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혼 이야기
2005.05.05 07:38
한 겨울인 데도 날씨는 봄날처럼 맑고 화창했다. 예식에 입고 갈 정장을 찾아 놓고 정성 드려 머리 손질과 화장을 하며 내 마음도 달떴다.
자녀들의 혼례를 알리는 청첩을 보낼 만한 나이에 자신들의 재혼식을 준비하며 보낸 초대장. 묘한 기분이 되어 들쳐 보고 또 들쳐 보았다. 조촐하게 양가 가족들만 모여서 상견례 정도 하면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고 장성한 자녀들을 두고 있는 상황에서 형식에 맞춘 예식은 필요 없는 불협화음을 불러오는 것은 아닌지 사뭇 걱정이 되었다.
2004년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한국의 이혼율은 54.8%. 전년에 비해 7% 이상이 늘어 미국에 이어 세계 이혼율 2위를 자랑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과 미국의 사이에 서있는 우리 교포들의 실태는 어떠할까. 정확한 자료는 없지만 주위를 둘러 볼 때 그 숫자가 상당한 것이 틀림없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꾸준한 속도로 재혼 율도 증가한다고 복지부는 발표하고 있다. 따라서 전통적인 가족의 형태가 무너지며 동거와 재혼 등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복합가정의 형태로 급속히 변화한단다. 대부분 우리 나라 사람들의 의식 구조 속에는 '복합 가정' 하면 동화 속에 나오는 콩쥐팥쥐 나 신데렐라 이야기를 떠올려 불완전하고 건전하지 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곱지 않은 시선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들의 이야기가 주변의 가십꺼리로 뜬다는 자격지심 때문인지 재혼당사자들은 스스로의 노출을 극히 꺼려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정중하게 우편으로 예식을 알리고 지인 들을 초대하는 두 분은 대부분의 경우와는 사뭇 달랐다.
각자의 상처를 안고 애잔한 마음으로 바라본 십 년. 재혼을 결정하기까지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준비했던 것 같다. 각자의 자녀들, 어르신들, 경제적인 문제까지 재혼 후 일어 날 수 있는 갈등들을 미연에 막는데 최선을 다했다. 자신의 아이들을 기르면서 어려웠던 때에 의지가 되어 주었고, 서로의 집안의 경조사에는 도움이 되었으며, 세월 속의 아픔이 있었을 때에는 상처를 다독이며 만져 주었다. 두 분은 부부가 아니었기에 더욱 조심스러웠던 시간들을 이젠 마음놓고 마음의 맨 밑바닥까지 열고 탁 트인 가슴으로 서로 감싸안고 싶다고 했다.
한참 늦었고, 한번 하기도 힘든 것을 반복해야하는 어려움이 있었기에 더 심사숙고했을 두 사람. 나이가 들며 편안해 지고싶었고 이왕이면 많은 지인 들의 축복을 받고 싶어 쑥스럽지만 예식의 자리를 마련했다는 아름다운 변명을 들으며 잔을 높이 들어 "영원한 행복" 함께 외쳤다.
리셉션 형식을 빌렸던 재혼 예식. 그 좋은 시간 내내 양가의 가족들과 친지들은 오랜 친구처럼 잘 어울렸고 어색하지 않았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동창들이 합창으로 축가를 불러 주고 나도 남편을 대신해 두 분을 위해 졸 시이기는 하지만 마음을 다해 축시를 만들어 낭송해 드렸다. 층층이 켜져 있는 촛불들 사이에서 분홍색 장미가 장식된 케익을 자르고 은은한 색과 향기를 내는 와인을 나누며 축하연이 화기애애하게 이어지는 동안 간간이 양희은과 김민기의 노래가 옛 시절의 추억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턱시도 밑에 숨져진 뱃살과 고운 화장 밑으로 베어나는 눈가의 주름도 보기에 나쁘지 않았다. 삶의 상흔들이 남아 있기에 서로에게 더욱 절실할 두 분을 바라보며 오래 오래 몇 갑절 더 행복하기를 기도했다.
축하연이 길어져 밤을 새우고 돌아오는 길에도 졸음 하나 다가오지 않는 것은 추운 겨울 한 가운데서도 따스한 봄날처럼 포롱거리며 날아든 행복이 우리 둘의 가슴까지도 싸아하게 전해져 오는 때문일까. 졸 시를 다시 한번 중얼거려 본다.
한때/ 가냘픈 들꽃이고/ 한때/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풀이더니/
세월 깊을 수록/삶의 절절함도 더해/퍼렇게 멍든 상처 부둥켜안고/
서로의 아픔 애잔해 했네/
중략
이제/ 단단한 울타리 만들어/ 들풀향기 그윽하고/
억새풀 너울너울 춤추는/ 푸르고 깊은 숲을 이루리.
(한국일보 목요칼럼 3월)
자녀들의 혼례를 알리는 청첩을 보낼 만한 나이에 자신들의 재혼식을 준비하며 보낸 초대장. 묘한 기분이 되어 들쳐 보고 또 들쳐 보았다. 조촐하게 양가 가족들만 모여서 상견례 정도 하면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고 장성한 자녀들을 두고 있는 상황에서 형식에 맞춘 예식은 필요 없는 불협화음을 불러오는 것은 아닌지 사뭇 걱정이 되었다.
2004년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한국의 이혼율은 54.8%. 전년에 비해 7% 이상이 늘어 미국에 이어 세계 이혼율 2위를 자랑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과 미국의 사이에 서있는 우리 교포들의 실태는 어떠할까. 정확한 자료는 없지만 주위를 둘러 볼 때 그 숫자가 상당한 것이 틀림없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꾸준한 속도로 재혼 율도 증가한다고 복지부는 발표하고 있다. 따라서 전통적인 가족의 형태가 무너지며 동거와 재혼 등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복합가정의 형태로 급속히 변화한단다. 대부분 우리 나라 사람들의 의식 구조 속에는 '복합 가정' 하면 동화 속에 나오는 콩쥐팥쥐 나 신데렐라 이야기를 떠올려 불완전하고 건전하지 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곱지 않은 시선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들의 이야기가 주변의 가십꺼리로 뜬다는 자격지심 때문인지 재혼당사자들은 스스로의 노출을 극히 꺼려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정중하게 우편으로 예식을 알리고 지인 들을 초대하는 두 분은 대부분의 경우와는 사뭇 달랐다.
각자의 상처를 안고 애잔한 마음으로 바라본 십 년. 재혼을 결정하기까지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준비했던 것 같다. 각자의 자녀들, 어르신들, 경제적인 문제까지 재혼 후 일어 날 수 있는 갈등들을 미연에 막는데 최선을 다했다. 자신의 아이들을 기르면서 어려웠던 때에 의지가 되어 주었고, 서로의 집안의 경조사에는 도움이 되었으며, 세월 속의 아픔이 있었을 때에는 상처를 다독이며 만져 주었다. 두 분은 부부가 아니었기에 더욱 조심스러웠던 시간들을 이젠 마음놓고 마음의 맨 밑바닥까지 열고 탁 트인 가슴으로 서로 감싸안고 싶다고 했다.
한참 늦었고, 한번 하기도 힘든 것을 반복해야하는 어려움이 있었기에 더 심사숙고했을 두 사람. 나이가 들며 편안해 지고싶었고 이왕이면 많은 지인 들의 축복을 받고 싶어 쑥스럽지만 예식의 자리를 마련했다는 아름다운 변명을 들으며 잔을 높이 들어 "영원한 행복" 함께 외쳤다.
리셉션 형식을 빌렸던 재혼 예식. 그 좋은 시간 내내 양가의 가족들과 친지들은 오랜 친구처럼 잘 어울렸고 어색하지 않았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동창들이 합창으로 축가를 불러 주고 나도 남편을 대신해 두 분을 위해 졸 시이기는 하지만 마음을 다해 축시를 만들어 낭송해 드렸다. 층층이 켜져 있는 촛불들 사이에서 분홍색 장미가 장식된 케익을 자르고 은은한 색과 향기를 내는 와인을 나누며 축하연이 화기애애하게 이어지는 동안 간간이 양희은과 김민기의 노래가 옛 시절의 추억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턱시도 밑에 숨져진 뱃살과 고운 화장 밑으로 베어나는 눈가의 주름도 보기에 나쁘지 않았다. 삶의 상흔들이 남아 있기에 서로에게 더욱 절실할 두 분을 바라보며 오래 오래 몇 갑절 더 행복하기를 기도했다.
축하연이 길어져 밤을 새우고 돌아오는 길에도 졸음 하나 다가오지 않는 것은 추운 겨울 한 가운데서도 따스한 봄날처럼 포롱거리며 날아든 행복이 우리 둘의 가슴까지도 싸아하게 전해져 오는 때문일까. 졸 시를 다시 한번 중얼거려 본다.
한때/ 가냘픈 들꽃이고/ 한때/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풀이더니/
세월 깊을 수록/삶의 절절함도 더해/퍼렇게 멍든 상처 부둥켜안고/
서로의 아픔 애잔해 했네/
중략
이제/ 단단한 울타리 만들어/ 들풀향기 그윽하고/
억새풀 너울너울 춤추는/ 푸르고 깊은 숲을 이루리.
(한국일보 목요칼럼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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