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월란의 시는 응집된 힘이 숨어 있다.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시들이 집요하다. 그 힘은 모성에서부터 출발한다. 아이를 낳은 어미의 힘은 당차고 건강하다. 줄기차게 솟구치는 시는 사뭇 남성적이다. 볼펜을 자주 떨어뜨리고 머리를 부딪치며 책상 밑을 기어 다니는 시인은 하찮은 볼펜 한 자루도 포기하지 않는다. 광활한 시인의 시밭을 시집 한 권으로 다 말할 수 없다. 미개척지인, 그녀는 발굴되어야 한다. 시추를 통해 詩田의 깊이를 알려야 한다. 잡풀이 돋고 돌멩이가 구르는 미지의 땅 아래, 대체 시의 매장량은 얼마인가? 그녀는 잠재된 그녀를 파내야 한다.
엮은이의 말
이월란 시인의 옥고의 원고를 한국에서 받았다. 그는 미국에 살고 있는 한국시인이다. 미국 유타에서 한국까지 온 것이다. 그의 작품을 받고, 뛰어난 작품성에 감탄에 마지않았다.
현대시 코드와 관념 코드가 읽은 작품을 또 일기게 하였다. 그만큼 속이 깊은 시이다. 한 편 한 편 원고를 정리하면서 엮는 시간이 길어졌다. 정성이 들어간 작품에 정성으로 엮는 것은 당연하다. 곧 가을이 들어선다. 이 가을에 이월란 시인의 시집 모놀로그를 서점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
시인이 독백하는 그 무엇인가가 이 한 권의 시지비에 담겨 있다. 이 시집으로 인해 이월란 시인의 시는 날개를 달고 훨훨 천리를 날아가리라 본다. 좋은 시는 발 없이 천리를 가는 것이다.
시인의 말
단 한 줄의 글로써도 남기지 못할 내 걸어온 지난 길들은 누구의 길이었을까. 무슨 조화였을까. 식은땀 배인 잔손금처럼 수없이 가지를 내어 함부로 길이 되고 싶었던 그 불면의 난장들, 금단의 열매를 베어 물 듯 시를 한 입 삼켜 본 지금에야 목젖이 내리고 손발이 저려온다. 서늘히 떨어지는 기억의 무등을 타고 해부되지 못할 맹목을 달리고 있었으리.
기갈이 들린 듯 왜 이제야 베어 물고 만 것일까. 이제 땅을 파고 김을 매어야 하리. 부석부석한 몸으로 산로를 걸어야 하니. 뒷감당은 생각지도 않고 저지른 일들이 어디 이번뿐이랴. 나 자신을 충분히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애써 잊고 산다. 내 안에 허기진 누군가 목을 매고 있어, 키워내고 말아야 할...... 엄동 댓돌 위에 맨발이 닿은 듯 달큼하게 몸서리 돋건 그 듬단의 열매의 모순을 기억하며.
생각하면 눈물이 되고, 미소가 되고, 시린 내 손끈에서 따뜻한 그 무엇이 되고 마는 내 그리운 이들의 얼굴이 자꾸만 떠오른다.
2007년 뜨거운 여름, 어느 해질녘
이월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