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까운 이별

2016.09.15 16:14

김창임 조회 수:38

안타까운 이별

-문우 강양순 수필가님의 명복을 빌며-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김창임



바쁘게 집안일을 하고 있는데 남편이 아주 서글픈 소식을 전해주었다. 신아문예대학 금요반에서 같이 수필을 공부하던 강양순 선생님이 유명을 달리하셨다고 한다. 이게 무슨 날벼락 같은 소리인가? 인명재천人命在天이라지만 어찌 이렇게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단 말인가?

내가 수필창작 금요반에 나간지 반년이 다 되는데 강 선생님은 바로 내 뒤에서 아주 열심히 수필을 공부하시는 분이셨다. 발표도 아주 잘하시고 수필가로서 활동을 열심히 하시며 여름방학특강에도 빠지지 않고 참여하셨다. 지금도 그분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강 선생님의 연세는 80세라는데 얼굴이 너무나 고와서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젊어 보이고 예쁘셨다. 거기다가 강의실에 오실 때는 빈손으로 오시지 않고 날마다 수강생 모두가 나누어 먹을 수 있게 갓 구운 빵을 사들고 오셨다. 강의 날마다 강 선생님의 남편이 문예대학까지 태워다 주시는 걸로 봐서 아마 부부금실도 좋은 것 같아보였다.

교수님께서 미리 내어주신 숙제도 잘 준비해 오셨다. 수업 시작할 때마다 칭찬거리를 발표하도록 하고 있는데, 강 선생님께서는 내세울 것이 없는 우리 부부를 자주 칭찬해주셨다. 그래서인지 수필반에 나가기가 너무나 즐겁고 행복했었다. 칭찬을 들어서 기분 나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더구나 나는 수필을 써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부담을 갖고 수필반에 나갔는데 나에게 자신감을 심어주시어 너무나 기뻤고, 그 일로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열심히 수필을 쓰기로 마음먹기도 했었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나에게 큰 힘을 준 것이다. 그래서 나 역시도 감사한 마음으로 강 선생님에게 덕담을 아끼지 않았었다.

강 선생님의 첫수필집 『은비녀』를 받자마자 전부 읽었다. 너무나 재미가 있고 공감부분이 많아서 여러 번 읽었다. 나도 모성애가 강한 편이어서 나를 희생한 적이 많았다. 그런데 그분의 글을 보니 우리나라와 문화가 다른 머나먼 미국까지 가셔서 손자를 키우시다가 길을 잃고 고통을 겪는 대목을 보고 자녀를 위해 많은 희생을 하시며 사셨음을 알게 되었다.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하시어 몸소 고생을 마다하지 않으신 것을 보고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제2수필집도 내주시면 좋겠다고 말씀도 드렸다. 그랬더니 써놓은 글이 많으니 올 연말에 제2집을 낼 계획이라고 말씀하셨다. 불과 몇 개월을 같이 지냈지만 그분께 전화를 하면 아주 반가워하시고, 나에게 덕담을 아끼지 않으셔서 알게 된 지 얼마 안 된 분이지만 내 마음 한구석에는 조그마한 우정이 싹트고 있었다.

오스카 와일드의 잠언집에 나오는 글처럼, 한 순간에 자신이 알고 있던 사람과 이별해야 하는 일은 매우 슬픈 일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야 친구가 그 자리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늘 함께 했던 이와의 이별은 그것이 일시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늘 우리를 견딜 수 없게 한다. 강 선생님이 쓴 『은비녀』란 수필집의 내용을 보면 그분은 복이 많으신 분 같았다. 강 선생님은 슬하에 2남 1녀를 두어서 잘 기르시고, 손자를 여러 명 두셨고, 남편은 애처가이며 경제적으로 여유 있어 보였다. 또 조금이라도 베풀고 사시려는 강 선생님이 이렇게 갑자기 떠나시니 많은 사람이 서운해 할 것 같다. 나 역시도 이렇게 서운한데 많은 세월을 함께 한 분들은 얼마나 더 서운할까. 특히 남편께서는 너무도 외롭고 서글플 것 같다.

엊그제까지도 제2수필집을 내고자 열심히 글을 쓰셨는데 갑자기 저 세상으로 가시다니, 그 소식을 듣는 순간 너무도 슬프고 정신이 멍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나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그분의 수필들을 다시 읽었다. 고인을 마음속 깊이 생각하면서「멸치볶음」,「욕망에 대해서」,「혈육에 대해서」, 「피해 의식」등을 읽었다. 호랑이가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이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더니 강 선생님은 『은비녀』란 수필집을 당당히 내셨으니 분명히 수필가로서 족적을 세상에 남긴 셈이다. 제2수필집까지 내셨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나를 인정해주는 사람은 왜 이렇게 하느님께서 빨리 부르시는지 알 수가 없다. 2학기가 개강하면 그분의 빈자리를 어떻게 볼까? 그리고 누가 따뜻하고 맛있는 빵을 사오게 될까? 강 선생님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사람은 물질을 나누는 것이나 덕담을 아끼지 말아야 되겠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했다. 그리고 강 선생님의 큰아들이 새로 지었다는 완주군 구이면 평촌리의 멋진 집을 구경할 수 없어서 아쉬운 마음 그지없다.

방학 전에 교수님께서 환하게 미소 짓는 영정사진을 미리 준비하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나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겠지 하면서 살고 있는데 사람의 일은 모를 일이다. 나는 교수님 말씀을 생각하면서 이 기회에 사진 을 한 장 준비해야겠다. 성서에 나오는 지혜로운 처녀처럼 항상 준비하며 살아야 할 것 같다.(마태: 25장 1 – 13)

항상 다정다감하시던 강 선생님께서 부디 하늘나라에서도 좋은 글을 많이 쓰시며 편안하게 쉬시길 기도드린다.

(2016. 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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