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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다 늙는다. 이 세상에 늙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이 땅의 어머니들만은 늙지 않았으면 한다. 나에게 소원이 하나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이 땅의 어머니들이 늙어가는 모습은 왠지 애잔하고 눈물겹다.

나의 어머니도 이젠 많이 늙었다. 국민학교 1학년 때 시계 볼 줄 모른다고 빗자루 몽둥이에 나를 때리시던 예전의 어머니가 이미 아니다. 채마밭에 김을 매거나 닭모이를 주거나 한 무더기씩 나오는 힘든 빨래를 하고 나서는 밥을 콩나물과 고추장에 비벼 한 양푼이나 드시던 젊은 날의 어머니가 이미 아니다.

이제는 어머니가 즐겨 가꾸시던 꽃밭도 이미 없다. 어머니가 가꾸시던 우리 집 꽃밭에는 장미, 다알리아, 채송화, 분꽃, 봉숭아, 달맞이꽃, 수국 등의 꽃들이 겨울이 될 때까지 늘 그치지 않고 피었다 지었다.

아, 맞아. 어머니는 특히 석류나무를 좋아하셨지. 가을 햇살을 견디지 못하고 기어이 석류가 그 붉은 속살을 부끄러운 듯이 톡 드러내놓으면 어머니는 그걸 따다가 안방 한구석에다 걸어 놓으셨지. 가끔은 간식거리가 없던 우리 형제들에게 보석 같은 석류를 먹으라고 내어놓기도 하셨고. 맞아. 어머니는 석류가 붉게 익으면 석류나무 앞에서 곧잘 사진도 찍으셨어. 옥색 치마 저고리를 꺼내 입으시고 한손으로 살며시 나뭇가지를 잡으시고 마치 새색시처럼 부끄러운 미소를 띠며 사진을 찍으셨지.

그러나 이젠 늙으신 어머니가 가꾸실 꽃밭은 없다. 어머니 인생의 꽃밭에 있는 꽃들은 모두 시들어버렸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석류나무 아래에서 찍은 옛사진을 꺼내놓고 보면 지금의 어머니는 세월이 흐른 만큼 이나 그 모습이 변해 있다. 어머니는 흑백의 사진 속에서만 영원히 젊을 뿐, 지금은 허리마저도 꼬부장하고 걸음마저도 활발하게 잘 걷지를 못한다. 틀니를 배고 혼곤히 잠들어 주무시는 모습을 보면 입 주위가 유난히 합죽하고, 키가 더욱 줄어든 것 같아 문득 눈물이 고인다.

어머니가 확실히 늙으셨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어머니의 한마디 말씀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어머니는 나에게 '고맙다'라는 말씀을 곧잘 하신다. 변변치 못한 용돈 몇만원을 드려도, 어쩌다가 쇠고기 한 근을, 사과나 감 몇 개를 사가지고 가도 그저 '고맙다, 고맙다'하신다.

"어머니는 무슨 그런 말씀을 다 하세요. 부모 자식간에 고마운게 다 어딨어요?"

내가 못마땅하다는 듯이 이렇게 한마디하면 그래도 어머니는 그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때 문득 깨달을 수 있었다. 부모가 자식에게 고맙다는 말을 할 때 쯤이면 부모는 이제 몸도 마음도 다 늙으신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때쯤이면 자식들이 어머니의 꽃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그러나 나는 아직 어머니의 아름다운 꽃이 되지 못했다. 어머니가 나이가 드실수록 나도 철없이 나이만 들어왔을 뿐이다. 이제 어머니는 칠순이 넘은 나이가 되었고, 나도 어느덧 마흔 중반의 나이가 되었을 뿐이다.

이제 이 나이에 내가 철이 드는게 하나 있다면 그것은 이 땅의 어머니들에 대한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머니야말로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분이며, 그 소중한 어머니를 내게 주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평생의 귀한 선물이 바로 어머니라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나는 너무나 많은 시간을 허비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아직도 늦지 않았다. 늙지 않는다는 것은 곧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진정으로 어머니가 늙지 않기를 바란다면, 영원히 늙지 않으실 것이라고 진정으로 믿는다면,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은 영원히 늙지 않으실 것이다. 왜냐하면 어머니도 하나님처럼 우리에게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다음과 같은 글을 늘 기도처럼 읊조리고 되뇌어 본다.

"하나님은 아름다운 어머니를 만드셨습니다. 어머니의 미소를 햇빛으로 만들고, 어머니의 심장을 순금으로 만들고, 어머니의 눈 속에 밝게 빛나는 별을 심으시고, 양볼에는 예쁜 장미를 심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름다운 어머니를 이렇게 만들어 저에게 주셨습니다. 결코 늙지 않는 아름다운 어머니를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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