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의 우산 / 홍인숙(Grace)
비오는 날은
빈 길을 걸어도 외롭지 않다
누군가 나를 향해
손 흔들며 걸어올 것 같은 설레임
스무 살의 우산 속
그에게 빗물이 되고 싶었다
빗물로 젖어드는 향기가 되고 싶었다
발아래 고여드는 빗물에 발걸음 꼭꼭 찍어가며
그도 빗물처럼
내 안을 적시며 스며들기를 원했다
우산 속 단 한마디 기억도 없이
우산을 부딪치던 빗방울 소리와
가슴 울리던 설렘만으로
꽃잎 하늘거리는 그리움을 가슴에 품었다
지구 반을 돌아 먼 곳에서
내가 한 남자의 아내가 되어
그 닮은 아이들 속에서 저물었듯
그도 어느 착한 여인을 아내로 두고
그녀 닮은 아이들 속에서 조용히 저물겠지
비오는 날은
세상 모든 헤어진 사람들이 돌아와
거리를 서성인다
색색의 우산들이 머리 가득
잿빛 하늘을 이고 서성인다
세상이 말갛게 지워지고
내 사랑의 기억이 지워지고
내가 지워질 것 같은 서늘함
스무 살 내 눈부신 우산이
거리에 비를 맞고 서 있다
다소곳한 시향기 웅크리고 앉아 바람을 정처삼아 흩도는
시인님의 글터에 4월 햇볕 꼿혀 쏟아지는 날
몇편의 시를 허기채우 듯 음미하고 갑니다
그레이스 (2011-04-29 12:36:34)
먼 곳을 찾아주시고, 아름다운 시심까지 남겨주셔서
고마운 마음을 전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