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詩
이 월란
나 어릴적 엄마는 말했었다, 입이 닳도록
나쁜 짓을 하면 나쁜 사람이야
나쁜 말을 하면 나쁜 인간이야
알고도 나쁜 짓을 하는 인간은 더 나쁜 인간이야
달콤하고도 말랑말랑한, 애매해서 도무지 안개같은 시
암컷과 수컷 간의 사랑 일색으로 식상한 연시풍의 시
자기 감정을 과장해서 덧칠하는 일에 시간을 낭비한 시
일회성의 공허한 유희만 있을 뿐 삶을 관통하는 반성적 성찰이 없는 시
안일한 감상주의와 자아분열적 글쓰기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시
상황의 개연성도 없고 개성도 없으며 시정신을 철저히 망각한 시
시류적인 어투와 관념어, 클리쉐(cliche)로 일관된 시
불필요한 산문형식과 억지로 만든 흔적이 앙상하게 드러난 시
삶의 세계에 대한 새로운 개안이나 절실한 감동이 없는 시
절제와 균형이 부족하며 추상적 관념의 나열로 마무리 된 시
비문, 오문의 남발과 시적 사유가 부족한 시
이상, 세상 곳곳에 무료로 비치되어 있는 진단서들이다. 눈 감고 어느 것을 집어 들어도 기가막힌 내 증상이다. 저런 진단서들을 마주 대할 때마다 몸소름 돋듯 통증이 되살아난다. 저 질기고도 촘촘한 그물을 빠져나갈 재주는 내게 없다. 겁나게 똑똑한 사람들은 시시콜콜 밥알이 곤두서듯 짜증을 내고 있다. 속옷만 겨우 남겨둔 채 애써 치장한 내 옷을 벗겨 버렸다. 한 때 속치마같은 속옷 패션도 유행은 했었다고, 거나한 밥상엔 구색만 갖춘 눈요기식 들러리 반찬도 더러는 필요하다고, 더 뻔뻔스러워지지 않으면 이 짓을 더 이상 계속 할 수 없을 것이다.
뻔뻔스러워야만 했던 내 삶의 순간순간들을 죄다 끌어모아서라도 더 뻔뻔해져야만 한다. 낙오되지 않을 정량의 목숨을 항상 유지하는 것은 커트라인을 넘어선 뻔뻔함 속에 알몸을 늘 담궈 둬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명명백백한 오류의 코드를 벗어나지 못하는 원죄를 안고서도 희망 없는 투병생활을 자처한 이 역마살, 완치의 길이 투병의 길보다 훨씬 쉬운 특이병 앞에서 특이체질이라 인정하고 뒷걸음질 칠 때마다 적당한 자아도취제도 복용해야만 한다.
풍성한 밥상에서 떨어진 밥풀같은 글자들도 때론 찌든 허기를 달래줄 수 있을까.
작심삼일 일지라도 매일 결심하고 매일 용서 받는 일기나 제대로 썼다면 지금쯤 난 아주 참한 인간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엄마, 나쁜 시인 줄 알면서도 계속 나쁜 시를 쓰고 있는 난 나쁜 시인이에요. 인간같지 않은 인간이기보다는 시같지 않은 시를 쓰는 인간같은 인간이고 싶은......
2008-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