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창작 - 자국 / 김영교

2019.05.27 18:32

김영교 조회 수: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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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이태영 작품 5-25-2019


자국 / 김영교 이대문집

자국은 흔적이다. 손이 남긴 흔적은 손자국, 발이 남기면 발자국, 코피가 남기면 핏자국, 눈물자국, 키스자국까지 눈에 보이는 자국들은 참으로 많다. 칼자국처럼 지을 수 없는 증거 표증이 될 때는 가슴이 섬뜩해진다. 현장에 남겨진 작은 흔적 하나로 범죄사건 진상 그 유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입 뻥긋 안 해도 수천 단어의 언어로 말해주고 있는 자국의 위력은 그래서 대단하다. 그러고 보면 손가락 지문 자국이야 말로 이 세상 어디에도 동일성이 없는 유일무이의 아이디 감별 촉이지 않는가.

스카티는 이웃 네오미네 애견이다. 몸이 날렵한 것부터 키도 체구도 아들네가 키우는 순한 제이크(Jake)와 같은 종자 블랙 라바도어라서 호감으로 대해왔다. 네오미가 늘 데리고 산책할 때면 새까맣게 윤기 흐르는 늠름한 모습이 영국 왕실의 귀족 사냥견의 품위다. 오히려 스카티가 네오미를 데리고 산책을 리드하는 것 같다. 네오미는 유방암 절개 수술 후 회복기에 있다. 그녀의 규칙적 산책은 치료차원이어서 비오는 날 우산을 쓴 주인 옆에 같은 보폭으로 걷는 스카티의 충성을 나는 눈여겨 봐왔다.

이 블래 라바도어는 탁월한 후각능력으로 특수 감식 견으로 적합하다고 한다. 스카티는 네오미의 도우미 후견 견으로 1년 전에 입양 되었다. 이 주택 단지 독서클럽 회장인 네오미는 내가 소개한 위안부 (Comfort Women)이야기< 용의 눈물* >소설책을 교재로 삼았을 때 책 내용도 논 할 겸 나를 독서클럽에 초대, 식사까지 대접해줬다. 책을 좋아하고 개를 좋아하는 우리는 그 이후 더욱 친해졌다.

 

그 날은 한가한 화요일 오후, 날씨가 너무 더운 감이 들었다. 뒷뜨락으로 가는 시멘트 바닥을 물로 씻으며 화초들을 손질하고 있었다. 흙손은 바빴고 흙일하는 내 마음은 즐거웠다. 마침 네오미가 스카티와 지나가다가 나를 보고 아는 채 했다. 이런저런 얘기 도중 불현듯 차고 냉장고 안에 있는 어제 저녁 투고 박스에 가지고 온 스테이크 살점이 생각났다. 주인 네오미의 허락을 받고 작게 찢어 네오미 먼저 나는 나중, 우리는 번갈아 성찬 보너스를 먹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허리까지 낮추어 바닥에 편안히 앉았다. 경계심 없이 나는 스카티에게 후하게 구는 인심 좋은 이웃이 되었다. 스카티의 왕성한 탐식을 목격하며 그 반응을 즐기며 앞으로의 우정은 더 돈독하리라 믿었다. 스카티는 행복했을 거다. 주인이 곁에 있고 근육질의 고기 살점은 성찬이었을 테니 말이다. 마지막 한 조각은 내가 줄 차례였다. 나의 내민 손바닥에 놓인 고기살점 대신 오른쪽 팔이 왕창 깨물리었다. 눈 깜짝 사이였다. 너무 의외라 나는 뒤로 나자빠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심장이 저 아래로 쿵 내려앉는 바로 심쿵이었다. 예상치 않았기에 놀라움은 집체 만큼 컸다. 아찔한 충격이었다. 경계심 전혀 없는 무방비의 아주 우호적인 분위기에 저돌 공격을 받았으니 말이다.

주인이 야단을 치자 개는 두 앞발 모아 바닥에 얼굴을 내리 묻고 잘못을 빌며 뉘우치는 듯 정말 사과하는 시늉을 했다. 시선을 피하며 수그린 표정이 정말 안스러워 보였다. 붉은 피 범벅 내 상처를 보고 나보다 더 놀란 사람은 개 주인 네오미였다. 예의상 태연한 척 했지만 나는 생전 처음 당하는 일이라 놀라 덜덜 떨리고 겁도 났다. 필요한 모든 예방주사를 접종한 애완견이라 안심해도 된다는 네오미 말이 위로가 돼주긴 했다.

달려가 진통제와 항생제를 가지고 온 네오미는 우선 소독 식염수로 씻고 네오스프림 항생제 연고도 발라주고 '아이 엠 쏘 쏘리’를 되풀이하며 울상이 되었다. 사과하면서 정말 미안해했다.

자유의 여신상처럼 팔을 올리고 병원(Urgent Care)에 갔을 때 기다림이 너무 길었다. 문 닫는 시간까지 어림도 없어 일단 집으로 귀가, 욱신거리는 밤을 보내고 그 다음날 일찍 찾아갔다. 물린 부위 소독부터 후속 조치약이며 개 파상풍 (Tetanus Vaccine) 주사 까지, 개에 물린 환자를 철두철미 심각하게 다루어 치료해주었다. 병원에 써내는 설문지도 여러 장, 그리고 첨부로 더 주는 서류가 있었다. 사람을 무는 개에 대한 리포트 작성서류였다. 도시마다 동물 오디난스(Ordinance)는 다른가 보다. 내가 사는 이 동네는 어택(attack & bite)하면 주인이 애완견을 버려야 하는 디스온(Disown) 절차를 위한 팔리시가 있었다. 버리는 방법은 가족 같은 개를 죽이는 길이었다. 나는 써내려가다가 머뭇 멈칫 머뭇하다가 이건 내가 원하는 방향은 아니었다.

내 팔에 있는 스카티의 깊은 이빨 자국은 우발적이었다. 상습 공격이 아닌 해프닝이였다. 나의 고발 리포트로 인해 주인이 애완견을 잃게 된다면 그것은 아니다싶었다. 리포트 페이퍼를 제출하지 않고 움켜쥐고 도망치듯 집으로 그냥 돌아왔다. 소독 항생제 연고약과 항생제 처방 알약은 10일 동안 계속 복용하라는 월그린 약국의 친절한 지시를 따르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독을 품고 성깔 잔뜩 난 공격은 분명 아니었다. 이 사건으로 스카티는 더 트레닝(Obedience School) 교육을 받을 것이며 앞으로 분명 조심할 것이다. 주인과 헤어지는 '생이별은 절대로 안 돼'를 되 뇌이며 하마터면 나의 개사랑 전선에 변이가 생길 뻔 이제 겨우 숨을 내쉰다.

보통 개의 혀는 빨갛다. 특히 혓바닥이 진한 보라색, 퍼플 텅(purple tongued )의 개는 사나운 기질(very protective)로 간주되어 온 개의 생리구조를 이번에 나는 배웠다. 개조심을 요한다는 경고문이 꼬리표로 따라붙는 그 사실을 나는 몰랐다. 보라색 혓바닥을 가진 스카티, 그의 이빨 자국 흉터는 도장처럼 '믿지 마라’ 개 조심을 상기시킬 것이다. 지금은 길 들여 졌지만(tamed) 개의 조상은 늑대였다. 들짐승 야성이 개 품성 안에 비활성화로 숨어있는 내력을 나는 잊고 있었다. 혹시나 하고 살펴본 아들네 개 제이크 혓바닥은 정상 빨강 건강 색이었다.

훈장처럼 빛나는 상처는 지금도 <개 사랑 전선 이상 없음>으로 펄럭인다. 흉하게 번득이는 팔 흉터는 여름이면 긴 소매로 가려질것이다. 선천적 나의 개 사랑이 하마터면 위기를 맞을 번 해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서늘해진다.

퇴 8/7/2019

   *Daughters of the Dragon: A Comfort Woman's Story by William Andr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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