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로
이 월란
박명의 저녁빛 아래 가스등이 하나 둘 꽃처럼 피어나면
눈깜빡 할 사이에 꼭 한뼘씩만 어두워지는 오묘한 변이에
넋을 팔고 싶어 부랑의 신발을 신고 거리로 나간다
일상의 팽팽한 마두희 게임을 슬쩍 놓아버리면
영혼은 거처를 찾아 넋의 호재를 꿈꾼다
인적 없는 오솔길 무투벤치, 탕진해버린 낮빛의 잔해 위로
빨간 살딱지같은 잎새들이 소록소록 쌓이는 하루의 가을
내 영혼의 살결을 애무하는 안개방울 사이로
하염없이 뿌려놓고 싶은 오색의 염문들
저 산정 너머엔 오욕의 망혼들을 위한 씻김굿이 한창이겠고
낙엽 타는 냄새가 어느 외진 소산터의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살 타는 냄새 같은 납빛의 노정에
살아 있다는 통절한 감촉만이 훤히 만져지는
데시벨 제로의 난시청지역
초롱초롱한 아이들의 눈망울은 행려하는 시선들을
얼마나 구체적인 이유로 붙들어 앉히고 말았던가
잘 먹고 잘 살아야 한다고
먹고 살지 않아도 곱게만 살아질 내 영혼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꼭 이맘 때 같으리라
모닝콜 같은 봄과 한낮의 여름을 견뎌내고
매일 동면하는 밤의 겨울을 향한,
매일 맞이하는 이런 가을같은 해질녘
2007-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