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17 09:01
아버지 날의 기억 (감나무 집 둘째 딸) 연선 – 강화식
태평양을 건너 친정에 도착한 날
현관은 이미 유산균으로 젖어 있고 부추나물의 독특한 향이
대청 마루 끝에 나와서 혀를 유혹한다
딸의 단골 메뉴, 집 된장찌개, 열무김치, 굴비, 오이지와 나물들
밥을 먹는 동안 아버지는 새 이불에 당신의 정성을 피고 있고
둘째 딸이 좋아하는 땅콩, 생과자와 카스텔라, 찹쌀떡(모찌)이
아버지의 손길과 함께 베게 옆에 나란히 누워있다.
‘얘야 00 에미야, 식후 7보니 걷자’ 앞마당에 나가자고 보챈다
햇빛 한 켠 잘 드는 감나무 밑에 의자를 놓고 앉히며
발톱 깎아줄까? 작년에 왔을 때 엄지 발톱을 힘들게 깎는 모습을 훔쳤을까?
딸아, 미안해 하지 마라는 듯 고개를 갸웃하고 씩 웃는 낯선 애교
80이 넘은 아버지가 50이 된 딸에게
싫다고 손사래를 치는 손을 잡고 맛사지를 해준다
신문지 위에 앉아 마치 아픈 딸이 당신 때문인 양 긴 한숨과 함께
자식 앞에 고개를 조아리며 발톱을 깎아주는 친정 아버지
감나무 사이로 들어온 가는 햇살 속에 흰 머리칼은 반짝이고
은색 빛 몇 올이 힘겹게 춤을 추며 깎는 소리와 함께 박자를 맞춘다
당신의 허리만큼 구부러진 관절들을 다시 주물러 줄 때마다
비명이 허공에 꽂힌다 아야, 아퍼요
놀라서 본능적으로 딸의 두 발을 부여잡아 가슴에 대는 순간
주름 사이사이로 숨어드는 눈물과 애끓는 곡이 땅에 퍼지고
둘째 딸은 아버지의 머리를 안고 말없이 가슴을 들썩인다
부녀의 흐느낌을 내려다 보며
떫은 감들이 익어갔던 15년 전 내 고향 고척동
*친정 아버지가 떠나 가신지 10년이 되는 2022년 아버지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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