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샤워하기 (견공시리즈 57)
이월란(10/03/01)
내 하루의 동선을 정확히 꿰차고 있는 토비는
내가 책을 펼치거나 컴퓨터 앞에 앉으면
그제서야 자신만의 게으른 여행을 시작한다
첫 일과는 아침햇살로 샤워 하기
햇볕 눈부신 목을 찾아 빛으로 몸을 씻는다
가만히 쳐다보던 나도 다가가 빛 속에 누웠다
나란히 누운 두 체온이 달궈지고 있다
삶의 어느 지점에서는 늘 이렇게 따뜻한 빛이
비춰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냥 가서 앉아만 있어도 따뜻해지는,
그늘 아래서만 두 눈 똑바로 뜰 줄 알던
나는 빛을 탕진해 온 것일까
여백조차 없는 혼잡한 응달의 배후에만
길들여져 온 것일까
환해진 두 몸이 각자의 그늘을 밝히려
따끈따끈, 드디어 일어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