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 하부!’
오정방
고고의 성을 울린 출생일로부터
17일만에 손자가
할배 집으로 첫 나들이를 왔다
키도 커졌고 몸집도 조금 불어났다
배냇머리도 제법 검어졌고
볼에 살도 통통하게 븥었다
오목조목한 이목구비 하며,
작은 주먹손과 깨물어주고 싶은 발
오, 신비스런 창조주의 이 작품
아직 누굴 알아보지도,
듣고 대답하지도 못하지만
마음 속으로 저를 위해 기도하며
손자와 또 한 번 눈을 맞춘다
피가 통한 것일까
전파가 통한 것일까
할배를 쳐다보며 저도 씩 웃는다
그것이 배냇짓인줄 내가 왜 모르랴
오, 사랑스럽고 이 귀여운 내 새끼
- 졸시 ‘17일만의 첫 외출’ 전문
제목만 봐서는 100%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다. 그래도 ‘하이’는
영어로 생각하면 인사말 정도가 아닐까로 짐작할 수 있고
일본말로 ‘예’, 또는 ‘파리’? 정도로 해석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필자가 미국에 살고 있는 것을 아는 독자들은 전자를
택해서 해석할 수 있겠거니와 그럼 ‘하부’는 또 무슨 뜻이란
말인가? 그래서 설명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내겐 지금 3.5살짜리 손자가 있는데 1주일에 두 번씩은 교회에서
만나보게 되지만 보통날은 그렇지 못하여 보고 싶은 마음에 가끔
오후에 전화를 걸어 통화를 한다. 요즘은 전화벨만 울리면 재빨리
달려가 수화기를 든다는데 내가 ‘선식아!’하고 저 이름을 부르면
그의 첫마디는 ‘하이, 하부!’하고 대답한다. ‘하부’는 바로
‘할아버지’의 준말인 것이다.
한글사전에도 없고 문법적으로 맞는 말은 아니지만 어린아이가
‘할아버지’하고 길게 말할 실력이 없어서 ‘아빠’, ‘엄마’
하고 부르듯이 쉽게 부를 수 있도록 며느리가 가르쳐준 말이다.
그러고 보니 딸아이네 외손녀 둘과 아들아이집 손녀 둘도 그렇게
부르며 자라난 기억이 난다.
지금은 손녀들 모두 ‘할아버지’하고 정확히 부르지만 저들마저도
손자의 지금 나이 때에는‘하부’로 부르며 자랐다. 어미가 어떻게
가르치냐에 따라서 아이가 흉내를 내는 것이니 어린아이에게도
평소 존대를 하면 나중에 존대말로 돌아올 수 있으므로 비록 어린
아이라 하더라도 교육상 함부로 하대하여 부를 일은 아닌 것 같다.
위의 시는 손자 선식이가 태어나서 우리 집에 처음 오던 날인
2005년 7월 29일에 쓴 것으로 ‘손자 선식이를 품에 안고’란
부제가 붙어 있는 작품이다. 그 아이가 자라서 이젠 제법 두 나라
말도 하고 재롱도 부리고 전자 장난감도 잘 다루고 있으니 참
기특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모두 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2009. 2. 11>
⊙ 작품장르 : 시와함께하는이야기
오정방
고고의 성을 울린 출생일로부터
17일만에 손자가
할배 집으로 첫 나들이를 왔다
키도 커졌고 몸집도 조금 불어났다
배냇머리도 제법 검어졌고
볼에 살도 통통하게 븥었다
오목조목한 이목구비 하며,
작은 주먹손과 깨물어주고 싶은 발
오, 신비스런 창조주의 이 작품
아직 누굴 알아보지도,
듣고 대답하지도 못하지만
마음 속으로 저를 위해 기도하며
손자와 또 한 번 눈을 맞춘다
피가 통한 것일까
전파가 통한 것일까
할배를 쳐다보며 저도 씩 웃는다
그것이 배냇짓인줄 내가 왜 모르랴
오, 사랑스럽고 이 귀여운 내 새끼
- 졸시 ‘17일만의 첫 외출’ 전문
제목만 봐서는 100%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다. 그래도 ‘하이’는
영어로 생각하면 인사말 정도가 아닐까로 짐작할 수 있고
일본말로 ‘예’, 또는 ‘파리’? 정도로 해석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필자가 미국에 살고 있는 것을 아는 독자들은 전자를
택해서 해석할 수 있겠거니와 그럼 ‘하부’는 또 무슨 뜻이란
말인가? 그래서 설명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내겐 지금 3.5살짜리 손자가 있는데 1주일에 두 번씩은 교회에서
만나보게 되지만 보통날은 그렇지 못하여 보고 싶은 마음에 가끔
오후에 전화를 걸어 통화를 한다. 요즘은 전화벨만 울리면 재빨리
달려가 수화기를 든다는데 내가 ‘선식아!’하고 저 이름을 부르면
그의 첫마디는 ‘하이, 하부!’하고 대답한다. ‘하부’는 바로
‘할아버지’의 준말인 것이다.
한글사전에도 없고 문법적으로 맞는 말은 아니지만 어린아이가
‘할아버지’하고 길게 말할 실력이 없어서 ‘아빠’, ‘엄마’
하고 부르듯이 쉽게 부를 수 있도록 며느리가 가르쳐준 말이다.
그러고 보니 딸아이네 외손녀 둘과 아들아이집 손녀 둘도 그렇게
부르며 자라난 기억이 난다.
지금은 손녀들 모두 ‘할아버지’하고 정확히 부르지만 저들마저도
손자의 지금 나이 때에는‘하부’로 부르며 자랐다. 어미가 어떻게
가르치냐에 따라서 아이가 흉내를 내는 것이니 어린아이에게도
평소 존대를 하면 나중에 존대말로 돌아올 수 있으므로 비록 어린
아이라 하더라도 교육상 함부로 하대하여 부를 일은 아닌 것 같다.
위의 시는 손자 선식이가 태어나서 우리 집에 처음 오던 날인
2005년 7월 29일에 쓴 것으로 ‘손자 선식이를 품에 안고’란
부제가 붙어 있는 작품이다. 그 아이가 자라서 이젠 제법 두 나라
말도 하고 재롱도 부리고 전자 장난감도 잘 다루고 있으니 참
기특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모두 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2009. 2. 11>
⊙ 작품장르 : 시와함께하는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