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란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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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제2시집
2008.06.13 13:27

포효

조회 수 245 추천 수 1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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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효(咆哮


                                                                                                                                    이 월란




내가 좋아하는 시인의, 내가 좋아하는 시집을 읽었다. 몇 백년 침잠시켜 살포시 떠낸 청정수같은 성정이 신의 메신저같은 생언어로 피안의 담장을 넘었다. 금간 다기같은 한 뼘 가슴에 고스란히 고여와도 난 여전히 한 마리 배고픈 짐승, 길 잃은 짐승. 울어야 한다.



대체 어떤 짐승의 소리로 울어야 하나, 나의 몸을 검색한다. 사랑도 검색 당하고 진실도 검색을 당하는 세상. 내 몸 어딘가에 오래 전 삼킨 울음의 끝자락이 살짝 보일지도 모른다. 성대는 비어 있다. 짐승의 이름은 업그레이드가 중지되어 사실상 음성파일의 기능은 마비되어 있었다. 음메에 소, 꿀꿀 돼지, 휘이힝 말, 멍멍 개, 야옹 고양이, 메에에 염소,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은 나의 울음소리는 이 집안에 없다.



문을 열고 뒤곁으로 나갔더니 맙소사! 비는 언제부터 나를 기만하고 있었나. 허공은 지느러미를 내어 빗살 사이를 헤엄쳐 다니고 키 작은 잔디와 키 큰 나무들은 하나같이 물풀처럼 일렁이고 있다. 파도가 그들 사이에 잡초처럼 자라나 뒤란 가득 바다가 채워지고 있었다.  피아골의 낮은 폭포소리를 너머 어지러운 비의 세상 한 귀퉁이에서 세상을 치는 드럼소리, 그제서야 들려온다. 에어콘 박스 위의 함석판 뚜껑이다.



저 독특한 울음소리는 묘하게 흐느끼는 어중간한 바다 가운데서 내가 찾던 바로 그 짐승의 울음소리였다. 난리를 부르는 듯 생철판 가득 쏟아지는 비의 함성. 햇볕 따가운 사막의 집요한 침묵 속에서 비가 오면 제 몸을 후두두둑 치면서 세상을 뒤흔드는 저 울음소리, 클릭! 클릭!
화려하고도 요란한 목청은 조용히 다운로드 중이다. 양철가죽을 두른 짐승의 음성파일로.
                                                                        
                                                                                                                          2008-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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