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두
2017.09.14 00:39
단편소설
외톨이 몽두
최문항
내가 800여 명의 급식을 담당하는 보급관으로 부임한 첫날 하숙집 아저씨가 장에 나가 돼지 새끼 한 마리를 사서 자전거에 싣고 왔다.
“김 중위님 이놈 잘 키와서 퇴직할 때 보태 쓰시오, 한 일 이년 지내면 큰 돼지로 자랄 끼고 또 새끼도 여럿 되면 나종에 큰 도움이 될끼우다.”
그래서 시작된 것이 양돈 사업이었다. 돼지 하면 삼겹살에 소주! 부터 생각나니 나는 어쩔 수 없는 속물이다. 그러나저러나 이놈을 어떻게 키운단 말인가? 뺀질이 행정병들이야 돼지우리 근처에도 가기 싫어할 텐데 어디 시골에서 돼지 키워본 사람 없을까?
“과장님 돼지 당번으로 아주 제격인 녀석이 한 놈 있습니다.”
“엉~ 그게 누군데? 돼지는 키워봤데?”
“몽두라고 하는 녀석인데 돼지우리에 들어가 있으면 누가 사람이고 누가 돼지인지 잘 구분이 안 될 놈이 하나 부대에 굴러들어왔는데 이놈은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놈입니다. 오죽했으면 선임병들이 하는 짓이 굼뜨고 이상한 짓만 하니까 비몽사몽 간에 꿈속을 헤매고 다닌다고 해서 ‘몽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놈을 구제해주는 셈 치고 과장님이 특별한 임무를 맡겨주면 그놈도 고마워할 겁니다.”
“그럼 불러와 봐!”
얼굴이 검붉고 여드름 같은 종기가 얼굴을 뒤덮은 몽두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다리는 짧고 팔은 길어서 오랑우탄 같고 팽이처럼 깎아 놓은 머리털은 돼지 털같이 뻣뻣한 것이 여러 날 동안 안 씻었는지 냄새가 났다. 머리통이 너무 크고 짧고 두툼한 목이 그냥 몸통에 붙어있어 아주 불안정하게 느껴졌다. 우글쭈글한 얼굴 한가운데 납작한 코가 쳐다보고 있는 내가 오히려 답답하게 느껴졌다. 키는 150 센티미터를 조금 넘긴 것 같아서 어떻게 군에 들어올 수 있었는지 정말 궁금한 녀석이 내 책상 앞에 서 있었다.
“보고 해야지, 그렇게 마냥 서 있을 거냐?” 옆에 선임병이 꽥 소리를 질렀다.
“네 일병 조종수 과장님께 불려 왔습니다.”
조금 전 선임병은 무슨 저능아에 괴물처럼 말했었는데 녀석은 훈련받은 대로 또렷하게 자기 이름을 ‘조종수’라고 큰소리로 외쳤다. 그리고 뭣을 원하느냔 듯이 고개를 바짝 쳐들고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녀석의 눈빛만은 예사롭지 않았다.
“돼지 키워봤나?”
“아닙니다.”
“키워볼 맘은 있나?”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조종수는 마치 잘 훈련 받은 병사처럼 절도 있게 손을 높이 들어 거수경례를 하고는 홱 돌아서서 나가버렸다.
다음날부터 몽두는 부대 뒤쪽 후미진 골짜기에 돼지우리를 짓고 새끼돼지 한 마리를 키우기 시작했다. 몽두는 군대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아무 간섭도 받지 않고 혼자 감당할 수 있는 돼지 사역에 신이 났다. 어찌나 열심을 부리는지 작은 돼지 한 마리를 키우기에는 너무 큰 우리를 짓고 안팎으로 마른 볏짚을 깔아놓았다.
어느 날 하숙집 영감이 부대 안에 들어와 몽두가 지어놓은 돼지우리를 한 바퀴 돌아보고는 자기 돼지도 한두 마리 함께 키워달라면서 가져왔다. 그렇게 시작된 돼지가 몇 달 만에 열댓 마리로 늘어났고 그때마다 몽두는 산에 올라가 통나무를 베어다가 돼지우리를 넓혀나갔다.
“몽두! 힘들지 않나?”
“아닙니다. 이곳이 나에게는 피난처입니다.”
“피난처?”
“네, 과장님이 저를 선택하여 악마의 소굴에서 구출해 주시지 않았다면 저는 매 맞아 죽지 않았다면 저 스스로 목을 맺을 겁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자세히 말해봐.”
“말할 수 없습니다.”
“왜 말할 수 없나? 혹시 선임병들이 괴롭히는 거야?”
“내무반원 모두가 저를 인간으로 보지 않습니다. 돼지라고 부릅니다.”
전방부대생활은 전입 첫날부터 고난의 시작이었다. 내무반에 들어선 몽두가 훈련소에서 배운 대로 전입신고를 힘차게 잘해냈다.
“신고합니다. 이병 조종수 00일부로 00부대 전입을 명받았습니다.”
누구한사람 쳐다보지도 않고 들은 체도 안는데 제일 구석에 앉아서 병기를 닦고 있던 김 병장이 별로 흥미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너 어느 나라 사람이냐?”
“한국 사람입니다.”
“아닌데~ TV에서 보니까 라오스 산중에 사는 원주민이 꼭 너같이 생겼더라고, 다리 짧고 머리통은 되게 커서 걸을 때마다 앞뒤로 휘청거리는 게 꼭 너를 닮았더라고!”
“한국 사람 맞습니다.”
윤창수 일병이 통로에 내려서면서 신고를 다시 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고따위 밖에 할 수 없나? 군기가 몽땅 빠졌잖아 이거! 여기가 네 집 안방인 줄 알아 응~ 차렷 / 열중쉬어 / 앞으로 갈 둥 말 둥 / 앞으로 취침 / 뒤로 취침 / 좌로 굴러 / 우로 굴러 / 원산폭격 / 한강철교”
그날 저녁은 몇 시간이 걸렸는지 기억이 안 날 만큼 모든 종류의 기합을 한꺼번에 받았다.
겨우 한 주를 보낸 어느 날 몽두가 지루하고 힘든 보초를 끝내고 내무반에 들어섰는데 강진경 상병이 불러 세웠다.
“조 이병 보초는 몇 명이 섰나?”
“저 혼자 섰습니다.”
“아닌데, 누구하고 섰지?”
“저 혼자 섰습니다.”
“이 새끼야 내가 똑똑히 봤는데 너하고 네 그림자하고 둘이 섰잖아~ 왜 거짓말해?”
그는 사정없이 내 가슴팍을 두 주먹으로 후려쳤다. 몽두는 꾸겨진 수세미같이 내무반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그들은 마치 교도소 장기수처럼 시간이 흘러가지 않아서 몸부림치며 몽두에게 몹쓸 행패를 부리고 있었다.
어느덧 몇 개월을 고통과 멸시 중에 겨우 버티어 내고 있었다. 밤새도록 내린 눈이 무릎까지 쌓였는데 분대별 야영훈련을 위해 민통선 북쪽 깊숙이 들어간 골짜기에 텐트를 치고 야간 분대 전투 훈련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이날은 몽두에게 평생 잊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9명의 분대원 저녁식사를 만들어 내야 하는 막중한 임무가 말단 조종수에게 떨어졌다. 쌀을 가득채운 다섯 개의 반합을 탄띠에 줄줄이 달고 저 밑 강가에 내려가서 쌀을 잘 씻어 다시 탄띠에 단단히 묶고 지뢰밭 사이로 난 소로를 따라 더듬더듬 기어 올라오다가 눈에 미끄러지면서 한참을 구르다 보니 탄띠에 단단히 묶어 놓았던 쌀이 가득 들어있던 반합이 사방으로 흩어져 버렸다. 겨우 반합 두 개를 찾아 하얀 눈 위에 흩어져버린 쌀을 쓸어 담아봤으나 아홉 명의 저녁으로는 태부족이었다. 다른 반합 세 개는 지뢰밭 한가운데 흩어져 있었는데 그것을 못 찾아가면 아마도 선임병들에게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망설이다가 두텁게 내려 쌓인 눈의 두께를 믿고 지뢰밭 가운데로 기어들어 갔다. 반합 하나를 찾아서 탄띠에 걸고 두 번째 반합을 향해 더 깊숙이 기어들어 가고 있을 때 몽두 뒤쪽에서 “정지, 동작 그만”하는 비명 같은 큰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다보니 김 병장과 곽 상병이 지뢰밭 가운데 있는 좁은 통로에 서있었다. 그들은 더는 몽두에게로 다가서지 못하고 소리만 질러 댔다.
“야 이 새끼야 너 죽으려고 환장했냐? 돌아서서 네 발자국만 밟고 나와!”
“저~ 반합을 못 찾았는데요.”
“반합이고 개나발이고 떠들지 말고 천천히 네 발자국만 밟고 돌아 나오라고 이 새끼야!”
그들의 고함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몽두는 통로를 한참 벗어나 지뢰밭 한가운데 들어와 있었다. 선임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리고 몽두에게 뒤돌아서서 들어갈 때 밟았던 발자국만 조심해서 밟고 나오면 살 수 있다고 설득하고 있었다. 몽두는 어떻게 지뢰밭 한가운데 들어와 서 있는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고참들이 벌벌 떠는 것을 보니 더 겁이 났다. 등골에 식은땀이 고이고 갑자기 대변이 마려워졌다. 하는 수 없이 바지를 내리고 일을 시원스레 보고나니 한결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김 병장이 말한 대로 내가 만들어놓은 선명한 발자국을 따라 통로까지 무사히 탈출했다. 김 병장과 곽 상병은 몽두의 탄띠를 꽉 붙들고 아무 말 없이 천막까지 올라왔다. 몽두는 분대원들이 ‘내 밥 내놔 이 새끼야’하며 집단 구타라도 당 할까 봐 전전 긍긍했었는데 어느 누구도 욕을 한다거나 구타 같은 야만적인 행동은 하지 않았다.
동계 야영훈련이 끝나고 부대에 돌아온 후 몽두에게는 답답한 평온이 찾아왔다. 중대장 면담과 군의관의 형식적인 조사가 있었다.
“조종수 이병! 무슨 고민되는 일이라도 있나?”
“없습니다.”
“왜 지뢰밭에 들어가서 대변까지 봤지?”
“갑자기 X이...”
그 일이 있고 난 뒤부터 부대원들은 몽두를 피해 다녔다. 선임병의 지적대로 몽두는 보이지 않고 그림자만 보이는지 어느 누구도 몽두에게 말을 거는 사람이 없었다. 생긴 모양새 때문에 내무반에서 따돌림을 받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넘어갔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몽두에게 돼지 사역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맡겠으니 몽두로써는 탈출구를 찾은 셈이었다.
그럭저럭 몇 주가 지난 주말 몽두가 궁금해서 돼지우리로 올라갔다. 나를 반겨 맞이하는 몽두가 조금은 이상해 보였다.
“과장님 이제 식구들이 늘어나서 저 자신도 어느 놈이 어느 놈인지 구분을 못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마다 이름표를 달아주기로 했습니다.”
“그래? 꽤 여러 마린데 이름은 뭐라고 지어줬나?”
“제 맘대로 지어 주었어요.”
그러고 보니 돼지우리마다 이상한 이름표가 하나씩 붙어 있었다. 첫 번째 우리에는 “타나”라고 써 붙여놓았다.
“돼지한테 타나라는 멋진 이름을 지어줬네! 혹시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건가?”
조금 우물거리던 몽두가 무슨 큰 비밀을 실토라도 하는 것 같이 힘들게 말문을 열었다.
“제 누이동생이 미국 몬타나로 시집을 갔는데 그 나라는 하늘이 넓고 가을에는 낙엽이 붉고 겨울에는 함박눈이....” 녀석은 말을 잇지 못하고 울먹거렸다.
인천 변두리에 있는 보육원에서 자란 몽두는 미군과 결혼해서 한국을 떠나는 누이동생과 생이별을 했다. 혈육이라고는 하나밖에 없는 누이동생을 머나먼 미국 어느 구석에 있는지 모를 몬타나로 떠나보낸 몽두는 텅 빈 것 같은 보육원에 더 이상 머무를 수가 없었다. 몽두는 보육원에서 나와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닥치는 대로 허드렛일로 연명해갔다. 오랜만에 혹시 누이동생 소식이라도 알아볼 수 있을까 해서 보육원에 들렀는데 그동안 동생으로부터 열통도 넘는 붉고 파란 굵은 줄이 쳐 저 있는 국제 우편 봉투가 와 있었다.
어느 편지에는 말도 안 통하는 이곳이 생지옥 같아서 죽고 싶다고도 했고 또 어떤 편지에는 어마어마한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넓은 초원에 말들이 뛰어놀고 붉은 낙엽이 그냥 좋다고도 했다. 언젠가는 비행기 표를 보낼 터이니 꼭 한번 찾아와야 한다고도 했다. 많은 편지와 함께 병무청에서 보낸 입영통지서가 들어있었다. 그리고 2~3년을 그냥 건축현장에서 일하면서 여기저기 떠돌던 몽두는 마침내 경찰의 불심검문에 걸려들어 논산 훈련소로 잡혀 들어가 훈련을 마치고 이곳 전방부대까지 굴러들어온 것이다.
“몬타나라고 하면 누구나 다 알 테니까 앞에 몬을 빼고 그냥 ”타나“라고 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다음 돼지 이름도 앞글자 빼고, 그래도 알아볼까 봐서 앞하고 뒤를 바꿔서 이름을 지어줬다고 했다. 설명을 듣고 보니 둘째 칸부터는 사사건건 자기를 멸시하고 괴롭히는 선임병들의 이름을 받침을 떼어버리고 앞뒤를 바꿔서 자기만 알아보는 괴상한 이름을 붙여놓았다.
“그거참 잘했군, 그런데 “우서” “지겨” “수차” “우허” “주벼”는 무슨 뜻인가?”
“고참들이 알아채면 날 죽인다고 덤벼들 거예요!”
“우서는 누구 이름이지?”
조금 머뭇거리던 몽두가 “김서웅 병장이요.”라고 했다.
“왜? 몽두에게 뭘 잘못했는데 돼지같이 부르지?”
“제 동생을 양갈보라고 하면서 모욕을 줬거든요. 그래서 나는 그놈을 돼지로 취급하는 거구요... 또 지겨는 강진경 상병인데 저만 보면 아무 이유 없이 큰 주먹으로 닥치는 대로 구타합니다. 그래서 매 맞고 나면 뛰어 올라와서 ‘지겨’ 놈을 발길로 차 주곤 했습니다. 수차는 윤창수 일병인데 불침번 설 때마다 20분씩이나 일찍 깨워서 교대해 달라고 합니다. 불평해봤자 돌아오는 것은 주먹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돼지 중에 제일 못 생긴 놈을 골라서 ‘수차’라고 지어 놓고...”
“그만 됐다. 그렇다고 아무 죄 없는 동물에게 특별한 이름을 지어놓고 화풀이를 하는 것은 좀 비겁하지 않냐? 동물이지만 욕하고 푸대접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
“처음에는 고참들에게 당한대로 돼지우리를 찾아가서 발길질도 하고 몽둥이로 등줄기를 때려 주고 밥도 안 줘보고 좁은 공간에 가두어 놓기도 하면서 화풀이를 해 봤는데 그런다고 뭐 나한테 아무 위로도 안 되고 공연히 돼지들만 고생시키는 것 같아서 요즘에는 그냥 이름가지고 놀리기만 해요 나 혼자서...”
“잘했어, 앞으로는 고참병들하고 잘 지내고 돼지하고도 화해하라고... peace! 알았지!"
“과장님이 저에게 너무 잘해주셔서 다 말씀드렸습니다. 이건 절대 비밀입니다.”
몽두는 걱정이 되는지 여러 번 비밀이라고 말했다.
“과장님! 문제가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문제? 말해 봐”
“지뢰밭에 똥 누고 난 다음부터 어느 누구도 저에게 말을 건네는 사람이 없어요, 간혹 내가 질문을 해도 대답을 안 해 줘요. 그들은 나를 그림자로 보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편한 것 같았는데 점점 무서워지더라고요, 어느 때는 나 자신이 정말 살아 움직이고 있는지 아니면 혼만 허우적거리고 돌아다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도 과장님이 저를 불러서 일거리도 주고 말도 붙여주고... 이제는 괜찮아요, 돼지들하고 놀면 되니까요.”
“그래! 말 상대가 없으면 언제든지 행정반으로 날 찾아오라고.”
그러던 어느 날 몽두가 사라져 버렸다.
“어젯밤에 몽두가 무슨 편지를 받아들고는 내무반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서 쿨쩍쿨쩍 울고 있었다.” 는 보고를 동료 병사 중 한 명이 행정반에 찾아와서 보고하고 갔다.
온 부대 내를 다 뒤지고 인근 마을로 찾아다녔지만 몽두는 없었다. 탈영병으로 신고한다는 행정병의 안달을 잠시 뒤로 미루고 4과 전원이 몽두를 찾아 나섰지만 허사였다. 찾기를 포기하고 “조정수 이병 탈영” 보고서를 올려버렸다.
다음날 몽두 대신 돼지우리로 올라갔던 병사가 따듯한 양지에 누어서 무슨 노래인지 흥얼거리고 있는 몽두를 발견하고 행정반까지 끌고 내려왔다.
“어제는 어디에 있었나?”
“산에 나무 하러 갔다가 그만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편지를 받고 울었다던데 무슨 일이 있었나?”
“몬타나에 한번 가 봤으면 좋겠습니다.”
“뭐? 몬타나?”
“네, 동생이 저를 보고 싶어 죽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죽기 전에 꼭 한번 봤으면 좋...”
쿨적 거리며 주먹으로 얼굴을 문지르더니 우는지 아니면 히죽이 웃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돌아나갔다.
800여 명이 먹고 버린 짬밥은 몽두가 자기 돼지들을 먹이고도 남아 부대 밖에서 돼지 키우는 집에도 나누어주었다. 물론 하숙집 아저씨가 처음 내게 애 돼지 한 마리를 상납한 대가겠지만, 부대 내의 음식쓰레기 처치문제도 해결되는 누이 매부 다 좋은 일이었다.
양돈 사업이 번창하면서 병사들의 사기를 높여주기 위해 매월 네 번째 토요일에 돼지 한 마리를 잡아서 그달에 생일이 들어있는 병사들을 모아놓고 생일잔치를 열어주기로 하였다.
이번 달 생일 축하 파티 식탁에 올라올 첫 희생 제물은 ‘타나’로 정해졌다. 병사 중에 사회에서 돼지를 잡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과 중국집에서 돼지고기 요리를 만들어본 사람을 선발해놓고 우선 몽두에게 ‘타나’를 끌어내도록 했다.
“타나는 절대로 안돼!...”
돼지를 끌어 내기위해 우리까지 올라간 병사들이 몽두의 반대에 부딪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몽두는 절대로 내어 줄 수 없다고 하면서 우리 안에 들어가 타나를 끌어안고 결사항쟁을 버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지능이 모자란 어리석은 병사의 응석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자못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몽두의 입에서는 마치 맹수에게 물어뜯기면서도 어린 새끼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어미의 처절한 신음 같은 것이 뿜어 나오고 있었다. 몽두는 타나 대신에 차라리 자기를 죽이라고 대들기까지 했다. 하는 수 없이 두 번째 칸에 있는 “우서”를 끌어냈다.
돼지를 도살해본 경험이 있는 몇몇 병사가 앞 뒷다리를 밧줄로 잘 묶어놓고 긴 통나무를 “우서” 다리 사이로 찔러 넣었다. 그리고 조금 짧은 나무를 앞다리 밑으로 집어넣어서 마치 십자가 형틀처럼 묶은 다음 네 명의 병사들이 어깨에 둘러메고 언덕 위로 올라가 넓은 바위에 올려놓았다. 덩치 큰 병사가 엄청난 크기의 해머를 둘러메고 바위에 올라서더니 순식간에 돼지 정수리를 사정없이 내리찍었다. 돼지는 자신이 질러 댈 수 있는 최고의 비명을 길게 길게 지르면서 세상을 하직했다. 그들이 능숙한 솜씨로 두꺼운 목덜미를 따는 순간 아직 멈추지 않은 심장의 박동에 따라 뜨거운 피가 벌컥벌컥 양동이에 쏟아져 내렸다.
목욕탕에서는 요리 조에 편성돼있는 병사들이 축 늘어진 “우서”위에 뜨거운 물을 부어가며 털을 깎고 머리 부분을 떼어내고 앞다리 뒷다리 그리고 배 부분을 정밀하게 분리해내고는 다시 부위별로 한 덩어리씩 베어내 신문지에 포장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돼지 한 마리를 잡는다고 해서 간단하게 생각했었는데 목덜미 고기 등심 안심 갈비뼈 내장 등등 분리해 내놓은 고깃덩어리를 그 넓은 목욕탕 바닥에 즐비하게 늘어놓았다. 덜미 고기는 부 사단장님 몫이고 안심은 참모장, 갈비 한 짝은 헌병 대장, 남은 갈비 한 짝은 포 사령관 등등 부위별로 상납할 곳이 다 정해져 있었다. 그런데 엉뚱한 곳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정작 돼지를 잡은 교육대장께는 돼지머리에서 잘 분리해낸 두부같이 생긴 골을 깨끗한 그릇에 담아 올려야 하는데 갑자기 작업하던 병사가 맨손으로 한 웅큼을 집어 입에 넣고 꿀꺽 삼켜버린 것이었다. 모든 작업을 진두지휘하던 오 중사가 새파랗게 질려서 그 병사를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마치 목구멍을 넘어간 돼지 골을 다시 토해내기라도 하라는 듯이 주먹으로 놈의 가슴팍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 병사는 매를 맞으면서도 얼굴에 회심의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마치 표범이 사슴 한 마리를 죽을힘을 다해 쫓아가서 겨우 잡아놓고 헉헉거리며 숨을 고르고 있을 때 어느 구석에서 기어 나왔는지 침을 질질 흘리면서 덤벼드는 들개 떼 같이 높은 분들 운전병이 몰려들어 다 집어가고 남은 것은 비곗덩어리와 뼈다귀뿐이었다.
어찌 되었든 간에 생일을 맞은 병사들은 생일상에 올라온 뿌연 이동 막걸리에 허이연 비곗국 한 사발씩을 받아놓고 목청을 높여 유행가를 불러가며 4과장이 차려 준 잔칫상을 즐기고 있었다.
잔치가 끝난 다음 날 몽두는 내 앞으로 간결한 편지 한 통을 남기고 어디론지 사라져 버렸다.
“내가 정성껏 기른 돼지를 잡아먹으며 시시덕거리는 병사들이 싫어서 무작정 근무지를 이탈합니다. 누이동생이 있는 몬타나까지 걸어서라도 가고 싶지만... 그리고 이런 끔찍한 일을 매달 당해 낼 자신이 없습니다.”
일주일 후 몽두의 싸늘한 시체는 부대 앞산 동굴 깊숙한 곳에서 발견되었다.
(文)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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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yongsang
2018.08.19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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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작가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마치 제가 현장에 있는 것처럼 몽두의 모습이 오버랩 됩니다. 그가 왜 결국 목숨을 끊어야 했는지...돼지 잡아먹은 그 인간들은 모를 겁니다. 오래 전 제가 월남 있을 때 병사들이 山개를 올가미로 잡아 철봉에 매달아 패 죽여서 개장국 끓여 먹는 걸 지켜보며 하마터면 그 고참병을 M16으로 쏴 죽일 뻔 했던 일이 생각나네요. 암튼...소설 단숨에 읽고 외람된 댓글 답니다. 건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