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2.06 04:41
Indian Summer
김태영
도네이션을 받으러 왔던 중학생 둘이 공룡이 든 플라스틱 백을 들고 나가자 한국 남자가 재빨리 계산대 앞에 다시 선다. 마치 추궁을 하듯 아까 하던 질문을 나에게 던진다. 계산대는 플로어 보다7인치가 높다. 내가 대답을 궁리해 볼 수 있는 여유도 키 높이의 차이 같다. 그는 아직 자기의 신분도 밝히지 않은 상태다. 내 입술이 바짝 말라있다. 침을 바를까. 립그로스를 바를까 망설인다. 남자 앞에서 그것도 바로 코 앞에서 입술에 뭘 바른다는 것이 마뜩잖다. 신경이 온통 입술에 모아지자 손톱 근처에 까시래기가 생겼을 때 마냥 일에 집중 할 수가 없다. 남자가 무슨 말을 한다 해도 뜻을 알아들을 것 같지도 않은데 그는 권총을 들이대 듯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하고 싶은 말을 쏜다.
“ 보십시오. 텍사스의 허리케인 하비, 플로리다의 강풍 어마, 멕시코의 대지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세상이 망해가는 것을 보고만 계실까요?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 “
바를까 말까. 손을 밑으로 내려 서랍 속의 립그로스를 만지작거리다가 아쉽게 놓는다. 제발 아무 것도 묻지는 말아 주세요. 아무런 대답도 준비되어 있지 않습니다. 말하고 싶지만 용기가 없다. 어쩌면 바람처럼 흘러 들어 왔듯이 슬쩍 떠나버릴까 겁이 나는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이 사람이 필요하다. 퇴근시간 대에는 임플로이 루뻬와 아들, 나 셋이서도 바쁘기 마련인데 오늘은 나 혼자다.
“이제 곧 영원히 파멸되지 않을 새 왕국을 세우실 것입니다. 믿습니까?”
이 사람은 어떻게 이 넓은 미국, 켈리포니아, 게다가 한국 사람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Madera, 내 가게까지 흘러 왔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홀 안을 휘둘러 본다. 누가 뭘 훔치려고 내 동정을 살피고 있을 수도 있다. 남자가 내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빚 받으러 온 사람 같이 천연덕스럽다. 그가 무엇을 물었던가 잊었다. 나는 눈길을 피하며 손님이 물건을 들고 와서 돈을 내밀기만 기다린다. 출입문이 바쁘게 열렸다 닫혔다 한다.
“ 알아.나도 한 때는 혼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어. 밤중까지 차를 몰고 헤매고 다녔지. 헨슬리레익, 블랙 레익, 요세미테 근처 베스레익까지 미친 년처럼 산과 호수를 갈고 다녔지. 빈 방에 들어가는 게 겁이 났거든. 혼자라는 엄연한 현실을 인정 할 수가 없었다니까. 나중엔 사람 만나기도 싫어지고 그러니 고립되고. “
아까 곧장 남자 옷 코너로 갔던 여자다. 오른 손으로 전화기를 귀에 붙이고 말을 하면서 내게로 걸어 온다. 남자와 내가 듣거나 말거나 할 말을 또박또박 하는 걸로봐서 언어가 다르니 상관없다는 표정이다. 티셔츠 차림의 초록색 눈은 골똘히 경청하고 있다.
“ 지내 놓고 보니 이렇게 편한 걸. 행복 하냐구? 물론이야. 난 지금이 젤 행복해. “
여자가 왼 손 검지로 자기 눈을 가르키며 티슈를 달라는 시늉을 한다. 눈물이 볼 위로 줄줄 흘러 내리고 있다. 티슈를 내미니 입술로 땡큐라는 모양을 만들며 웃는다. 세련 된 미소, 백인들의 미소는 때때로 조상 때부터 조작되어 온 학습된 것일 때가 많다.
“배고프다니? 음식이 썩어나가는 이 땅에서 엘리트가 배가 고파? 영혼이 허기졌지. 헤어지자고 할 땐 그 여자가 날마다 밥과 사랑을 마구 퍼 줄 줄 알았지. 불행하게 만들었어? 누가. 내가? 웃기지 마! 아직도 모르겠니. 누구도 널 불행하게 할 수 없어. 행복도 네가 만들어. 아직도 날 미워하니? 원망 해? 그렇담 넌 죽는 날까지 불행할 거야. 두 유 리맴버? 너, 날 똥 밟은 헌신짝 버리듯 벗어 던지고 달아 났잖아. 미친 놈! 돌아 오겠다구? 입닥쳐 ! 꺼져! 넌 초라한 수탉같은 꼴로 죽어 갈거야. 썬 오브 비치! 고우 루 핼!”
여자는 전화 속의 남자에게 욕설과 저주를 퍼붓고는 티슈를 더 달라는 시늉을 한다.
눈물이 턱에서 가슴팍으로 곧장 떨어지고 있다. 피가 얼굴로 몰려 새빨갛다. 손에 흉기가 있다면 남자의 가슴팍을 겨냥해 던질 수도 있을 것 같은 기세다.
남의 전화를 스쳐 들은 것 뿐인데 소리없는 지진처럼 무엇이 나를 흔들고 있다. 이제는 물 묻은 붓으로 수채화를 지우듯 점점 희미해져가고 있는 그 날의 기억이 수면 위로 대가리를 드러내는 괴물처럼 꿈틀 거린다. 누구나 악하고 추한 것들이 숨겨져있는 마음 속의 비밀 연못이 있는지 모른다. 어떤 사람의 씨앗은 그 안에서 죽고 어떤 사람의 씨앗은 기어코 밖으로 나온다. 나는 내 마음 속의 나쁜 기억의 씨앗이 자라지 못하도록 꾹꾹 누르며 살아왔다. 그런데도 털 끝만 건드려도 비러먹을 기억장치는 풀려서 내 속을 뒤집어 놓고 만다.
여자의 눈에 핏발이 선다. 얼마나 큰 상처를 주고 떠난 남자인지 짐작이 간다. 나는 옷갈아 입는 방 문을 열고 티슈를 내밀며 여자더러 들어가라는 시늉을 한다. 여자는 또 땡큐라는 입 모양을 만들며 웃음을 만든다. 눈물이 목줄기를 타고 내려가고 있다. 안으로 들어간 여자가 벽에 등을 기대고 허물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나 미국 안 가. 내 짐 대충 보내 줘. 싫으면 말고. 여기 눌러 살기로 했어. 역시 내 나라가 좋아. 크리스도 다 컸고 당신 나 없이도 잘 살 잖아.”
“그게 남편이란 작자가 할 소리야? 장난이야? 가족이 함께 살아야지.”
“ 가족 좋지. 그런데 가족이라서 Sex가 안 되잖아. 난 설레임을 느끼고 싶어. 열정을 가지고 다시 사랑을 해 보고 싶다구. 알아 들어? 우린 끝났어. 난 미국 싫어. 그딴 옷장사 허우대 멀쩡한 내가 할 일은 아니지. 알잖아. 당신 알아서 해. 날 잊어 줘.”
50 고개에 올라 설 때 남편은 세상에 종말을 맞은 듯 한탄 했다. 인생이 이렇게 끝나느냐고 머리칼을 쥐어 뜯기도 했다. 사업확장이나 엘에이로 진출 못하는 것을 한탄 하는 줄 알았지 불타는사랑을 갈구 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 그 날도 퇴근시간이라 바빴다. 나는 옷 갈아 입는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등을 벽에 대고 발 뻗고 앉았다. 왼쪽 귀에서 기차 지나가는 소리가 뇌관을 뚫고 있었다. 이어서 무엇이 퍽퍽 무너져 내리는 소리. 내 인생에서 중요한 것들이 망가지는 소리였다.
“어머니 좀 바꿔줘요. 할 말 있어요. 당신 이민생활에 좀 피곤해서 그래. 얼마던지 쉬웠다 와요. 암 말 안 할 게. 모든게 다 좋아지고 있잖아. 괜찮아 우리 잘 살 수 있어.”
“ 그럴 필요 없어. 나 쌍님이네 있어. 같이 살어. 크리스 한텐 적당히 둘러대.”
“싸, 쌍님이?”
나는 즉시 쌍님이 회사에 전활 걸었다. 비서는 자랑스럽게 말 했다. 서 부장님 곧 결혼 한다고. 미국 센프란시스코 대학 교수분인데 이참에 결혼해서 눌러 사신단다고.
남편이 느닷없이 머리를 쉬겠다고 한국에 나간 건 쌍님이가 우리집에 왔다가고 6개월 쯤 후였다. 친구는 애를 낳지 못해 이혼을 했다면서 수 십 억대의 아파트 한 채와 땅을 위자료로 받았다고 떠들어 댔다. 뿐만 아니라 보험 외판원 우수사원으로 수입이 너무 많아 관리하기가 힘들다 했다. 남편은 내가 옆에 있는데도 날 고기 앞에 앉은 개처럼 침을 질질 흘렸다.
“요새는 미국도 그리 가깝다는데 너만 몰랐구나. 도둑을 맞을라면 개도 안 짖는다는다더니. 걔 남자사냥 다녔다더라. 얘 쌍님이 중학교 때 널 좀 부러워 했니? “
“남자사냥?”
“놀래기는. 미국 사는 사람들이 더 촌스럽다더니 맞구나. 요새는 여자들이 호스트 바에 가는 게 보통이래. 세상이 뒤집어 졌다니까. 쌍님이 걔 겨우 중졸 학벌로 보험해서 돈 엄청 벌었단다. 이혼 했으니 남자 하나 잘 물어 신분상승 하려고 눈에 불을 키고 다녔다는데 설마 미국까지 원정 갈 줄 몰랐다. 알았으면 알려줬지. 그러게 카톡방도 들어 와보고 그랬어야지. 넌 그게 탈이야. 혼자만 딴 세상 사는 것처럼 웅크리구 앉아서.”
“고마워. 별 미련 없어. 잘들 살아보라지.”
말은 이렇게 했지만 이민 온 후로 별 연락도 안하고 살던 옛 친구한테 이런 말을 들은 내 맘은 상처에 고춧가루를 뿌린 기분이었다.
벌써 10 년이 지난 얘기지만 여지껏 나를 지배하고 있는 수치심과 패배감이 명치 끝에 걸려 있어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심장을 찌른다.
“전화 하지마. 용서? 그건 너를 위해 하는 게 아니라 날 위해서 필요해. 안 하면 사랑도 평화도 깃들 자리가없어. 용서해야 새 삶을 시작하지. 나? 프리야. 프리덤을 찾았다구. 전화 끊어. 바빠. 새 남자 생겼어. 미쳤니? 능력있는 내가 왜 너 같은 배반자 한테 목 매고 있겠니. 꿈 깨라. 죽는한이 있어도 너하고 다시는 얽히는일 없을 거야. 끊어!”
한 마디 한 마디가 피 흘리는 내 가슴에 박힌다. 나는 그것에 독을 묻혀 쌍님이 집 머슴으로 전락했다는 남편에게 던진다. 나를 발판 삼아 미국 왔다가 돈 많다는 여자에 넋을 빼앗겨 대학교수로 둔갑을 하고 배를 갈아 탄 남자다.
흩어진 옷들을 대강 정리해 놓고 앞으로 나가니 거기 양복입은 신사가 아직도 버티고 있다. 어쩐지 가족이 함께 있는 것처럼 든든하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이 땅을 정복하라 하셨으니 우리는 생로병사 없이 영원히 살아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재앙은 또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
돈을 치르기 위해 내 앞에 서있는 사람들은 한국어를 이해 하지 못한다. 저마다 나름대로 뜻풀이를 하는 얼굴이다. 대충봐도 대 여섯 인종이 내 가게 안에 있다. 한국인, 백인, 흑인, 스페인계 멕시칸, 인디오 족 멕시칸, 미국에서 태어난 멕시코 사람들, 게다가 인도 사람도 있다. 언어는 달라도 공통점이라면 남의 일에 끼어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위아래로 살펴보거나 불쾌한 표정도 지어 보이지 않는다. 저마다 웃음 띈 얼굴로 제 볼 일만 보고 유괘하게 사라져 간다. 나도 마찬가지다. 비록 성가신 질문에 시달리고 있지만 지극히 평화로운 얼굴로 상큼한 미소를 입에 물고 작동된 기계처럼 돈을 받고 땡큐를 연발하고 있다. 심각한 얼굴은 이유없이 날 쳐다보고있는 초록 눈 뿐이다.
울던 간호사가 왼 팔에 남자 잠옷 한 벌을 걸치고 내 앞에 서 있다. 귀에 아직도 셀폰을 붙이고 있다.
“진드기 같이 왜 이래? 남자 있다니까. 약속 있어 가야해. 끊어!
셀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미안해요 하며 생긋 웃는데 눈 속엔 새로운 눈물이 솟고 있다. 거짓웃음을 보일지언정 좀처럼 남 앞에서 울지않는 미국사회에서 오랫만에 보는 눈물은 신선하다. 그의 눈물이 내게로 흘러 들어온 것일까. 가슴 밑바닥에서 눈물이 스멀거리는 것을 알지만 지긋이 누르며 두 다리에 힘을 준다. 남자친구만 생긴다면 나는 그이보다 훨씬 매몰차게 내칠 수 있다. 그럴 확률은 섬 같은 Madera에서 죽은 나무에 꽃 피우기 만큼 희박하다. 남편은 후회하며 가끔 전화가 온다.
“아, 덥다. 우와기 좀 벗어도 되겠지요?그런데 아주머니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사십니까? 이런 말 물어도 실례가 안 된다면.”
“생각없이 사는 사람은 없겠지요. 저도 많은 생각을 해요. 텐 투에니. 오케이. 그런데 달라진 건 없어요. 날마다 같은 시간에 나와 같은 일을 해야 하니까요. 투에니 파이브 땡 큐. 생각하고 실천이 따라야 진짜 사는 거라 생각 하는데요. 썸씽 롱? 노 프라블럼. 오 케이”
짧은 대답을 하는데도 손님들과 말을 해야 한다. 그는 상관 하지 않는다. 머릿 속엔 우와기란 단어가 뱅뱅 돌고 있다. 우와기? 뜻을 모르겠는데 분명 들어 본 명사다. 그가 옷을 벗기 위해 오른 팔을 위로 올릴 때에야 그것이 남자의 윗 저고리를 뜻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올린 팔 약지에서 두툼한 금반지가 반짝 빛난다. 어머니가 보셨으면 닷 돈은 실히 된다고 무게를 가늠해 낼거라는 쓰잘데 없는 생각이 또 슬쩍 떠오르다 사라진다. 초록 눈 여자 주춤 물러 선다. 왜 안 떠나는지 모르겠다. 마치 우와기와 한 조가 된 듯 나란히 서 서 우리 둘의 눈치를 낱낱이 살피고 있다.
“다시 찾아 오겠습니다. 답을 듣지 못 했으니. 그런데 이 동넨 한국 사람 없습니까? 모두 어디들 숨어 사는지. 안 보이네요. 이렇게 잡화점들을 하고 삽니까?”
기왕 버티고 있었으니 문 닫을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 또 본론 보다 하찮은 것에 신경이 걸린다. 잡화점. 그런 말이 아직도 존재하는지 모르겠다. 그는 나가다가 다시 돌아 온다. 반갑다. 말을 해야지. 기다려 달라고. 그러나 내 생각을 싹둑 자르며 주의를 준다.
“저 뒤에 배가 남산만한 깜둥이가 아까부터 이 쪽을 보고 서 있어요. 조심 하세요.”
그는 팔을 활활 휘저으며 간단히 떠난다. 초록 색 눈도 얼른 뒤따라 나간다. 미적거리고 있을때와는 다른 태도다. 이별에 초연하자고 마음을 다잡아 먹었건만 뜨네기 조차 붙잡고 싶어진다. 목이 자꾸 문 밖을 살핀다. 아직 거기 있을까 뛰어가 볼까. 밖에는 떠나지 못하는 늦더위가 돌배나무 잎을 말리고 있다.
전화벨이 울린다. 엘 에이에 물건 사러 간 아들이 별 일 없냔다. 루뻬가 교통사고 나서 혼자 일한단 말은 하지 않는다. 한국음식 많이 사 먹고 천천히 오라고 당부 한다. 점심은 먹었냐고 묻는다. 먹었다고 거짓말을 한다. 갑자기 배가 고프다. 사실 배 곯는데는 이골이 난 나다. 주변에 멕 더날을 비롯해서 식당이 열 개나 된다. 하지만 보골보골 찌개를 끓여내는, 아니 찌개가 없어도 좋다. 아예 한국 식품점도 없다. 구미에 당기는 음식이 없으니 점심을 건너 뛰기 일쑤다. 넓은 땅에 20 년 넘게 살아도 동족이 없으니 외딴 섬에 사는 기분인데 배까지 고프다.
시계를 본다. 저녁이다.오줌이 마렵다. 먹고 배설하는 문제도 재까닥 해결하지 못할 정도로 바빴다면 돈도 엄청 벌어 놨어야 되지 않느냐고 나에게 우스게소리를 건다.
손님들은 파도와 같다. 올 땐 한꺼번에 오고 없을 땐 썰 물 때와 같이 한가하다. 언제 들어 왔는지 장난감을 사갔던 금발머리가 말 없이 검정 색 여자 정장 한 벌을 들고 계산대 옆에 놓는다. 여자의 얼굴이 어둡다. 우리는 말이 없다. 옷을 들고 나가려다 말고 그이가 돌아서서 ‘남편이 죽었어요.’그런다. 나는 그이의 얼굴을 망연히 바라 보며 가슴 뛰는 소리를 듣는다. 이럴 때 이 곳 사람들은 덥석 껴안으며 ‘ 아엠 쏘리’ 진심 어린 몸짓으로 위로 한다. 나는 아직도 잘 안 된다. 가서 껴안아줄까. 차는 안 떠났을거야.
밖을 향해 목을 뺀다. 하늘은 오렌지 색에 청보라 빛 포도주를 끼얹은 것 같은 낯 빛이다. 하루가 기울고 있다. 새 떼들이 날아간다. 그이의 혼도 저리 날아갔을 것이라 위로해 본다.
실내가 텅 비자 갑자기 음악소리가 망치뼈를 건드리며 들려 온다.
‘겨울, 봄, 여름, 가을 난 언제든지 너에게로 갈 수있어. 전화만 해.’
글로리아의 목소리가 애절하다. 그이의 남편은 이제 전화를 받을 수 없다. 살아 있어도 전화를 걸 수 없다면 죽은자와 무엇이 다를까. 전화 걸지 마세요. 각자의 길을 가는 겁니다. 아주머니는 아무 생각없이 그냥 사십니까. 세 개의 문장이 엉키다 화해하다 서로 녹아들어 희미해진다.
나는 오늘도 갇힌 새였다. 시간에 이끌려 밤 열차에 올라 탄 기분이다. 오늘은 정말 일찍 들어가야겠다. 언제나 그랬듯이 공룡부터 챙긴다. 여기저기 처박혀있는 공룡들을 찾아 바구니에 수북히 쌓아놔야 직성이 풀린다. 루뻬는 이머전시에서 나왔는지 전화해 볼 짬이 없었다. OPEN 사인을 끄고 하루치의 결산을 봐야할 시간이다. 그런데 흑인 처녀가 일부러 그러는 사람같이 자때바때 팔을 뒤로 휘저으며 터질듯 부푼 배를 내밀고 곧장 걸어 들어 온다. 계산대 옆 빈 자리에 팔을 올려 놓고 종이와 팬을 내놓으란다. 단골손님 중에 벙어리가 있어 나는 익숙하게 그것을 나란히 내놓는다. 말이 종이 위에 뜬다
-나좀앉게해줘빨리.-
- 나지금문닫을거야왜나한테와서그래.,-
-나지금앉아야해도와줘.-
-여기앉아누구없니도와줄사람.-
-땡큐남자친구가여기서꼼짝말고기다리라고했어.-
-왜?-
-널안다고여기있으래돈구해온다고애기낳을돈병원가야지.-
-돈없어도애기는낳게해병원에서.-
-몰라돈없으면죽는거아냐?”
-아냐다사는방법이있어근데왜안올까.-
-도망갔겠지.-
-오마이갓!저도애아빤데도망갈수있니?-
-도망갔을거야도망갈수도있어겁장이.온종일기다렸는데큰소리칠때는언제고.-
-오마이갓!-
의자에 등을기대고 앉은 처녀에게 물을 갖다 주고 911에 전화를 건다.
“여기1608 하워드 로드 빨리 와 주세요. 애가 곧 나오려고 해요, 녜? 내가 아니고 열 다섯 살 정도, 주니어 같은데요. 뭐요? 아 집 코드? 나인 식스 쓰리 식스 쎄븐, 맞아요. 96367 녜 세이브 맛 옆이요.아 빨리!”
숫자가 머릿 속에서 구륙하다가 나인 식스 꼬인다. 상황 설명을 하고 주소를 대자 5분 안에 엠블런스가 도착할 거라고 한다. 갑자기 배불뚝이가 의자에서 바닥으로 나뒹굴어지더니 내 발목을 붙잡는다. 아기가 나오려는지 입을 쩍 벌리며 몸을 뒤틀 뿐 아, 소리조차 지르지 못 한다. 발목을 부여잡은 손을 겨우 뜯어내고 큰 타올부터 가져 온다. 엠블런스가 도착하기 전에 애가 나오면 내가 받아야만 한다. 소녀는 몸에 꼭 끼는 검은 레깅스 차림이다. 애가 바지에 걸리겠기에 우선 빠져 나오기 쉬운 치마를 고른다.
아까 상복을 골라간 자리에서 헐렁한 고무줄 치마를 찾아 온다. 몸을 뒤틀고있는 얼굴에 땀방울이 맺힌다. 검은 얼굴에 맑은 물방울이 맺히는 것을 처음 보는 나는 어디서 본 듯한 조각작품을 떠올리다 몸을 뒤틀며 입을 쩍쩍 벌리는 모습이 판토마임 이라 한다.
가장 심각한 순간에 엉뚱하게도 우스꽝스러운 생각이 솟아 난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라고 말한
찰리 체플린의 말과는 달리 어디서 봐도 인생이 희극으로 보일 때가 많다. 게다가 평범함 속에 숨어있는 날카로운 희로애락을 포착할 줄 아는 눈을 가져야 비로소 나이들었다 할 수 있다고 믿는지라 은밀히 웃는 버릇이 있다.
소녀가 손가락으로 출입문을 가르킨다. 엠블런스가 안 왔다고 나는 손사레를 친다. 아이는 입을 위로 길게 찢었다가 제 자리로 돌려 놓는 시늉을 하며 우긴다. 나가 보란다. 밖에 나가 주위를 살피며 그 뜻이 ‘Guy’ 즉 애 아빠 될 녀석이 왔는지 묻는거란 걸 알아 차린다. 녀석이 황색 인지, 흑색 인지, 백인 인지 물어 보진 않았지만 밖엔 아무도 없다. 더위에 지쳐 나자빠진 빈 하늘이 술 덜 깬 사내의 얼굴 같은데 회색 저녁 그림자가 슬쩍 치마를 스치며 지나 가고 있다.
싸이렌 소리가 작은 도시를 뒤흔들며 점점 가까워 진다. 이어서 엠블런스가 샤핑몰 안으로 꺾어져 들어와 내 앞에 멈춘다. 소방차 한 대도 뒤따라 왔다. 나는 먼저 안으로 들어 간다. 기집애가 지친 모습으로 앉아 마치 남의 일 구경하듯 힘없이 나를 바라 본다. 진통도 파도와 같다. 다시 시작되기 전에 차에 태워야 한다. 간호사 두 명이 가게 안으로 들어 왔다. 한 여자는 해와 달이 프린트 된 유니폼을 입고 있다. 나는 눈 감은 달의 긴 속 눈썹을 보다가 단정하게 묶은 골덴 브라운의 곱슬머리를 본다. 여전히 쓸쓸해 뵈는 옆 얼굴, 소리없이 울던 간호사라는 것을 알아 차렸으나 모른 척 한다. 그는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넋 나간 얼굴을 하고 있으나 정확한 손놀림으로 일을 착착 처리 하고 있다. 별리의 상처가 얼마나 컸을까 짐작하는 것 만으로도 갈비뼈 밑에 날카로운 통증이 온다.
남자 둘 여자 둘 넷이서 임신부를 차에 태우고 떠났다. 소방차가 타운에 인구 한 명이 불어 날 것이라고 예고하듯이 요란하게 사이렌을 울리며 앞장 서 달린다. 나는 기어코 공룡 몇 마리를 처녀의 손에 쥐어 주기를 잘했다며 거기 심어진 나무처럼 서서 차가 사라진 큰 길 쪽을 바라보고 있다. 이 때였다. 까만 사람이 큰 길에서 몰 안으로 꺽어져 뛰어오고 있다. 단거리 선수처럼 질주해 오더니 내 앞에 딱 멈추어 서서
숨을 토해낸다.고개를 든다. 봄 강둑에 막 올라온 삐비같이 여리디 여린 목덜미, 키만 훌쩍 웃자란 장다리 같은 소년이다. 새까만 얼굴에 땀이 줄줄 흐르고 있다. 그는 나를 알고 있는 듯하다. 물론 그럴 수 있다. 가게를 하는 동양여자는 한 사람이다.
“그애임신한애봤죠?어디갔어요?”
“왜이제오니온종일기다렸다지금막병원에실려갔어엠브런스봤지?”
“오마이갓아까그차였군요돈벌어오느라늦었어요여기돈.”
“세상에헌드레드달러나벌었네!얘시간없어 내차타가자빨리잠깐문잠그고.”
나는 재빨리 POEN싸인의 줄을 잡아당겨 눈을 감긴다. 백을 들고 나와 밖에서 문을 잠근 다음, 소년을 태워Family Hospital쪽으로 내달린다. 타운에 병원은 딱 하나다. 소년이 숨을 헐떡 거린다. 아직 고등학생도 안 된 앳된 얼굴이다. 나는 티슈를 한옹큼 뽑아준다.
“어디서 헌드레드 달러나 벌었니?”
“어제 약속 했거든요. 그래서 새벽에 석류농장에 갔어요. 석류는 늦게 따니까 일거리 있어요. 근데 나이가 미달이라고 안 쓴대요. 미성년자 노동법에 걸린다네요. 울며 불며 사정 하느라 한나절을 까먹었어요. 글로리아 배고플텐데.”
“저런! 뭐라도 먹일 걸 그랬구나. 애가 울지도 않고 잘 참더라.”
“ 착해요. 그러니까 내가 사랑 하지요. 죽는 날까지 변하지 않을 겁니다. 내 가족을 지킬 거예요. 오늘도 약속 지켜서 기뻐요. 걔네 아빠나 우리 아빤 가족을 버리고 딴 여자한테 갔어요. 우린 안 그러기로 약속 했어요. 절대 헤어지지 않아요.”
소년이 갑자기 울기 시작한다.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새벽에 나가 기어코 돈을 벌어 온 아이다. 땀에 젖은 돈을 쥐었다 폈다 한다. 나는 아이의 등을 토닥거려 준다. 그는 울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 한다.
“나는 정말로 올리비아를 사랑 하고 있어요.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어요. 하늘에 맹세 했어요. 제발 믿어 주세요. 딱 한 사람만이라도 믿어주면 더 힘이 나겠어요.”
“믿어. 난 너한테 오늘 감동 했어. 담에 애랑 셋이서 놀러와 맛있는 거 사줄게.”
“올리비아도 믿어 줄까요? 난 절대로 가족을 버리지 않아요.”
“내가 말 해 줄게. 걱정마. 난 널 믿어. 내가 끝까지 지켜 볼거야. 우리 허그 하자.”
크리스 아빠도 고등학생 때 일요일 오후면 국화꽃 한 송이를 바치며 맹세 했었다.
-나는 너를 사랑해 영원히 정말이야. 믿어 줘.- 현재에 충실하라. 믿는다 대답할 수 밖에. 지금도 소년의 말을 믿는다. 미래를 읽는 눈이 없다. 마음이 느끼는대로 대답할 뿐이다. 흑인 소년을 한 번 힘껏 안아주고 병원 앞에 내려 준다.
가게로 돌아와 다시 출입문에 키를 꽂는다. 뒤에서 인기척이 난다. 뒤를 돌아보니 자주색 넥타이다. 반가운 기색을 감출 수 없다. 저녁을 같이 먹자고 해야겠다. 남자가 내 앞으로 다가 선다. 가방을 들지않은 왼 손으로 이마에 흘러 내린 앞 머리를 쓸어 올린다 금반지가 없다. 순간, 가슴이 움찔 놀란다.
“저 여자가 뭐라고 하는지 좀…..”
나는 으아한 눈으로 그의 뒤를 살핀다. 아침에 흑인 처녀가 서 있던 짙은 회색 기둥 뒤에서 여자가 걸어 나온다.초록 눈이다. 그이는 거두절미하고 본론으로 들어 간다.
“아까 들었는데 당신은 이 남자의 구애를 받아주지 않았죠. 난 결심 했어요. 내가 갖겠다구요. 말 해 줘요. 오늘 밤 우리 집에서 자고 낼 센프란시스코 같이 가자고.”
나는 말 하고 싶다. 구애를 안 받아 준게 아니라 가게문 닫고 저녁을 같이 먹으러 갈 거라고. 이미 약속을 했다고. 이 때 눈동자를 굴리고 서 있던 남자가 다급하게 끼어 든다. 새삼 그의 탄탄한 정강이와 떡 벌어진 가슴팍이 눈에 들어온다.
“뭐라고 합니까? 나는 가능하면 No, 라는 말을 하지 않는 사람 입니다만 알아듣지
못하니 섣불리 대답을 못 하겠네요.”
'그게 그러니까. 선생님이 이 지역에 처음 오신 외국 분 같으니 본토박이로서 안내라도 .’ 거짓말을 궁리 하는데 입은 직역을 하고 있다. 남자가 워낙 확신에 찬 말솜씨를 보여 왔는데다 전능하신 분의 도우심인지 입이 정직하게 움직인다.
“제가 선생님의 구애[?]를 받아주지 않았으니 자기가 받아 주겠다 하네요. 오늘 밤 자기 집에서 자고 내일 센프란시스코 여행 같이 가자고 합니다.”
넥타이가 그 여자 쪽으로 몸을 돌려 한국말로 대답 한다.
“ 아, 녜 좋지요. 좋구말구요. Yes Yes 예요.”
독신녀의 손을 덥석 잡더니 땡큐라는 영어가 마구 튀어 나온다. 얼굴에 전깃불이 번쩍 켜지듯 화색이 돋는다. 인간이 가장 설레일 때가 모르는 이성을 만났을 때라더니 속에서 끓어오르는 열정과 기대를 감추지 못 한다. 어쩌면 반나절을 내 앞에서 버티던 뚝심과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뻔뻔스러움조차도 단단히 움켜 쥔 수상한 검은 가방에서 나오는지 모를 일이다.
“고맙다고 하네요.”
김 빠진 내 목소리가 민망하게 들린다. 여자를 바라 본다. 얼굴이 핑크 색이다. 혼자 살아온 여인에게서 느껴지던 침울한 분위기가 물러가고 갑작스런 사랑이 파도처럼 가슴 속에 출렁거리는 것이 느껴진다.
“욕망이 무서워서 피했지. 외면하고 살며 낯가림을 했어. 이제는 시간이 없어. 정직해 질 필요가 있어. 사랑은 나를 파멸시킬 거라는 망상을 버리고 사랑은 나를 새롭게
탄생시킬 수도있을 거라는 신념을 갖게 됐어. 맘껏 사랑을 줄거야. 사랑 받기 위해서. 늦은 사랑, 절망 가운데 희망이 찾아오는 것. Indian Summer 가 찾아 왔어. 난 확신해.”
“맞아. 그렇게 해. 사랑 없이 산다는 것은 낙타가 물 없이 사막을 건너는 것과 같아.”
나는 아첨을 하듯 맥없이 대꾸 한다. 잘 익은 홍시 하나 바라 보다 꽁지발 몇 번 올려 보고 포기하면 간짓대로 후려쳐서 따 먹던 아이들이 있었다. 낯 선 남자와 차 한 잔 나누며 한국말로 구식 농담이라도 하며 웃어 보려던 일말의 기대마저 단념 한다.
여자가 갑자기 남자의 목을 껴안더니 힘껏 키스를 퍼 붓는다. ‘땡큐, 땡큐. 유 메이 낫 디스 어포인트. 아이 러브 유. 아이 두. ‘ 하는 소리도 끙끙 거림 속에 섞여 나온다. 거의 10 년 젊어 보이는 남자나 외국인과는 나이 차이를 별로 느끼지 못한다. 아마 YOU, 라는 대명사로 두리뭉실 이어가는 대화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여자의 BMW를 타고 사라져 갔다. 남자는 나에게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마치 나를 못 본 사람처럼 성경책을 덮 듯 몸을 반으로 접어 운전석 옆으로 구겨져 들어 갔다.
나는 가게 안으로 뛰어 들어 와서 안으로 문을 잠근다. 9시. 다른 날 보다 한 시간 반이 늦었다. 하루치 결산을 끝낸다.계산대 위의 것 하나만 남기고 가게 안의 모든 불을 끈다. 배가 고프다. 배가 고파도 집에 갈 수 없다. 이제부터 노는 시간이다.
공룡 바구니 앞에 털썩 주저 앉는다. 바구니를 바닥에 엎는다. 오늘은 도네이션을 많이 해서 새 팩을 두 개나 뜯어 겨우 서른 개를 채운다. 먼저 공룡들을 종류별로 나누워 줄을 세우고 이름을 부른다. 호칭 하는 것은 관계의 확인이다. 젖은 타올로 몸을 닦아주기도 한다. 200 만 년 전 지구의 주인들이다. 나는 그들의 특징과 매력 포인트를 낱낱이 암기하고 있어 우리들의 대화는 끝이 없다. 나 혼자 말걸기 같지만 그들이 대꾸할 말을 나만큼 잘 아는 사람도 없으리라. 배 고프고 피곤해도 이 짜릿하고 은밀한 놀음을 멈출 수 없었다. 적성에 맞지않는 가게 일을 감옥이니 섬에 유배 됐느니 하면서도 유쾌하게 꾸려 나가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공룡들을 바구니에 집어 넣고 일어 선다. 가방을 어깨에 걸치고 알람장치로 가서 오른 쪽 검지 손가락으로 똑.똑.똑.똑. 숫자 네 개를 눌러 알람을 키고 뱀처럼 빨리 출입문을 빠져나온다. 정확히 11 초 후에 알람이 작동 된다. 아침에 그랬듯이 키를 잠금장치에 꽂고 돌린다. 뜨-드득, 쇳조각을 긁는 소리와 함께 문이 잠겼다. 한 번 밀어 본다. 확실하다. 나는 얼굴을 유리문에 갖다대고 안을 들여다 본다. 아무도 없다.
오른 쪽 눈을 바짝 붙이고 자세히 살핀다. 내가 바친 열 두 시간이 그 속에 있다. 간단없이 사라질 수는 없을 것이다. 숨을 죽이고 기다리고 있으니 가게 뒤 전면 거울에서 무엇이 피어 오른다. 솜털 구름 보다 더 가볍고 안개 보다 옅은 색깔로 보이는 것은 거울의 입김이다. 그것은 사람이 병들어 슬프고 죽고 다시 태어나고 이별이 아파 울며 또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오늘 보고 들은 이야기를 들려 줄 대상을 찾아 흐르다가 공룡 바구니 앞에 살포시 내려 앉고 있었다.
나도 잠깐 내 모습을 뒤 돌아 본다. 아침 9시 30 분, 키를 가게 출입문 열쇠구멍에 꽂으려다 말고 뒤를 본다. 느낌이 이상 하다. 무엇이 등 뒤에서 스치는 느낌. 구름이 땅에 그림자를 스치며 지나가듯이 슬쩍 의식을 훑고 지나 갔다.
나는 가게의 출입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 간다. 뛰어가서 비밀번호를 꾹꾹 눌러 알람을 해제 시킨다. 다시 출입문으로 와서 밖을 내다본다. 마음 속에서 검은 물체를 보았다고 우기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가게는 작은 샤핑 몰 안에 있다. 밖이 텅비어있는 것을 확인하고 안의 불을 밝힌다. 계산대 앞을 지날 때 발 끝에 뭔가 튕겨져 나가는 것이 보인다. 공룡이다. 블레키사우르스, 몸무게가 80톤에 목이 하늘을 찌를 듯 길었다는 그 녀석이 오렌지색 배를 내놓고 발랑 나자빠져 있다. 겨우 한뼘도 안 되는 플라스틱 장난감이다. 픽 웃으며 꼬리를 집어 바구니에 던져 넣고 출입문 위 쪽에 매달려 있는 전광판의 끈을 잡아 당긴다. OPEN 이란 글자가 눈을 반짝 뜨더니 쉬지 않고 깜빡 거린다. 눈이 빨갛다. 속눈썹은 없다. 은근한 기대와 은밀한 쾌락 같은 것을 감출 만한 눈이 아닌데도 -일단 들어와 보세요. 필요한 것이 많이 있어요.- 하는 가게 주인의 참신한 상술을 담고 제법 호객행위를 한다.
나는 또 밖을 살펴 본다. 키가 큰 흑인 소녀가 등을 벽에 기대고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 겨우 8학년 정도? 시누대같이 날캉날캉한 했을 몸매다. 해를 등지고 서 있는 소녀는 검은 머리 검은 옷, 유난히 반들 거리는 갸름한 얼굴, 게다가 배가 많이 불렀다. 몸이 가늘어서 더 높이 솟아오른 배, 반들 거리는 까만 얼굴에서는 하얀 눈자위가 방황하는 검은 눈동자를 힘겹게 부등켜 안고 어쩔줄 몰라 하는 것 같다. 한 때 부싯돌 같이 반짝 했던 사랑이 침울하고 두렵고 절망적인 짐이되어 그 무게 때문에 전신이 부서질 것만 같아 등뼈를 기둥에 단단히 붙이고 서 있는 꼴이다.이상한 것은 이 또한 어머! 하는 정도의 짧은 순간에 내가 읽어 낸 것이고 소녀는 금방 사라 졌다. 나가서 찾아보지 않는 한 그가 어디 숨어 있는지 알 길이 없다.
벌써 하루의 절반이 훌쩍 지나가고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다. 루뻬가 없으니 긴장 한다. 미국이라고는 하나 영어 한 마디 못하는 스페니쉬가 많은 타운이다. 임플로이는 영어와 스페니쉬가 필수다. 나도 일상용어쯤 알지만 루빼가 없으면 살살 눈치를 살피다가나가는 사람이 많다.
골든 브라운 곱슬 머리를 뒤로 단정히 묶은 백인 여자가 들어 온다. 영어만 써도 된다. 반갑다. 30 대 중반 쯤 되어 보이는 여자는 해와 달이 프린트 된 물빛 간호사 가운을 입었다. 어쩐지 깊은 상처를 감추고 싶어하는 쓸쓸한 표정이다. 갑자기 어디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난다. 고양이는 약간 히스테리칼한 소리로 당당하게 사랑을 요구하는 뻣센 소리를 내고 있다. 곱슬머리가 재빨리 파란색 손가방에서 셀폰을 끄집어내어 버튼을 누르자 소리는 죽는다. 그는 전화기를 오른 쪽 귀에 붙이고 가게 맨 뒤 쪽 전신 거울 앞으로 걸어 간다. 차분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쓸쓸한 표정을 어루 만진다.
나는 옷들이 걸려 있는 아래를 책상 다리로 걸어 다니며 공룡들을 찾는다. 오전에 어린 남자애들이 던지는 것을 보았다. 유모차 밑에 초록색 날개가 보인다. 끄집어 낸다.
쩍 벌린 입 속에 짧은 침 같은 이가 촘촘히 박혀 있다. 주라기 공원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아먹던 익티오르니스다. 마지막으로 높은 선반에서 람포링쿠스를 찾았을 때 머릿 속에 저장된 공룡 한 마리를 찾아 낸다. 우연이었을까 140만 년 전 하늘을 날아 다니던 익룡 디모르포돈, 새들의 조상이다.
“대 여섯 살 짜리 남자 애 장난감 좀 골라 주세요. “
언제 들어와 있었는지 양말더미 뒤에서 60 대 초반으로 보이는 백인 여자 한 명이 내게로 온다. 먼지 낀 인생의 커튼 뒤에서 짜증과 불만으로 하루 하루를 견디는 모습을 숨기려 하지 않는 듯한 얼굴이다. 퍼머가 풀려 아무렇게나 늘어진 머리칼은 목 근처에서 그녀의 몰골을 더욱 추레하게 연출해 내고 있다. 게다가 염색한지가 오래 됐는지 금발머리가 늦가을 갈대꽃처럼 희뿌옇다.
“남편이 폐암 말기예요. 작년엔 열 살 정도는 됐는데 왜 자꾸 지능이 낮아지는지 닥터도 모르겠데요. 이젠 장난감 밖에 몰라요. 치매도 아니고. 일부러 그러는 것 같기도 하고. 석 달 인생이 일 년 넘겼어요. 너무 고달퍼요. 차라리 내가 죽고 그이가 산다면. 다 귀찮아. Do you understand me what I mean? “
“ I understand you. 그렇지만 환자니까 아프니까 그렇겠죠.”
나는 장난감 코너로 가서 몇 가지를 고른다. 다섯 살 쯤 이라 했던가. 여자를 이해하는 척 했지만 사실 남자를 충분히 이해 한다. 사람이 어찌해 볼 수 없는 환경에 갇히게 되면 자기의 길을 스스로 뚫어 나갈 수 밖에 없다.
내 조상과 남편 쪽까지 상업행위로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곁에서 구경조차 해 본 일 없는 내가 미국에서 옷가게를 차렸을 때 그것은 사업체의 오너가 되는 동시에 시간의 노예가 되는 것이었다. 죄수라는 이름은 쓰지 않으나 감옥에 갇힌 느낌이었다. 벗어나는 길은 생업을 포기해야 하는 것. 작파 할 수 없으니 9:00 to 9:00,처음엔 그랬다. 365 일을 3000 sf 스쿠아핏 가게 안에 갇혀 살아야 했다. 다행히 나는 길을 빨리 찾았다. 그것이 장난감 공룡을 가지고 노는 나만의 시간이다.
나는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는 사내를 위해 좀비랑 스파이더 맨 숫자 맞추기 등등을 챙겨들고 나온다. 여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돈을 치룬다. 얼굴에서 죽은 깨가 쏟아져 내릴듯이 힘이 없다. 나가려는 여자에게 앞다리가 유난히 짧은 티란노사우르스, 귀여운 이구아나를 덤으로 집어 준다.
“God Bless You!”
여자의 목소리가 먼지바람이 날만큼 메말라 있다. 한 팔로 나를 껴안을 때 갈대 냄새가 난다. 공룡이 그 어른 아이를 기쁘게 해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촉촉해진다.
여름의 끝자락, 살갗을 태울듯이 따갑다. 이곳 사람들은 Indian Summer라고 한다. 창너머 돌배나무 아래서 한 무리의 참새들이 포르르 날아 오른다. 날마다 덥고 메마른 긴 여름을 비 한 방울 없이 살아낸 생명들이다. 그들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날아가는 모습은 바다에 그물이 출렁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마치 검정색 씨쓰루 스카프 한 장이 한들한들 날아가는 것같기도 하다.
-다섯 살 짜리 남편을 찾아가는 기분이 어떤 줄 아느냐. 물론 No Sex, 잊고 산지 오래 됐다. – 여자가 남기고 간 말이 귓바퀴 속에 아직 축축하다. No Sex. 고개를 흔든다.
“나도 누군가의 여자가 되면 후회없이 다 해 줄 거예요. Why Not 더 늙기 전에.”
새 손님이 들어 서며 거침없이 뱉는 말이다. 5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백인 여자다.
선탠을 했는지 팔 다리가 브론즈, 구리빛이다. 얼굴 주름과 상관없이 당당해 보인다. Powor of Love- 누구나 좋아 하는 노래가 가게 안에 울려 퍼지고 있다. 늙어 보이지도 않는데 늙기 전에 맘껏 사랑 하고 싶다 한다. 어쩌면 늙어 간다는 사실이 정신을 아프게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조금씩 뱉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피 흘리며 걷는 사람처럼.
Cause I am your lady and you are my man whenever you reach for me.I’ ll do all that I can. 당신이 나를 찾을 때면 내가 할 수있는모든 것을 해 드릴게요. 나는 당신의 여인이고 당신은 나의 남자니니까요.
이 대목에서 제니퍼는 크라이막스로 끌어 올리고 있다. 흐느적 거리다가 착착 잡아 챌 때의 그 힘 찬 목소리는 매섭게 추운 날 눈덮인 언덕에서 줄을 잡아 챘다 놓았다 하며 바람과 희롱하며 연 날리기를 만끽하는 것 같다. 크라이막스에서 가수는 피를 토하듯 소리를 토해 낸다. 당신은 나의 남자라고. 매일 듣는 노래다. 세삼스레 가사가 가슴에 파고 드는 이유는 먼데 가을이 오고있다는 조짐인지도 모른다. 오늘 오는 여자 소님들이 외로운 얼굴로 와서 그런가. 장사꾼 같지 않은 나를 보며 다른 내가 혀를 찬다. 2000 년 대에 살고있는 우리들은 숫자의 깊이 만큼 많이 외로운 존재들이다.
“나이 먹는 게 겁나지 않아요. 이런 노래 가슴으로 들을 수 있잖아요?”
“그러게요. 늙어간다고 호들갑을 떨 일도 아니죠. 멋지게 살 수 있으니.
샤넬 마크가 찍힌 썬 글라스와 요즘 최고 인기 상품인 It blue 여행가방을 비자 카드로 산 여인은 내 앞에서 떠나지않고 미적거리다가 결심 한 듯 입을 뗀다. 나는 비로소그이의 눈을 마주 쳐다 본다. 짙은 에메랄드 빛이다. 스키니 블루진 팬츠에 노란 민소매 면 티셔츠가 시원하게 잘 어울린다. 게다가 엉덩이가 탄탄한 날씬한 몸이다.
“내일 센프란시스코 가요. 관광버스 타고. 물론 혼자에요. 세 시간이면 닿는 곳인데 결심 하는데 10 년이나 걸렸다오. 같이 안 갈래요? 어쩐지 you도 여행 좋아할 것 같아서. 나이도 비슷해 보이고 . 나? 결혼 해 본 일 없고. 현재 남자 친구 없어요. 난 센스티브해요. 여름이 끝나 갈 때 쯤엔 더 하지. 같이 갑시다.”
혼자 밥 먹고, 혼자 여행가고, 혼자 영화 보러 가는것 쯤 싱글 라이프 족의 필수라는 거 알만한데 10 년이나 걸렸다 한다. 참 어지간하네 속으로 생각하며 가게 봐 줄 사람이 없네요 대답하려고 할 때 어떤 남자가 문을 밀고 들어 선다. 나는 그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담박 알아 차린다. 우리들의 시선은 동시에 그의 양복에 꽂힌다. 그는 회색 양복에 밝은 자줏빛 넥타이를 맸다. 여기선 정장 차림의 남자는 교회서나 볼 수있다. 더운 농장지대라서 옛부터 남녀 할 것 없이 반바지에 면티가 유니폼이나 되는양 입고 산다. 오른 손에 어제 산 듯한 검정 서류 가방을 움켜 쥐고 내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 온다. 어떤 사명감이 그의 두 다리를 튼튼히 받쳐 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960 년대 시골 신사가 서울역에 도착한 모습 같다. 초록 빛 눈 여자 자리를 내어 주며 지켜 본다. 1 메타 80센티 쯤 되어 보이는 키에 50 이 갓 넘은 것 같으나 아직은 목표를 향해 달리는 젊은이의 모습이다. 나는 한국 말로 인사를 한다.
“안녕 하세요?”
시원한 목소리다. 말 한 마디가 내 정신을 갑자기 맑게 씻어 준다. 한국말을 하는 것은 목마를 때 얼음 물을 마셨을 때 같다.
“안녕 하십니까? 가게가 훌륭 하십니다. 몇 평이나 됩니까?”
“평 수는 모르겠구요. 3000 스쿠아 핏이라던가.”
나는 숫자를 대는 일에 늘 허둥 댄다. 초록 눈의 여자는 내 대답을 받아 내겠다는 심사로 나를 바라 본다. 나도 여행 좋아해요. 무척 가고 싶지만 가게 볼 사람이 없어요. 임플로이가 출근길에 교통 사골 당했다네요. 말을 꺼내려는데 남자가 익스큐스미도 없이 상체를 내 앞으로 쓱 들이밀며
“ 주기도문을 외울 때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리라 하는데 과연 이루어 진다고 믿습니까?”
대뜸 이렇게 묻는다. 너무 당황해서 차마 그를 마주 쳐다 볼 수가 없다. 어려운 질문 같은데 옆구리를 찌르 듯 들이대니 황당하다. 그는 말꼬리를 놓지 않겠다는 듯이 다짜고짜 또다른 질문으로 나를 난처하게 만든다.
“좋아요. 이루어 진다고 칩시다. 그럼 그 때가 언젭니까? 언제냐구요?”
더 가까워지는 너부데데한 얼굴을 피하지만 그는 말의 끝을 힘주어 당긴다.
“사실, 처음엔 이 세상이 에덴동산이었잖습니까. 그런데 왜 이런 혼란시런 세상이 되었을까요? 바로 사탄 때문 입니다. 거짓말 하고 도둑질 하고 간음하고 이래 세상이 망해 가는 겁니다.”
그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이마에 땀을 닦느라 말을 멈춘다. 초록색 눈 재빨리 끼어 든다.
“같이 안 갈거죠? 갔다와서 한 번 봐요. 난 외로워요.아무렇지도 않은 척 위장하고 살았지만. 남자가 있다면 외롭단 말 장신구처럼 달고 살 수 있죠. 독신녀는 달라요 초라해 뵐 수 있으니까요. 암튼 난 이제 말 할 수 있어요. 외롭다 친구 하자. 같은 깃털을 가진 새끼리 날개를 비비며 따숩게 살자고. 노화현상? 아이 돈 케어.시간 없어요.”
“맞아요. 머뭇거릴 시간이 없군요. 우리는.”
나는 맞장구는 잘 친다. 가슴에 늘 품고 있던 말을 쏟아내서 그런지 그이의 뺨이 발그레하다. 이제 떠나도 될 성 싶으나 여자는 못 떠나고 남자와 나란히 서있다. 도대체 두 사람은 나에게 뭘 기대 할까. 아니면 밖이 너무 더워 나가기 싫은가. 피곤이 몰려 온다. 마침 이 때 중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애 둘이 들어와 도네이션을 좀 하라고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Madera 지역에 어린이 병원을 지어야 한단다. 무엇이든 좋다고 한다. 나는 20 달러 캐시와 공룡을 열 두 마리나 주어 보낸다. 어린이 병원이라면 좋은 선물이라며 혼자 기뻐 한다.
20 년 전 처음 옷 가게를 열었을 때, 어떤 비애 같은 것이 첫 서리 내리던 날 아침의 생소한 추위처럼 갈비뼈 밑으로 파고 들었다. 10 년 동안 유치원 원장으로 살았던 나는 장사꾼으로 변신한 내 모습이 낯설기만 했다. 장난감은 팔지 않는다는 원칙을 정했건만 도매상에 갔을 때 내 발은 저절로 장난감 공룡 앞으로 걸어 갔다. 처음 공룡을 만났을 때도 그랬다. 플로리다 올란도 디즈니랜드 앞 선물가게에서 공룡을 보고 첫 눈에 반했다.
처음 보는 신기한MADE IN USA 장난감 공룡은 소리치며 뛰쳐나올 것 처럼 그 눈이 빛나고 있었다. 두 팩, 스물 네 개를 샀다. 140 만 년 전의 모습 그대로 만들었다는 플라스틱 공룡들이다. 나는 공룡사전을 샀다. 이름과 특성에 따라 이야기를 지어 냈다. 밤마다 주라기 공원에서 노는 꿈을 꾸었다. 그러고 나면 또 새로운 얘기가 만들어 지곤 했다. 유치원 아이들은 내 얘기에 싫증내지 않았고 망가지지 않는 공룡을 너무나도 좋아 했다. 긴 영어 이름도 잘 외웠다. 공룡동화는 내유치원의 전래동화가 되었다. 공룡을 생각하며 밥을 먹고 화장실에 앉아서도 무슨 무슨 사우러스 이름을 중얼 거리곤 했다. 그 때가 내 인생의 절정, 30대 중반을 스쳐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미국으로 오게 되었다. 펄떡거리는 생선을 날카로운 칼로 반토막내듯 단행된 이민 이었다.
공룡과 함께 200만 년 전 시간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30대 중반 쯤의 차란했던 나를 만나러 가는 혼자만의 행위인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날 한통의 전화를 받는다.
“선생님! 유치원 총동창회에서 다이나소 얘기가 젤 많이 나왔습니다. 선생님은 공룡을 잊어버렸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잊을 수가 없어요. 우리 아이들에게 공룡얘기를 들려 주고 있어요. 오셔서 새 애기를 들려 주셔야 우리가 우리의 아이들에게 새로운 얘기를 들려 주지요. “
제자들의 초청으로 한국행을 결심할 때 나는 은퇴를 결심 한다. 소식을 들은 Madera지인들이 찾아와 인사를 한다. 몇몇의 청년들이 들려 준 얘기다.
“이 가게를 생각하면 다이나소를 떠 올립니다. 기억컨데 세 살 때부터 엄마를 따라 여기 왔어요. 들어오자마자 공룡 앞에 누워 공룡과 놀았어요. 그러면 아줌마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재밌니? 묻곤 했지요. 어떤 땐 우리 엄마한테 이 아인 커서 작가가 되겠군요. 이런 말도 했어요. 난 현재 뉴욕에서 대학에 다니지만 방학 때면 반드시 집에 와서 공룡을 보러 옵니다.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요. 나만 그러는거 아니란 걸 알게 됐어요. Madera
에서 자란 청년들은 이 공룡을 가지고 많은 얘기를 만들며 자랐대요. 일찍 결혼한 사람들은 자기 아이들에게 공룡 얘길를 들려 준다네요.”
사실 나는 가게에 오는 아이들에게 얘기를 들려 준 일은 없다. 엄마들이 장을 보는 동안 맘껏 가지고 놀게 한 것 뿐이다. 놀랍게도 각자 스토리를 만들었었나보다.
20 년 동안이나 한 자리에서 나의 삶은 뼈저린 운행을 계속 하였다. 쇠막대를 깎아 바늘을 만든다는 신념을 가슴에 품었건만 잃은 것도 많았다. 망설이며 미적미적 엉거주춤 물러 서기를 여러 번. 하다못해 오기나 외로움 때문에 돌진해 보는 용기도 없이 그나마 젊었던 내 인생을 소진 했다. 과거여행을 멈추겠다 결심하고 공룡과도 이별을 준비할 때 들려오는 얘기는 그러 하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태여 한 달을 위해서 17 년간 땅 속에 살았던 매미의 일생을 들추지 않더라도 어느새 종착역이 빤히 보이는 지점에 와 있다.
오늘도 새로운 날개를 달고 Indian Summer의 하늘을 날아 볼 꿈을 꾼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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