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손수건- 김영교

 

그동안 몸이 아프다는 구실로 오가던 왕래를 최소화 해왔다. 지난 달이었다. 한인 타운에 사는 친구가 굳이 집으로 찾아오겠다는 연락을 해왔다. 건강음식 고구마가 동행했다. 찜통에 고구마를 넣으며 속으로 저도 바쁠터인데...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때마침 뒷 정원에 만개한 군자란이 이 친구를 반갑게 맞았다. 미소 띤 얼굴표정에 느린 친구 목소리가 어울려 우리집 안팍 뿐만 아니라 내 마음까지도 느긋함에  젖어든 완행열차였다.

 

마침 4월에 생일이 있었다. 무심코 그 날 따라 방송을 듣다가 흥얼흥얼 따라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감흥이 일었다. 고구마를 기다리며 첼로를 하는 이 친구와 조용히 찬송가 '저장미 꽃'을 시작으로 부르다가 솔베이지 쏭, 오 대니 보이, 나중에는 송창식의 고래사냥... 신명이 났다. 가슴이 마구 뛰면서 후련해지는기분이 들었다. 

 

처방약 후유증이 성대 근육을 눌러 목소리가 가늘어진 상태였다. 마스크 저 뒤로 음량이 줄어 사라지다 싶이 된 목소리가 노래로 튀어 나왔을 때 놀란 사람은 나 자신이었다. 고장은 일상에 흥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가슴이 마구 뛰는 감흥이 바로 치료약이었다. 즐겁게 하루 24시간을 보낸다는 게, 사람과 만나 밥먹고 웃고 노래까지 하는 게 축복이라고 이제는 절실해 졌다. 뭉클해서 눈물까지 글썽여졌다. 눈물은 눈치가 없었다. 훌쩍거리며 우는 나에게 조용히 건네준 친구의 손수건, 콧물을 닦고 눈물을 닦고 추스르도록 등 쓸어주며 토닥여 줬다. 친구의 그 손길, 따스했다. '홀로'와 '혼자됨'에 힘 들었지만 잘 적응해가고 있는 중이었다. 귀한 손수건이 나타난 것이었다. 누군가의 젖은 마음이

마르도록 달래주는 배려의 사람 손수건이었다. 예기치 않았던 방문은 덤의 선물이 되었다. 바로 사람손수건이다 싶어 서로 껴안았다. 눈물을 닦고 심호흡을 하고 그리고 쳐다본 하늘은 더없이 높고 푸르렀다. 고구마가 유난히 달았다. 

 

그날 밤늦게 세탁을 했다. 손수건을 깨끗하게 빨아 다림질까지 한 후 주름을 쫙폈다. 펴진 손수건을 모양대로 네모 사각형으로 곱게 접어 카드 봉투에 넣어 간수 하였다. 헝클어진 그동안의 내 마음 구김살도 대림질이 필요했다. 조만간 적당한 시기에 전하리라 마음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편안했다.

 

가슴 따스한 경험이 있은 후 힘들지 않게 서서 움직인다. 따라 노래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신통한 일이었다. 시간이 훌쩍 훌쩍 지나가고 있었다. 그 후 목소리는 많이 호전되어갔다. 안과 약속이 있는 날 LA로 나가 잠깐 그 친구를 찾아갔다. 친구 얼굴 전체가 환한 미소였다. 만나 반가워하는 손에 손수건을 건네주며 오트밀 쿠키 한 봉지 내 밀었다. 이 좋은 인연이 가까이 있다는 게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왕래의 오솔길을 밟고 우정이 오가는 길에 잡초는 멀리 다져지고 있었다.

 

손수건의 의미를 짚어본다. 손 가까이 티슈나 크리넥스가 없을 때가 종종 있다. 흐르는 땀을 닦거나 옷이나 몸에 튄 액체를 닦아내거나 손 씻은 후 물기를 없앨 때 손수건은 약방의 감초 역할을 한다. 또 앉을 자리에 까는 즉석 방석 대용품 등 여성의 손수건 역할은 다양하다. 주변에 배려의 손수건 사람이 많을수록 우리 주위는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상대방이 필요한 게 무었일까 형편을 눈치채고 손길을 먼저 뻗어 배려해주는 친구는 분명 사람 손수건이 었다.

 

지는 해의 여린 여열을 바라 보게 만든 손수건 사건, 발이 없는 손수건이 내 마음에 걸어들어와 행복하게 확대된 하루를 안겨주었던 그 날의 기억은 가슴 따스한 수체화로 남아있다.

 

퇴 5-2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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