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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제4시집
2025.05.17 12:42

파자마 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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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자마 데이 / 이월란 

 

 

잔꽃 날리는 페르시안 통바지 속으로 들어가요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구석구석을 걸을 때는

정원에서 숨어든 개미 한 마리처럼 작아져도 상관없구요

 

애완견은 캥거루처럼 육아낭에 숨어 있지요

페르시안 데이지처럼 페르시안 양탄자를 타고 페르시아로 가요

미랭한 강아지는 귀부인의 무릎으로 얌전해지는

페르시안 고양이 흉내를 내게 내버려 두겠어요

 

카펫 직조공의 페르시아의 흠 같은 날이니까

인디언 목걸이의 영혼의 구슬 같은 날이니까

돌담 사이를 빠져나가는 바람 같은 날이니까

가슴에 바람이 들어도 알 수 없는 바람으로 만든 파자마를 입어요

 

빈틈으로만 채워진 날은 더 이상 빈틈이 아니에요

걱정인형이 모두 걱정의 나라로 도망간들 텅 빈 날이 아닌 것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꽉 찬 날은 무엇이 될 필요조차 없는 날이죠

몰캉한 청포묵 위에 얹는 볶음김치가 되어도 좋은 날

강아지 머리 위에 볶은 통깨를 뿌려도 좋은 날

 

손님용 소파에 앉아 나를 대접하는 손님으로

베갯잇 속에 핼러윈 캔디를 가득 담아오던 아이를 눈에 넣고

안경 쓰고 안경을 찾아도 전화 들고 전화를 찾아도

또 다른 안경과 전화가 툭 튀어나올 것만 같은 날

 

냉동고기를 꺼내 놓은 지 딱 서너 시간 후에서 멈춰버린 날

그래서 얇게 저미기 좋은 도마 위의 날

녹지 않은 것과 녹은 것들이 살얼음처럼 간지러운 날

벼린 고통이 달고나처럼 녹아드는 전지전능한 날

 

꽃무 속에서 깨어나지 못한 생시가 눈뜨는 날

기억과 바람 사이 담벼락에 씐 낙서 같은 날

심장의 높이로 몸속으로 들어갈 땐

파자마를 챙겨 입는 걸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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