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여자 / 이월란
언젠가 없어져 버렸음 했던 여자가 있었어
여자라는 데 방점이 찍힌다면 그건 다분히 상습적이야. 더 따뜻한 온도에서 암컷이 된다는 거북이알과 같은 거지. 조금만 더 차가운 곳에서 배양되었다면 그녀는 분명 수컷이 되었을 거야. 천국에 있다 지옥으로 떨어진 천사처럼 말하고 행동하던 그녀는 가상현실에 안주할 수 없는 AI 같았어.
하이힐을 운동화로 바꿔 신고 낮은 곳으로 임하라는 사이비종교 신도처럼 과거를 신봉하던 여자. 한때 그랬었다는 미련만으로 가득 찬 몸을 술잔처럼 기울이며 주정하듯 뒤로만 걷던 여자. 고통을 말할수록 선악이 공존하는 기괴한 얼굴로 변해가던 여자. 앞으로만 걷는 그림자를 떼어내고 어차피 한방이라며 마침내 사건의 배후가 되어 조서를 꾸미던 여자.
그녀의 마음이 사라진 건 아마 훨씬 더 오래전이었을 거야
손자를 업고 돌아다니다 산후우울증에 걸렸다던 여자
그 병명을 들고 동네 도서관에서 살았다는 여자
맞고 사는 여자가 언제 집을 나오는지 아니? 남자를 죽이기 직전
그리고 남편이 객사하는 꿈을 꿨다며 비로소 미래를 꿈꾸던 여자
투명 방음벽에 부딪친 새의 사체 같은 옷을 즐겨 입던 여자
그녀의 화려한 옷 중 단 한 벌이라도 입어보고 싶었던 때가 있었는데
그녀와 나의 사이즈가 똑같다는 사실조차 내겐 저주였지
돈 떼먹고 날랐다며 그녀에게 날개를 달아준 이들은 그녀가 십 센티쯤 작아진 사실을 그때야 떠올렸겠지. 그녀가 가장 크게 웃었던 날은 비행기를 타고 온 그녀와 잔디 언덕에서 둘이 나란히 누워 굴러떨어지던 날이었어. 웃음소리가 이명처럼 떠돌면 어디에서든 굴러떨어질 수 있다는 궁리를 묘안처럼 던져주는 여자.
신발을 바꿔 신을 때마다 습관처럼 나를 뒤적이게 만드는 여자
익숙했던 나를 데리고 매일 조금씩 더 사라지는 여자를 알고 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