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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누구를 위하여 피는가

2008.07.08 03:12

박영호 조회 수:572 추천:53



『미주시인』 3호에서

꽃은 누구를 위하여 피는가
- 곽상희 시인의 '꽃의 말'을 읽고 -

                        
그대
한사코 사그라지지 않는                                
등불, 그대는 불의 떨기 꽃으로 말한다

나 그대에게 다다르고 싶은데
그대 꽃술 하나하나
내 가슴 끌어안고 싶은데                                

많은 나라 경계선
넘나들며
고통과 연단의 힘으로                                    
저리도 보드라운
그대
겹겹이 숨은 그대                                      
중심에

그대 그토록 살가와
아까운 중심에
내 존재의 의미 펼치리니

              곽상희의 꽃의 말’전문 (2007 미주시인 3호에서)

신이 천지를 창조 하신 참뜻이나 인간을 창조하신 참뜻을 우리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우리가 성경의 말씀을 믿거나, 아니면 각기 나름대로 상상을 하거나 아니면 그럴싸한 논리를 세워 추리할 뿐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신이 창조하신 자연도 그렇고, 자연물 중에서 우리가 아름다움의 한 상징으로 보는 꽃 역시 그 누구를 위해서 피는지 우리는 확실한 해답을 얻을 수는 없다. 다만 신이 우리 인간을 위해서 마련했거나, 아니면 그들 스스로의 생물학적 종족보존의 방법으로 꽃을 피운다는 일반적인 측면만을 이해할 뿐이다.
이러한 꽃을 두고 시인은 결코 꽃의 일반적인 상징성인 아름다움에 대해선 말하지 않는다. 다만 시인은 그 꽃과 자신이라는 상대적 경계를 허물고, 자신의 존재적 가치를 꽃의 존재적 가치로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시인이 말하는 꽃의 말은 바로 시인 자신의 말일 수 있고, 시인이 말하는 바의 꽃의 말은 꽃의 일반적인 가치나 아름다움에 대해선 한 마디의 표현도 없고, 다만 꽃 속에 숨어 있는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는 꽃의 가치를 관념이 아닌, 하나의 감각적인 세계를 통해서 큰 무리 없이 꽃의 의미를 표현하고 있다.
시인이 꽃의 존재적 가치를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나르시시즘적인 여인의 아름다움에 대한 일종의 자기도취나 자기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외형적 아름다움이 아닌, 바로 꽃이 말하는 바의 꽃의 상징성에 대한 흠모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흔히 꽃에 대한 표현은 많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꽃을 상대적이고 객관적 입장에서 보고 표현하기 마련인데, 시인은 이와 달리 나와 꽃이라는 주관과 객관의 경계를 허물고, 꽃과 나를 혼연일체의 세계로 표현하고 있는 점이 이채롭다.
사실 우리가 어떤 사물에 대해서 보다 깊고 정확하게 그 내면의 세계를 살피기 위해서는 우선 그 사물에 대해 남다른 애정이 있어야 하고, 남다른 관심으로 깊이 사색하고 폭 넓게 관조(觀照)할 수 있어야 그 사물과 비로소 혼연일체가 되어, 그 사물의 내밀한 세계나 영혼 등을 꿰뚫어 볼 수 볼 있을 것이다. 더욱이나 그 대상이 시적 대상이라고 하면 더 말할 나위가 없고, 그래야만 그 사물에 신이 감추어 놓은 것 같은 신묘한 뜻이나 그 참된 가치를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시인이 표현하고 있는 꽃의 말은 일반적인 꽃에 대한 상대적인 표현들과는 전혀 색다른 느낌으로 우리에게 표현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작품에서도 먼저 시인은 객관적이고 상대적인 입장에서 꽃을 말하고 있다.
'꽃에 다다르고 싶은데' '내 가슴 끌어안고 싶은데' 의 표현이 그것으로 이는 그가 바로 꽃이고 싶고, 그리고 자신의 존재적 가치를 꽃의 가치로 표현하겠다는
이야기다.

그대
한사코 사그라지지 않는                                
등불, 그대는 불의 떨기 꽃으로 말한다

이처럼 시인은 꽃이라고 하는 개체를 사라지지 않는 등불이라고 말하고, 그 등불을 다시 불의 떨기 꽃으로 설정하고, 그 꽃으로 하여금 그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표현하도록 한다.
다음으로 시인 역시 우선은 꽃에 대해 상대적인 개체로서의 자신의 꽃에 대한 소망을 밝히고 있고, 그것은 불처럼 타오르는 열망으로 꽃을 향해 다가가는 것이고, 그리하여 꽃의 상징인 꽃술에 다다르고, 그래서 내 가슴과 다름없이 같아져 버린 꽃술 하나하나를 끌어안고 싶어한다.
이러한 표현은 꽃이 말하는 의미가 바로 꽃술이라는 단순한 사물로 표현된 것이고, 또 이러한 점은 그가 바로 꽃이고 싶고, 그리고 자신의 존재 의미를 꽃의 의미로 해서, 꽃처럼 피우고 꽃처럼 말하고 싶다는 것이다.

고통과 연단의 힘으로                                
저리도 보드라운
그대
겹겹이 숨은 그대                                      
중심에

그 꽃은 스스로의 삶의 역정(歷程)을 지니고 있고, 이는 바로 시인 자신의 삶이기도 하다. 많은 나라의 경계선은 이민이랄 수 있는 공간적인 배경일 수도 있지만, 여러 형태의 많은 연단과 고통이라는 모든 삶의 경계일 수도 있다. 이러한 삶의 연단으로 빚어지는 것이 바로 꽃의 가치인 그대이고, 그대는 바로 보드랍다는 감각적 상징성으로 앞서 말한 꽃술처럼 다시없이 단순하고 단일한 감각적 언어로 표현 되고 있다. 또한 그런 꽃이 말하는 의미나 가치는 겉으로 나타난 시각적 혹은 감각적 세계가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겹겹이 숨어있는 깊고도 심오한 가치일 수 있고 어쩌면 신이 말하는 시의 말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표현은 무척 단순한 표현 같지만 사실은 상당히 깊이 있게 정제된 표현 방법이라고 할 수 있고, 이러한 점이 이 시의 가치 있는 특색이 되고 있다 할 것이다.

그대 그토록 살가와
아까운 중심에
내 존재의 의미 펼치리니

이제 시인은 꽃의 말을 통해서 그 꽃이 자신과는 살붙이나 다름없이 살가운 존재라는 표현을 통해서, 꽃의 존재와 자신의 존재가 합일 점에 있음을 표현해서, 꽃과 자신의 경계를 완전하게 허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그래서 아깝다는 꽃의 영혼과도 같은 꽃의 중심에 펼치고 싶다는 것이다.
이처럼 꽃의 의미인 꽃의 말을 시인 특유의 손쉬운 언어들의 배합을 통해서 상당히 이지적인 시의 세계를 무리 없는 감각적인 서정시로 펼치고 있는 점이 돋보인다.
더욱이나 시인은 남달리 꽃에 대한 애착과 남다른 관심으로 꽃에 대한 많은 시를 발표하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이 시인을 일컬어 일명 꽃의 시인이라고도 부르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