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원 선생님 영전에

2008.05.11 13:02

김동찬 조회 수:774 추천:74

   미주 문단의 큰 스승이셨던 고원 선생님이 하늘나라로 떠나셨습니다.
   50여 년 전에 선생님이 내셨던 첫 번째 시집의 제목처럼 “시간표 없는 정거장”에서, 만나는 기쁨을 함께 나누었고 또 헤어지는 아픔을 겪습니다. 이 혼란한 시대에 우리의 갈 길을 늘 제시해주시던 위대한 스승을 잃은 상실감과 비통함이 사무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글마루에서 최근까지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아온 사람입니다. 그래서 외람되게도 고원 선생님의 제자라고 감히 자칭하고 있습니다.
   글마루에 처음 나갔을 때 배운 교재가 <채근담>이었습니다. 창작이론이 아닌 중국 격언집을 가르치시는 것이 의아하게 느껴졌습니다만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한 개의 sentence는 한 개의 아이디어를 가져야 하고, 한 개의 Paragraph는 한 개의 topic을 가져야 한다’ 는 등의 창작 기초 이론을 귀에 못이 박히게 지도하셨습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글을 쓰기 위한 마음가짐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먼저 해야 하고 성실한 삶을 살아야 입에 발린 미사여구가 아니라 살아있는 글을 쓸 수 있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가까이서 뵌 선생님은 한국 문학뿐만 아니라 미국, 중국, 일본문학, 나아가서는 각 나라의 신화에 이르기까지 믿어지지 않을 만큼 모르시는 것이 없는 박학다식한 분이었습니다. 그 학문적 깊이나 넓이, 문학적 경륜으로 보자면 저는 감히 선생님의 제자라고 자칭하는 것이 송구스럽습니다. 그러나 격식보다는 자유스러운 정신과 겸손함이 몸에 베인 선생님께서는 너그러운 웃음과 유머로 친구에게 이야기하듯이 가르침을 주시곤 하셨습니다. 그 한 예로 선생님은 우리 제자들에게도 꼭 무슨 선생이라고 부르시곤 하셨습니다. 지금도 저에게 ‘김 선생, 먼저 갈 게 천천히 오세요’ 하고 웃으실 것만 같습니다.
   이렇게 인품으로, 말씀으로, 글로, 강연으로 고원 선생님의 가르침을 직접, 간접으로 받지 않은 분은 미주의 한인들 중에서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우리들 욕심 같아서는 선생님을 우리 곁에 계속 계시게 해서 어려울 때나 모르는 문제가 생겼을 때 수시로 가르침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또 우리가 순응해야 할 천국의 섭리가 있어서 북받치는 슬픔을 누르고 선생님을 배웅합니다.
    비록 선생님은 떠나셨지만, 선생님이 주신 많은 가르침과 아름다운 문학작품은 우리들 가슴에 북극성처럼 살아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 선생님의 유지를 받들어 권력이나 세상의 부패한 정신에 굴하지 않는 문학작품을 창작하겠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감동을 나누는 사람이 먼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선생님,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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