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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호 서재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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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한인 영문소설에 나타난 민족 혼의 신화적 가치 (2)
- 전통미와 한의 미학 -


<꽃신> 속에 나타난 한국의 한과 전통미에 대한 신화적 표현
-비극적인 사랑을 통한 사랑의 절대성과 영원성 -

김용익은 1960년대에 영문 소설을 통해 우리의 고전적인 전통미와 한의 미학을 아름답게 형상화 하여 우리의 고유한 문화와 문학과 민족 정서를 영문 소설을 통해 세계 각국에 소개하고 한국의 순수 문학의 가치를 세계적으로 빛낸 작가다.
그는 60년대의 한국인 일세 작가로(Korean American Writer) 그의 처녀작 <꽃신>(The Wedding shoes)이 1956년 6월 하퍼스 바자 (harper's Bazarr)에서 발표 되자, 그의 이름이 단번에 미국문단에 알려지게 되었고, 그의 작품이 세계 각국에 소개되는 등 그는 일약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가 되었다. 뉴욕 타임즈는 "그의 문장은 동양인이 구사하는 영어에 깊이 매료된 예술성의 표현" 이라고 소개했고, <워싱턴 포스트지>는 현지 독자들은 그의 문장을 가리켜 "가히 마력적" 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어서 미국 전문 계간 문예지인 시 리뷰 와니 《The Sewanee Review와 뉴요커<The Newyorker>를 비롯 7개의 이름난 전문 월간지와 계간지와  등에 발표되고 유럽 이탈리아 국재잡지 <보태크 오스쿠레 Botteque Oscure> 등 여러 나라서도 번역 되었다.
이로 인해 <꽃신>은 '금년의 가장 아름다운 소설' 이라는 격찬을 받았고, 그의 다른 단편들이 3회에 걸쳐 '이 해의 미국 최우수 단편 소설'<Best American Short Story>로 선정되었다. 또한 그의 중편 『행복의 계절』(The Happy Days)은 미국도서관협회에서 미국 우수 청소년도서로(1960)선정되었고, 또한 그의 단편 <변천>과 <막걸리>는 '미국 최고의 단편'에서 외국인이 쓴 우수 단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또한 유럽 독일 등에서도 국정 교과서에 그의 작품이 다수 수록이 되었고, 작품『푸른 씨앗』(Blue in The Seed 1962)이 역시 청소년 최우수도서상 (독일 도서관협회1965)을 수성했고, 다음 해는 독일의 최우수 도서상을 수상(1966)했으며, 오스트리아에서도 문교성에서 주는 청소년 명예상을 수상(1967)했고, 또한 덴마크에서는 아동 교과서에 수록되었다. 미국 PBS(public Broadcasting Service, Educational)의 cover to Cover 프로그램에 소개(1974년)되기도 했으며, 1969 년에는 김은국과 함께 노벨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또한 그는 미국의 유명한 여러 예술 단체에서 많은 문학 창작 지원금과 여러 곳의 예술인 마을의 거주 지원을 받았고, 그는 사십 년 가까이 미국에 머물면서 여러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강의했고 틈틈이 고국을 오가면서 많은 작품을 발표했는데, 그는 생전에 총 세편의 중편과 32편의 단편을 발표했다. 또한 그는 사후에도 일찍이 생전에 여러 대학에서 강의했던<책을 쓰는 모험>(A Book Writing Ventrue)이 출판되어 미국 초등학교 교과서의 하나인 <adventure for Readers)의 96년 개정판에 수록되었다.
그가 이처럼 이름을 미국문단에 떨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작품은 순 문학적인 가치에 치중된 순수소설 작품들이어서 강용흘이나 박인덕의 소설들과는 달리, 대중보다는 순수 문학인들이나 문학 평론가들에게 보다 많은 관심을 끌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은 그가 바로 순수문학의 꽃이라고 하는 단편소설작가라는 점에서도 그 이유를 찾아볼 수가 있을 것이다.
이처럼 미국 독서계에서 많은 찬사를 받았던 그의 소설  <꽃신>에 대한 가장 많은 찬사는 바로 그의 소설에 나타난 문체에 대한 찬사인데, 단편소설의 외형적인 특색인 우선 간결한 문체상의 특색이 그들에게 차라리 신선한 느낌을 주었을 것이다. 그는 일찍이 일본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미국에 건너와서도 작품을 발표할 때까지 6년 동안을 영어를 공부했고, 실제 수많은 습작을 통해서 영어 소설 문장을 익혔다. 그러나 외국인인 그의 문장은 한계가 있었겠지만, 그런대도 그의 문장은 오히려 현지인들보다고 더 아름답고 감동적이라는 평을 받았다. 우선 그의 문장에 대한 이러한 찬사를 살펴보면 뉴욕 타임즈는 "그의 문장은 동양인이 구사하는 영어에 깊이 매료된 예술성의 표현" 이라고 극찬했고, 워싱턴 포스트지는 "현지 독자들은 그의 문장을 가리켜 가히 마력적이라고 하고 있다."라고 까지 극찬하고 있는 점에서 엿볼 수 있다. 또한 한국 작품을 많이 번역했던 성공회 신부인 리처드 러트 신부가 그의 소설을 읽고, 그 당시 베스트 셀러가 되고 있던 펄벅의 『살아있는 갈대』와 김용익의 『겨울의 사랑』을 비교하는 신문 기고문에서  "펄벅 여사의 유명한 소위 간단한 문체는 때때로 문법적으로 부족하고 흥미를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니고, 효과를 찾을 때는 늘 형용사에 의지한다. 그러나 김교수의 문체는 더 복잡한 성질이며, 재미있는 명사가 풍부하고 동사의 멋진 채용이 있다. 따라서 김교수는 원초적으로 시인이 아닐까?"(조선일보 1964년 2월)라고 표현했던 점과, 서강대 영문학 교수인 존 변브락은 김용익의 문체에 대해서  "김교수는 영문을 한국 고유의 형태로 변모시켜 글을 썼다. 나 같은 미국인에겐 아주 특이한 감! 이 들게 함으로써 오히려 한국적 정취를 풍겨준다. 또 그의 문체는 시적인 운치를 지닌다. 마치 화살과 같이 깨끗하고 예민하게 서술했다."(고려대학 신문 기고문. 1964년 3월)라고 평한 점에서도 그 특색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팔자는 위의 평에서 표현되고 있는  ‘마력적’이나  ‘동양인의 예술성’, 혹은 ‘재미난 명사의 표현’ ‘한국 고유의 형태’ ‘시적 운치’ ‘한국적 정취’ 등은 결국 그가 동양적인 신비와 한국적 운치나 정서가 나타난 문장이 결국 그들에게 보편적인 미적 가치로 전달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은 결국 그의 고국의 문화나 전통에 대한 그의 심미적이고 설화적인 표현과 구성에 의해 그들에게 새로운 신비와 관심을 끌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 이러한 특색이 가장 잘 나타난 그의 꽃신을 통해서 그가 나타내고 있는 보다 극적이고 미학적인 표현 방법과 이로 인해서 어떻게 작품세계가 보다 설화적이고 신화적인 세계로 승화되고 있는가를 밝힌다.  
꽃신은 우선 창작의 동기부터가 극히 설화적이고 탐미적이다. 이러한 점은 작자 자신이 밝힌 그의 작가 노트인 <책을 쓰는 모험>(A Book Writing Venture)에 잘 나타나 있다.

이처럼 <꽃신>의 창작 동기가 작자 자신의 탐미적 세계의 추구에서 나타난 하나의 환상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이 이를 증명하고 있고, 나아가서 이러한 점은 한국의 전통적인 미의 세계까지도 나타나게 되어서 결국 우리의 고유한 전통 문화와 전통적인 민족혼의 세계를 독자들에게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가만히 앉아서 음악을 듣고 눈 오는 것을 보니, 이상한 환상이 나타났다. 눈 속에 한국 꽃신 한 켤레가 나타나더니 자꾸 나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내가 마음 속으로 그 꽃신을 자꾸 따라가면서 그 꽃신 신은 사람의 뒷 모습을 보고, 조그만 조각배 같은 흰 버선 신은 꽃신의 뒤축을 내가 자꾸 따라가고 있었다. 그 비단 꽃신이 먼산을 자꾸자꾸 걸어가고 있는데, 대체 그 신을 신은 여인이 누군가 보고 싶지만, 그 신 신은 아가씨와 그 신은 도무지 돌아서지 않아서 볼 수가 없었다. 그 아름다운 꽃신을 안 놓치려고 애를 쓰며, 그 신발을 자꾸 따라갈 때에 그 좋은 비단신이 눈에 젖을까 봐 걱정이 되어 따라가는 내 가슴이 자꾸 발딱거렸다. ‘
“잡을 수 없는 이 신의 임자를 한 번 볼 수 있다면 내가 진짜 애기를 쓸 수 있겠지.”  <책을 쓰는 모험>( P. 193)

이처럼 그는 우연히 그의 눈에 떠오른 환상적인 아름다운 꽃신의 뒷모습을 보게 되고, 그 꽃신에 대한 환상에 이끌려 가다가 결국, 그가 평생을 두고 찾아 헤매던 탐미적 세계에 대한 상징적인 모습을 그 꽃신에서 찾았었고, 여기에서 떠오른 영감으로 그는 <꽃신>이라는 작품을 단숨에 써내려 가 한달 반 만에 완성을 했다.  따라서 평생을 두고 찾아 헤매던 그 자신의 탐미적 세계가 자연스럽게 작품 <꽃신>으로 형상화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소설은 꽃신이라는 소재를 통해서 자신이 추구하는 자신의 예술적인 탐미적 세계와 함께 꽃신이 상징하고 있는 한국의 전통적 전통미를 형상화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꽃신에 등장하는 남녀 중 상도가 사랑하는 그녀는 바로 꽃신으로 상징되는 꽃신 집 딸이고, 다음으로 백정의 아들인 상두는 그가 환상을 보았던 날 배가 너무 고파 찾아갔던 그 고기 집 주인에게서 영감이 떠올랐으리라는 추리가 가능하다.
사실 위대한 예술가들은 평소에도 늘 남다른 탐미적 세계에 몰두해 있고, 그들이 위대한 예술을 창작할 때는 많은 환상 속에서 영감을 얻는다. 일찍이 <초당>작가 강용흘이 일본에서 돌아오는 선상에서 이름 모를 여인의 아름다움에 취해서 그 환상을 지니고 아름다운 금강산을 여행한 다음, 평생을 두고 그의 탐미적 예술 세계에 그 여인상을 지니고 살았던 경우와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용익도 그의 눈에 비친 꽃신의 그 뒤축의 모습을 보고, 자꾸 멀어져 가는 그 뒷굽을 안타깝게 따라가던 그의 환상이 결국 꽃신으로 형상화 된 것이라고 할 수 있고, 이는 그가 평생을 두고 갈망하던 그의 미의 세계에 대한 갈망과 아름다운 소설창작에 대한 추구가 함께 형상화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다가 환상적인 꽃신이라는 환상적인 한국의 전통미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소재가 더욱 더 토속적이고 설화적인 분위기로 동양의 신비함을 풍기고 있다 할 수 있다.

꽃신의 이야기는 꽃신의 아름다움과 그녀에 대한 환상적인 사랑의 이야기다. 따라서 우리는 이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점을 쉽게 예상할 수 있고, 이 사랑은 결국 비극적인 슬픈 사랑의 이야기로 끝이 난다. 따라서 이룰 수 없는 사랑과 그로 인해 비롯되는 고통과 갈등과 쓰라린 한이 이 소설의 골격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의 주제는 이러한 비극적 사랑에 있지 않고, 소설의 대단원에서 나타나는 화해와 화합을 통한 탐미의 꿈과 사랑의 영원성과 절대성으로 승화되는 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이러한 점이 바로 동양적인 신비와 한국적인 한의 미학으로 전통적인 설화와 신화와도 같은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의 중심 소재인 꽃신은 주인공인 상도에겐 그가 사랑하는 이웃집 처녀이면서 그가 추구하는 탐미의 세계를 상징하고, 신집 사람(꽃신 장인)에게는 이 꽃신이 자신의 딸처럼 자신에겐 가장 소중한 것이고, 장인(匠人)이라는 자신의 신분에 대한 자존심의 상징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소설의 중심인물은 자연 상도와 사랑하는 그녀와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인 신집사람, 이렇게 세 사람이다. 그러나 그녀는 이름조차도 표현되지 않고 그냥 꽃신으로 동일하게 상징되고 있고, 이러한 꽃신을 사이에 둔 상도와 그녀의 아버지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 구조가 이 소설의 중심 축을 이루고 있다.
또한 현재와 과거의 시제를 도치형식으로 구성하여 현재에서 과거로 그리고 다시 과거에서 현재로 이야기가 전환되는 변화를 통해서 소설의 긴장과 불안과 위기가 극적으로 표현되는 점과 함께, 이야기가 사실보다는 좀 더 설화적으로 표현되는 효과를 나타내고 있는 점이 이 소설의 구성상의 특색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이 소설의 가장 큰 가치는 인간의 근원적인 사랑 그것도 비극적인 사랑을 통해서 화해와 화합의 정신이 승화되어 나타나는 사랑의 절대성과 영원성으로 한국적인 한을 슬픔을 미학적으로 아름답게 형상화한 점에 있을 것이다.    
아울러 꽃신이라는 한국의 전통적인 문화의 한 상징일 수 있는 소재를 통해 한국의 문화와 풍습이 소개되고, 그 시대적인 배경을 통해서 그 시대의 신분제도와 함께 근대에서 현대사회로 전환되어가는 사회적 모습이 표현되고 있고, 이를 통한 두 의식의 대결과 그 갈등의 세계가 표현되고 있어서, 결국 이는 하나의 한국적인 미와 그리고 한국적인 혼의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이 바로 이 소설이 지닌 또 하나의 특별한 가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생각해 본적이 없고 다만 그녀가 신은 꽃신을 좋아했다. 그녀는 발이 부르틀까 봐 버선을 신었는데 학교로 가는 좁은 길에서 나는 가끔 그녀보다 뒤져가며 꽃신에 담긴 흰 버선발의 오목한 선과 배모양으로 된 꽃신을 바라 보았다. 그 선은 언제나 낮잠을 자고 있는 느낌을 주었다.'(꽃신 P 15)

'비가 온 다음날 물이 괸 길에서 나는 그녀를 업고 넘어지지 않으려 애썼다. 그녀는 청개구리처럼 등에 꼭 매달렸는데 나는 내 허리 양 켠에서 흔들리는 꽃신을 얼마나 사랑 하였던가’(P. 16)

이처럼 상도는 그녀 자신에 대한 표현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오직 꽃신에만 관심이 있다고 했다. 그것은 그녀가 바로 꽃신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녀의 아름다움은 바로 꽃신의 아름다움이고, 그녀에 대한 사랑은 바로 꽃신에 대한 사랑과 같다. 따라서 소설 그 어디에도 그녀에 대한 직접적인 이름도 없고 구체적인 사랑의 표현이 없다. 이 얼마나 상징적 은근한 동양적 아름다움의 표현 인가.
이러한 점이 바로 환상적인 아름다움이고 설화적이고 신화적인 아름다움 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녀에 대한 그의 사랑은 가슴에 달아올라 불타 오르고 언젠가는 소진되고 마는 정염의 사랑과는 전혀 다른 서슬한 그늘이고 동양적인 은근미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다. 그래서 서양인들에게는 그들과 전혀 또 다른 동양적 신비함과 환상적인 사랑으로 영원성을 느끼게 하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었을 것이다.
결국 이러한 점이 설화적이라는 것이고, 외국인들에게는 그늘과 같은 아름다움과 심산의 구름처럼 신비하게 느껴졌으리라는 것이다. 특히 동양적인 한국여인의 한과 고통의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버선의 선의 아름다운 표현과, 그 선의 느낌을 평화로움의 상징인 낮잠을 자고 있는 느낌이라고 하는 표현은 가히 절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사실적인 세계보다 이처럼 더 상징적이고 탐미적으로 승화되어 있는 표현이 바로 보다 설화적이고  신화적 신비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내 딸은 백정에게 안 주어!"
나는 그 다음 말을 들을 때 까지 내 귀를 의심하였다."백정녀석에게 빚을 진게  있다구 내 딸을 홀애비가  부억뚜기 해먹듯 쉽사리 할려구 했지. 백정녀석이 중매쟁이 있다는 걸 알리 있나. 내 딸은 일곱 마을에서 가장 훌륭한 꽃신장이 딸이야."
그 말은 그릇이 와그락와그락 깨지는 것 같았다. 부인은 그의 말을 막으려고 미친 듯 소리를 질렀으나 남편의 큰 소리에 눌린다.
"쇠고기 덤이나 있을 까 해서 혀끝으로 한 좋은 말이 백정 녀석 마음을 크게 했다. 나는 혼식 때 신는 꽃신 장이다!" (p 20)

드디어 상도의 꽃신에 대한 꿈과 사랑에 대한 욕망이 일순에 무너지는 참담한 순간이다. 여기에서 표현되고 있는 이중적 대립의 소재가 꽃신과 쇠고기 그리고 꽃신장이와 백정이다. 이는 결국 신분에 대한 사회적 표현으로 상도는 그로부터 말할 수 없는 인간성에 대한 수치와 모욕을 느낀다.  이는 오랜 세월을 두고 쌓아온 꿈이 일시에 무너져 산산조각이 나는 파국보다도 더한 고통을 가져다 주고, 이어서 나타나는 분노는 절정으로 치달아 살기마저 품게 되는 위기를 향해 치닫게 된다.  

'내가 기억한 것은 어머니가 내 팔목을 잡고 허덕이며,
"어떻게 하려는 거야."
나는 손에 백정 칼을 들고 대문간에서 떨고 있는 자신을 보았다. 어머니는 칼을 빼앗았다. 나는 어머니가 그렇게 힘이 센 줄을 몰랐다. 어머니는 목소리가 놀랄 만큼 엄했다.
"너는 손톱을 갖고도 남을 해치지 못해.. 다른 사람들이 우리 백정을 어떻게 생각하겠니?"'
내 심장은 갈퀴로 긁는 것같이 아팠다. 나는 내 팔을 깨물고 그 아픔을 잊으려 했다. 이것이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쓰라림이라 깨달은 나는 땅을 치고 울었다.' (p 21)

이처럼 사랑에 대한 추구의 정점인 그의 청혼이 인간성과 사회성이 부딪치고 아울러 동양적인 사회관습의 전통의식과 가치가 부딪치는 보다 복합적인 내용으로 단순한 사랑의 감정만이 아닌, 사회제도나 신분제도 및 인간성의 존엄과 가치를 생각하게 하고, 하나의 진실한 인간성에 대한 침해가 얼마나 무서운 반향을 불러일으키는가를 극명하게 보여 준다.  
결국 청혼과 거부 라는 단순한 사건을 통해서 수도 없이 많은 내용을 단숨에 드러내 놓고 있고, 그러한 표현은 극히 극명하지만, 그 이면은 극히 환상적이고, 가희 비극적이고 설화적이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좌판 위에 놓인 꽃신을 우연히 발견하고,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그곳으로 다가가 그곳에서 신집 사람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의 마음은 다시 노여움과 쓰라림에 차오르게 되고, 생각 같아서는 돈으로 신발을 전부 사서 신발 속에 돈을 가득 채우고 싶었지만 다가가지 않는다.
그는 그곳에 오고 또 오고 했다. 그러는 사이 꽃신은 한 켤레 두 켤레 없어져 갔다.  꽃신이 줄어들자 그의 날카로웠던 감정도 차차 무디어져 간다.  그는 그 꽃신이 다 팔려나가기 전에 한 켤레를 사고 싶었지만, 꽃신이 아닌 슬픔을 사지 않을까 두려웠다.

'꽃신이 세 켤레만 남았을 때 나는 차마 그곳에 가지 못했다. 예쁘게 꾸며진 꽃신의 코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가 훌쩍 돌아설 것 같아 더 이상 찾아가지 못했다. (꽃신 P 25)

우리는 여기에서 이 소설의 숙명적인 비극적 슬픔을 엿볼 수 있다. 비극은 이처럼 언제나 숙명적이고 운명적이다. 그는 자꾸만 그곳에 찾아가게 되고 그의 마음은 자꾸만 가깝게 다가가서지만, 다가서면 설수록 상대적으로 멀어져만 가는 꽃신과 그녀에 대한 사랑의 두려움을 느낀다.
첫눈이 내리던 날 길 위에 난 발자국을 보고 꽃신이 불현듯 생각나서 시장으로 달려간다. 노인은 보이지 않고 그의 부인이 눈을 맞고 앉아 있다. 그리고 누군가와 흥정을 하고 있는 좌판 앞에 다다가 손에 쥘 수 있는 대로 돈을 꺼내 부인 앞에 놓는다.

"여기 있소. 이 꽃신은 내겁니다!" (중랶)
"상돕니다. 아저씨는 어디 있죠?"(꽃신 p.26)
드디어 화해와 관용과 화해의 해후가 나타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이 소설이 더욱 아름다울 수 있고, 이것이 바로 동양적이고 한국적인 한의 미학이고 슬픔의 미학이다. 뼈에 사무친 원한과 슬픔의 고통이 눈이 녹아 내리듯 상도의 가슴 속에서 녹아 내리고 있다. 결국 그의 신집 사람에 대한 화해의 정신 역시 그의 꽃신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상도는 부인으로부터 신집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바깥 어른은 이 꽃신을 낯선 사람에게 고무신 값으로는 안 팔려 했다."
(중략)
"꽃신이 두 켤레만 남았을 때 그는 어린애처럼 꽃신을 안 팔려고 고집을 부렸다. 할 수 없이 장에 나가기는 했지만 언제나 꽃신은 그대로 갖고 돌아왔지. 하루는 온종일 떨다가 돌아와서……" -중략-
"그 분은 꽃신이 다 팔리기 전에 돌아갔다. 그것이 소원………"(꽃신 P 27)

여기에서 우리는 신집 사람의 꽃신에 대한 사랑과 그의 꽃신에 대한 자존심을 끝까지 굽히지 않고 죽을 때까지 팽팽하게 이어간 점을 알 수 있다. 결국 이 소설이 끝까지 무너지지 않고 긴장감을 이어가게 된 힘이 바로 이 점이라 할 수 있고, 이것이 이 소설이 지닌 가치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전쟁과 가난과 질병으로 죽어 갔지만 끝내 마지막 두 켤레의 꽃신을 팔지 않고 죽는다. 따라서 그의 인생은 실패로 끝났지만, 장인으로서의 그의 정신은 죽지 않았고 아름다운 영원성으로 살아 남는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정신 세계는 동양에서, 그것도 한국이 아니고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우리만의 한 아름다움인 것이다. 이 점이 바로 꽃신이 지니는 또 다른 설화적인 가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상도의 사랑 역시 그렇다. 꽃신을 꾸러미를 내미는 부인에게 그는 그녀가 어디에 있든 이 꽃신을 받아주기만을 바라고, "따님을 위해서 이 꽃신을 가지세요." 하고 돈이 끼어있는 담요와 함께 꽃신 꾸러미를 부인 팔에 안겨 주었다

"그 애는 죽었다. 그 애는 지난 여름 폭격에 죽었다."
아아 그러나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오래 전 내 예감은 그녀의 죽음을,
우산을 폈다. 부인이 젖지 않게 팔을 뻗치며 그녀의 뒤를 쫓았다. "<꽃신 P.28)
이처럼 상도의 그녀에 대한 사랑은 철저하게 비극으로 끝이 난다. 그러나 그는 부인의 슬픔을 우산을 가려주며 그녀의 뒤를 쫓는다.

이처럼 상도는 이미 죽어버린 그래서 이세상 없는 그녀를 그래도 쫓아가는 것이다. 결국 그녀에 대한 그의 사 랑은 그의 가슴 속에서 이미 영원성이나 절대성으로 표현되고 있어서 이는 아름다운 신화적 세계로 승화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처럼 꽃신은 꽃신이라는 한국의 전통적인 미의 한 상징일 수 있는 꽃신이라는 소재를 통해서 한국의 전통미에 대한 소개와, 그 시대적 배경을 통해서 신분제도와 같은 근대에서 현대사회로 전환되어가는 사회적 모습이 표현되고 있고, 꽃신에 얽힌 남녀의 비극적 사랑이 가장 한국적인 원색적이고 환상적인 모습으로 아름답게 형상화 되어, 이는 바로 동양적인 사랑의 개념인 사랑의 절대성과 영원성으로 표현되고 있다.  


결국 김용익은 그의 작품을 통해서 우리나라의 순수문학 소설의 진수를 외국에 소개하여. 우리 전통 문화와 전통미를 소개하고 있는 점이 극의 가치이고, 고국의 향토색 짙은 서정성과 함께 한국 서민의 사랑과 그 한을 극히 설화적으로 아름답게 표현한 점은 특기할만한 일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는 오늘날 까지도 그 누구도 그를 뒤따르지 못한다. 따라서 그는 우리 한국 순수 문학의 세계화에 가장 앞서 크게 공헌한 대표적인 작가라고 할 수 있고, 그의 작품은 시간과 공간에 제약을 받지 않고, 동서양은 물론 오십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미국 교과서에서 남아 어딘가에서 읽히고 있고, 필자에게도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감동으로 다가온다. 더욱이나  <밤배 >에 나타난 ‘자처간월’이란 글에서는 고국에 대한 형수와 부자간의 사랑이 설화적으로 표현되고 있어서 우리에게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 초당>을 통해서 표현된 탐미와 환상의 세계
초당은 1931년에 강용흘에 의해 뉴욕과 런던에서 동시에 발매된 영문으로 쓰인 소설이다. 그러나, 자전적인 글이라고 하는 그 한계 때문에(이 작품은 소설일임에 분명하지만, 그 스스로는 자전적인 글이라고 밝히고 있다.) 당시에 그에 대한 비평이 보다 포괄적이지 못했던 같지만, 그런대도 당시에 그에 대한 평은 대단했고, 펄 벅 여사의 <대지>가 소설부문에서 장기 베스트 셀러가 되고 있을 때, 그의 <초당>이 20주 동안이나 비소설 부문에서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당시 본국에서도 춘원 이광수가  “근대 조선인 혼의 고민의 호소 “라고 지적하고, “건강한 인간상을 그린 강 용흘을 두고 작가적 역량을 승인하지 아니할 수 없다.” (이 광수’강 용흘 씨의 초당’에 대한 글 (「동아 일보」1931,12,10),「조선일보,」’일사일언’ 1933, 12,22)라고 평하고 있으나, 일반인에게는 작품이 소개 되지 않았고, 1947 년에야 김 성칠 씨(서울대 사학과 교수)의 번역으로 일반인에게 1부만 소개된 바가 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영문으로 쓰였다는 점과 소설이 아닌 자전적인 글이라는 점 등으로 크게 가치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었고, 작품에 대한 거론이나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러나 근래에 와서 재외동포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탓으로 그에 대한 연구도 크게 진전이 되어 있고, 특히 김욱동씨(서강대 교수)의 저서인 <강용흘, 그의 삶과 문학>은 상당한 수준까지 올라와 있지만, 그의 업적에 비하면 아직도 미흡한 편이다.
당시 망국과 삼일운동의 좌절로 신음하던 민족의 고통과 그 상황을 사실적으로 현지에 밝힌 점은 소설의 사회학적이고 역사적인 측면에서 소설의 가치를 충분히 나타내고 있지만, 이 보다 더 큰 가치는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수려한 문장과, 작품에 나타나 있는 운문의 서정성 같은 보다 독특한 소설미학적인 표현 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초당 작품에 표현된 것은 결국 혼란된 망국의 현실적 고통과 함께 삼일운동이라는 국민적 기대가 무너진 좌절과 그 고통이 표현되는 국가의 시대적 역사적인 사실과, 또 다른 하나는 극히 개인적인 것으로 그러한 고통 속에서도 결코 좌절하지 않고, 우선 정신적인 힘을 기르기 위해 새로운 세계로 다가가는 꿈을 실현해 가는 과정을 밝히고 있는데, 이러한 그의 정신 세계에 대한 표현이 극히 유토피아적인 꿈으로 아름답게 형상화 되어 있는 점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살펴볼 수 있는 점이 바로 이러한 꿈의 형성과정에서 표현되는 작자만의 독특한 미학적인 표현이다. 여기에서 꿈의 형성은 우리의 의지적인 세계가 아닌, 보다 근원적인 정신 세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심미적인 변화의 과정을 통해서 표현되는 점에 유의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점은 우리 전통 문화나 설화 등과는 직접 관계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극히 동양적이고 자연적인 점이 바로 미에 대한 보편적인 가치가 될 수 있고, 결국 이러한 점이 현지인들에게 하나의 신비와 감동적인 가치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초당>에서는 이러한 순수한 미에 대한 꿈의 세계가 주인공 한 청파가 16 세가 되던 해에 일본을 떠나 귀국길에 오르는 선상에서 나타나게 된다.
우선 그는 일본에서 홀로 지내는 동안 삶에 대한 회의 속에 결국 자살까지도 시도하려 하지만,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조모님과 그녀의 사촌여동생에 대한 기대를 차마 저버리지 못해 끝내 결행하지 못하고 만다 그리고 귀국길에 오른다. 여기에서 소설 구성에서의 반전의 묘가 살아난다.    
그는 귀국 선상에서 우연히 동행하게 된 한 여인의 아름다움에 매료되고 만다. 그는 그 여인을 일찍이 천재 화가 미켈란젤로가 사랑했던 빅토리아 콜로나와 같은 여인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그녀로 인해서 ‘우리 손에 잡히지 않는 듯한 그림자, 운명의 막막한 그림자를 낳는 하나의 허망한 꿈’을 느끼고 ‘이 인생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느끼게 된다.  청파는 그녀를 본 것만으로도 자살을 미룬 보람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어서 그는  “하지만 그녀는 떠다니는 꽃과 같은 내 이상경(理想境)일 뿐이다. 어떻게 그녀를 멈추게 할 것인가?” “결국 세월이 흐르면 사람은 늙고 모든 것을 잊어가지만, 아름다움에 대한 기억은 영원히 남는다.” 라고 생각하며, 그 여인을 그 자신의 가슴에 영원한 꿈의 여인으로 간직하게 된다. 결국 현실적인 미의 세계가 그에게는 상징적인 영원성으로 승화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이 바로 그의 소설을 통해서 표현되는 설화적이고 신화적인 표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서 표현된 여인은 일본에서 자신을 따르던 아키고와 같은 현실의 여인이 아니다. 이는 꿈속에서만 볼 수 있는, 이 세상에는 없는 얼굴을 모르는 그의 어머니와 같은 영혼 속의 환상적인 여인으로 영원 불멸의 미의 세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는 또한 성장소설이나 예술 소설 속에서 흔히 표현되는 심미적 꿈의 세계가 표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미에 대한 보다 환상적이고 초현실적인 탐미의 세계는 많은 위대한 예술가들의 정신 세계에서도 엿 볼 수 있는 점이고 이러한 환상적인 미의 세계가 결국 위대한 예술을 탄생시키게 되는 계기가 되고 있는 점을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다.
청파는 귀국을 하자 곧바로 귀향을 하지 않고, 이번에는 자연을 순례하기로 작정하고 금강산에 오른다.
이점 역시 그가 갈망하는 탐미의 세계에 대한 보다 근원적인 추구이고 그 형성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잠시 환상의 여인도 까맣게 잊은 채 자연의 신비와 아름다움 속에서 또 다른 세계를 발견하고 스스로 놀랜다. 그리고 영원 무구한 것은 역시 자연의 아름다움뿐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그의 의식 세계에 심연에 뿌리 박는다. 청파의 이러한 탐미에 대한 갈망은 시와 예술을 사랑하는 그의 정신 세계의 바탕을 이루는 것으로 일찍이 많은 예술가들이 공통적으로 치렀던 정신 세계의 편력과 동일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의 대단원은 청파가 미국으로 향하는 선상에서 끝나는데, 여기에서 그의 환상적이고 탐미적의 그의 미에 대한 세계가 집약되어 미래에 대한 꿈으로 표현된다.


그는 땅이 멀어져 가는 선상에서 떠나온 고국의 인적들에 대한 회상에서 에 잠긴다. 그리고 그는 이제 그들과의 끈을 끊어야 하고 새로운 눈에 보이지 않는 끈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그 가녀린 옛 회상들은 그를 속박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차츰 그 회상의 모습이 사라져 가고 이내 먼 수평선 위로 새로운 모습이 나타난다. 그것은 바로 그의 가슴 속에 잊혀지지 않는 환상의 그 여인의 모습이다.
그는 먼 별빛을 찾아가는 자신처럼 그녀도 어디에선가 역시 아득히 먼 별들을 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환상의 여인이 나와 한 배를 타고 함께 미국으로 가다니,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인가? * “


하는 자문으로 <초당>은 끝난다.
이처럼 청파가 일본에서의 귀국 길에 선상에서 만났던 그 환상의 여인은 이제 그에게 미에 대한 하나의 화신(化身)으로 변해 있다. 따라서 그녀의 모습은 이제 그가 찾아가는 미래의 꿈의 세계라고 할 수도 있고, 모든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궁극적인 상징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가 찾아가는 꿈의 세계는 다분히 환상적인 미의 세계에 대한 추구라고도 할 수 있고, 그것은 하나의 피닉스적인 영원성이나 절대성으로도 이해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그의 미국에 대한 꿈도 일반적인 미국의 꿈이 아닌 바로 이러한 그의 이상향에 대한 꿈이라 할 수 있는데, 이제 여기에서 이러한 꿈이 현실적으로 어 떠한 미국의 꿈으로 형상화 되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점이 바로 이 작품이 현지인들에게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는 소설의 미학의 보편적인 가치라고 확실하게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미국으로 향하는 배위에서 바로 앞서 예시(豫示)했던 ‘에드너 센트 빈센트 밀레의’ 시 구절처럼 그가 떠나오기 전까지의 과거 고국에서의 생활을 죽음이라고 표현한다. 이는 나라를 빼앗긴 조국의 암담한 현실과 그곳에서 고통스럽게 살아온 자신의 방황과 좌절을 죽음으로 상징한 것이고, 앞으로 다가서는 미지의 삶을 그러한 죽음의 땅으로부터 부활할 수 있는 새 생명의 세계로 표현하고 있다.

오, 미국의 기백이여, 나 역시 너에게 놀라움을 느낀다.
많은 변화를 겪어온 지난 십 년간의 노고 끝에 이제 나는 휴식을 바라고, 무한한 가능성과 희망과, 기쁨의 물결에 이렇게 흔들린다.……  이것은 내 스스로의 노력으로 얻은 위대한 꿈의 기쁨이다. 그리고 내게는 내 자신의 노력에 의해 현실로 나타나게 될 보다 많은 위대한 꿈들이 있다. 이것은 다른 세계와 격리된 또 다른 세계에 있는 별과 맑은 바람의 밤, 영원한 나라의 축복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청파는  “나는 지금 막 하나의 생병을 내버린 채 아직 다른 생명을 얻지 못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이것은 항해 중에 이국의 아름다움을 이해 하도록 나에게 붙어 다니는 시신이 사로잡은 모든 아름다운 시인적 정신이다. 그러나 아름다움이 어찌 이국만의 것이겠는가? “ 그래서 그는 시인만은 가정도 국적도 따로 없는 배 안의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고, 그의 가장 가까운 혈족은 구름 속의 시신이요, 그의 애국심은 하늘 나라로 비상한다. 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 얼마나 피닉스적인 꿈인가?
필자는 이처럼 인간의 미래에 대한 꿈이나 미지의 세계에 대한 꿈을 이처럼 아름답게 피니스 적이고 그리고 절대적으로, 그것도 극히 미학적으로 이처럼 표현된 작품을 미주 한인 소설 작품에서 보질 못했다.
이러한 점이 바로 이 초당이 현지인들에게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는 소설의 미학의 보편적인 가치라고 확실하게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여기에서 그가 말하는 생명을 버리고 아직 새 생명을 얻지 못한 사람 이라는 표현과, 배 안의 사람 같다는 표현은 상당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가 법적인 미국인이 되기까지의 이십육 여 년 동안의 유랑인 생활을 예상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 두 세계 사이에서 유랑하는 이민자나 경계인들의 성격과 정신 세계를 너무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는 점 역시 이 작품이 지닌 또 하나의 가치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