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주문학 2008년 겨울호, 「휴거」, 정호승
휴거*
성가대 중간 좌석 쯤, 타고난 절대음감으로 소프라노를 든든히 받쳐주던 그녀
알토가 사라졌다
내 또래인 그녀가 강제로 이주당한 새 거주지는
Intermountain Medical Center: 5121 So. Cottonwood St. Murray
꽃을 사러 갔다
꽃들은 세상 밖으로 나가면 바로 시들어 버린다는 걸 아는지
나 같은 사람의 손에 걸린다면, 시들어가는 꼬라지 보기 싫다며
당장 거꾸로 매달려 절정의 순간에 말려진다는 걸 아는지
간택하러 간 나의 시선을 하나같이 외면하며 미동도 하지 않는다
팔려나가는 꽃들의 운명은 단 두 가지
상갓집에 가면 울어야 하고 결혼식에 가면 웃어야 한다
꽃처럼 소리도 없이 잘 울고, 잘 웃는 생명을 본 적이 있었던가
난 가장 우울해 보이는 꽃을 골랐다
수인번호같은 병원 1225호실
악보를 떨어뜨리고 쓰러진 그녀가 휠체어에 앉아 있다
주사바늘에 피멍이 든 손등이 왼쪽 반신과 함께 기억상실증에 걸려 있고
왼쪽 입가에 거품을 물고도 쉴 새 없이 웃으며 얘기를 하는 그녀는
뇌출혈로 중한자실에서 일반실로 온지 하루 밖에 되지 않았다
< 난 감사해요, 이렇게 살아 있으니까요.>
< 아직 나이가 있으니 금방 완쾌될 거예요.>
데리고 간 꽃들은 그녀처럼 웃지도 않고 나처럼 울지도 않는다
사무치는 꽃의 심장을 흥건한 운명 속에 꽂아두고
라스베가스의 호텔같은 야경을 보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도망치듯 내려왔다
세속의 아내가 되어, 육중한 건물을 뒤돌아 본 난
젖은 가슴 아래 소금인형이 되어
하이힐 속에 단단히 박은 발목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밤물이 차오른 하늘은 검푸른 저수지 같다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 같은 하늘 옥상에
응급 헬리콥터가 하강하고 있다
소돔의 야경 속으로 페달을 밟는 후사경 속에서
나의 반신을 두고 온 거대한 빌딩이
통째로 휴거 중이다
* 휴거(携擧) : ꃃ〖기독교〗예수가 세상을 심판하기 위하여 재림할 때
구원받는 사람을 공중으로 들어 올리는 것.
이월란 의 「휴거」또한 다소 복합적 은유성을 지니고 있다. 이 시의 구조 속에는 성가대원이었던 ‘그녀’가 뇌출혈로 쓰러져 입원해 있는 병원에 시적 화자가 꽃을 사들고 문병 간 이야기가 그 골격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시 전체가 외형적으로는 산문성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후반부에서 ‘도망치듯’ 병원을 빠져나오면서 본 ‘라스베이거스의 호텔 같은’ 도시의 야경을 구약성서에 나온 죄악의 도시 ‘소돔’으로 은유화함으로써 시의 구조로 전환된다. ‘세속의 아내가 되어, 육중한 건물을 뒤돌아 본 난/ 젖은 가슴 아래 소금인형이 되어/ 하이힐 속에 박은 발목이 녹아내리고 있었다’는 것은 시인 자신을 유황불에 불타는 소돔을 뒤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된 롯의 아내로 환치시킨 결과다. 나아가 그 소돔의 도시에서 ‘나의 반신을 두고 온 거대한 빌딩’이 ‘통째로 휴거 중’이라고 노래함으로써 이 시는 은유의 힘을 얻는다. 아마 이 시에 휴거의 은유가 없다면 지극히 산문적으로 전락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