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 Morning

2012.01.17 05:24

최문항 조회 수:368 추천:48

GOOD MORNING
                                                                최 문 항 집사
  새벽기도를 마치고 나면 꼭 들리는 곳이 있다. 교회 근처에 있는 칼스 주니어 식당이다.
  오늘같이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새벽이면 밤새도록 처마 밑에 웅크리고 앉아 비를 피하던 홈래스피플들이 식당 문이 열리기만 초조하게 기다린다. 앞문이 열리고 막아 놓았던 쓰레기통이 옆으로 치워지면 이들은 힐끔힐끔 안을 들여다보면서 조심스럽게 하나 둘 안으로 들어와서 우선 화장실부터 다녀온다. 그들은 구석 자리를 찾아서 띄엄띄엄 앉아 있다.
  나는 커피와 싸워도우 캄보를 시켜놓고 그들 중에 깡마른 영감에게 눈인사를 보낸다. 그는 무슨 책을 열심히 읽는 체 하면서도 답례를 보낸다. 내가 케찹을 가지러 가는 척하면서 그의 곁을 지나갔다. 그의 눈길이 나를 쫓아오고 있다.
  돌아오면서 그에게 "하이"하고 말을 걸었다. 그도 그냥 "하이"라고 대답한다.
  "책을 읽고 있군요, 무슨 내용 입니까?"
  그는 책을 불쑥 내 앞으로 내밀면서 제목을 보여 준다. 내용은 알 수 없으나 반라의 여자 그림이 있는 것으로 봐 그저 그렇고 그런 삼류소설 같아 보인다.
  "재미있는 책 같은데!"
  "그냥 시간 죽이느라고 들고 다니지 뭐."
  "어떻게 아침 커피는 마셨소?"
  "아직 뭐."
  그가 대답을 얼버무리는 것은 한잔 사주면 마셔 줄 용의가 있다는 아주 완만한 요청인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이때 만약 그의 자존심을 조금이라도 건드리는 서툰 말이나 표정을 짓게 되면 단호히 거절당하기에 십상인 것이다.
  내 메뉴와 똑같은 싸이즈의 커피와 싸워도우 캄보를 주문하고 번호표를 그의 탁자 위에 놓아주고 내 자리로 돌아온다.
  주문한 음식을 식당 종업원이 그에게 가져다준다. 그가 커피잔을 치켜들고 내게 미소를 보낸다. 한두 자리 떨어져 앉은 일행이 부러운 듯이 그를 바라본다.
  내가 식사를 다 끝내고 그의 옆자리에 가 앉으면서 조금 큰 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옷이 젖은 것 같은데 어젯밤에 어디서 잤소?"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것 같이 옆자리에 앉은 여인이 말을 가로 cos다.
  "보면 모르겠소? 요 바깥 처마 밑에 서서 밤을 지새웠는데 어찌나 비바람이 후려치던지 옷이 몽땅 젖어 버렸다우."
  "그러면 매일 밤을 이곳에서 보냅니까?"
  "그게 재수 좋은 날은 요 밑 동네에 있는 천주교 대피소에 들어갈 때도 있는데 요즘같이 춥고 비가 올 때는 우리 차례까지 오기나 합니까?"
  그 여자 옆에 있는 조금 젊은 친구가 대답한다.
  "그럼 두 분도 아직 커피를 못 드셨겠군요?"
  내가 일어서면서 그들에게 물었다.
  이런 때는 여자가 오히려 용감하게 나오는 법이다.
  "아 글쎄 조금 전에 나간 그 양복쟁이 말이야! 날보고 '굳 모닝'하지 않겠소! 이렇게 비 맞은 쌩 쥐 꼴에 뱃속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나는 판에 굳모닝 좋아하네, 선생, 내시는 김에 커피 한잔만 더 사시구려, 사실 저 사람 이름도 모르지만 어제저녁부터 물 한 모금도 못 마셨다우, 밤새도록 우리하구 쭉 같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여기 들어와 있어도 뭐라고 안 해요? 저 사람들이"
  "뚱뚱한 멕시칸여자가 아침에 있을 때는 별일 없이 드나들 수 있는데 깡마른 Jack이 있으면 아주 복잡해 진다구요. 그땐 우리 중에 한 사람이 커피 한잔을 주문하는 거지 뭐! 그래도 Jack은 무조건 우리를 싫어하거든, 오늘은 다행히 Rosa(뚱뚱한 여자)가 있으니 안심이라구요."
  내가 먹은 똑같은 음식으로 집 없는 천사 네 명에게 따뜻한 아침 식사를 대접하고 밝아오는 아침을 맞이한다. 굿모닝 나의 천사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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