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머 타임 / 이월란
미숙아처럼 여름엔 일찍 태어나고 겨울엔 늦게 죽기로 해요
가등 대신 햇살을 심어놓은 길을 걷다 보면 한 줌 일찍 피어난 봄꽃도 안개와 아버지 사이에 고여 있던 순간임을 알게 되는데
뛰어가다 흘려도 그만인 거스름돈 같기도 지키지 못한 임종 같기도 해서
하와이로 날아가면 잃었다 얻은 시간을 볼 수 있다고요
지나면 사라지는 항로처럼 살짝 고개 돌린 시간의 옆모습이겠거니 피 말리게 기다리던 순간쯤은 아무것도 아닌 게 돼요
하혈하듯 빠져나가던 기억에 발이 젖어 한 걸음 붉어진 자리로 다시 돌아가면 환절기 같은 시간에 확진된 사람들을 볼 수 있어요
한 눈을 가린 채 원근법을 계산하던 아버지의 시야 속에 잃어버린 한 시간을 맡겨 두어요
건너뛰는 경계에 가까워지다 보면 객실 사이에 나란히 심어둔 금목서처럼 잠시 서 있게 되지요 이전 혹은 다음을 클릭해야만 하는데 사적인 시간이 더 이상 흐르지 않는 빈틈에 빠진 발을 빼고
고집에 길든 벽시계에 닿기 위해 의자를 옮기는 순간 째깍째깍 싱싱한 데시벨을 휘젓는 신의 손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두 팔에 매달려요
겨울나기 사냥에 나선 인디언 섬머에는 포획한 시간을 놓아주는 이도 있었는데
시침 사이에 유령처럼 마법의 양탄자를 타고 내린 새로운 이탈
시계를 잘라 만든 마음은
타임지 속에 들어 있는 타임 같은, 뺏은 것을 다시 빼앗기는 느낌이랄까요
동그란 그물 속에 갇히듯 발등에 머리가 닿고 격자무늬에 점점이 맺히는 물방울처럼
똑똑 그 자리에 떨어져요
일찍 데워진 먼동을 아침 식탁에 놓고 한 입 두 입 배를 불리다
가을에 닿으면 잃어버린 시간이 먼저 와 있을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