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리(別離)
이 월란
한 때는 너와 나의 진실이었던,
그 안개같은 진실의 흔적이 안개걸음으로 저만치 걸어가고 있다
말미잘같은 나의 몸을 뚫고 나와 멀어져가고 있다
담홍색 수밀도같은 사랑의 과즙이 뚝뚝 떨어져 내리던 무형의 거리
눈 멀도록 반사되어 오던 그 빛뭉치는 꿈길에 초점이 맞추어진
몽유 속 낭설이라 흩어지고 있다
내가 아닌 너의 모습만 담고 있던 아침의 거울은 쨍그랑 소리도 없이
한조각씩 깨어져나가고, 오-- 그런 날은 아침이 없었으면
저 무고한 해는 언제 저 먼 하늘을 다 둘러 볼 것이며
언제 지는 해가 되어 발 아래서 새 날을 빚어 올 것인가
난 오늘도 아침이 되지 못한다
차라리 아침 없이 저 눈부신 해가 중천에 붕 떠 버렸으면
노회할 줄 모르는 저 태양도 어쩌다 한번씩은 교활해졌으면
언질 한마디 없이 저버리는 꽃들을
화마같은 불덩이로 나를 달궈 놓고 눈짓 하나 없이 돌아설
이 염천을
진실을 등진 지구의 반란이라 누가 동정할 것인가
지나간 시간들의 알리바이는 더 이상 성립되지 않아
USB 나 플라피 디스크에도 저장되어 있지 못해
우리가 나누어 가진 구리빛 열쇠꾸러미들로는
이제 서로의 어떤 문도 열리지 않을 것을
나를 찾아 헤매는 길은 늘 이렇게 누군가의 몸을 관통하여
끝없이 이어지는 뫼비우스의 띠 같은 것
또 언제나 끝으로 마주치는 해부되지 못할 맹목을 싣고 달리는
폐쇄된 수인선의 협궤열차 같은 것
간간이 역무원 없는 간이역에 발이 닿을 것이며
정시에 출발하는 고속열차에 또 다시 몸을 실려 보내고 말 것을
연착해버린 마음만 고스란히 남겨둔 채
2007-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