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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제4시집
2025.05.17 12:29

생각의 최고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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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최고속도 / 이월란

 

 

 

죄지은 사람처럼 누가 따라오는지 끊임없이 사방을 둘러보다 보면

길은 죄지은 사람들로만 가득 차

방지턱을 넘듯 구불텅, 로드킬 당한 네발짐승을 꿈속으로 보내고

불법 유턴한 왼쪽 앞바퀴의 죄를 빌게 되지

경고문을 보며 꿀꺽 삼키는 것은 애완견의 젖은 숨

핫스프링처럼 두려움만 솟아나

 

달려온 길과 눈이 마주치면 보복운전자가 되는 얼굴

출발지와 목적지가 있어야만 하는 게 끔찍하지 않니

아무 데나 가주세요 하면 목적지를 다시 한번 말씀해주시겠어요

끝까지 물고 늘어지지

한 번쯤 잃어버리는 연습도 필요한 걸, 꼬박꼬박 열쇠를 잊지 마세요

나를 잊으면 죽여 버리겠다던 말을 생각나게 하잖아

 

열여덟 바퀴가 달린 트럭을 지나치다 보면 갑자기 차에서 내리고 싶어져

가파른 계단참에 갇힌 기분

고난도의 스키장에 잘못 올라가 내려오지 못하는 기분

그러다 이마에 꿀밤 맞듯 유리창에 날아든 돌멩이

시동이 걸리지 않은 아침도 단숨에 노을까지 달리는데

속도가 무서워지기 시작하면 인생 전체가 낭패지

 

달리다 뒤집히는 차를 목격한 적이 있어

나를 세우지 못해 백미러 속에서 점이 되어버린

혼자 영화를 찍던 스턴트맨은 살아남았을까

 

노란 스쿨버스 안에서 잠들다 집을 놓쳐버린 아이처럼

닿기 전에 내렸어야 할 곳이 있었던 것 같아

신호등에 걸린 슬픔을 내려주고도

말다툼 끝에 잡은 핸들은 아무 곳에도 날 데려다주지 못했지

바다를 건너지 못한다면 어디나 똑같은 동네 마트 주차장

 

가난해서 어린 골목으로 신나게 차를 몰고 갔을 때

길을 잃고 꿈에서 내린 것은 내가 아니었어

면허증 갱신기간이 5년에서 8년으로 늘어났대

8년 동안 화장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로 들렸어

그땐 화장해도 다를 게 없는데 말야

 

속도를 넘어선 차창으로 벌금고지서를 건네던 제복에게 물었지

물속에서도 시동이 걸릴까요

멈추지 않는 자막을 삼킨 엔딩 크레딧이 수면 위로 떠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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