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행복하다

2010.07.08 08:00

최문항 조회 수:981 추천:116

                              


                              우리는 행복하다



                                                          최 문 항 (16회)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여러 번 찾았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십 오륙 년 전 대 지진이 남가주 Northridge 일대를 강타하던 날 아침 Yosemite Village 부근 캠프장에서 우왕좌왕 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는데 이번 용산산악회 캠핑과 산행으로 모든 것을 만회하는 즐거운 여행이 되었다.
   구룹캠핑도 즐거웠고 수술 후 Vernal Fall과 Nevada Fall을 완주했다는 것도 나의 등산 기록 중 기억에 남을 만한 쾌거였다. 아침 일찍 캠프장에 모여서 조를 셋으로 나누고 각 조별로 조장을 정하고 공략 해야 할 목표지점이 정해졌다. 인원점검과 안전교육을 끝낸 우리는 마치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나서는 용사들같이 장비를 잘 갖추고 대형버스에 올랐다. 꼬불꼬불 산길을 돌아내려 온 버스는 우리 일행을 Curry Village에 내려놓고 어디론지 사라져버렸다. A조의 꼬마들은 마치 소풍가는 듯 조잘거리며 조장을 따랐고 B조에 속한 나는 사뮛 긴장된 몸짓으로 인도자를 따라나섰다. 셔틀버스로 입구까지 간다더니 남의 텐트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나와 걷기시작 했다. 한참 동안 평지를 걷던 일행은 느닷없이 나타난 가파른 산길로 접어들었다.
   선두를 놓치지 않겠다고 그렇게 다짐했는데도 뒤처지기 시작한다. 벌써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일행은 모두 내 시야에서 멀어져가고 있었다. 얼마를 걸었을까? 저 앞 다리 근처에 나를 기다리는 일행과 다시 합류했다. 한참을 올라가니 갑자기 물소리가 들리고 일행의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한다. 첫 번째 목적지인 317 피트 높이의 웅장한 Vernal Fall이 눈앞에 나타났다. 어떻게 저렇게 많은 물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려올까? 깍어지른 절벽 사이로 돌층계를 따라 올라갔다. 폭포는 물안개를 날리면서 우리 일행을 반겨주었다. Emerald Pool 근처에서 Blueberry 말린 것으로 허기를 달래며 휴식을 취했다.
   장비를 추슬러 산길을 돌고 돌아 다음 목표를 향해 걸었다. 조금 지친 듯도 하여 조장의 발자국을 밟으며 무심히 발걸음을 옮겨놓는다. 다시 끝없는 돌계단이 앞을 가로 막아선다. 꽤 먼 거리에 Vernal Fall의 두 배는 족히 될 만한 폭포가 눈에 들어온다. 까마득히 높은 곳에서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가 바위에 부딫쳐서 수천 수 만개의 물방울로 부서지면서 울부짖는 아우성은 계곡주변에 둘러서 있는 바위산을 울리고 다시 계곡 속으로 몰려들면서 천지와 내 귀를 후려쳤다 세상소리는 점점 스러져가고 내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말소리는 마치 멀리서 울려오는 음악 소리 마냥 앵앵거린다.
   어느덧 주변을 뒤덮은 안개비는 우리를 신비의 세계로 이끌고 들어간다. 기어오르던 계단 모퉁이 바위틈에 이름 모를 빨간 꽃 몇 송이가 오들오들 떨고 있다. 턱에 차오른 숨을 고르려고 그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 세상 모든 걱정거리를 한꺼번에 저 폭포 밑으로 던져버리고 싶다. 발밑에 선명한 일곱 색 무지개가 펼쳐진다. 누군가 나를 무지개 정 가운데로 밀어올린다. 그곳은 구분이 잘 안 되는 노랑계통의 일곱 색으로 치장되어있고 나의 마음이 따뜻해지고 즐겁고 행복마저 느껴진다, 바람결에 노랑 무지개가 깃발처럼 흔들리며 음울한 함성이 들리는 것 같다, 집단지성과 법으로 치장된 어려운 논리 때문에 우리도 못 알아듣고 말하는 사람도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는 혼돈 속에서 곧추서 보려고 무던히 애쓰던 무리의 뒷모습에는 촛농 얼룩에 비춰진 허욕과 변절, 불신 질투의 누렇게 퇴색된 구정물이 왈칵 쏟아져 내린다.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594피트 아래까지 자유 활강할 수 있도록 아무런 제재 방벽이 없다. 갑자기 절벽 밑으로 뛰어내리기 싶어진다. 한발두발 뒷거름으로 물러서는 나에게 노랑머리 아가씨가 미소 띤 얼굴로 조그만 카메라를 내밀며 '프리즈~'한다. 웅장한 폭포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준다.
   왼쪽으로 밀려와서일까? 이제는 붉은색 무지개다. 정열, 강인함, 튼튼하고 오래 참아내는 힘과, 알맞게 조절만 할 수 있다면 자기의 욕심도 꾹 눌러 버릴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어서 한참 드려다 보고 있노라면 성스럽기까지 한 색 그래서 끝내는 흥분하고야 마는 마력을 가진 색을 북쪽이 선점하고 군중을 몰아치고 선동하는데 지겹도록 써먹었으니 이젠 붉은 악마들에게 곱게 돌려주시구려! 남아프리카 월드컵 축구경기 때 힘차게 응원이나 할 수 있도록....
   다시 무지개의 다른 끝자락을 당겨볼 심산으로 오른쪽 절벽 끝 부분으로 달려간다, 이번에는 보라색 무지개다. 원래 보, 남, 파, 초, 노, 주, 빨, 일곱 색일 터인데 왜 색깔들이 뭉뚱그려져 보일까? 혹시 백내장 수술 후유증은 아닐까? 내 눈에는 마치 흑백 사진의 감도같이 보라색을 띤 일곱 가지 색이 보인다. 보라색! 자주장사 루디아! 위엄과 권위 부유와 숭고함을 이 높은 산 정상에서 무지개로 만나다니 왜 나의 인생 여정 속에서 보라색은 입어보지 못했을까? 귀족이나 가진자들의 전유물이니 무절제와 탐욕의 덩어리인 나 같은 존재에게 가당치도 않은 색깔임이 분명하다. 욕심 낼만한 것을 찾아야지! 갑자기 내 모습이 초라해 보인다.
   언제부턴가 굉음은 종달새의 지저귐같이 다정하게 내 귓전을 간질이고 천근같이 무겁던 다리는 마치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이 가뿐해진다. 저 손잡이가 끝나는 돌계단을 지나 올라가면 아마도 천국으로 연결되는 황금 문이 나타나지 않을까?
   폭포 정상은 평온하고 따뜻하다. 오른 쾌감에 젖어 여기저기 자리를 잡고 휴식을 즐긴다. 편편한 화강암 위에 자리를 펴놓고 노 부회장 내외가 밤을 새워가며 준비해온 팔뚝 굵기의 ‘보리토’에 겨자향기가 물씬 풍기는 노란색 소스를 듬뻑 뿌려서 한입 베어 문다, 천천히 흘러가는 눈 녹은 맑은 물에 발을 담그니 여기가 바로 낙원이다.
   한치의 빈틈도 없는 철저한 준비로 80여 명의 대원들이 조그만 사고나 불편 없이 모두 캠프장으로 돌아왔다. 처음 기획하고 황금연휴에 구룹 캠프 싸이트를 기적같이 준비하고 대형버스로 모셔오고 푸짐한 먹거리와 마실 것들로 화려한 잔치를 베풀어준 집행부에 감사드린다.
   우리는 행복하다, 용산인들은 참 멋쟁이들이다. 특히 한국에서 날아온 21회 동문들이 이번 산행을 멋지고 값있게 빛내주어 감사한다. 후배보다 더 젊고 건강하신 선배님들 모시고 후배들의 어린 아이들까지 삼대가 함께 어울린 너무도 흥겹고 즐거운 캠핑이고 산행이었다.
                                                                   (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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