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ember of the Wedding
2005.03.09 22:47
Carson McCullers[-g-alstjstkfkd-j-]--Collected Stories of Carson McCullers중에서
친오빠의 결혼식을 앞두고 열두살 난 소녀, Frankie는 이탈을 꿈꾼다. 하루하루가 똑 같았던 여름과, 설명할 수 없이 불안했던 봄날의 기억으로부터, 때로 괴물같이 느껴지는 자신으로부터, 멀고아름다운 것들을 향해 떠나리라 생각한다. 동경할 만한 것, 자신의 탈출에의 동행자로서 신랑, 신부는 제 격이다. Frankie는 그들을 자신의 "우리"라 생각하며, 결혼식이 끝나면 그들과 더불어 아름다운 세상 속으로 떠나가리라 생각한다. 그 결심을 한 뒤, Frankie는 F. Jasmin이 되어 온 거리를 활보한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결심을 설명하고, 그들과의 교감을 경험했다고 믿는다. 마침내 자신이 세상과 연결되었다고 믿는다.
벼르고 벼르던 결혼식은 그녀의 열망과는 무관하게 순식간에 끝나버리고, 함께 가겠다는 그녀의 악다구니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들"과 "우리"가 되지 못하고 혼자 남는다. 그날 밤 혼자라도 세상 속으로 떠나리라, 가출을 시도하지만, 막상 마주친 세상의 얼굴은 무섭다. 아버지의 신고로 되돌아온 그녀는 Francis가 되어 새 친구를 사귀고, 다시 그 친구와 함께 세상 속으로 떠날 것을 꿈꾼다.
"We all of us somehow caught. We born this way or that way and we don't know why. But we caught anyhow. I born Berenice. You born Frankie. John Henry born John Henry. And maybe we wants to widen and bust free. But no matter what we do we still caught. Me is me and you is you and he is he. We each one of us somehow caught all by oneself..."
"Yet at the same time you almost might use the word loose instead of caught. Although they are two opposite words. I mean you walk around and you see all the people. And to me they look loose."
흑인 식모와 열두 살 소녀 사이에서 이루어진 이 대화는 이 소설 전체를 요약한다. 자신의 정체에 갇힌 사람들, 그러나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member가 되지 못하는) 사람들.
나도 자라면서 Frankie같은 이탈과 동시에 아름다운 무엇에 속하고 싶은 열망에 가슴앓이를 했었다. 사춘기 시절은 물론이고 미국에 유학 와 대학에 다니면서도 한때 여권을 backpack 한 구석에 가지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 그간 나도 모르게 세상의 무심한 얼굴에 수없이 부딪쳤을 그 열망은 이제 희미한 기억으로 남아 있을 뿐이지만, 세상을 모르는 열두 살 소녀가 겪는 그 열망은 새삼 나와 주위를 돌아보게 한다. 자신의 껍질 속에 들어 한치의 에누리도 없는 자신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결국은 혼자 돌아가는 사람들. 이 모두가 문득 낯설고 괴이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Carson McCullers의 문장들은 아름답다. 한가한 남부 소도시의 시시각각 풍경묘사를 읽고 있으면, 그 순간, 그 장소에서 숨쉬며 꿈을 꾸는 열두 살 소녀의 열망과 그 열망으로 인한 고통이 그대로 느껴진다.
"At the twilight the sky became curious blue-green which soon faded to white. The air was soft gray, and the arbor and trees were slowly darkening. It was the hour when sparrows gathered and whirled above the rooftops of the town, and when in the darkened elms along the street there was the August sound of the cicadas. Noises at twilight had a blurred sound, and they lingered: the slam of a screen door down the street, voices of children, the whir of a lawnmawer from a yard somewhere..."
늦여름 저녁의 묘사이다. 내일이면 떠날 집,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이웃을 바라보는 화자의 눈길이 천천히 나른하게 어둠 속에 잠겨가는, 내일이면 자신이 벗어버린 "옛 자신"과 함께 의식의 밑바닥으로 사라져버릴, 순간을 더듬는다.
어찌보면 소설의 줄거리와 별 상관없어 보이는 이 저녁 한때의 묘사에서 나는 묘사의 힘을 느낀다. 잘된 묘사는 소설 속의 공간을 보여주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독자가 멋모르고 낱말 하나 하나, 비유 하나 하나를 따라가는 동안 독자의 의식을 빨아들여 소설 속의 그 공간, 그 순간에 살게 한다. 화자 또는 작가와 함께 그 속에서 함께 듣고, 보고, 느끼며, 숨쉬게 한다.
내가 묘사가 잘 된 소설을 사랑하고, 작품을 쓸 때 묘사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바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보다 정확한 묘사, 보다 근사치에 가까운 묘사를 만들어내다 보면, 화자의 의식이 깨어나고 (작가의 의식과 더불어), 그가 숨을 쉬며 저절로 다음 행동과 말이 이어지는 것이다.
친오빠의 결혼식을 앞두고 열두살 난 소녀, Frankie는 이탈을 꿈꾼다. 하루하루가 똑 같았던 여름과, 설명할 수 없이 불안했던 봄날의 기억으로부터, 때로 괴물같이 느껴지는 자신으로부터, 멀고아름다운 것들을 향해 떠나리라 생각한다. 동경할 만한 것, 자신의 탈출에의 동행자로서 신랑, 신부는 제 격이다. Frankie는 그들을 자신의 "우리"라 생각하며, 결혼식이 끝나면 그들과 더불어 아름다운 세상 속으로 떠나가리라 생각한다. 그 결심을 한 뒤, Frankie는 F. Jasmin이 되어 온 거리를 활보한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결심을 설명하고, 그들과의 교감을 경험했다고 믿는다. 마침내 자신이 세상과 연결되었다고 믿는다.
벼르고 벼르던 결혼식은 그녀의 열망과는 무관하게 순식간에 끝나버리고, 함께 가겠다는 그녀의 악다구니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들"과 "우리"가 되지 못하고 혼자 남는다. 그날 밤 혼자라도 세상 속으로 떠나리라, 가출을 시도하지만, 막상 마주친 세상의 얼굴은 무섭다. 아버지의 신고로 되돌아온 그녀는 Francis가 되어 새 친구를 사귀고, 다시 그 친구와 함께 세상 속으로 떠날 것을 꿈꾼다.
"We all of us somehow caught. We born this way or that way and we don't know why. But we caught anyhow. I born Berenice. You born Frankie. John Henry born John Henry. And maybe we wants to widen and bust free. But no matter what we do we still caught. Me is me and you is you and he is he. We each one of us somehow caught all by oneself..."
"Yet at the same time you almost might use the word loose instead of caught. Although they are two opposite words. I mean you walk around and you see all the people. And to me they look loose."
흑인 식모와 열두 살 소녀 사이에서 이루어진 이 대화는 이 소설 전체를 요약한다. 자신의 정체에 갇힌 사람들, 그러나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member가 되지 못하는) 사람들.
나도 자라면서 Frankie같은 이탈과 동시에 아름다운 무엇에 속하고 싶은 열망에 가슴앓이를 했었다. 사춘기 시절은 물론이고 미국에 유학 와 대학에 다니면서도 한때 여권을 backpack 한 구석에 가지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 그간 나도 모르게 세상의 무심한 얼굴에 수없이 부딪쳤을 그 열망은 이제 희미한 기억으로 남아 있을 뿐이지만, 세상을 모르는 열두 살 소녀가 겪는 그 열망은 새삼 나와 주위를 돌아보게 한다. 자신의 껍질 속에 들어 한치의 에누리도 없는 자신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결국은 혼자 돌아가는 사람들. 이 모두가 문득 낯설고 괴이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Carson McCullers의 문장들은 아름답다. 한가한 남부 소도시의 시시각각 풍경묘사를 읽고 있으면, 그 순간, 그 장소에서 숨쉬며 꿈을 꾸는 열두 살 소녀의 열망과 그 열망으로 인한 고통이 그대로 느껴진다.
"At the twilight the sky became curious blue-green which soon faded to white. The air was soft gray, and the arbor and trees were slowly darkening. It was the hour when sparrows gathered and whirled above the rooftops of the town, and when in the darkened elms along the street there was the August sound of the cicadas. Noises at twilight had a blurred sound, and they lingered: the slam of a screen door down the street, voices of children, the whir of a lawnmawer from a yard somewhere..."
늦여름 저녁의 묘사이다. 내일이면 떠날 집,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이웃을 바라보는 화자의 눈길이 천천히 나른하게 어둠 속에 잠겨가는, 내일이면 자신이 벗어버린 "옛 자신"과 함께 의식의 밑바닥으로 사라져버릴, 순간을 더듬는다.
어찌보면 소설의 줄거리와 별 상관없어 보이는 이 저녁 한때의 묘사에서 나는 묘사의 힘을 느낀다. 잘된 묘사는 소설 속의 공간을 보여주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독자가 멋모르고 낱말 하나 하나, 비유 하나 하나를 따라가는 동안 독자의 의식을 빨아들여 소설 속의 그 공간, 그 순간에 살게 한다. 화자 또는 작가와 함께 그 속에서 함께 듣고, 보고, 느끼며, 숨쉬게 한다.
내가 묘사가 잘 된 소설을 사랑하고, 작품을 쓸 때 묘사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바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보다 정확한 묘사, 보다 근사치에 가까운 묘사를 만들어내다 보면, 화자의 의식이 깨어나고 (작가의 의식과 더불어), 그가 숨을 쉬며 저절로 다음 행동과 말이 이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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