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와 안개의 집* / 이월란
주소를 발설하는 순간
솔솔 흘러내리거나 뿌옇게 모였다 흩어지는
속이 훤히 비치는 여름옷 같은 곳이었을까요
투명한 리빙박스 같은 곳이었을까요 우리가 꿈꾸던 그곳은
집이 없는 동네에서 태어나는 악몽을 꾼 뒤
이방인이 되지 않기 위해선 지붕과 벽이 필요하다고
나눠가질 수 없는 땅 위에 각자의 집을 지으면
뾰족한 지붕 위에서도 터를 닦는다고
돌아가고 싶은 곳이 어디일 줄 알고 사람들은 집을 지을까요
흘러내리는 것을 움켜쥐는 순간과
흩어지는 것을 다시 모으는 사이
여자는 투명이 더 투명해질 때까지 창을 닦고
남자는 날아오다 부딪힌 새의 사체를 쓸어 담는 곳이라고
종일 잡초를 뽑다 허리를 편 순간
정갈한 정원이 아닌 뽑혀 나간 잡초였음을 들키지 않게
육중한 문을 열고 들어가 서로를 가두는 곳이라고
이 집에 살다 간 사람들을 닮아가는 걸까요
그들이 떠나간 곳을 알 수 없으므로
여긴 따뜻한 곳이야
여긴 무성한 곳이야
벼룻집 같은 어둠이 칸칸이 쌓이는 방 하나쯤 어느 집에나 있다고
거짓에 변명을 조금씩 개어 쌓아 올리다 보면
손바닥만 한 경첩으로도 언제든 열리고 닫히는 기억의 문
그럴수록 거대한 진실처럼 떠억 버텨주는 것이라는데요
빈터만 보면 뿌리 내리는 습성으로
어제의 옆집으로 이사 온 뒤
허물어진 귀퉁이로 들려오는 모래와 안개의 웃음소리
*Andre Dubus Ⅲ의 소설 제목을 빌려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