며, 무슨 회담인가 하는 것도 해산 되고 말았다. 북의 대표들이 한국을 떠났다. 또 돈만 들이고 말았다는 생각이다. 이 쪽 책임도 얼마는 있다는 기술적 얘기가 있긴 하지만, 그들의 거지 근성에는 이제 정말 진저리가 난다. 굶는다는 사실, 지금은 굶길 수도 없는 그 쪽의 입장이 되어버렸지만, 그 내 동포에도 등을 돌리도 싶은 심정이다.
  그런데 좌파정치 지도자들이라서 그런가, 미사일이다 뭐다 하며 기막힌 일도 많고, 변덕이 죽 끓듯 한데, 별로 화내는 기색도 없이 잘 달래고 있다. 그 쪽은 자기 달성만 눈앞에 있는데, 이쪽은 후에 한 접시 받아먹겠다고 생각하는가, 무조건 적이다. 무슨 속셈이며 어디까지 갈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물론 곧 정치판은 바뀌겠지만 그래도 기분 나쁘다. 국민을 위한 것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그사이 이상한 뒷거래가 있을까봐 겁이 난다.

   김일성의 동상이 팔천 여개? 아니 일 만개라 했던가? 하도 기가 막힌 숫자라서 기억하기도 힘들다. 이것이 과거 전 세계에서 일어난 그 많은 예를 보고도 모자라, 또 21세기에서도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기이하기만 하다.
   김정일이 그렇게 머리가 좋다고? 좋을테지. 누군가의 생일에 수만의 사람들에게 다 한복을 입히고 그 위대한 사람을 축하한다고 석 달을 두고 연습시켰다. ‘매스게임’으로 이 세계에서는 볼 수 없는 어마어마한 행사를 치렀다. 위대하신 죽은 사람을 위해 했다고 했다. 그럴까? 아니다. 자기를 위해 했다. 위대하다는 아바지를 등에 업어야 자기도 행세하겠으니, 그러니 머리가 좋달 수밖에.

   두 사람은 하루에도 수억 만 번의 절을 받는다. 거기 사람들은 방에 들어가고 나갈 때 마다 그들의 사진 앞에서 절을 한다.  전쟁 때의 일본 천황은 유도 아니다. 수억 배 더한 절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 세뇌 수준에서 일본이 못한 것가, 아니면 나은 것가,  좀 생각을 해 봐야 되겠다.
   e-mail로 이북의 상황을 보았다. 누군가가 열심히 올려주어 보고 있다. 한번 본 것이 아니다. 수없이 보았다. 굶는 사람이 있다고? 한 쪽 사람들에게는 최소한의 쌀을 주어 쫄쫄 배곯게 하고, 쌀은 다 쌀 보고에 들어가지 않았을까. 보기도 싫어서 그들의 생일 행사 광경은 지워버리고 말았지만, 지우지 않았다면 자세한 것을 더 적을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하게 되었다.

   미운 것 다 나열 하려면 며칠을 써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오늘은 위의 글을 올리려니 하도 분통이 터져서, 이렇게나마 덧 글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6/4/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