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꿈 / 이월란
밤새 화장실을 찾아다닌다 재래식 문을 두드리며 배설을 꿈꾼다 어떤 식으로든 미완성이다 나는 오프라인에 있고 꿈은 온라인에 있다 협곡처럼 스며드는 푸른 기척, 미료한 얼굴을 데리고 다닌다
바람에 우는 비즈커튼 사이로 고스트처럼 빠져나오는 외진 생각, 쫓고 쫓기는 사냥꾼의 해묵은 논쟁처럼 어둠은 약자를 솎아낸다 악행과 변명을 떼어놓지 못해 꿈을 반짝이던 여자와 사이즈가 스몰에서 미디엄으로 바뀐 뒤 꿈을 접었다는 여자가 연이어 등장했다 오늘을 만진 건 어쩌면 꿈이었을까
말줄임표로 끝나버리는 꿈의 문체에 끼어든 후 에스키모처럼 영혼을 잃었다 꿈과 꿈을 잇기 위해 또 다른 꿈을 잇대어야 했다 어제의 손을 자꾸만 놓치는 건 꿈이 이어지지 않기 때문, 새벽녘 끝물에 달아오르는 꿈의 체위를 바꿔야 한다 흉몽과 길몽의 기준을 벗어버린
별과 밤 사이에는 정교한 어둠에 걸린 깊이가 산다 거울 속에서 본 얼굴은 퇴행을 꿈꾼다 리비도의 베개 속에서 태어나는 눈이 없는 아이는 문신 같은 상처가 있다 간밤의 위장술에 시간이 녹아내리는 기억의 고집*, 히스테리한 앨범에 굴절된 사진들이 꽂힌다
꿈 없이 해몽되고 있는 하루를 살았다 돌아눕다 잡혀 오는 곳, 오늘보다 조금 더 부풀어 올랐던 어제의 꿈이 떠내려간다 물 위에 뜨는 기름처럼 떠오르는 꿈을 남모르게 걷어내는 일, 바닥을 보기 위함이다
어둠의 눈은 안다 가슴에서 눈동자까지의 거리인 걸, 눈뜨면 다시 가슴으로 돌아가 머뭇거리는 사연인 걸, 마카롱처럼 달콤한 꿈으로 짜인 이불을 턱밑까지 당겨 꽁꽁 언 꿈을 해동시킨다 녹아내린 꿈이 흐르기 시작하면 해마의 손을 놓친 기억들이 주춤주춤 휩쓸린다
꿈을 신봉하게 되었다 철로가 끊어진 날 길에서 떨어진 후, 굳은 하반신으로 꽃신을 신은 엄마가 천국으로 간 후, 눌러도 튀어 오르지 않는 건반 하나 꿈의 악보에 붙들려 있었다 누가 나를 들여다보는가 꿈 밖으로 뛰쳐나와서도 길을 잃었는데 비행기를 놓쳤는데 시험지를 잃어버렸는데 낳은 아이를 또 낳았는데
욕창 같은 꿈에서 깨어나면 엄마의 꼬리뼈가 떨어져 나간 자리가 보였다 환골탈태 중인 그녀를 꼭 붙들고 싶었다 소변 줄을 달고 사는 그녀에게 개구리반찬 놀이처럼 묻고 싶었다 죽었니 살았니
이상한 냄새가 두려워 도망치다 보면 빠져드는 생시의 늪
나를 낳은 것은 꿈이었다
*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 (19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