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아
이월란 (2015-9)
“나처럼 생겼다.”
한글 선생님의 사진을 보여주었을 때 그녀의 첫 마디였단다. 여름방학동안 한글을 가르치러 간 나는 그녀를 본 순간 또 다른 그녀가 생각났다. 내가 본 그녀는 여덟 살 먹은 컨스턴스, 내게 생각난 그녀는 그녀를 낳은 엄마였다. 컨스턴스를 입양한 카트리나는 바비 인형처럼 금발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그녀는 생후 백일 때부터 아이를 안아주고, 씻겨주고, 또 매일 아이를 위해 지갑을 열었을 것이다. 그 집에서 유일하게 검은 머리를 가진 아이는 단정한 호기심으로 ㄱㄴㄷㄹ을 쓰고 ㅏㅑㅓㅕ를 읽었다. 교재를 훑어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리기도, 한국 지도를 그려 보이는 내게 심각하게 묻기도 했다.
“그럼 나는 노우스 코리아에서 왔나요, 사우스 코리아에서 왔나요?”
나도 그녀도 남한에서 왔으며 그녀가 보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남한에서 왔다고 말해주었다. 북한은 공산주의라 사람들이 마음대로 해외로 나올 수 없다고 하자 그녀는 안심하는 듯 했다.
나와 안면이 트이고 다소 편해진 어느 날, 그녀가 말했다.
“나를 낳아준 엄마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디에 살고 있는지 궁금해요.”
한없이 밝아만 보였던 그녀의 말은 나의 심장을 쿵, 처음으로 떨어뜨렸다. 저 작은 가슴이 때때로 얼마나 시린 걸까. 본 적 없어 보고 싶지도 않겠지만 보고 싶지 않아도 정말 궁금할 뿐이라고 그녀의 맑은 두 눈이 말하고 있었다. 카트리나가 옹기종기 꾸며놓은 그녀의 방에는 그녀의 백일 사진이 걸려 있다. 금박 입힌 의자에 앉아 있는 아기의 발치 끝에 ‘Shin Yoo Kyung’이라는 낯선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그녀의 미들 네임이기도 하다. 그녀의 방에 앉아 있는 인형들은 하나같이 검은 머리와 작은 눈을 가진 동양 인형들이었다. 그녀의 엄마에게 왜 하필 한국 아이를 입양했냐고 물었을 때 카트리나가 대답했었다.
“시간도 절차도 여기 아이들보다 훨씬 짧고 간단하니까요.”
컨스턴스보다 세 살 많은 오빠, 제이드는 ADD(Attention deficit disorder)라는 병명으로 매일 아침 파란 약 한 알씩을 삼킨다. 인내심이라곤 단 일 초도 없는, 버릇없이 자란 아이. 머리 좋은 의사들은 정상치를 조금이라도 벗어난 온갖 증상에 병명을 붙이고, 그들이 처방하는 순간 모든 것이 약이 되는 세상이다. 제이드는 내가 본 ADD 증상 중에서도 중증이었다. 단순히 주의력이 산만한 아이가 아니었고 그 여파는 매순간 고스란히 컨스턴스에게로 전해졌다. 처음 한 주간은 거친 오빠의 언행에 고개만 숙일 뿐 단 한 마디의 대꾸도 하지 않는 그녀가 대단해 보였다. 아무리 화가 나도 동생을 절대 건드리지 말라는 경고를 몇 차례나 듣고서도 어느 날은 동생의 팔을 물었고 꿋꿋하게 버티던 컨스턴스도 울음을 터뜨렸다. 처음 듣는 그 울음소리 속에서 나는 또 다시 심장이 쿵, 떨어졌고 그녀를 버린 여자와 그 버려진 아이를 바다 건너로 팔아버린 조국을 생각했다.
몇 년 전 들었던 사회학 수업에서 교수가 아시아 나라들의 특색을 한 가지씩 예로 든 적이 있다. 일본은 서양과는 다른 사무라이식 예절을 자랑처럼 예로 들더니 곧바로 한국을 세계 제일의 고아 수출국으로 이름 짓는 것이었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해외입양을 보내는 나라다. 2015년 GDP 기준으로 한국은 세계 제 11위의 작고도 큰 나라가 되었다. 대외 무역 의존도는 세계 1위이며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43%라고 한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6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수출 품목 중에 고아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은 치욕이다. 아직도 입양에 대한 시각이 서양처럼 대중화되어 있진 않겠지만 변함없이 자국의 버려진 아이들을 국외로 수출한다는 사실은 부끄러울 수밖에 없다.
한국의 어느 연예인이 자신의 입양아에 대한 선진국화된 신념을 자랑하며 한 얘기가 떠오른다. 초등학생인 입양아의 학교에 가서도 그 아이의 출처를 분명히 밝힌단다. 같은 검은 머리를 가진 친부모처럼 거리낌 없이 살다가, 성인이 되어서 말해 주어도 결코 늦지 않을 그 진실을 도대체 누구를 위해 공공연히 떠벌리고 다닌다는 것일까. 자신의 선행에 대한 자부심이 아닌 아이의 여린 외로움을 조금이라도 살핀다면 방송에서 그리 요란하게 떠들 필요가 정말 있을까 싶다. 카트리나는 입양 사실을 떠들고 다닐 필요도 없다. 컨스턴스의 검은 머리와 검은 눈동자가 더 많은 진실로 걸어 다니고 있으니까.
컨스턴스는 아무리 한 여름 땡볕이 따가워도 결코 모자를 쓰지 않는다. 검은 머리칼이 엄마의 금발처럼 옅은 색으로 바래지고 싶단다. 나는 그녀를 ‘공주님’이라고 불러주었다. 그 뜻이 ‘princess’ 라는 걸 말해 주었을 때 그녀는 불편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모든 엄마들에게 딸들은 모두 공주님이라는 걸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끔찍한 육체적인 고통이 따르지 않는 한 결코 화를 내지도, 고함을 지르지도, 울지도 않는다. 한 달 후면 그녀와도 이별이다. 제이드가 그녀를 거칠게 다룰 때마다 나는 고개 숙인 그녀 앞에 꿇어앉는다. 그리고 사막처럼 건조한 그녀의 두 눈을 올려다보며 끊임없이 속삭인다.
“결코 약해지지 마, 넌 사랑스럽고 예쁘고 특별한 아이야.”
그리고 ‘넌 버려진 아이가 아니야’ 라는 말을 꿀꺽 삼킨 채 다시 속삭여준다.
“너를 낳아준 엄마는 지금도 너를 그리워하고 사랑하고 계실거야. 네가 어른이 되면 엄마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도 그 때도 너의 엄마는 카트리나고 너의 엄마는 너를 정말 사랑한단다.”
한글 교재에 있는 애국가 악보를 보더니 불러달란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타국에서의 27년, 내가 애국가를 부르며 눈물을 흘린 적이 있던가. 아이가 젖은 내 입술을 빤히 쳐다보며 묻는다.
“그게 다 무슨 뜻이에요?”
그녀를 팔아버린 조국의 노래가 처음으로 낯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