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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길

2006.12.20 16:43

김길주 조회 수:498 추천:33

눈 길 踏雪野中去 답설야중거 눈 덮인 들판을 걸어 갈 때는 不須胡亂行 불수호란행 부디 난잡하게 걷지 말 것이다 今日我行跡 금일아행적 오늘 내가 간 이 발자취는 遂作後人程 수작후인정 다음 이 길을 가는 이들의 길잡이가 되리니 지난밤에 눈이 많이 왔다. 산행하기로 하여 새벽에 일어나 창을 열어보니 하얀 눈이 수북이 내려서 오늘 산행에 설경을 마음껏 즐길 수 있겠다고 생각 했다.지난여름부터 한북정맥 종주를 해오다 중지한 6구간을 가기로 한곳이여서 설레는 마음으로 행장을 꾸려 나섰다. 전철을 타고 의정부역에서 내리니 같이 가기로 한 일행 일곱 사람이 모두 모였다. 다시 버스를 바꿔 타고 광능내에서 내렸다. 들머리에서 아이젠과 스피치로 완전무장을 하는 동안에도 마음은 들떠 있었다. 일행 모두는 물 만난 고기떼로 변했다. 오늘의 코스는 주로 야산과 같은 얕은 능선 길이여서 겨울눈 산행으로는 너무 알맞았다. 마침 바람 한점 불지 않고 밤에 내린 눈은 온 산천에 이불솜을 갈아 놓은 듯하였고 검푸른 소나무 가지위에 그 대로 쌓여 있는 모습은 마치 X마스 츄리처럼 빛나고 있었다. 일행들 중에는 눈 위를 뛰기도 하고 아예 하늘을 향해 눈 위에 눕기도 하고 소리 지르기도 했다가 맨손으로 눈을 모아 입에 넣기도 하고 아니면 주먹만큼 뭉쳐 눈싸움을 하기도 하는 어린이가 되었다. 아이젠 밑에서 뽀드득 뽀드득하는 소리도 한결 기분을 돋구워 주었다. 이 한겨울의 등산길이 한없이 즐거워서 이 아름다운 산행이 과연 몇 해만인가를 헤아려 보기도 했다. 일행 가운데 누군가는 ‘하얀 눈 위에 구두 발자국...‘으로 시작하는 동요를 부르는 이도 있었다. 모두 동심으로 돌아가는 듯 했다. 나는 발자국 하나 없는 이 눈길을 헤쳐 가면서 “雪中野中去”시와 그리고 어제 게시판에 올라 온 카프카의 “눈 길”이 자꾸 생각났다. 전자는 백범 김구 선생이 즐겨 휘호로 써서 널리 알려지면서 이 시가 서산대사의 시라고 주장하던 사람들이 많더니 요즈음은 또 다른 누구의 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생겨서 자꾸 우리를 혼란 해지게 하지만 하여튼 이 시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불변의 교훈으로 남을만한 선시(禪詩)임에는 틀림이 없다. 요즈음처럼 우리 주변에 자기의 행동을 책임지려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나라야 어찌되건 후세에 끼칠 부끄러움도 생각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많고, 우선 자기의 현재의 영욕만을 고집하는 사람들 때문에 걱정이 많은 세태에서는 더욱이 곱씹어 보고 싶은 시이기도 하다. 눈! 티끌 하나 없는 눈 위를 걸으면서 ‘왜 보통의 사람들은 눈 덮인 길을 걸어가노라면 마음이 차분 해지고 풍만 해 지면서 어린아이의 동심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아! 참으로 눈은 우리 인간의 마음을 원형으로 회복시키는 묘약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래서 겨울이 되면 누구나 눈이 오기를 가다리나 보다. 이 거치론 인간 세상에 사람의 본성이란 순수하고 무구하여서 고결한 심상을 회복하려는 본성으로 회귀하려는 것인지 모른다고 새삼스럽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와 내가 어울려 살면서 그동안의 잘 못 된 행동을 돌아보기도 하고 그러면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고 바르게 살아 평화로워 지려는 인간 본연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모든 사람들은 참으로 소박하고 착하구나. 눈 덥힌 아름다운 산야에 낙서하지 말일이다. 이 시는 말한다. 눈처럼 고운 본성을 더럽히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이 순결한 생각을 따라 카프카도 이어서 노래한다. -눈 길 카프카/ 이만섭 언제부터인가 눈길은 내 등 뒤에 있다 나의 발자국을 따라오다가 내가 선 자리에서 멎는다. 어느 사이 나무들도 따라와서 가지마다 그리움을 점등하며 더 먼 곳까지 추억을 걷게 한다. 그대여, 그대도 나처럼 눈길을 걷는가. 눈꽃 피어있던 자리, 옛 이야기 머물던 곳마다 그대 눈빛 형형하고 지나간 시절이 눈꽃으로 피어나네. 함박눈 맞으며 눈길이 등 뒤에 있네. 밤새도록 눈길을 걷고 싶네. 06.12 내가 사는 길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이 발자국은 눈 위를 걸어 온 것처럼 선명히 나타나있고 그러나 내가 지금부터 가야 할 길은 아무런 좌표도 없는 순수 그 자체로 하얗게 깔려 있다. 그러니 이 길 나는 어떻게 가야하는가. 지금 내가 선 자리에서 나는 다음의 발을 어떻게 딛을 것인가를 가늠해야 한다는 것을 이 시인은 말하고 있지 아니한가. 나무들도 가지마다 지난 추억을 점등하며 먼 미래까지 추억을 걷게 해 주고 있다고 하는 대목은 하나의 단순한 서정으로만 치부하기에는 우리의 젊음은 너무나 싱그럽다. 우리는 새로운 길을 엮어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눈은 내리고 우리 앞에 쌓이고 있다. 그대여 당신도 나처럼 눈길을 걷는가. 그대여 당신도 나처럼 지나 온 발자국을 회상하고 있는가. 그 눈빛 형형한 것처럼 지난 나의 모든 것이 이 맑은 눈빛에 비추어 해맑게 비춰 지는구나. 꽃처럼 아름답게 피어나는구나. 영욕의 내 삶의 자국들 모두를 사랑 해야지.그것은 내가 가야 할 미래의 꿈을 사랑 하는 것이 되리니. 하늘로부터 내리는 하느님의 은총은 함박눈으로 변용하여 풍성히 내리고 있으니 내 그를 맞으며 아무리 어두운 밤이라도 내 걸으리라.이 밤을 지세면서 가리라. 라고 이 시인은 노래하고 있다. 오늘의 눈으로 깔린 산행이 내 마음의 산야에 가득하여 몇 날 며칠을 자리하며 내 모든 마당을 차지 할 것이다. ...기억의 심연 속에 깔려 나를 놓아 주지 않을 것이다. 2006/12/17 원미산과(김길주와)의 만남 if (parent.proxy) { var homeobj = document.getElementById("homeurl"); homeobj.href = parent.proxy+"/k2270kim"; }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