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섬, 증도 여행기(2)

2016.07.06 06:17

정석곤 조회 수:165

한 알의 밀알, 문준경 전도사

-천사의 섬, 증도 여행기(2)-

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정석곤



이튿날 이른 아침, 화도(花島)를 찾아가 노두길 앞에 다다랐다. 밤새 썰물로 드러난 노두길을 얼른 건너가 작은 꽃섬을 둘러봤다. 문준경 전도사의 복음 전도로 세워졌을 화도교회도 보고, MBC TV 드라마 ‘고맙습니다’ 촬영지의 마루에 앉아 사진을 찍은 뒤 곧바로 나왔다. 그제야 노두길이 잠길까 봐 긴장된 마음이 놓였다. ‘가고 싶은 민박집’에 와 아침을 먹었다. 주인아주머니가 준 선물, 5년 된 증도 산 천일염을 받고, 훈훈한 시골인심에 감사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어제 보고 싶었던 태평염전을 다녀오다 문 전도사의 순교지에서 멈췄다. 면소재지에서 짱뚱어다리로 가는 중간쯤 솔무등공원[松無等公園]에 있다. 잔디밭 한 가운데 봉분이 낮고 대리석으로 두른 직육면체 모양의 묘지였다. 양쪽에 기념비도 서 있었다. 다른 곳에 있는 무덤을 10여 년이 지나고서야 현 위치로 옮겼다고 했다. 문 전도사의 일대기인 ‘천국의 섬’이란 책의 조형물이 순교지라는 점을 알리고 있었다. 그 책의 이름을 붙인 건 잘된 일이다. 여성의 몸으로서 복음을 전파하고 순교한 결실로 현재 마을마다 교회당이 우뚝우뚝 서 있고, 섬 주민의 90% 가 넘게 교회를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섬 지역의 복음 전파 역사와 순교 현장을 보여 주었다. 순교기념관에서 보았던 순교 현장에 섰으니, 절로 옷깃을 여미고 문 전도사의 순교 정신을 되새겨 보았다.

중도리교회가 면소재지에 와서야, 어제 무심코 지나쳤던 면사무소 곁에 있는 걸 알았다. 처음 세워진 교회당과 바로 앞에 크게 다시 세운 교회당, 그리고 뒤쪽으로 현대식 새 교회당과 순교기념관이 있었다. 기념관 전시품은 2013년에 새로 세운 순교기념관으로 옮긴 것 같았다. 문 전도사가 처음 세운 교회당은 전도의 중심지로 삼았을 것이다. 문 전도사의 숱한 발자국과 손때가 묻어있어 가슴이 뭉클했다.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햇볕이랑 무르익어가는 증도의 가을을 자랑했다. 증도에 왔으니 산에 조금이라도 올라 섬 전체를 한눈에 내려다보고 싶었다. 문준경길가에 세워진 ‘상정봉 등산 입구’라는 안내표지판을 따라 올라갔다. 헉헉거리지 않아 좋았다. 해발 200m 되는 산이었다. 증도가 거의 다 보였다. 멀리 크고 작은 섬들이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어제 걸었던 짱둥어다리, 우전해수욕장, 산책로 해송숲이 보였다. 태양염전도 평야의 바둑판 논 같았다. 그런데 신안해저유물 발굴기념비가 있는 전망대가 안 보였다.

꼭대기에서 오른쪽 조금 아래, 큰 바위가 거무스레한 몸을 드러내 놓고 있었다. 그 바위가 바로 문 전도사의 기도처가 아닌가? 앞이 확 트여 순교기념관과 마을이 보였다. 표지석에 빨간 십자가 옆에 ‘부활’이라는 제목의 짧은 글을 하얀색으로 써 놓았다. 문 전도사는 기도 바위를 얼마나 오르내리며 기도를 많이 하셨을까? 바위는 기도 소리를 다 듣고, 흐르는 눈물도 받아주며 함께 기도했을 것이다. 기도가 바위 같은 신앙으로 연단돼 섬 지역 복음전파에 헌신하고, 마지막은 순교로서 삶을 마무리하셨으리라. 아내에게 문 전도사처럼 무릎을 꿇고 기도해 보라고 했다. 억지 춘향이가 된 아내 뒤에서 사진을 찍었다.

문 전도사는 1950년 10월 5일 새벽 2시쯤, 한 알의 밀알로 살다가 많은 열매를 맺고 하늘나라로 갔다. 많은 교회와 사람을 남겼다. 특히 내로라하는 기독교계의 인물을 남겨 자랑스럽다. 증도는 1년간 약 100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오는데, 그 가운데 10만 명은 문준경 전도사 순교기념관을 관람한다고 했다. 이 섬이 천일염과 슬로 시티(Slow city)로 이름난 것도 문 전도사의 열매인 게 틀림없다.

영적인 여성 지도자, 문 전도사를 추모하며 대학 시절의 다짐이 떠올랐다. 대학 때 좋아하던 성경 구절이 요한복음 12장 24절이다. ‘땅에 떨어져 썩은 한 알의 밀알’이 되고 싶어 다짐도 했었다. ‘문 전도사처럼 살 수는 없을까?’ 기도하는 마음으로 문준경길을 뒤로하고 증도를 떠났다.

북서쪽의 이웃 섬인 임자도를 찾아갔다. 지도읍 점암에서 30분 거리다. 연륙교 공사가 한창인 여러 교각을 보았다. 지난 어느 해 가을에 교감단 연수 때 다녀왔던 섬이다. 그래서일까, ‘荏子島’라고 쓴 키가 크고 뚱뚱한 표지석이 나와 먼저 반갑게 맞이했다. 꽃게탕으로 허기진 배를 달래고, 면소재지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교회가 우뚝우뚝 서 있는 걸 보며, 임자도에도 문 전도사가 돌아다녔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박수를 보냈다. 함평나비축제장에서 열리고 있는 국화축제에 가려고 서둘러 임자도를 나왔다.

(2015.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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