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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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 외10편 / 성백군

2018.03.22 19:31

하늘호수 조회 수:65

1, 설국(雪國) / 성백군

 

 

저건 점령군이다

 

하늘을 펄펄 날아

허공에 소리 없는 포화를 터트리며

산야를 하얗게 덮는다

 

세상아, 꼼짝 마라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사람이든

과거도 현재도

너희는 다 포위되었다

 

내 나라는

신분에 귀천이 없는 평등한 나라

인간사 다 내려놓고 납작 엎드려

겸손을 배우라

 

결국, 저건

세상사 다시 쓰라는 하늘님의 말씀

한참 바라보다 보면

내 마음도 하얗게 비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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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입춘(立春) / 성백군

 

 

가랑잎이

언 땅 위를

굴러다닙니다

 

겨우 내

두들기며 노크하더니

드디어 땅이 문을 열었습니다

 

문 틈새로

뒤란, 돌담 밑 난초가

노란 주둥이를 내밀고는

, 봄이다!”는 탄성(歎聲)

 

지푸라기 속 잔설이

눈물을 흘리며 어찌할 줄 몰라 하다가

제풀에 녹아 스러집니다

…………………………………………………………………

3, 경칩(驚蟄) / 성백군

 

 

개구리 두 마리

얼음 풀린 개울, 이끼 낀 너럭바위 위에 앉아

햇볕을 쬐고 있다

 

개골

하고 반가워 아는 체하는데도

눈만 말똥말똥

기억상실증인가 치매에 걸린 걸까, 대답이 없더니

폴짝, 뛰어내린다

 

, 다행이다 싶다

저 미물이 겨울잠 자는 동안

혹한이 제 곁을 지나간 줄 알았더라면

지금처럼 저렇게 태평할 수 있을까

 

곧 파문은 잠잠해 지고

물속이 편안해지면

세상 사는 데는 몰라서 좋은 것도 있다며

올챙이들 오글오글

개구리들 개골개골 제 철 만나 새끼 키운다고

봄이 야단법석이겠다.

…………………………………………………..

 

4, 6월 바람 / 성백군

 

 

바람이 분다

6월 바람

봄과 여름 샛길에서 이는

틈새 바람이 분다

봄 꽃향기 대신 여름 풀 내가

내 몸에 풀물을 들인다

이제는 젖내나는 연두 아이가 아니라고

짝을 찾는 신랑 신부처럼 초록이

내 몸을 핥고 지나간다

풀들이 일어서고

이파리가 함성을 지르고

나는 그들과 함께 폭포를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바람을 맞으며 심호흡을 한다.

하다, 바라보면

어느 것 하나 주눅 든 것이 없다

작은 것이나 큰 것이나 잘 섞인 신록이다

서로의 공간을 내어주며 배려하는 적당한 거리

마주 보며 이야기할 수 있는 넉넉한 모습

6월 바람이 만들어낸 싱싱함이다

서로 사랑하고

때로는 미워하지만 그게 사는 모양이라서

막히면 안 된다고,

벌컥벌컥 봄 여름 소통하느라

6월 바람이 분다.

…………………………………………………………………..

5, 티눈 / 성백군

 

 

길을 가는데

작은 돌이 신 안으로 들어와

발바닥이 꼼지락거리며 아프다

 

잠깐 멈춰 서서

꺼내면 되련만 뭐가 그리 급했던지

그냥 불편한 대로 살아온 것들이

너무 많다

 

싸우고 화해하지 못 한 것

오해받고 해명하지 못 한 것

삐친 것, 화낸 것, 무시한 것, 교만한 것,

친구 간에

아무것도 아닌 일로 질투하여 지금까지 머쓱한 것.

 

사람 한평생이 얼마나 된다고

뭐 그리 대단한 일을 한다고 막산 것들이

늙으 막에 티눈이 되어 마음을

콕콕 찌른다

………………………………………………………………………….

6, 가을 밤송이 / 성백군

 

 

가시로도

세월은 못 막는지

몸에 금이 갔습니다

 

누가 알았습니까?

몸이 찢어지면

죽는 줄 알았는데---,

알밤 세 개가 머리를 맞대고 있네요

 

햇볕이 탐하고, 바람이 흔들고

다람쥐가 입맛을 다시는 줄 알지만

힘이 부친 밤송이, 더는

알밤을 지켜 내지 못하고

한 번 벌린 입 다물지도 못하고

 

땅 위에 떨어져 뒹굽니다

이제는, 가시 대신

제 자식 발자국 따라가며

세상을 살피느라 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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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단풍잎 예찬 / 성백군

 

 

묵묵히 살았다

변두리 생()이라 아무 말 못 했지만

기죽지 않았다. 펄펄 뛰며

초록으로 살아 냈다

 

꽃이 색 향을 자랑하고

열매가 자태로 으스댈 때

비바람 먼저 맞으며,

저들 보듬고 대신 맞으면서도

불평하지 않았다

 

고생이라 여기지 않고

열심히 살아온 덕에 계절 가는 줄 몰랐다

돌아보니, 꽃도 열매도 일장춘몽,

혼자 남았다. 생의 끝자리에서

저녁노을처럼 온몸이 발갛게 물들었다

 

보면 볼수록 그윽하고 깊어서

풍진세상을 이겨낸 어머니의 사랑 같아서

불길도 연기도 없이

내 마음 저절로 순해진다

…………………………………………………………………

8, 낙엽 / 성백군

                                                                                   

 

우듬지에서

낙엽 떨어지며

말을 건넨다

 

그동안 지냈니

아무 없었니

무슨 일을 하며 어떻게 살았니

 

생각하다가

없어 머뭇거리다가

슬쩍, 등을 내미는

바람 타고

바람이 가자는 데로 끌려가다가

 

이건 아닌데

여기는 아닌데, 아직

찾지 못해 바닥을 헤매는

나는 아닌지

………………………………………………………………..

9, 동행 / 성백군

 

 

길이

오르막이라고

내가 땀을 흘립니다

 

나는

그만 가고 싶은데

길은 벌써 저만치

산모퉁이를 돌아가네요

 

어찌합니까

나도 따라갔더니

길이 먼저 알고

산기슭에 누워 있네요

 

나도

쉴 곳 찾아 그곳에

묘터 하나 봐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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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겨울 나무 / 성백군

 

                                 

열매도 잎도 다 털어낸

나뭇가지가

지나가는 바람 앞에 섰습니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빈 몸뚱이를 거친

겨울바람이 쉽게 빠져나가는 것을 보면서

버림이 생존의 방법임을 알았습니다

 

삶이 힘들고 어려울 때는

다 털어버리고

가볍게

욕심 없는 마음이 되어야 한결

견디기가 쉽다는

 

마지막 잎사귀마저 털어내며

겨울 채비를 하는 나무 곁에

나도 한번 서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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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 고양이 맛있는 반찬 훔치 듯

슬쩍 돌아보며 시 몇 편 떨구고 가면서 안부 묻습니다

편안하시지요?

주 안에서 항상 강건하시기를 축원합니다.

    3.22.2018     성백군 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