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선시대 / 이월란
탯줄 달린 아이가 가장 먼저 만난 것은 가위소리
거절이 잘리지 않는 가위를 갖고 싶었다
어딘가에 매달려 있고 싶어졌다
자유를 위한 미니멀리즘, 분해할 수 없는 세상을 꿈꾸었다
구름 속에 넣어둔 기억이 두둥실 떠오르면
두 개의 점이 선이 되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
간섭당하기 좋은 원격 채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 벽이 되었다
구름의 기념일에 설렘의 알람이 울리면 자동으로 켜진 촛불을 끈다
거미가 거미줄을 먹고 있다
무선으로 날아가는 새 두 마리
만져지지 않는 책상과 활자 없는 책을 꿈꾼다
동떨어져 가는 손이 전화를 자꾸 떨어뜨린다
돋아난 푸른 이빨로 중얼거리는 아이
잠수종을 떠난 잠수부처럼 해저 위로 두웅 떠오른다
귀와 입이 흩어져 여기서 말하는데 저기서 들려온다
최신형 엄마가 예쁜 케이스를 입고 거치대로 서 있으면
페어링을 시도하시겠습니까
와이파이가 터지지 않는 물속에서 동면을 개통한다
무선 충전기에 앉은 사람들은 찌릿찌릿 영원에 절여지고
줄기처럼 광합성을 하는 소리에 손을 해지한다
영역 밖의 영역, 추적되지 않는 위치로 주소를 옮긴다
동작모드로 들리는 심장소리에 사방으로 블루투스 눈물이 튄다
브레이크도 무선, 달려가지 않을 수 없다
혈관이 코일처럼 꼬인다
출처 없는 나를 지원한다
목적 없는 나를 유도한다
더 멀리
더 빨리
거미줄을 먹은 거미가 벽을 기어오르고 있다
시간 밖의 나에게 링크를 걸어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