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16 11:31
어머니 회상 / 이일영
어머니는 1901년 이북 함흥에서 태어나셨고
16세에 가난한 농부(나의 아버지)에게 시집가
나이 50전에 4남 4여를 낳으셨다.
일제 압정, 제2차 세계 대전, 공산 치하, 한국 전쟁(6.25)등
험난한 시기를 겪으면서 우리 8남매를 키우셨다.
보릿 고개(춘궁기)에 당신은 물만 마시면서 우리한테는 보리죽
한 술이라도 더 멕이시려 애쓰셨고,
엄동 설한에는 '아무리 겨울이 길어도 꽃피는 봄이 오게 마련이다'
면서 우리들을 위로해 주셨다.
6.25 때 세째 누님이 심장병으로 저 세상 갔을 때 나는 어머니의
통곡을 보았고, 유일한 이산 가족인 이북의 큰 누님이 그리워
슬퍼하시는 모습 또한 보았다.
나는 이마의 주름살 외에는 한번도 어머니의 젊은 모습을 본 적이
없으며 국민학교 입학식때 애들이 어머니를 '할머니'라고 불러,
다음 날부터는 학교에 혼자 갔다.
거제도 수용소로부터 큰 형님 소식이 왔을 때 어머니는 뛸듯이
기뻐하셨고, 소식을 전해준 우체부 아저씨를 극진히 대접하셨다.
문맹이신데도 특유의 암기력으로 교리문답을 떼신 후,
가톨릭 영세를 받고 가톨릭 신자가 되셨을 때 어머니는 일생 일대
최고의 기쁨을 맛보셨다.
어언 50년전 어머니는 나의 결혼 1년만에 돌아가셨는데, 좀 더 어머니와
오래 살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다.
이제 팔순인 나는 만약 저 세상 가서 어머니를 뵙게 되다면 꼭
손잡고 세계일주 성지 순례를 떠나고 싶다.
Thinking Back, My Mom on Mother's Day / Francisco Lee
After being born in 1901 at Hamheung in North Korea,
My mom(16 years old) married a poor farmer (my dad)
And gave birth to 4 boys and 4 girls before she was 50 years old.
Going through the hardships; Japan Regime, World War II,
Communism and Korean War, she was devoted to all of us.
At the season of spring poverty, with drinking water only for her,
She tried to feed us a little bit more spoon of barley porridge.
In a severe winter, she used to console us with the saying
"Even-though winter lasts so long, flowering spring should come."
I saw her crying when the 3rd elder sister died of heart-attack
At the time of 6.25 (Korean War) and her sadness missing about
The eldest sister in North Korea, the only one who dispersed from the family.
The 7th and the 3rd son, I never again saw my mom's young face
But a lot wrinkles on her forehead.
On the day of my entrance to elementary school, she was called
'Grand-ma' by class-mates. After that I went to school alone.
When mom got the news of the eldest son from Geoje Island(POW)
By the post-man, she was so happy to give him warm hospitality.
It was a most glorious day for her life when the illiterate mom got
The baptism, finishing the course of catechism with her good memory
And became catholic.
Almost 50 years ago, she passed away at 70 years old, one year
After I married. The fact that I and my wife couldn't live with her
For some time pierced deeply into our minds.
Now I'm almost 80 years old, however, if I see mom at heaven,
I'd like to have a pilgrimage to Holy Lands with her and go around the world.
2022.06.16 12:40
2022.06.17 05:57
아이구, 저의 졸시에 공감의 구절 남겨주시어 감동입니다!
고맙습니다! 오연희 선생님!
2022.06.17 17:07
천주교 신자이신 자당님의 강인하시고 인자로우신 모습 눈에 선합니다. 1950년 6월, 민족의 비극 앞에 희생된 시인님의 어린 시절, 그래도 가족과 함께 내려오셨으니 천만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천국에 가시면 꼭 만나시어 성지순례의 꿈 이루어지시길 빕니다. 시인님께 건강과 하느님의 축복과 평화가 늘 함께하시길 진심으로 빕니다. 노을 이만구 드림
2022.06.18 07:07
오랫만애 반가워요! 노을 시인!
좀 더 코로나 풀리면 우리 함 만나요!
I wish you and your family stay well and happy alw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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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손잡고 세계일주 성지순례 함께 하시는 아드님 마음 헤아려보며...
코가 시큰해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