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란의 문학서재






오늘:
323
어제:
8,931
전체:
5,866,330

이달의 작가
제4시집
2025.05.17 12:46

모압 가는 길

조회 수 655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모압* 가는 길 / 이월란

 

 

 

멀리서 보면

백지 위에 커서처럼 떠 있었지만 분명 우린 달리고 있었다

몇 개의 불모지를 지나왔을까

구원의 약속으로 갈 것인지 관광지로 갈 것인지

아담과 이브인지 카인과 아벨인지

 

아무래도 죄를 싣고 가는 길

달의 후면에서 가져온 유리구슬 같은 눈으로 길을 지우며 가는 기분

영영 돌아가지 않을 듯

구약의 페이지처럼 넘어가는 협곡 사이로

마운틴 바이커들이 줄지어 오늘의 말씀처럼 멀어진다

 

사막 너머로 배밀이하듯 옮겨 다닌 집들이 죄인처럼 엎드린다

죄의 마을을 떠나 벌의 마을로 가고 있나요

여기가 어디였지, 모래알처럼 버성긴 목소리로 마주 보면

서로를 디디고 올라야 길이 보였다

 

길 잃은 새들이 묻혀 있을 태초의 땅

사이드미러에는 작은 종말이 담겨 있다

보이는 것보다 더 가까이 있다는 경고문과 함께

달릴 때마다 보이지 않던 당신의 왼쪽이 그립도록

우린 분명 같은 곳을 가고 있었다

 

서로의 혀를 잡아당길 때마다 사해의 바람이 불어

화산재 아래 석고처럼 영혼을 부으면

아이 꺼내듯 최후의 순간을 꺼내기도 했는데

 

기묘한 아치 밑을 달리며 바다로 향하는 문이 있다고

나는 아비를 범한 딸이 되고

타락의 바닥을 딛고 차오른 물거품이 되고

 

최후의 몸이 벌떡 일어선 것 같은 붉은 모래탑을 달리면

오데온에 꽉 찬 함성이 패인 돌길을 달리는 마차 안에 차오르고

 

인간화석처럼 핸들 위에 정지된 당신은

11유로로 들어갈 수 있는 폼페이 최후의 날을 닮았다

 

서로의 옆모습을 훔쳐보며

첼라 앞에 엎드려 파묻은 마지막 모습

여전히 발굴 중인데

 

어디로 가야만 한다는 착각이 일생이 되다니

낯선 지명 하나 다시 꺼내 들면 서로의 대답이 가까워진다

 

목적지까지의 거리는 떠도는 비밀입니다 

 

 

*유타주 동부의 도시 이름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697 제4시집 시집 해설_김학중 시인 file 이월란 2025.05.17 582
1696 제4시집 걸어가는 새 이월란 2025.05.17 707
1695 제4시집 모래와 안개의 집 이월란 2025.05.17 595
» 제4시집 모압 가는 길 이월란 2025.05.17 655
1693 제4시집 시간을 베끼다 이월란 2025.05.17 556
1692 제4시집 안개와 아버지 이월란 2025.05.17 708
1691 제4시집 경계 이월란 2025.05.17 640
1690 제4시집 바늘을 잃어버렸다 이월란 2025.05.17 562
1689 제4시집 파자마 데이 이월란 2025.05.17 667
1688 제4시집 섬머 타임 이월란 2025.05.17 559
1687 제4시집 나는 로봇이 아닙니까 이월란 2025.05.17 664
1686 제4시집 엔터로프 아일랜드 이월란 2025.05.17 699
1685 제4시집 Re: 꿈 이월란 2025.05.17 693
1684 제4시집 번개탄 이월란 2025.05.17 536
1683 제4시집 사슴이 온다 이월란 2025.05.17 562
1682 제4시집 사라진 여자 이월란 2025.05.17 613
1681 제4시집 시크릿 가든 이월란 2025.05.17 566
1680 제4시집 무선시대 이월란 2025.05.17 528
1679 제4시집 마음 레시피 이월란 2025.05.17 655
1678 제4시집 생각의 최고속도 이월란 2025.05.17 542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85 Next
/ 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