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영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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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동화 날아라 체리

2019.02.28 23:15

kimtaeyoung 조회 수:117

      동화     

                       날아라 체리

                            

                                            김태영

 

Pismo beach는 올 여름방학에 어린이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해변으로 뽑혔답니다.

오늘은 74, 미국 독립기념일이지요. 피스모 비치에 사람들이 구름 떼같이 모여 들었어요. California에있는 방송국 뿐만 아니라 영국의 BBC 방송국에서도 특파원이 파견 되었습니다. 전 세계의 어린이들에게 동화같은 이야기를 생중계 하겠다는 것이지요.

          그들은 무엇을 방송 하겠다는 것일까요. 주인공은 어디 있나요? 휠체어 탄 소년이란 사실 뿐 그가 지금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네요.

 

작년 독립기념일에 있었던 일입니다. 바닷가 분위기가 풍선처럼 부풀었던 한 낮, 갑자기 사람들이 한 곳으로 내달리기 시작했어요.

          물고기다! 자이언트 물고기다!”

          식인 상어라도 나타난 것일까요? 흥분하는 사람들을 따라가보니 작은 보트만 한 빨간 물고기가 밀려와 있었어요.

          히야! 고래만 하네! 고래도 아닌 것이. 진짜 크다.”

          눈이 부시네! 빛이 나는 물고기는 내 생전 처음 보네 그려.”

          둘러선 사람들은 놀라 소리쳤어요. 물고기는 쉬지않고 뻐끔거렸어요.

          빨리 바다로 돌려 보내야해. 안 그러면 너무 뜨거워 곧 죽게 될 거야.”

          힘 센 청년 열 명이 어영차 물고기를 들어올렸어요.

          그 때였어요. 한 소녀가 휠체어를 밀고 들어왔어요. 튼튼한 다리로 모래밭에 고랑을 내며 오는 소녀의 얼굴은 사과처럼 붉었어요. 휠체어를 물고기 옆에 바짝 붙이자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소년이 다가가 머리를 껴안았어요. 밀 빛깔의 머리카락과 노란 모래가 햇빛을 받아 매끄럽게 반짝거렸어요.

          , 체리! 너 정말 보트만큼 커졌구나! 장하다! 꿈을 이루었어. 대단해.”

          뻐끔뻐끔 뻐끔뻐금……….”

          쉘라쉘라 쉘라쉘라………”

          그들은 한참동안 즐겁게 얘기합니다. 물고기의 초록색 눈이 초록 별처럼 반짝이고 커다란 몸이 기쁨에 넘쳐 꿈틀거릴 때마다 비늘이 빨 주 노 초 파 남 보 무지개 빛깔을 흩뿌립니다. 마치 하늘에서 무지개 옷을 내려 준 것 같았어요.

          제 친구는 바다로 돌아가 야합니다. 도와주세요.”

          아까 그 청년들 열 사람이 물고기를 어영차 들어 올려 바다로 간신히 밀어 넣어 주었어요. 소년은 사람들의 궁금증에 떠밀려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티노는 태어날 때부터 다리에 힘이 없어 혼자 방에서 노는 날이 많았답니다. 아빠는 아기 방을 어린이 도서관처럼 꾸며주었어요. 책을 읽다 싫증이 나면 아이는 살아있는 장난감을 갖고 싶다고 했어요. 아빠는 초등학교 입학선물로 강아지를 살까 하다가 귀찮게 하지않고 말이 없는 빨간 물고기 한 마리를 사왔어요.

          아빠! 어항이 너무 작은 것 같아요. 답답하겠네.”

          걱정 마라. 피래미잖아. 절대 안 크는 물고기야. 답답한 것도 몰라.”

          방울 토마토같은 물고기는 동그란 눈을 요리조리 굴리며 티노를 바라 봅니다. 파란 콩을 콕 박아 놓은 것 같이 귀여워요. 이름은 티노가 좋아하는 과일 체리라 지어 주었습니다. 날마다 같이 노는 티노와 체리는 속마음을 털어놓는 사이가 되었답니다. 

          3학년이 되었어요. 몸은 커졌지만 걷지는 못해요. 석류꽃 사이로 커다란 달이 얼굴을 내밀며 봄 노래를 부르는 밤이었어요. 체리도 석류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어항을 창가에 놓았어요. 수많은 별들이 나뭇잎을 흔들며 눈짓 하지만 체리는 웃지도 않고 한숨만 쉽니다.

          ! 답답해. 내가 커지면 어항이 깨지겠지. 내 꿈은 자라지도 못 해.”

          , 무슨 소리야? 꿈 이라니? 설마 달나라에 가고 싶은 건 아니겠지?”

          아니야. 난 바다로 갈 거야. 큰 물고기가 될 수 있는데 어항이 너무 작아.”

          미안해. 넌 자라지 않는 물고기야. 어항 탓 하지 마라. 안됐다,”

          입을 뾰쪼롬히 내밀고 차마 하지 못 할 말을 물총같이 쏘고 말았습니다.

          안됐다고 말 하지마. 피곤하고 외로워. 네가 내 친구라면 방법을 생각해야 해.”

둘이는 싸운 것도 아닌데 한동안 말을 않고 지냈어요. 토니는 체리가 달라진 것만 같아 무척 섭섭했어요. 잘 익은 수박에도 덜 익은 수박에도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여름입니다. 비 오는 날엔 친구가 더 슬퍼 보여요. 그래서 좀 더 큰 어항에 옮겨 주었지요.

체리는 신나게 헤엄을 칩니다. 좋은 기회다 싶어 품고있던 말을 슬쩍 꺼냈어요.  

, 백 번도 넘게 병원에 갔어. 못 걷는 단다. 포기 했어. 지긋지긋한 휠체어를 죽는 날까지 타야 해. 하지만 이루어 질 수 없는 꿈을 꾸는 건 더 괴로운 일이란다. 체리야 너도 바다같은 건 잊어버려. 그리고 나랑같이 조용히 살자. 난 너를 사랑 하잖니.”

살아있다는 것은 많은 경험을 한다는 뜻이야. 그것을 포기할 순 없어. 난 넓은 바다에 가서 살 거야. 죽는 날까지 포기하지않을 거야. 두고 봐. 나도 널 많이 사랑 해.”

차라리 산더러 바다가 되라 해라. 미안, 넌 더 크지 못 해 꼬맹아! 널 봐라.”

꿈을 싹둑 자르지 마라. 너보다는 차라리 악어 하고 싸우는 게 낫겠다.”

화난 물고기의 목소리에 어항이 부르릉 떨었어요.

그래. 그래. 너는 보트만 한 피쉬가 되고 나는 축구 선수가 되자.”

홧김에 뻥튀기 같은 말을 하고 말았어요. 눈치 없는 체리는 환하게 웃었답니다.

시간은 토니의 기분은 살필겨를도없이 빠르게 지나갔어요. 여름이 가고 기러기 떼 끼룩끼룩 나르는 가을 밤이었어요. 잣나무 사이에서 보름달이 토니를 보고있어요.

? 언제 이렇게 컸나? 무겁다 체리야. 짜식! 너 많이 컸구나!”

그것 봐. 큰다고 했지. 커다란 물고기가 될 거야. 넌 축구 연습 잘 하고 있니?”

휠체어 탄 주제에 내가 어떻게………”

다칠까 봐? 다치겠지. 아프겠지. 커지려면 나도 아파. 아프지않고 커지는 건 없어. 많이 아프고 많이 크는 거야. 꿈만 꾸다 죽을 것인가. 크다가 죽을 것인가. 그것이 문제야.”

미안해. 난 무서워. 깨지고 부서지고 결국은 일어서지도 못 할거야.”

겁내지 마. 바다가 아무리 멀다 해도 크는게 아무리 아프다 해도 나는 쭉쭉 크다 죽을 거야. 부탁 이야. 제발 날 내 보내 다오. 우리 멈추지 말자. 같이 달리자 친구야.”

날마다 밥 주잖니. 거기 가서 뭘 하려고 그러니. 가지마. 조용히 살자 친구야.”

걱정 마. 배만 부르면 사는 거니? 넓은 세상엔 새로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어.”

다음 날 토니는 장애인 축구팀에 가입했어요. 5학년이되었을 때는 장애인 축구대회에 출전하게 되었지요. 체리도 어항에 꽉 찰 만큼 컸어요. 이번에는 아예 벽에 맞춰 수족관을 만들어주었어요. 이제는 불평 끝이겠지요. 체리를 잊고 열심히 뛴 때문일까요. 중학생이 되었을 때는 제법 유명한 축구선수가 되었어요. 말도 마세요. 그동안 머리가 깨지고 무릎이 망가지고 휠체어가 다섯 번이나 부서지는 사고도 있었지요. 영영 축구를 못 할 만큼 어깨뼈를 다친 적도 있었지만 체리 땜에 포기하지않았어요.

수족관을 청소하는 날, 어찌된 일 일까요. 비늘이 둥둥 떠 있어요.

          어디 아파?”

          가슴이 답답해. 벽이 나한테 덤벼. 날 죽이려고 자꾸만 밀어.”

          벽은 가만이 서 있을 뿐이야. 거짓말 마.”

          진짜야. 너 잠 잘 때 벽이 날 공격해. 내 보내줘. 빨리. 답답해. 숨을 못 쉬겠어.”

          제발 부탁이다. 그만하자. 수족관이면 충분해. 잘 살 수 있어. 조용히 살자.”

          너 날 사랑하니? 사랑한다는 건 말을 들어준다는 뜻이야. 날 좀 살려 줘.”

          그날 밤 마당에는 커다란 연못이 만들어졌습니다. 물론 체리는 한동안 웃는 얼굴 같았어요. 뭉게구름, 양떼구름, 별님 달님, 나뭇가지들도 물위에 그림자를 만들었어요.

          눈 꽃 핀 소나무 사이로 보름달이 파란 얼굴을 내미는 추운 겨울 밤, 늦게 온 토니를 보고 친구가 볼멘소리로 불평을 합니다.

   난 하루 종일 너만 기다리고 있었어. 나 같은 건 필요 없지? 넌 어디든지 다니는 선수니까. 나도 이제 바다로 가서 맘껏 헤엄치고 살 거야. 보내줘.”

          사정이 있었어. 미안해.”

          사정은 날마다 생길 수 있어. 나도 내 꿈을 찾아 갈 거야. 보내줘.”

          그러지 마. 난 너 없인 살 수 없어. 나랑 같이 살 자. 친구야 사랑해.”

          이 때, 물고기 비늘이 하나 둘 물 위로 떠 올랐어요. 무슨 말을 하는걸까요.

토니는 그만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났어요. 많이 아프다는 신호 거든요.

          비늘이 내 꿈을 맞추는 퍼즐조각이라면 마지막 한 조각까지 다 뜯어내고 말 거야. 피 흘려도 괜찮아. 멋진 옷이 필요한 게 아니고 꿈이 필요해. 꿈은 내 안에 살아있어.”

          토니는 눈물을 뚝뚝 떨구었어요. 달님도 별님도 같이 울고 있어요. 방울 토마토 만한 피쉬가 어린아이만큼 커진 건 사실이었으니 소원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게 되었지만 마치 날카로운 칼로 찢는 것 같이 가슴이 너무 아파 휠체어 조차 움직일 수 없었어요.

          넌 곧 올림픽에 출전 하게 될 거고 나는 네 생각에 많이 행복 할거다.”

          네가 행복해지면 나도 행복 할거야. 고통의 문을 지나 우리 새로 시작하자.

봄이 오면 널 바다로 보내줄 게. 어디로 가고 싶은지 생각해 둬. 약속 지킬 게.”

          아픈 가슴을 두 손으로 꼭 누르고 이런 말을 하고 나니 훨씬 명랑 해진 마음으로 봄을 기다릴 수 있었어요.

석류 나무에 꽃등이 딸랑 딸랑 딸랑…… 온 세상에 봄을 알립니다. 체리를 바다로 보내기로 한 날 아침에도 새로운 태양이 떠 올랐어요.

[해마다 74일 낮 12시 피스모비치에서 만나자.] 태평양을 좋아하는 체리의 소원 입니다. 산간지방에서만 살았던 토니가 해마다 바다 여행이라니! 신나는 일이죠.   

          제시카가 휠체어를 밀어 주기로 했어요. 축구시합 때마다 오빠 이겨라! 오빠 이겨라!’ 오리 둥둥이를 흔들며 오리 같은 목소리로 응원하던 다리가 튼튼한 소녀 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