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 이야기2 ( " )

2010.03.16 04:13

최문항 조회 수:1057 추천:127


                              연이 이야기 2

                                                                                                                                                                                                                    최 문 항
  연이가 1995년생이니까 벌써 열다섯 살이 다 됐다. 개에게 일 년은 사람나이로는 7년 정도로 계산한다니 따지고 보면 백살이 넘은 셈이다. 처음에는 사납기는 해도 영특하여 주인 말 잘 듣고 사냥도 잘한다고 해서 무슨 특별한 개인 줄 알고 남에게 늘 자랑하고 다녔다. 저녁에 산책하러 나가면 오가는 다른 집 개를 보고 사납게 덤벼들곤 해서 곤욕을 치렀는데 이제 나이가 들고 보니 그런대로 양순해진 것 같다.
  뒷마당에 나가 화초에 물을 주고 있는데 연이의 행동이 좀 이상 해보였다. 몸에 물 튀는 것을 아주 싫어하는 연이는 내가 수도꼭지를 만지는 것만 봐도 질색을 하고 후다닥 자기 집 안으로 숨곤 했는데 웬일인지 오늘은 댓돌 위에서 상체만 일으키고 멍청한 눈길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연이 쪽을 향해 물을 뿌렸다. 그때서야 마지못해 일어나서 어슬렁어슬렁 뒤쪽에 있는 자기 집으로 기어들어갔다. 그런데 연이가 왼쪽 앞다리를 조금 찔뚝거리는 것같았다. 공원이나 숲으로 산책 나갔다가 간혹 연이 발바닥에 별사탕처럼 생긴 덤불 가시가 배겨서 질뚝거리면서 아프다고 낑낑거리면 발바닥을 손으로 훑어 가시를 빼주곤 했다. 혹시 발바닥에 무엇이 박혀서 그런가 하고 개집 깊숙이 머리를 처 박고 있는 놈을 겨우 불러내서 발바닥을 손으로 잘 만져 봐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 후 며칠 동안 연이는 아주 불편한 몸짓으로 움직였다. 가축병원에 가서 프레드니솔론 주사를 직접 왼쪽 앞다리 관절에 맞고서야 제대로 걸을 수가 있게 되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연이가 밤마다 너무 시끄럽게 짖어댄다고 옆집에서 불평이 대단했는데 요즈음은 내가 들어도 별로 시끄러운 줄을 모르겠다. 글쎄 우리 연이가 점잖아진 것일까? 아니 무슨 개가 학교를 다녀서 배운 것이 많아 교양을 쌓은 것도 아니고, 주변 분들의 불평 때문에 조심하는 것은 더욱 아닐 텐데 어쩐 일일까? 나이가 들고 보니 세상만사가 다 귀찮아진 걸까 아니면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고 근무에 태만해 진 걸까?
  모처럼 따듯한 오후에 연이를 시원하게 씻겨주고 털을 매끈하게 빗질해주면서 늘 하던 대로 얼굴을 마주 대고 코에다 입김을 불어주고 눈길을 서로 맞춰가며 놀고 있었다. 연이의 하는 짓이 어딘지 모르게 부자연스럽다. 오늘은 유난스럽게 내 손에 잡힌 앞발을 자꾸 빼고 달아나려고 한다. 입을 크게 벌리고 손가락으로 앞니부터 어금니까지 살살 흔들어봤다. 치아는 아직 튼튼했다. 귓속을 덮은 털을 저 치고 자세히 안을 들여다봤다. 귀 주변과 머리털 속에 틱택같은 벌레들이 붙어 기생하는 것이 있나 일일이 만져봤다. 아무것도 없었다. 저만치 뛰어갔다 돌아오는 모습이 평소에 보던 날렵한 모습이 아니다. 다시 연이를 불러서 앞다리부터 몸통 배 뒷다리 꼬리까지 쓰다듬어 주면서 훑어 봐도 아무 이상이 없다.
  부엌에서 우리를 물끄러미 내다보고 있던 아내가 한마디 한다.
  “연이는 참 좋겠다. 나이가 들어도 옛날 자태가 하나도 변함이 없으니 말이야!”
  나는 저 여자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아니 지금 앞다리에 테니스 앨버 통증이 생겨서 병원에 왔다 갔다 하는 것 뻔히 알면서 저런 소릴 해?…-
  “오늘 신문에 난 유명가수 자살 사건도 너무 많이 성형 수술을 해서 인조인간이라고 컴퓨터에 놀리는 글이 올라오고, 그것 때문에 우울증이 심해지고, 끝내는 자살까지 했으니 이 일을 어찌해야 옳단 말이우. 허기는 뭐 요즈음 TV에 나오는 K 여배우 얼굴 보니까 참 안 됐더라구요, 환갑을 훨씬 넘긴 나이에 얼굴을 너무 밀고 땅겨놔서 통 누군지 알 수가 없더라니까 글쎄! 늙으면 늙은 대로 아름다움이 있는 건데...”
  아내는 무슨 대단한 일이 벌어진 것처럼 혀까지 끌끌 차면서 이야기했다.
  “그래서 요즈음은 천국 들어가는 길목이 꽉 막혔데 잔아!”
  내가 슬쩍 연말 동창회에서 들은 농담을 건넸다.
  "쿡쿡! 맞았어요. 글쎄! 주민등록증 사진하고 얼굴이 다르니 통과 심사하는 천사들이 일일이 확인 대조하느라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했지요?”
  그러고 보니 연이가 두 살 때 진도견 품평회에서 “미 견(미스 진돗개)”으로 뽑혔던 생각이 났다.
얼른 이 층 내방으로 뛰어올라가서 10년 전 품평회 때 연이와 찍은 사진을 들고 내려와서 그때 모습과 지금 연이 모습을 비교해보았다. 얼굴이 그때보다 조금 넓어 보이는 것 말고는 오뚝한 귀, 반듯한 어깨, 쭉 뻗은 늘씬한 허리, 쏙 들어간 배, 낚싯바늘처럼 반쯤 휜 꼬리하며 두 살 때 모습 그대로였다.
  다시 연이를 쓰다듬어 주면서 서로 눈길을 마주했다. 연이가 눈길을 돌리고 앞발을 빼려고 버둥거린다. 무엇이 불편하고 자신이 없는 걸까? 이제 서서히 육신이 노화돼가고 있는데 연이는 우리 인간들처럼 외모에는 관심이 전혀 없는 걸까?
  그것은 절대로 아니다. 가을, 겨울에는 긴 털옷을 입었다가 봄, 여름에는 아주 짧은 옷으로 털갈이를 한다. 목욕 후에는 이 구석 저 구석을 입으로 빨면서 제 모습을 정성들여 가꾼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면 우선 앞다리를 길게 뻗으면서 기지개를 켠다. 자세히 살펴보면 앞다리를 최대한도로 내밀고 몸을 바짝 낮추어서 앞다리를 눌러 주면서 발가락도 최대한도로 쫙 벌려준다. 이와 동시에 입을 크게 벌리고 긴 하품을 한다. 마치 밤새도록 폐 속에 쌓였던 탄산가스를 일순간에 토해 내는 것 같다. 다시 몸을 뒤쪽으로 밀면서 잠깐 동안에 전신을 긴장 이완시키면서 아침운동을 한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공연히 수영장 주변과 앞 뒷마당을 쉴 새 없이 몇 바퀴씩 뛰어다닌다.
  연이의 운동하는 모습은 마치 학창시절에 잠시 기웃거렸던 중국무술 준비 운동과 많이 닮았다. 그때 사범님의 말씀대로 용이 승천하는 모습이나 호랑이가 앞발을 움직여 공격하는 모습, 표범이 나무에 오르는 발놀림, 뱀이 몸을 도사리는 모습, 학이 외다리로 서서 몸의 균형을 잡고 멀리 내다보는 동작 등을 옛날 중국사람들이 잘 관찰하여 기본자세로 발전시켜 무술로 연마했다고 배웠다.
  연이는 절대 과식 않는다. 이틀 정도 어디를 다녀오느라고 많은 양의 개밥과 물을 주고 가도 자기 먹을 양만 먹고 고스라니 남겨 놓는다. 어쩌면 이런 식습관이 몸매를 잘 유지하는 비법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다시 연이 눈을 들여다보다가 연이 왼쪽 눈 검은 동자가 반쯤 뿌옇게 흐려있는 것이 보였다.
  ‘개에게도 백내장이 생기는 걸까?’
  아이들이 하나 둘 집을 떠나 버리고 난 후 모든 정을 연이에게 쏟고있는 내 속을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내게 깡충거리며 다가오는 연이는 언제까지나 두 살배기 귀염둥이였는데……. 벌써 열다섯 해가 지나갔으니 얼마나 더 내 곁을 지켜 줄 수 있을까?
  비만과 현대병(고혈압, 심장병, 당뇨, 각종 부인병)에 대한 의사들의 처방은 한결같이 절식과 운동이다. 비록 나이가 들어 내장 기능이 저하되고 힘은 약해졌어도 두 살 때의 외모를 유지하고 있는 연이에게 우리 부인네들은 무엇인가를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 다음 주말에는 백베이 가축병원에 가서 연이 시력검사를 해 봐야겠다.                                                    (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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