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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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우정 / 박관순

2016.11.26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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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우정



                                                                                            박관순 < 수필가>



시인은 한번 시작에 빠져들면 앞에 임금님이 지나가도 알아보지 못할 만큼 시심은 늘 아득한 하늘 구름 위를 날고 생각은 깊은 꿈속을 헤맨다.

길을 가거나 머물거나 자리에 누울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시 읊기를 쉬는 일이 없었다. 어느 날 시인 가도(賈島)는 쩔뚝거리는 나귀를 타고 친구 집을 찾아 간다.

가다가 해질 역 길주변정경이 너무 아름다워 이내 시상이 떠오르고 시 한수를 짓게 되었는데, ‘숙조지변수(宿鳥池邊樹)요 승추월하문(僧推月下門)이라, 새는 연못가 나무 가지에 잠들고 / 스님은 달빛아래 살며시 문을 밀고 들어간다.’

그렇게 해서 좋은 시 한 구절을 얻기는 했는데 ‘문을 밀고 들어간다.’ 에서 밀 추(推)자 보다는 ‘문을 두드린다는 두드릴 고(鼓)자‘가 더 낳지 않을까?

고자로 갈고 보면 추자가 좋은 것 같고 다시 생각하면 고 자가 낳을 것 같기도 하고 시인은 갈등 속에 눈을 감고 손으로 문을 미는 시늉, 문을 두드리는 시늉을 번갈아 해보며 골똘한 생각에 잠겨 길을 간다.

그러다가 그만 고을 원님의 행차와 맞부딪치게 되었고 순간 하인들이 우르르 달려와 무엄하다며 시인을 원님 앞에 꿇린다.

원님은 ‘네 무슨 생각에 눈을 감고 손짓을 하며 사람이 앞에 오는 줄도 몰랐더냐? 이실직고 하렸다. 가도는 머리를 조아리며 사실 대로 이야기 했다.

다 듣고 난 원님은 만면에 희색을 띄며 ‘헛, 헛!, 아! 그건 밀 추(推)자 보다 두드릴 고(鼓)자가 훨씬 낳겠는 걸…!

오히려 기특하다며 크게 기뻐하더라는 것이다. 그 원님이 바로 당나라 8대 문장중의 한사람인 한유(韓愈)라는 대 문장가였다고 한다.
그 일이 인연이 되어 두 사람은 다정한 시우(詩友)가 된다. 한유는 자주 그를 불러 시문화답을 즐기며 친구의 정을 주었고 한유가 서울의 높은 벼슬자리로 승차 했을 때는 가도를 불러 올려 벼슬자리를 마련해 주며 인근에 살게 했다고 한다.

그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해진 후 후세사람들은 자신이 지은 원고를 다시 고치는 일을 밀 퇴자를 써 퇴고(推敲)한다고 한다. 밀 추자는 밀 퇴자로 발름하기 때문에 퇴고라는 말을 e쓰기도 한다.

미국에 오기 훨씬 전 꽤 오래된 얘기다. 한 문예지에 실린 어느 시인의 수필 한편을 감명 깊게 읽은 일이 있다. 지금은 그 시인의 이름도 작품제목도 잊은 채 글 내용의 일부만 기억하고 있다.

그 시인은 물려받은 농토가 조금 있어 복잡한 서울을 벗어나 낙향을 해 농사도 짓고 시도 쓰며 유유자적한 삶을 사는 시인이었다.

가끔 서울의 문우들이 그리울 때면 벗들을 불러내려 손수 낚시해서 담가두었던 붕어 장조림을 안주로 손수 빚은 농주를 대접하며 못 다한 문학얘기를 나누며 회포를 풀었다는 얘기였다.

오래전에 읽은 얘기인데 아직도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그때 그 시인의 삶이 꽤나 동경의 대상이 아니었나 싶다.

세상이 너무 메마르고 야박해져서인지 요즘은 그런 아름다운 일화들이 자주 마음에 와 머문다. 모두 웰 빙을 말하지만 그런 따뜻한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하나있다면 그보다 좋은 웰 빙도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