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에 어둠이 내리면2

2006.10.23 10:55

전지은 조회 수:1418 추천:135


  그러다 한국말 자막을 실은 CNN으로 시선이 간다. 불체자 문제, 비몽사몽간이던 정신이 하얗게 맑아지며 허리를 곧이 펴고 바로 앉는다. 헤드폰의 볼륨을 좀더 올리며 자막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100만이 넘고 있다는 미국 내의 불체자들은 노동 집약적인 분야에서 그야말로 노동을 하고있다. 백인들의 자존심으로는 할 수 없고 게으른 흑인들은 하기 싫어하는 일감들, 법적 최소임금보다 더 적은 임금을 주는 것 외에는 어떤 부대 비용도 들지 않는, 일일 고용자인 불체자들이 이런 일들을 할 수밖에 없다. 불체자 문제가 어느 쪽으로 방향을 잡힐지 아직은 확실치 않지만 사회 문제로 전면에 나선 것만은 사실이다. 어느 쪽으로 불똥이 튀든 피해자는 신분의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며 그는 바로 내 가족들이다. 이미 시간은 너무 많이 가버렸다. 아들은 몇 년 후면 군에 가야 할 나이이고 딸은 곧 대학생이다.
  이제 곧 착륙할 시간이 되었으니 안전 벨트를 매었는지 확인하고 의자를 바로 세워 달라는, 안내 방송에 생각의 필름은 동작을 중지한다. 내려다보이는 하늘은 서울 상공 보다 더 뿌연 것 같다. 회색 빛 아래로는 더 짙은 잿빛의 도시들이 촘촘히 이어진다. 수 없이 많은 집들. 알 수 없는 슬픔 같은 것이 가슴 뻐근하게 고여든다.
  정숙은 무척 해쓱하다. 눈가의 주름도 많이 늘었고 기미는 더욱 짙어졌다. 문득 어디 아픈 것은 아닌가 싶다. 아이들은 학교에 있을 시간이라 못 데리고 나왔단다. 처남의 세탁소는 여전히 바쁘고 정숙이 맡아하는 하는 곳에도 일감이 더 많아 졌단다. 와이셔츠 하나를 99전에 내리쳤으니 안 그러면 이상한 거다. 길 건너 월남 여자는 24 시간 오픈으로 대항하고 있다고 했다. 공항을 빠져나가기도 전에, 몇 달만에 만난 부부가 하는 대화치고는 너무 무미 건조하고 딱딱하다.
  "손은 좀 나아졌어? 의사는 계속 보구?"
  정숙은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한 손을 들어 보인다.
  "그냥 그만 해. 옷감과 세제를 만지는 한 할 수 없다네. 치료보다는 더 나빠지지 않도록 하는 게 다야. 의료보험도 없으니, 약값도 의사 진료비도 무시 못 해."
  "아이들은?"
  "아이들이야 잘 지내지. 큰애가 한국을 너무 가고 싶어하는데...당분간이야 안되잖아... 애들도 잘 알아. 다행이야. 이해하는 쪽이니까....."
  "그래, 영주권은 진전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요즘 신분, 이민, 불체자 문제들로 시끄럽잖아. 아직 그냥 제자리걸음이야. 불체자라도 좀 풀리려나 모르겠어...데모도 하고 시끄러웠는데. 언론에선 멕시칸만 비춰주고 그 쪽에서도 우린 아주 아웃 싸이더야...한국인 불체자도 무지하게 많다는데..."
  "혹시 우리 아이들이나 당신도 데모대로 나갔던 것은 아니지?
  "응, 그건 아니야. 그렇지만 월요일, 큰 데모가 있던 하루는 문은 닫았어. 애들 외삼촌이 그렇게 하라고 해서. 아이들도 학교 하루 안 갔고..."
  "그런다고 뭐가 달라져? 아이들 학교는 왜 안 보내! 애들만 손해지. 아이들이 뭘 안다고. 엄마가 되가지고 그걸 말리지 그냥 둬?"
  "외삼촌이 보내지 말라고 해서...그 집 아이들도 안 갔어."
  "똑같네!! 근데 그 집 애들은 왜? 여기서 난 아이들이 무슨 문제가 있다고?"
  "문제가 아니라 불체자들의 편에 선다는 거지."
  "그런다고 이 나라에서 뭐가 달라질까..."
  "그래도 해 보는데 까지는 해 봐야겠지"
  "뭘 해보는데?"
  한숨이 이어진다. 이어지는 침묵은 나성의 매연과 함께 진득한 것들이 되어 가슴에 붙는다. 서울보다 더 탁한 공기 같다.
  정숙과 아이들을 남겨두고 비자가 만기되기 전에 떠난 것은 잘 한 일이었다. 겨우 혼자 발을 뻗을 만한 스튜디오를 얻고 교외에 창고 하나를 빌려 친구가 생산한 상품을 받아다 파는 세일이 생각지도 않게 대박이었다. 이익은 박했어도 박리다매의 상술은 서민들의 아파트촌에 먹혀 들어갔다. 이렇게 잘 되는 장사가 있는 줄 알았더라면 아이들과 정숙을 두고 오는 것이 아니었는데 후회를 했어도 아이들은 이미 영어가 불편하지 않게 되어 버렸고 정숙도 아이들을 핑계 삼아 더 머무르고 싶어했다.
  남편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었을까 아니면 진정으로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 부부 관계라는 것은 희생되어도 좋은 것이라고 생각되었던 것일까. 이도 저도 아니면 아이들은 우리 부부의 장래를 위한 확실한 투자라는 생각이 들었던가. 아니면 계속 되던 나의 실패에 가족 관계마저 문제가 생길까 하는 걱정을 했었을 수도 있다. 아무리 심성이 착한 여자라고 하더라도 견딜 수 있는 것엔 한계가 있었을 테니까.
  처음 일년은 핑계 거리만 있으면 나성행 비행기를 탔다. 정숙이 그리웠고 아이들이 보고 싶었다. 그리고 가장의 자리를 폼나게 해 줄 수 있는 돈도 충분했다. 이년쯤 지나자 가끔씩 만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있는 동안에는 서로에게 살갑게 굴었고 아이들도 고분고분했다. 좋은 것들만 보여주고 먹여 주기에도 시간은 늘 빠듯했고 헤어질 땐 늘 아쉬웠다.    그러나 관계가 점차 소원해 진다고 느끼는 것은 내 쪽의 문제에 있다. 인희의 등장과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긴 나는 사업을 핑계 삼아 일년에 두 번 오는 것으로 내 방문의 횟수를 줄었다.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오는 집으로의 여행은 의무 조항일 뿐이다. 전화와 아이들과 하는 인터넷, 통장의 잔고가 드러나지 않게 해주는 송금, 그런 것들이 내 책임의 전부 인 것 처럼되어 버렸다.
  내 어깨를 누르는 짐, 그러나 차마 여기서 내려놓을 수는 없다. 내가 필요 할 때만 정숙의 자리를 인정해 주고 내가 필요하지 않다고 해서 그녀를 모른 척 할 수는 없다. 너무도 이기적이고 모순된 나의 감정은 인희와 함께 있을 때는 이곳의 의무 조항을 들을 지워 버리고 싶다가도 아이들의 이 멜 한 통이나 정숙의 전화 한 통에 다시 어깨의 짐들을 고쳐 단단히 맨다. 그리곤  다시 인희에게 미안해진다. 정숙은 누가 뭐라 해도 아이들의 엄마이다. 그녀가 언젠가 나와 인희의 관계를 눈치채고 떠난다 해도 난 아직 그럴 수가 없다. 가장 힘들었을 때에 정숙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흔들리지 않았었다. 좀 더 돈을 벌어다가 정숙이 세탁소에 매달려 있는 시간을 덜어주고 아이들의 엄마로 울타리가 되어 든든하고 우아하게 그 자리에 있게 해 주고 싶다.
  정숙은 인희의 존재를 모른다. 나에 대한 필요 이상의 신뢰가 사실 부담스럽기는 하다. 그렇다고 지금의 이 상황에서 인희의 존재를 알리며 정숙 스스로 물러나게 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에도 없다. 인희가 묵인해 주는 한 이 관계는 한치의 진전도 후퇴도 없이 제 자리에 머물러 있게 될 것이다.
  정숙과 아이들이 한국을 다시 올 수 있는 날의 기약은 거의 없다. 불체자의 신분을 벗어 나는 일이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려운 일 아니던가. 오죽했으면 그린카드는 개도 안 집어먹는다고 했을까.
  인사동을 자주 드나들었던 것은 내 취향에 맞아서였다. '이모집'의 한식과 '오, 자네 왔는가'의 전통 차와 비좁은 공간인 '귀천'에서 느끼는 안락함. 옛것이라는 옛것은 다 모아놓은 참으로 한국적인 토속의 공간들. 그리고 낮이면 단옷날 풍물 시장처럼 한국의 아기자기한 것들을 모아 놓고 파는 상인들, 그것을 신기하게 쳐다보며 흥정을 하는 외국인들. 그리고 오랜만에 고국을 방문한 듯 어설픈 모습의 한국인들까지 거리의 풍경은 작지만 흥청거린다. 그리고 많은 화랑들과 만남의 장소까지 정겨운 삶의 모습들이 아름답다. 어둠이 내린 인사동 골목길의 포장마차와 요즈음은 새로운 모습의 청계천까지 옆에서 낭창낭창 흐르고 있어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곳에서 인희를 만났다. 개량 한복을 입고 손수 끓인 전통 차를 판다. 다기를 알리고 차 마시는 법을 손수 보여주기도 하는 인희의 찻집은 인사동 작은 골목 안에 있다. 이름 난 곳이 아니어서 손님이 많지 않아 오래 앉아 있어도 눈치가 보이지 않아 자주 들렸고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누다, 가까워졌다. 그녀의 숙소는 찻집의 안채이다. 작은 공간을 또 나누어 만든 아주 작은 곳, 나의 스튜디오 보다 더 작아서 맘에 들었다. 늘 베어 있는 차 향에 그곳에 누우면 정신이 맑아졌다. 작은 공간은 아늑하게 어머니의 품처럼 따스했다.  
  인희는 내가 기러기 아빠라는 것을 처음부터 알았고 자기에게 필요 이상의 번잡한 관계들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기에 편하다고 했다. 조여오지 않는 관계가 얼마나 편한지는 자신이 제일 잘 안다며. 아이들의 이야기를 함께 했고 정숙의 이야기를 함께 했다. 인희는 내 이야기를 잘 견디어 주었고 잘 참아 주었다.
  지난 봄엔 꽃눈이 내리는 벚꽃 길을 손잡고 걸었다. 말하지 않아도 사랑은 안다. 내 가슴에 내리는 함박 꽃 눈을. 흐트러지며 바람에 떨며 내리는 것들은 나비가 되어 그녀의 가슴에 안겼다. 섬진강변의 화개 장터에서 쌍계사에 이르는 동굴 같은 꽃길은 만개해 우리를 부르고 있었다. 눈이 부시도록 곱게 핀 벚꽃들은 혼신을 다해 피었다가 작은 바람에도 하얗게 낙화하여 꽃눈이 되어 내렸다. 잠시 쉬며 마시던 녹차 잔에 흰 꽃잎 하나가 내려앉았다. 꽃눈까지 섞어 마시는 차는 따스하게 가슴을 덮여주었다. 눈물이 나도록 감미로운 자연 속에 인희와 나는 오랫동안 마주보며 말없이 서 있었다.
  
  "일은 아직도 새벽부터 하는 거요? 내가 보내 주는 돈이 모자란 거요? 좀 시간을 줄이면 안되오? 얼굴이 많이 상했구려"
  정숙은 운전을 하다말고 고개를 돌린다. 한쪽으로 들어 난 어깨가 너무 작고 많이 처졌다. 말없이 정숙은 속력을 더 낸다.
  딸은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오는 길에 한국 마켙에 들렸다며 주간지들을 잔뜩 집어 왔다. 소파에 앉아 몇 장을 넘긴다. <한인끼리 이민국에 고발, 충격> 이라는 기사가 눈에 확들어 온다. 순간, 가슴이 철렁하다. 사건의 밑에는 신문사의 주간이 썼을 데스크 칼럼이 나란히 놓여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을 한다. 불체자의 문제가 점점 사회 이슈화되면 동포들끼리 고발하거나 신분 상태를 빌미로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데스크 칼럼의 끝에는 '누구도 그들에게 돌을 던질 수는 없다'라고 끝을 맺는다. 한인 사회의 풍토는 그렇지 않아도 서로 헐뜯고 싸우는 일들이 비일비재 한데 이번엔 신분문제까지 뜨거운 모래바람을 일으키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된다. 몇 장을 더 넘겨도 변변한 소식은 없다. 여기나 거기나 신통한 것이 없다.
  아이들이 이층에서 내려오며 T.V.을 켠다. CNN 특집으로 마련된 불체자 문제와 이민 정책. 아이들이 소파에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는다. 늘 문제의 핵심에서 문제를 각인 시켜 주는 앵커, 앤더슨 쿠퍼가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부시의 이민정책에 관한 특별 담화문에 이어 아름다운 태평양 연안에 세워져 있는 철책과 애리조나 사막의 허술한 국경, 담을 넘는 멕시칸들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멕시코의 대통령 팍스는 국경의 최인접 도시 티화나를 방문하였고, 미국 대통령 부시는 애리조나의 최하단 국경 부근을 시찰하였다. 두 국가의 팽팽한 심리전은 계속되는 것 같았다. 아이들의 시선은 CNN에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았다. 다음날도 방과 후의 아이들은 또 CNN을 켠다. 이번엔 50번 하이웨이에서 미국을 향해 들어오던 차량이 미국측 검문에 불응하자 국경 경찰이 운전자에게 총격을 가해 사살한 사건이 일어났다. 함께 타고 있던 멕시칸들은 그 와중에 어디로 사라졌는지 찾을 수가 없다고 했다.
  일주일 내내 좌불안석 불안하다. 낮 시간이면 한국 신문들을 읽으며 불법체류자들에 관한 자세한 정보는 없는지 살핀다. 아이들은 집에 돌아오면 24 시간 시사 뉴스를 보내 주는 채널에만 고정되어 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아이들과 샤핑도 가고 은근히 정숙을 부추겨 라스베가스로 재미를 보러 갔을 수 도 있으련만 이번엔 상황이 영 다르다. 아이들도 지금은 돌아 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아들의 군 문제가, 딸의 대학입시 수능이 발목을 잡고 있는 한 우리들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다.
  살가운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채 시간만 간다. 정숙은 하루도 빼지 않고 일을 하러 나갔다. 혼자 남겨진 집은 내 집 같지가 않다. 버석거리는 가슴이, 버석거리는 머리 속으로 많은 생각들이 불어든다. 별 뾰족한 해결책이 없는 것은 아이들도 정숙도 나도 안다. 손놓고 앉아 있는 속수무책. T.V. 프로그램은 우리들의 호흡을 가쁘게 할 뿐 그렇다고 금방 무엇이 달라진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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