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1.27 03:28

재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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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혼을 앞둔 친구가 있다. 인생의 늦가을을 맞이한 나이다. 이 나이에 사랑을 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당사자들은 스스로의 노출을 극히 꺼려하기 때문에 나 역시 재혼 이야기를 한다는 게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사생활을 세상에 폭로하는 것으로 오해할까봐서이다. 오히려 예찬하여 장려하자는 의도인데... 어머니를 잃은 한 친구 아버지가 6개월 만에 재혼한다고 했을 때 우리부부는 찬성했다. 멋쟁이 아버지 시중을 누군가가 벗이 되어 노후를 함께 하겠다니 이유야 어찌 되었건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평생 금슬이 좋았던 부부일수록 <홀로>임을 더 견디지 못한다고 들어왔다. 친구는 반대하지는 않았다. 7순이 넘은 노인이 너무 빠르지 않느냐며 불만의 말을 할 때 매일 아침 콩나물 국 끓여 줄 자식들이 가까이 사는 것도 아닌데 오히려 7순 아버지에 맞는 대상이 있다는 사실만도 다행한 일이 아니냐고 일축했었다. 혼으로 얽혀 백년해로하는 부부야 말로 행복하다 하겠지만 사별의 아픔은 누구의 책임도 아니기에 하는 말이다. 인생의 후반전을 더 진하게 사는 친구 부부가 있다. 이 커플은 50대 후반에 재혼했으며 이들의 재혼을 알선한 나는 그 부부를 계속 지켜보며 재혼해서도 저렇게 재미있게 사는 법이 있구나 싶어 재혼예찬에 생각이 모아졌다. 불란서에서 학위 받아 불어가 유창하고 유럽식 사고방식을 가진 남편은 나와 고등학교 동창이다.(필자는 남녀공학을 졸업)젊은 후보자도 많았을 텐데 동갑내기 내 친구를 선택해주어 고마웠고 퍼렇게 멍이 든 세월이 맑게 파릇파릇 새살이 돋아난 것이다. 지금도 현역에서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남은 시간을 누리며 살고 있다. 옆에서 보기에 참으로 흐뭇하다. 여러 나라에 여러 번 이사를 다니는 힘든 일까지 잘 해내며 세월이 흐를수록 서로에게 잘 동화되어 재혼의 금메달 수상자들이 되었다. 지금 재혼을 앞둔 친구는 남편과 사별한지 10여년이 훨씬 넘었다. 자녀들 잘 키워 학업을 다 마치고 돕는 배필들을 만나 좋은 가정을 가꾸고 있어 보기에 무척 대견스럽다. 친구는 조용하게 살면서 봉사활동과 문화생활, 여행을 친구들과 함께 하면서 노년을 그 나름대로 알차게, 짜임새 있게 보내고 있다. 나와 함께 한 여행만 해도 여러 번이다. 혼자 사는 것에 이젠 익숙해져서 당당하고 능하고 장해보이기 까지 하다. 어느 날 친구는 재혼을 의논해왔다. 친구는 나이에 비해 얼굴도 몸매도 곱다. 그동안 많은 재혼자리를 주위에서 알선했지만 늘 잔잔하게 웃으며 거절의 뜻을 비쳤기에 약간 놀랐다. 친구가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소상히 들려주었을 때 나는 재혼을 적극 찬성했다. 나의 이유는 이러하다. 능력 있는 남자들은 젊은 색시 감을 원하는데 이 예비신랑은 아직도 직장에 나가고 있으며 주말이면 등산을 하기 때문에 젊은 배우자를 만 날 기회도 많겠지만 나이를 따지지 않고 한 살 아래인 친구를 선택한 점이다. 양쪽 다 사별의 아픔을 공유하고 있다. 그 절절한 외로움을, 가슴 저미는 슬픔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에 사랑이라는 명제를 앞에 놓고 가치관에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사물을 보는 눈이 변해버린 것이다. 이제 남은 시간을 소중하게 나누며 이웃에 베푸는 기쁨도 알게 되었다. 서로 아끼며 여의는 슬픔의 체험을 승화해 여생이 아름다운 꽃밭으로 가는 길을 걷고 있다고 믿어 졌다. 남의 아픔도 다독 일 줄 아는 영혼이 성숙한 거인들이 되 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없고 우리만 있을 때 금메달은 그의 것이 되지 않겠는가. 혼자 살다가 후반부 남은 삶의 반려자를 만나는 일도 신비한 사랑의 엮음임을 깨닫게 된다. 커다란 손의 간섭이라고나 할까, 계획이라고나 할까. 대부분의 남편들은 헌신이나 희생에는 서툰 게 우리들의 현주소이다. 간병인 파출부를 알선은 할망정 온 몸을 던질 하트를 가진 순애보의 남자가 얼마나 될까 싶다. 나의 찬성을 얻어낸 가장 감동적 이야기는 이러하다. 부인이 암으로 투병할 때 병간호를 도맡아 해냈다고 한다. 빨래며, 청소, 더 나아가 장보고 음식도 연구하여 건강식으로 식단을 짜 정성을 쏟았다고 했다.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이 다 없어진 부인에게 투병의지를 심어주느라 본인도 머리를 빡빡 깎았다는 말에 나는 눈물을 글썽 이였다. 집안일을 도맡아 한 그 불편과 수고 플러스, 그의 머리 삭발은 암 투병에 동참하는 마음(Empathy),그런 하트를 가진 사람이면 인격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친구의 재혼에 힘을 실어주었다. 친구는 나와 함께 사석에서 목사님의 축복을 이미 받았기에 발걸음을 내디디기가 한결 수월하게 되었다. 한참 늦었고, 한번 하기도 힘든 혼사를 반복해야하는 일이 어디 쉬운 결단인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힘도 들 것이다. 남의 눈을 더 의식했을 터이고 더 심사숙고했을 두 사람, 나이가 들 수 록 내 한 몸 편안해 지고 싶겠지만 한 방향을 바라보며 어깨 나란히 마음을 포개어 하루하루 건강하게, 찡하게 살기를 기도한다. 노인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멀리 이민 와서 노인 아파트나 양로병원에 갇혀(방치되어) 오지 않는 자식의 방문을 기다리는 외로움, 그들의 고독의 깊이를 자신 말고는 누가 알 수 있을까. 그들의 날은 저물어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다. 소외된 외로움에 견디다 못해 자살한 신문 기사를 접할 때 마다 전문적인 <재혼상담소> 하나쯤 있어 지금 부터라도 짝짓기 운동을 펼쳐봄도 바람직하다는 생각은 비단 나만의 것일까. 1/2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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