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기차 / 홍인숙(Grace)
애초에 네게 나는 없었나보다
여백없는 네 잔에
철없이 나를 부었나보다
다정히 감겨오던 네 눈빛만으로
행선지도 모를 기차에 뛰어 올랐지
검은 연기를 뿜고 가던
밤 기차의 기적이 멎고
이름 모를 간이역에서 사라진
네 그림자 뒤로
해바라기만 달빛에 젖어 있었다
애초에 내가 네게 없던 것처럼
내게 너도 없고
내게 나도 없었을지 모를 기차여행
우린 서둘러 서로를 지우기 위해
들판 가득 몸부비는 유채꽃처럼
그렇게 열심히 사랑했나보다
오월 바람에도
가슴 시린 것을 알아버린 날
어둠이 자욱한 낯선 도시에
이제 너 없이 난
어떤 모습으로 내려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