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로봇이 아닙니까 / 이월란
스피릿*을 사려고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넣었다
그럼에도
당신이 로봇이 아님을 증명하시오
뜨악한 세상
계단 사진을 고르기만 해도 신호등 사진을 고르기만 해도 스쿨버스 사진을 고르기만 해도
로봇이 아님을 증명할 수 있단다
인공지능이 챠르락챠르락 기억세포를 두드린다 누군가 나의 아버지가 차페크**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유니메이트***처럼 일한 적이 있다 나는 공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다 나는 설정된 순서대로 밤낮을 먹고 잔다 나는 디스플레이 된 길 위에서 자율주행하는 세월을 타고 달린다 사람과 인간 사이에서 자주 작동을 멈춘다
시퀀스 로봇으로 태어나 플레이백 로봇으로 살면서 지능형 로봇처럼 생각한다
로봇의 원칙은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로봇은 위험에 처한 인간을 방관하지 않는다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반드시 복종한다
로봇은 이 모든 원칙을 위배하지 않는 한 자신을 보호한다
로봇이 아닌
나는 인간에게 해를 끼친 적이 있다
나는 위험에 처한 인간을 방관한 적이 있다
나는 인간의 명령에 불복종한 적이 있다
나는 나 자신을 보호하지 않은 적이 있다
난 결코 로봇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계단 사진을 고르지 못한다면 신호등 사진을 고르지 못한다면 스쿨버스 사진을 고르지 못한다면
나는 로봇이다
* 화성탐사 로봇
** ‘로봇’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한 체코슬로바키아 소설가
*** 최초의 산업용 로봇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