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시조 당선작(2008-2010)

2016.03.08 08:47

동아줄 김태수 조회 수:1355

2008 부산일보 신춘문예 - 시조] 눈길을 걷다 / 이서원


앞 서간 어머니의 가슴 아린 발자국 길
혼자서 더듬더듬 그믐밤 걸어간다
눈 내린 책갈피에도 무릎 꺾어 세우며

손끝에 힘을 모아 온몸으로 읽는 음절
어두운 마음속을 뇌문(雷紋)처럼 뻗어 와서
하나둘 놓는 징검돌 꽃이 되어 피는데…

점자가 등불이라면 손끝은 눈동자인 것
애벌레 기어가듯 느릿한 보행 끝에
아득히 잔돌들 박힌 길 하나가 열려온다

[심사평] / 이우걸
긴장감 + 신선함 높은 점수

300여 편의 작품 중 박미자의 '겨울 강구항', 이민아의 '신문을, 산다', 김형태의 '봉숭아', 이서원의 '눈길을 걷다'가 마지막까지 남았다. 박미자는 시조의 맛을 느끼게 할 수 있는 유연한 가락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메시지가 너무 약하고 새롭지 않다는 결점이 마음에 걸렸다. 이민아의 경우 한자투의 단어를 쉽게 작품에 활용하는 점, 작품이 고르지 않다는 점이 눈에 걸렸다. 그런 결점이 없었다면 '신문을, 산다'는 충분히 주목받을 만한 가작이다. 김형태의 '봉숭아'는 발랄하고 아름다운 서정시다. 그러나 함께 투고한 다른 작품들이 작자의 능력에 의문을 갖게 했다. 언어의 절제 면에서 특히 그러했다.
이서원은 적지 않은 미덕을 가진 시인이다. 투고작이 시문장의 생명인 긴장감을 팽팽히 유지하고 있고, 언어들이 시조라는 형식에 갇혀있다는 느낌을 주지 않았다. 아울러 신선함도 지니고 있었다. 당선작으로 정한 '눈길을 걷다'는 시각 장애인의 독서과정을 아프고 아름다운 이미지로 환치해 놓았다. 특히 그 이미지들이 작자의 깨달음이라는 심적 변화에 까지 닿아있다. 주저없이 당선작으로 민다. 대성하길 바란다.


[당선소감]

길고도 어두운 길을 밤새 걸어온 탓이었던가? 오늘 아침 햇살은 유난히도 눈이 부셨다. 한 걸음을 떼어놓다 말고 돌아보았다. 지난 저녁은 지친 노동의 어깨 위로 슬며시 웃으며 어서 가라고 손짓을 했다. 잠결인듯 꿈결인듯 흔들어 깨우는 아내의 손을 뿌리치려는데 전화로 당선소식이 전해왔다.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시조 하나를 붙들고 오면서도 끝내 쓰러지지 않았던 까닭은 바로 우리 것에 대한 자부심과 사랑 때문이었다면 누가 믿을 수 있을까?
날마다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좁쌀보다 작게 도드라진 숫자 위에 찍힌 점자를 눈감고 만지작거리곤 했다. 그 작은 곳에 온 신경을 모으고 읽으려 했었지만, 그것마저도 간절하지 않았던지 매번 14층 내 집 앞을 놓치곤 했다. 촉각은 시각보다, 시각은 마음의 눈보다 더 어둡고 깜깜했었던 모양이다. 이제 온 신경을 다시 모아 불혹의 새날 앞에서 남은 점자들을 읽어내려 한다.

지금까지 이끌어 주신 고교 시절의 은사 조동화 선생님, 박숙희 선생님, 그리고 형산문학회 친구들, 초록숲 동인들, 사랑하는 부모님과 아내 은미, 두 아들 동규, 동형이와도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다.

끝으로 오늘의 시작이 곧 멀고도 새로운 공간 속으로 밀어냄임을 알고 그 길을 끝까지 힘차게 달려가려 한다. 부산일보사와 심사위원 선생님께 삼가 머리 숙여 큰 절 올린다.

◇1969년 경주 안강 출생. 계명문화대학 사진영상학과 졸업. 제7회 대구시조 전국공모전 장원. 울산 산업문화축제 공모 최우수상. 제27회 전국근로자 문학상. 공단문학회, 초록숲 동인. 울산 현대자동차(주)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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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조선일보 신춘문예 - 시조] 염전에서 / 김남규


오늘도 서산댁은 낮은 바다 막고 선 채
뒤축의 무게로 새벽 수차를 돌린다
바람은 빈 가슴 지나 먼 바다를 일으키고

지친 오후 밀어내고 살풋 잠이 들자
잠귀 밝은 수평선 해류 따라 뒤척이며
뒤틀린 창고 이음새, 덴가슴도 삐걱인다

남편은 태풍 매미에 귀항하지 못했다
소금기 절은 목숨 몇 잔 술로 달랠 때
눈시울 노을로 번져 잦아드는 썰물빛

설움으로 풍화된 닻 말없이 내려두고
무명의 소금봉분, 메다 꽂힌 삽자루여
가슴엔 뱃고동 소리 야윈 달이 차오른다


▲ 김남규씨◆당선소감… 시조로 소외된 사람들 어루만질 수 있다면…

무엇보다 가장 먼저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5년 전이었습니다. 대학교 중간고사 대체로 나간 시조백일장에서 난생 처음 쓴 시조로 우연히 상을 타게 되었습니다. 그 후 지금까지 습작하고 있는 시조는 김용택 시인의 말처럼 어쩌면, 시가 스스로 걸어서 제게로 온 듯합니다. 밤마다 수없이 울음을 삼켜가며 수십 번, 아니 수천 번 포기를 생각했었지만, 이제야 왜 제게 시조가 걸어왔는지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되었습니다.

이 젊은 날의 힘겨움을 시조로 이겨내라는 이지엽 선생님의 가르침 덕분에 지금까지 달려왔습니다. 가진 자와 강자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역사라면, 못가진 자와 약자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문학이라고 선생님께서 늘상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제가 감히 소외된 자를 어루만질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하며 지금도 망설이고 있습니다. 고통 받는 자의 아픔은 추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 소중한 작업이 그들에게 뜨끈한 밥 한공기 되진 못해도, 그들을 기억하는 눈물 한 방울은 될 수 있으리라 입술을 지그시 깨물어 봅니다.

저에게 문학을 힘으로 삼고 살아가라는 경기대학교 국어국문과 교수님들과 문예창작과 교수님들, 그리고 제가 이 땅에 굳건히 서있을 수 있게 해주는 가족들과 이지엽 선생님, 사랑하는 이들에게 영광을 돌리며, 끝으로 아직 너무나 부족한 저를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 진심으로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1982년 충청남도 천안 출생
▲2003년 제 4회 전국 가사·시조 창작공모전 일반부 우수상
▲경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3년 재학중


▲ 이근배 시인◆심사평… 빈틈 없는 구성… 시적 감도 높여줘

새벽의 언어를 캐기 위하여 밤을 밝혀온 생각들이 시조의 높은 가락을 뽑아 올리고 있다. 신춘문예의 벽을 오르기 위해 모국어의 틀 속에서 오늘의 삶을 깎고 다듬는 손길들이 섬세하고 맵차다. 더욱 반가운 것은 응모작품들이 거의 고른 수준으로 상승하고 있음이다. 시조가 지니고 있는 시적 구성요소를 잘 체득하고 있을 뿐 아니라 아주 자재롭게 글감을 찾고 거기 맞는 가락을 짜내는 일에도 능숙한 작품들이 많았다.

‘염전에서’(김남규), ‘눈속의 새’(황성곤), ‘그 해 겨울 갯벌에서(송이나), ‘감나무 합창’(한을비), ‘풀씨이야기’(유순덕), ‘겨울 쑥부쟁이’(임채성)등이 마지막까지 밀고 당기었다.

‘눈속의 새’는 새 맛내기로는 단연 앞섰다. 그러나 관념의 과잉이 의미의 실상을 보여주는 데는 미흡했다. ‘그 해 겨울 갯벌에서’는 우선 제목이 주는 추상성이 걸린다. “그 해 겨울”이면 “갯벌”의 지명도 따라야 하지 않을까? 평시조의 시행을 산문형으로 이어나간 것도 거슬렸다. ‘감나무 합창’은 너무 정직하게 형식미를 지킨 것이 오히려 시를 답답하게 가두고 있다. 시조의 형식은 고체가 아니라 액체임을 깨우치기 바란다. ‘겨울 쑥부쟁이’는 시를 구성하는 맛이 탄탄하다. 그러나 진술적 낱말들이 자주 튀어나온 것이 시의 감도를 떨어트리게 했다. 치열한 다툼 끝에 ‘염전에서’에게 낙점을 주었다.

당선작은 왜 시조를 쓰는가에 대한 답을 알고 찾아낸 글감에 대해 거의 빈틈이 없을 정도로 말을 꿰고 있다. “오늘도 서산댁은 낮은 바다 막고 선 채”의 첫 수 초장에서 “가슴엔 뱃고동소리 야윈 달이 차오른다”의 마지막 수 종장까지 소금밭을 배경으로 “서산댁”을 내세운 삶의 포착을 외연성과 내포성이 알맞게 결구하여 시조가 갖는 시적 감도를 높여주고 있다. 더욱 정진하시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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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동아일보 신춘문예 - 시조] 천수만 가창오리 / 김종열

1.
들레는 늦가을 날
하늘 길 빗장 풀 즈음
천수만 저 갈대밭 빈방 여럿 예비하고
제 몸 확! 불질러놓고 연방 풀무질한다.

밀레의 대작이다,
모이 줍는 가창오리
비로소 붓질하듯 군무(群舞)는 펼쳐지고
휑하던 너른 그 들녘, 아연 잔칫집인가.

일 년을 하루같이 덧칠만 되풀이하는
감 물든 여문 해가 낙관 하나 꾹 쏟아내고
저 멀리 물러선 방죽, 타닥타닥 잔불 끈다.

2.
간월암 갈마드는 갯바람에 실린 물결
무르녹은 나의 하루 놀빛 속에 깃들어도
예인선, 예인선처럼 산 그림자 끌고 간다.


[심사평] / 이근배(시조시인)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홀로 서는 강’(공상례) ‘겨울 을숙도 등본’(설우근) ‘완도 배다릿집 어부 조씨’(김용채) ‘길 위에서’(유순덕) ‘천수만 가창오리’(김종열)였다.

저마다 벼루를 바닥내고 몽당붓을 만들며 벼려온 기량들이 시조를 한 단씩 높여나가고 있다. ‘홀로 서는 강’은 섬세하고 투명하게 강의 내면을 그리고 있으나 주제의 새 맛을 보여주지 못했고 ‘겨울 을숙도 등본’도 말의 씀씀이가 잘 다듬어져 있으나 글감의 낯익음을 이겨내지 못했다. ‘완도 배다릿집 어부 조씨’는 실사구시의 어법에는 충실했으나 사실에 너무 얽매인 것이 흠이 되었고 ‘길 위에서’는 시상의 전개에 무리 없는 가작이나 중량감에서 밀렸음을 일러둔다.

당선작 ‘천수만 가창오리’는 이 시를 구상하고 투고할 때는 태안반도에 기름유출이 되기 전이었을 터인데 우연하게도 철새들이 찾아드는 천수만이 포커스로 맞춰졌다. 그렇다고 소재의 시의성 때문에 가산점이 주어진 것은 아니다. 그림에서 선과 색채가 예술성을 가름하듯이 시에서는 언어의 연출이 시의 완성도와 직결된다. 이 작품은 4수의 연작인데 1부는 3수, 2부는 1수로 장면을 가른 것도 구성의 치밀성을 보이고 있다. 철새 떼의 군무가 펼치는 스펙터클이 마음껏 휘두르는 언어의 붓끝에서 눈부시게 살아나고 있다. 앞으로 끌어갈 그의 시조의 예인선을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리라.


[당선 소감] - 김 종 열

어젯밤 꿈결에 새들의 날갯짓 소리를 들었습니다. 천수만 가창오리 떼가 먼 길 떠날 채비를 하고 제 머리맡을 맴돌고 있었습니다. 손 시린 바람이 부는, 무채색의 겨울 하늘을 수놓으며 새들의 군무가 펼쳐졌습니다. 때로는 흩어지고 때로는 모여드는 새들의 춤사위는 ‘날자, 날자, 날자꾸나’ 하며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비상의 날갯짓을 되풀이하고 있었습니다.

당선 통보전화를 받고 한 동안 말문이 막혀 어리둥절했습니다. 처음엔 시를 습작했습니다. 7년을 독학으로 시를 쓰다 민족시사관학교를 찾게 되었고, 시조쓰기 내공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시조는 3장 6구 12음보 정형의 틀 안에서 마음껏 자신의 세계를 펼칠 수 있는 자유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시조를 창작하다 보면 자유시에서 느낄 수 없는,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저만이 맛볼 수 있는 여유와 운치, 멋을 한껏 누리게 됩니다. 어느 시인이 말했듯이 ‘시조는 정형과 절제의 아름다움’입니다.

아직은 설익은 저의 ‘천수만 가창오리’의 손을 들어주신 심사위원께 머리 숙여 큰 절 올립니다. 늘 곁에서 묵묵히 지켜봐준 아내와 딸 은영이, 개구쟁이 같으나 철이 일찍 든 아들 기헌이, 그리고 부모님께 이 영광을 돌겠습니다. 아울러 직장 동료 여러분, 정말 고맙습니다. 다시 천수만 가창오리 떼가 이제 막 먼 길을 떠날 채비를 끝내고 비상의 날갯짓을 하고 있습니다. 날자, 날자 날자꾸나!

 

△1961년 경기 여주 출생
△성일고 졸업
△현재 ㈜경동 관리팀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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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국제신문 신춘문예 - 시조] 서울 황조롱이 / 김춘기

1.
비정규직 가슴 속에 안개비가 내리는 밤
여의도길 전주 한켠 둥지 튼 황조롱이
옥탑방 살림살이가 긴병처럼 힘에 겹다

2.
산 능선 너럭바위에
건들바람 불러 모아
풋풋한 날개 저어
억새 탈춤에 신명나면
제일 큰 나무에 올라
흐벅진 몸 곧추세우던 너

3.
오늘은 밤섬에서
찢긴 비닐 비집고는
마포대교 어깨에 앉아
깃털 훌훌 털어내고
북악산 여름 숲으로
건듯 날아오르는구나

4.
순환선 철길 위를 에도는 내 발자국
휴대폰에 떠오르는 눈빛 모두 잠재우고
물소리 푸른 강가에서 시계 풀고 살고 싶다


[시조 심사평]

- 4연 작품의 구성과 긍정적 삶의 자세 돋보여

최종심에 다섯 편이 올랐다.

강원도 이영신의 '동강사설', 부산 변경서의 '가을과 겨울 사이', 경주 김희동의 '풍경 울다', 광주 이상선의 '아침, 수산시장', 경기 김춘기의 '서울 황조롱이'다. 모두 연시조 작품으로 4연 구성 2편과 3연 구성 3편이었다. 언어 감각, 표현력, 이미지 처리 능력, 가락의 유연성에 있어 열심히 쓴 작품이었으나 연과 연 짜임의 필연성이 부족한 것 같았다.
당선작 '서울 황조롱이'는 4연 작품의 구성이 돋보였고 시인의 감정을 황조롱이에 이입하여 현실 문제를 아프게 조명하였으며 현대 시조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였고 자연 속으로 돌아가 일상사의 무거운 짐을 부려놓고 건강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긍정적 삶의 자세가 돋보였다. 〈본심 위원 전치탁 정해송〉


[시조 당선소감] - 시어 갈고닦아 다시 보고 싶은 시조 쓰고파/ 김춘기

아름다운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 행복하다. 시조는 우리 주변에서 작은 소재를 찾아 그것을 가장 선명한 언어로 압축하고, 거기에 운율을 담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시를 좋아한다. 그러나 많은 시를 읽고 난 후, 그 시가 다시 손에 잡히는 경우는 드물었다. 오히려 현대시조를 읽고서 그 잔잔한 울림에 마음이 끌릴 때가 많았다.

시는 세상의 많은 광물 중 가장 순도가 좋은 것들만 골라내 이를 다시 깎고 다듬어 독특하게 진열해 놓은 언어의 보석인 것이다. 나는 이 보석들이 보면 볼수록 다시 보고 싶어지는 그런 시조를 쓰고 싶다.

나는 본래 전공이 과학지만, 문학을 전공하지 않아 시쓰기에 더욱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평소 관심이 있는 환경문제에 대하여 접근해 볼 생각이다.

당선소식을 들으니 멀리 광주의 송광룡 시인이 생각난다. 7~8년 전 내가 시조에 입문할 때 길라잡이가 되어 주신 분이다. 이 기쁨을 맨 먼저 전해드린다. 또한, 열린시조학회의 윤금초 선생님과 동료문인들께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오늘따라 고향의 늙으신 아버님과 두 달 전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아내가 더욱 그리워진다. 그리고 두 아들 남인이 남규의 존재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앞으로 문학의 텃밭을 일구며, 내가 아끼는 제자들을 비롯한 정겨운 사람들과 어울리며 아름답게 세상을 살아가고 싶다.

<약력> ▷1954년 경기도 양주 출생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지구과학교육과 졸업 ▷제9회 금호시조상 우수상 ▷제5회 공무원문예대전 시조부문 우수상 ▷현재 경기도 고양시 덕양중학교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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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매일신문 신춘문예 - 시조] 눈 속의 새 / 황성곤


광년을 달려와 빛이 된 투명한 새
망막에 앉은 기억, 때 늦은 아픈 고백
이른 봄
번갯불 튄 그대 스르르 한 점 불이었던
빅뱅의 환상이거나 눈부신 기록이었을
이별 뒤 하얀 여백 지울 수 없는 허공 같아
가락지
흰 원을 걸어 필생의 울음 가둔 걸까
수축하는 잔등, 달이 팽창하는 저 언덕
환각처럼 눈 속의 새 쪼그려 앉아있는데
우수수
눈망울 털어내면 겨울 그 후, 빈 고요


▧ 당선소감 -살아있음이 희망이다 / 황성곤

햇살이 따뜻한 창가
화분에 꽃 피운 나무 한 그루 유심히 본다.
뿌리를 드러낸 동백 같기도 하고 철쭉 같기도 한, 나무이고자 하는 그의 집중은 모든 내 상상의 말들을 수렴해간다.
무엇을 말했지만 나는 듣지 못했음으로, 그가 나무 안에서 꽃 한 송이 들어올린다. 발밑이 아득하고 흔적 없는 곳에서 바람이 인다.
아직 여물지 못한 내 언어가 심하게 흔들릴 때, 나는 왜 너보다 앞선 나였을까?
경계를 허물지 못한 나무 앞에서
아프다.
꽃과 짐승과 사람들이 또한 아프다. 선홍빛 언어를 열고 나오면 자음과 모음을 버린 신의 음성을 곧 만나리라. 하여 저 완성된 언어의 세계에 한없는 경배를 올린다.
내 비록 어긋난 문법으로 세상이 낯설지만, 친구여 누이여 이웃이여 사랑의 한 몸으로 항상 충만하고 행복하시길. 오직 살아있음이 희망이고 기쁨이며 한편의 詩인 것을….

끝없는 어원의 탐색을 새롭게 인도해주신 심사위원님 그리고 당선의 영광을 양보해주신 분들에게 죄송함과 더불어 고개 숙여 감사 드립니다. 보답으로 미숙한 언어를 갈고 닦아 세상의 맑음을 비쳐 보이겠습니다.

끝으로 평소 지도해주시고 누구보다도 기뻐해주신 양점숙 시인님과 청문학동인 화시동인 문우 여러분에게 고마움 전하며 당선의 영예와 기쁨을 함께 나눕니다.

◆약력 △1960년 전북 익산 출생 △전주대학교 행정학과 졸업 △청문학동인, 화시동인


▧심사평 - 이정환

최종까지 거론된 이들은 황성곤, 유현주, 박해성, 박선미, 최재남, 박미자 등이었다. 당선작으로 뽑은 황성곤의 ‘눈 속의 새’는 특이한 시적 언술 방식을 보인다. 그가 함께 보낸 다른 세 편들도 그런 점에서 이채롭다. 범상치 않은 언어 운용으로 읽는 이의 눈길을 끌어당기기에 부족함이 없는 자력과 흡인력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오랜 시력에서 기인된 바도 있겠지만, 새로운 것이 과연 어떤 것인지와 세계와 자아의 교호 속에 어떻게 언어가 제대로 된 개성적인 이미지를 빚어낼 수 있는지에 대한 투철한 인식과 공정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체득된 기량이라고 생각한다.

대상에 대한 섬세한 묘사를 통해 심미적 재현을 성취하고 삶의 원리를 비밀스럽게 드러내는 이러한 형상 능력은 다른 많은 응모작들의 가장 앞자리에 세우기에 모자람이 없다. 또한 엄정한 정형 형식에 크게 구애되지 않으면서 시상을 자유자재로 전개하는 활달한 수사법이 담긴 내용과 적절한 조화와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점도 신뢰를 더한다.

형식을 부리는 능력을 웬만큼 갖추고 있으나, 그리 놀랍지 않은 일상사를 평이하게 그리고 있는 점은 적잖은 응모자들에게서 공통되게 드러나는 문제점이다. 또한 상당한 수련의 흔적이 엿보임에도 끝까지 한 호흡으로 끌고 가지 못하거나, 참신한 발상을 제대로 살리지 못해 아쉬움을 느끼게 하는 작품들도 더러 눈에 띈다.

표피적 묘사를 넘어서서 대상의 본질적인 국면을 관통하려는 상상적 언어의 힘을 보여주는 일에 힘을 기울일 때 고유의 형식과 결합하여 보다 밀도 높은 언어 예술적 성취가 가능할 것이다. 이 점은 당선자나 모든 응모자들이 함께 되새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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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서울신문 신춘문예 - 시조]

 

까마귀가 나는 밀밭* / 임채성
-‘오베르’**에서 보내온 고흐의 편지

                                          
윤오월 밑그림은 늘, 눅눅한 먹빛이다


노란 물감 풀린 들녘 이랑마다 눈부신데

 

그 많던 사이프러스 다 어디로 가 버렸나

 

소리가 죽은 귀엔 바람조차 머물지 않고

 

갸웃한 이젤 틈에 이따금 걸리는 햇살

 

더께 진 무채색 삶은 덧칠로도 감출 수 없네

 

폭풍이 오려는가, 무겁게 드리운 하늘

 

까마귀도 버거운지 몸 낮춰 날고 있다

 

화판 속 길은 세 줄기, 또 발목이 저려온다

 

모든 것이 떠나든 남든 내겐 아직 붓이 있고

 

하늘갓 지평 끝에 흰 구름 막을 걷을 때

 

비로소 소실점 너머 한뉘가 새로 열린다

 

* 빈센트 반 고흐의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진 유화그림.
** 오베르 쉬르 와즈 : 파리 북쪽의 시골마을. ‘생레미’의 정신병원을 퇴원한 고흐가 약 두 달간 살다가 죽은 마지막 정착지로 그의 무덤이 있다.



[서울신문 신춘문예-시조당선작] 심사평 이근배, 한분순
시공 넘나드는 붓놀림 뛰어나

새 아침의 언어가 신설처럼 차고 희다. 현대시조 100년을 넘어서면서 신인들이 내딛는 발걸음도 한결 더 빨라지고 있다. 시조가 신춘문예를 만나서 불꽃을 피우며 새 지평을 열어가고 있는 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심사를 맡은 두 사람이 당선후보작으로 고른 10편 가운데서 ‘무동도’(배우준),‘빈 의자 우화(羽化)를 꿈꾸다’(정행년),‘낡음에 대한 사색’(송필국),‘빙판’(김용채),‘까마귀가 나는 밀밭’(임채성)의 5편으로 다시 좁혀서 읽기를 거듭했다.

‘무동도’는 부제 ‘김홍도를 찾아서’가 나타내듯 단원의 그림을 보고 신명을 생동감 있게 묘사하고 있으나 시가 그림을 뛰어넘지 못했으며 ‘빈 의자 우화(羽化)를 꿈꾸다’는 착상은 좋으나 추상성에 매달려 주제의식이 묻혔으며 ‘낡음에 대한 사색’은 ‘채미정에서’의 부제가 말하듯 고려유신 길재가 조선조 건국을 탄핵하고 금오산에 은거하던 사실(史實)을 다루고 있으나 길재의 저 올연한 정신세계의 재현이 미흡했고 ‘빙판’은 시상의 폭이 단조로워서 감도의 깊이와 넓이에서 못 미치었다. 당선작 ‘까마귀가 나는 밀밭’은 부제가 보여주듯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에서 그의 생애와 정신을 시로 퍼올리고 있다. 사람의 생애나 예술세계를 시로 재구성할 때 자칫 빠지기 쉬운 시각적 묘사에 그치지 않고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붓놀림이 훨훨 날고 있다. 특히 ‘비로소 소실점 너머 한 뉘가 새로 열린다’는 결구(結句)에서 오래도록 인류 앞에 타오를 한 예술가의 혼불이 펄럭이고 있다. 부디 시조의 내일을 열어주기 바란다.



[당선 소감]
“이제부터 문학적 완성 위한 시쓰기의 길 시작” - 임채성

한려수도의 본령인 남해(郡)에 가면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바닷길로 이어지는 국도가 있습니다.3번국도. 지금은 ‘창선∼삼천포대교’라는 국내 최장의 연륙교가 바닷길을 대신해 주고 있지만, 이 다리가 생기기 전까지는 배를 타야만 차도 사람도 그 길을 지나다닐 수 있었습니다. 바닷가에 다다르면 길은 일순 끊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바다 속으로 그 길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당선이라는 소식을 접한 저는 지금 바로 그 3번국도의 끝에 서 있습니다. 문단 말석에 이름을 올리기 위한 고된 습작의 길은 오늘로서 끝났지만, 보다 큰 문학적 완성을 위한 시쓰기의 길은 이제부터 시작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바다 위 점선으로만 존재하던 그 국도의 일부는 이제 옛이야기가 되고 말았지만 아직도 제 눈 앞에는 그 길이 선명하게 살아 있습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또 시작된다는 어느 시인의 시구처럼 저는 이제 새로운 길을 떠나야 합니다. 다시 손 떨리는 긴장감으로, 내가 서 있는 곳이 가야 할 길의 끝이 아니기에 한껏 풀어진 들메끈을 새롭게 조여 매고 있습니다.

시조라는 큰 바다로 입문을 허락하신 서울신문과 심사위원 선생님께 감사의 큰 절 올립니다. 오늘의 당선 통보는 잘했다는 박수의 의미가 아니라 더 잘하라는 매운 회초리로 알아 듣겠습니다. 아울러 심사위원께서 고르신 이 작은 씨앗이 큰 나무로 자라나길 지속적인 관심으로 계속 지켜봐 주시길 감히 청해 올립니다.

그동안 곁에서 말없이 보살펴 준 아내와 시조라는 틀을 잡아주시고 이끌어주신 윤금초 선생님, 민족시사관학교 선배 문우들께 오늘의 영광을 돌리고 싶습니다. 나를 알고 계시는 모든 분들께 실망을 안겨드리지 않도록 쉬지 않고 걸어가겠다는 다짐으로 영광된 이 자리의 인사를 대신하고자 합니다.

■ 임채성 약력
-1967년 경남 남해 출생
-1987년 창선종합고 졸업
-1994년 동국대 국문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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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경남신문 신춘문예 - 시조] 마중물 / 이남순



살아 네 가슴에 푸르게 가 닿기 위해
어수선한 욕망의 깃발, 하나 둘 걷어내고
무저갱 아래로 아래로 조심 조심 내려간다

지상의 교만함도 지하의 비굴함도
기꺼이 마음 열어 함께 하고 싶었네
내 먼저 너를 만나서 큰 강이 되고 싶었네

이제 길을 열어 흘러가고 흘러오고
우리 서로 비우면 이토록 깊어지나
하늘과 땅이 맞닿아 한 몸으로 출렁인다

*마중물-펌퍼로 물을 퍼 올릴 때 물을 끌어올리기 위해 먼저 윗구멍에 붓는 물


[경남신문 신춘문예]심사평
삶의 성찰 잘 담아

시조는 분명히 오랜 전통을 가진 하나의 시 장르이면서 정형시 양식이다. 이 두 요소는 현대시조 작가들이 지켜야 할 준거의 폭이면서 동시에 개척해 가야 할 영역이기도 하다. 준거를 묵수만 하면 '현대'의 시조가 아니며, 지나치게 개척에만 치우치면 현대의 '시조'를 벗어난다. 두 요소를 조화시키는 일이 매우 어렵기는 하지만, 동시에 계승과 창조라는 생명력의 본질에 이르는 소중한 작업이 된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신춘문예 응모작들은 작품수의 증가와 함께 전반적으로 장르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엿보여 수준의 향상도 이루었다고 하겠다. 다만 새로 마주친 사물에 대한 설명이나 경험에 대한 소개에 치우쳐 필요 이상으로 길어진 작품이 많다는 것이 눈에 띄는 점이다. 다매체와 무한 정보의 환경적 영향으로, 시조의 서정적 장르 속성이 간과된 모습일 것이다.

마지막까지 숙고와 토론의 대상이 된 작품은 '마중물', '천수만 가창오리', '단풍책' 등 세 편이다. '천수만 가창오리'는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는 큰 시각과 해석이 돋보이지만 서정적 내면화가 덜 이루어져 아쉬웠고, '단풍책'은 나뭇잎을 통해 계절의 변화를 읽어내는 비유와 묘사가 뛰어나지만 그것으로 일관하여 시조다운 구성의 완결미가 적은 것이 아쉬웠다. 결국 무던하면서도 삶에 대한 성찰이 완성도를 높여준 '마중물'을 당선작으로 정하였다.

'마중물'은 세 가지 점에서 그 장점을 보여준다. 첫째는 읽기 쉬운 점이다. 문장의 통사적 온건함이 산문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지만 시어를 대구적으로 배치하여 변화를 주었다. 둘째는 짜임새이다. 세 개의 연으로 구성하였는데, 그것이 전체로 하나의 유기적 관계를 이룬다. 각 연의 초장끼리, 또는 중장이나 종장끼리 떼 내어 손질하여도 의미가 통할 만하다. 셋째는 주제의 다층성이다. 물을 함께 길어서 먹는 혈연과 지연의 공동체적 삶의 체험에서부터, 오늘날 간접화 문명의 꼭대기에서 소통과 통합이 얼마나 절실한 삶의 태도인가를 읽어내는 문명비평이 녹아 있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나 자기를 내어놓는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성찰을 담고 있다.


시조의 생명력에 대한 고민과 함께 모든 응모자의 정진을 빌어 본다. -심사위원: 이우걸(시조시인) ·장성진(창원대 교수)


■ 이남순씨 당선 소감
따뜻한 삶의 미학 담아낼 터

하얗게 눈이 내리는 새벽 고요를 밟고 날아든 눈처럼 환한 소식 한줄기 신춘문예 당선 통보였습니다.
자신을 낮추는 눈발처럼 세상을 잇는 눈밭처럼 겸손하고 따뜻한 삶의 미학을 담아내는 시인이 되겠다고 감히 말씀 올립니다.
시조에 연연하면서 외롭고 고달팠던 지난 시간들이 눈꽃이 되어 하늘 가득 날아오릅니다. 오늘은, 천리 아득한 그 질퍽이는 황톳길을 따라 부모님 숨소리와 고향의 음성을 듣고 싶습니다.
이제 3장 6구 12음보를 제 운명으로 제 문학의 영역 안에 앉혀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기쁨보다는 부끄러움과 책임감의 무게가 느껴집니다. 더욱 정진하라는 채찍으로 받겠습니다. 스스로를 경계하며 제 앞에 놓인 매듭을 하나씩 풀어내듯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시조의 문을 열어 주시고 갈고 닦는 길에 한 생을 다하도록 이끌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명지대학교 문예창작과 김석환·남진우 교수님께 감사드리며, 아울러 2학년 학우들과 이 기쁨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한 줄의 글보다 시인 정신부터 갖추라고 하시던 회정 선생님 말씀 귓가에 쟁쟁합니다. 끝으로 부족한 작품에 등불을 밝혀주신 경남신문사와 심사위원님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1957년 함안 출생 △명지대학교 문예창작과 재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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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중앙일보 신인문학상] 활 / 정상혁

 

'활'하고 무사처럼 차분히 발음하면
입 안의 뼈들이 벼린 날처럼 번뜩이고
사방은 시위 당겨져 끊어질 듯 팽팽하다

 

가만히 입천장에 감겨오는 혀처럼
부드럽게 긴장하는 단어의 마디마디
매복한 자객단처럼 숨죽인 채 호젓하다

 

쏠 준비를 하는 순간 모든 게 과녁이다
호흡 없던 장면들을 노루처럼 달리게 하는
활활활 타오르게 하는 날쌔고 깊은 울림

 

허공의 누군가가 '활'하고 발음했는지
별빛이 벌써부터 새벽을 담 넘어가
내일로 촉을 세운 채 쏜살같이 내달린다

 

 

[당선소감]
"채우고 채워 스스로 빛나는 사람 되겠다"

 

방 안에 앉아 창가에 둥둥 떠다니는 먼지를 한참 바라보았다. 날씨가 참 좋았다. 순간순간 햇빛을 받은 먼지가 소행성처럼 빛났다. 그리고 이제 무슨 말이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말하자면, 아직 한참 모자라다. 무지 작고 가볍다. 이 어마어마한 우주에 그냥 사람 크기 정도의 먼지일 뿐이다. 완성된 세계를 가지려면 얼마를 더 힘써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내게 짜잔, 등장하는 햇빛처럼 멋진 옷을 입혀주신 중앙일보 관계자 분들께 감사드린다. 잠깐의 눈부심으로 끝나지 않도록 열심히 고민하며 살아가겠다. 채우고 채워서 스스로 빛날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약속을 드린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부모님, 정말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약력=▶1986년 서울 출생 ▶연세대 국문과 2년 휴학 ▶경기 용인소방서 의무소방대원 복무중

 

 

[심사평]
팽팽한 긴장감 가득한 '수작'

 

중앙신인문학상은 치열한 경합으로 유명하다. 월 백일장을 통과하며 갈고 닦은 실력을 연말에 다시 경쟁한 끝에 인정받는 상이기 때문이다. 올해 당선작 ‘활’은 그 과정에서 드물게 심사위원의 만장일치를 얻은 수작이다. 시적 발상이나 언어 감각, 이미지 처리 능력이 뛰어나고 신선하다. ‘활’을 이만한 상상력과 조형력으로 그려내기란 쉽지 않다. 정상혁 씨는 이제 ‘쏠 준비를 하는 순간 모든 게 과녁’이라는 자신의 시구를 보여줄 수 있는 시인의 길에 들어섰다. 부디 ‘팽팽’하고 ‘깊은 울림’이 ‘활활활 타오르’는 명중 이상의 작품들을 쏘아주기 바란다.

함께 논한 김남규·김대룡·송유나·연선옥·이서원씨도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다. 그러나 시적 발상과 이미지 면에서 참신성 혹은 완성도가 당선작에 못 미쳤다. 무엇보다 고답적이거나 공소한 내용, 부자연스러운 율격 등이 넘어야 할 과제인 듯싶다. 신인일수록 새로움에 대한 도전이 절실하다.<심사위원 : 유재영·김영재·이정환·이지엽·정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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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염전에 들다 (연선옥)

잇몸 다 드러내고 철썩이며 들먹인 어깨
얼마를 대끼고 대껴야 흰 뼈 되어 만날 건가
투명한 허물을 끌고 여기까지 흘러온 지금.

남은 상처 자투리를 누가 또 들여다보나
떠밀리고 넘어지다 등에 감긴 푸른 멍울
한걸음 이어달린 길, 그길 하나 밀고 와서.

낮은 데로 에돌아와 오랜 날 빗장 잠그고
옮겨 앉은 짭짤한 바다 거친 숨 몰아쉬면
바람결 다듬고 벼려 스스로 낮추는 키.

어디쯤 붙잡지 못한 잔별 죄 쏟아지고
햇빛 가득 그러모아 제 가슴에 피는 꽃들
몸 바꿔 떠나고 있나, 비탈진 세상을 향해.


[당선소감] -연선옥 
끊임없이 우리말을 가꾸고 다듬고 아끼며 걸러내는 일, 그것이 글쓰기의 요체라고 생각한다. 아는 것만큼 보이듯이 내가 관심을 가지고 애정을 쏟는 것만큼 표현할 수 있는 세계일 것이다.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모두 부정할 수 없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부정과 긍정의 두 축에서 세상을 가르며 산다. 더러는 이해와 편리에 따라 스스로 만든 경계에서 혼탁한 마음을 키우기도 한다. 혼탁한 마음에서 맑은 글을 생산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절차탁마의 글쓰기 작업은 또한 나를 가꾸고 다듬는 일이기도 하다.

내 가난한 언덕에서 불어주는 바람이 있어 행복하다. 좀더 따뜻하게 포용하지 못하고 편협함으로 외면했던, 지난날 나를 스쳐간 그 모든 인연에게 미안하다. 우리가 살아갈 수 있도록 많은 것을 베풀어주는 자연의 혜택에 감사한다. 내가 글을 쓰고 생각하는데 자극이 되어 준 것은 사람이었고 자연이었고 사물이었음을 잊지 않을 것이다.

경기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님들과 학우들, 그리고 설익은 내 작품에 대하여 늘 뼈아픈 고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고 힘이 되어준 열린시조학회 선후배들을 이제 한번 포옹해주고 싶다.
처음 시조를 만나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변함없는 지도와 관심으로 이끌어주신 나의 스승 윤금초교수님에게 이 영광을 돌리며, 조금은 보답할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아 기쁘다.

오늘 나의 겨드랑이에 새로운 깃털을 달아준 경남일보와 저의 부족한 작품에 힘을 불어넣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 큰절을 올린다. 한눈팔지 않고 우리 고유의 정형시, 시조를 위하여 정진하는 한 톨의 천일염이 되고 싶다.

/ 경기대학교 문예창작학과 3학년


[심사평] - 김교한 
때 묻지 않은 구성력 훌륭


 앞으로 우리 시조문단을 개척해 나갈 역량 있는 신인을 찾기 위해 전국에서 응모해 온 작품 봉함을 건네받아 조심스럽게 개봉하였다.

 시조는 많은 말을 함축으로 여과 하는 데서 시작한다. 시조가 가진 생명력은 개성과 정형적인 서정성에 있다. 그리하여 우리 시대의 정서를 노래 하였는가, 참신한 제 목소리 인가, 장(章) 의식을 살리고 있는가, 연시조의 경우 각 수(首)와의 구성도는 어떠한가. 그리고 가능성 등을 심사관점으로 상기하면서 새해 새아침을 정갈하게 조명하고 싶은 심정으로 정독에 들어갔다.

 우선 율격이 지나치게 산만한 작품, 고풍조의 작품, 같은 시어의 의미 없는 중복 사용 작품 등 일부를 제쳐놓고 보니 다른 대다수의 작품들은 수준작이 었다. 언젠가 빛을 볼 가능성이 엿보인 작품들이었다.

 그리고 다시 읽었다. 윤평수의 「저녁 놀」 이남순의 「판자촌 봄비」 연선옥의 「염전에 들다」 전흥미의 「주택개발공사현장」 이선의 「그 때 그 팽나무」 우은진의 「새것은 상처를 만든다」 연정현의 「외래 병동에서」 강봉덕의 「새벽 시장」 송필국의 「채미정에서」 등을 뽑아 들고 다시 정독했다. 모두 아까운 작품이었으나 앞에 예시한 심사 관점에 더 가까이 닿아 있는 작품으로 「저녁 놀」 「판자촌 봄비」 「염전에 들다」 이 세 편을 골라 최종심에 들어갔다.

 윤평수의 「저녁 놀」은 두 수로 된 연시조이지만 장 의식의 깊이가 있고 정형적 서정성이 돋보였다. 이남순의 「판자촌 봄비」는 시조의 형식적 논리를 충분히 체득한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첫째 수에서 셋째 수에 으르기 까지 주제를 이끌어 가는 간결한 저력을 보여 주었다. 연선옥의 「염전에 들다」는 생명 의식을 바탕으로 조명한 신선한 작품으로 보였다. ‘햇빛 가득 그러모아 제 가슴에 피는 꽃들’ 등 표현의 경지를 보였다.

 당선작은 숙고 끝에 연선옥의 「염전에 들다」로 정하였다. 이 작품은 각 수의 역할과 주제적 구성도가 조금도 때 묻지 않았다. 당선자는 함께 낸 모든 작품에서 우리 시조 문단을 개척해 나갈 신선한 가능성을 믿게 해 주었다. 최종심에서 자리를 내 준 두분 작품은 놓치기 아까웠다. 당선자에게 축하 드린다.  /김교한(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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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일보 신춘문예]시조 당선작 

퇴근길 - 강현수

직장에서 헐값에 내 하루를 되팔았다.
그림자로 다녀가는 서귀포 그 뒷골목
핸드폰 아예 꺼 놓고 돌고 도는 퇴근길

아스피린 한 알로 한 생각을 또 눅이고
간신히 불을 끄는 선인장을 바라본다.
내게도 가시가 있어, 그냥 날 선 가시가 있어


[심사평]

일반 문예지의 신인문학상과 <신춘문예>의 차이점은 과연 무엇인가?
프로신인 등용문이라는 면에서는 같다.
하지만, 새해 첫날 모든 문학 지망생들의 이목이 집중된다는 면에서 현대시조의 전범(典範)이 되기도 한다.
그런 만큼 프로신인의 가슴에 내장돼 있는 시의 광맥이 어느 정도인가를 가늠하는 일이 당선의 척도가 될 것이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어울려 사는 법」 「모슬포 송악산」 「소방수첩」 「겨울바다」 「세한도가 나를 보다」 「퇴근길」 등이었고 프로신인으로서의 기질도 엿보였다.
그러나 좀 어설프지만 거침없는 자신의 소리 즉, 신인다운 패기가 아쉬웠다.
결국 선자는 「모슬포 송악산」(이창선)과 「퇴근길」(강현수)을 놓고 한참 저울질했다.
「모슬포 송악산」은 모슬포 송악산에 뚫려 있는 진지동굴을 ‘숭숭 구멍 뚫린 벌레 먹은 밤’으로 형상화 시키고 ‘잘 익은 송악산 가을, 펑 터진 분화구’를 보는 눈이 예리했지만, 함께 보낸 다른 작품들이 그의 역량을 가늠하기엔 미흡한 점이 있었다.
「퇴근길」은 현대인들의 공허한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의 냄새에서 감동이 묻어나는 작품이다. ‘직장에서 헐값에 내 하루를 되팔았다’는 대목과 ‘아스피린 한 알로 한 생각을 또 눅이’는 작가의 건강한 시선에 긍정이 간다.
시조의 제한된 3장6구의 짧은 형식에 촌철살인과 같은 절제되고 밀도 있는 시어로 구성한다는 어려움을 잘 극복하고, 오히려 자유분방한 표현으로 시조의 묘미를 한껏 살려준 솜씨가 돋보인다. 대성을 빈다.
<심사위원 정인수>


[당선소감]
“새의 내장을 통과하는 그 씨앗처럼”

휴대폰이 울렸고, 순간 내 전두엽을 의심했다. 미숙한 나의 시어가 거미줄에 툭 걸리다니……

교래리 1112번 중산간 도로를 따라 한라산 동남자락으로 가다보면 초록의 데칼코마니 삼나무 길이 나온다. 불 한번 터진 그 자리에 물집처럼 앉은 산정호수가 바로 물찻오름이다. 제주 들녘의 368개 오름 중에서 정상 분화구에 물이 있어 아름다운 호수…… 그곳을 지난 11월에 다녀왔다.
오름 입구에서 거미줄에 걸린 단풍잎을 보았다. 15년 동안 가슴속에 묻어둔 오래된 사표를 떠올렸고, 자연스럽게 「퇴근길」이란 작품이 내게로 왔다.

난 가끔 나의 시가 어디쯤 와 있는지 생각을 해 본다. 따라비오름에 수줍게 피어있는 애기물매화도 처음부터 그 자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필시 어느 배고픈 새가 애기물매화 씨를 삼켰고, 그 씨는 뜨거운 새의 몸을 관통하여 몸 안에서 승화된 다른 것들과 함께 따라비오름에 뿌려진 것이리라.
그럼 나의 시는 어쩌면 새의 목젖을 간신히 통과한 정도가 되기는 한걸까?
야생의 냄새 가득한 송당 들녘에 눈발처럼 뿌려져 물매화로 피어날 그 날까지 쓰고 또 쓰고, 지우고 또 지우리라 과감히 다짐을 해본다.

아낌없이 주는 큰 나무, 오선생님과 정드리문학회 그리고 동갑내기 남편과 딸 하얀이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부족한 작품에 채찍을 가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영주일보사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한다.

주소 : 서귀포시 동홍동 태성빌라 3차 B동 201호
연락처 : 016-696-6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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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신문 신춘문예 당선작-〈시조〉오래된 벽 / 강혜규


차고 무거운 공기가
등을 밀어낸다
눅눅한 벽에 기대자 물소리가 들려온다
어깨가 들썩이며 우는 흐느낌 같기도 한

어룽어룽 눈물 자국이 길게 꼬리를 물고
긴 못 작은 못 상처가 많은 벽에
고단한 가장의 어깨가
비스듬히
걸려 있다

생의 속도 내려놓고 주인마저 떠난 빈 방
문밖 세상을 향해 무너진 좁은 틈으로
초겨울 매운 바람만 안부를 묻고 있다


2008 신춘문예-〈심사평〉한분순·문무학
농촌 현실 드러낸 사회성 돋보여

본심에 오른 작품은 일곱사람의 35편으로, 5편 모두 고른 수준을 갖춘 경우와 한두편이 뛰어나고 편차가 심한 경우로 대별됐다. 이 두 경향에 대해서 수준이 고른 응모자를,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적 표현이 우월한 작품을 뽑자는 데 심사위원들이 합의했다.

마지막까지 논의의 대상이 됐던 작품은 〈낙화〉 〈귀성길〉 〈연해주의 가을〉 〈오래된 벽〉 등 네편이었다. 〈낙화〉는 시조 형식을 부리는 노련함이 있었지만 제목의 진부함과 나머지 작품들이 선택을 망설이게 했다. 〈귀성길〉 역시 시조 창작에 대한 연륜이 느껴지지만 나머지 작품과는 편차가 컸고, 5편 중 2편에 부제를 달았는데 꼭 그렇게 해야 할 당위성을 찾기 어려웠다. 〈연해주의 가을〉은 그 힘찬 음보가 시를 읽는 데 힘을 느끼게 하는 장점이 있었지만 시적 표현에서 아쉬움이 남았다.

따라서 당선작으로 〈오래된 벽〉을 뽑기로 합의했다. 당선 작품은 화자의 고향집일 수도 있는 농촌의 빈집을 찾아간 감회를 읊은 것이다. 농촌 현실을 드러내는 사회성과 사물을 바라보는 섬세한 시각, 상징적 의미를 살리는 재능이 돋보였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드리며 최종심에 오른 응모자들에게 분발을 당부한다.


2008 신춘문예-〈시조〉당선소감 - 강혜규
제 시조 한줄에 목이 메었으면

유리창 모서리를 조심스럽게 밟으며 꽃이 피었습니다. 모든 것이 추위로 꽁꽁 얼어붙은 겨울 밤에 온 힘을 다해 실가지를 키우고 꽃이 피었습니다. 꽃나무 사이로 보이는 바깥은 겨울인데도 참 따뜻했습니다.

고등학교 때 국어교과서에 실린 정완영 선생님의 시조를 읽다가 울컥 목이 멘 적이 있었습니다. 그 뜨거운 씨앗을 참 오래 품고 살았습니다. 이 다음에 누군가가 제가 쓴 시조 한줄에 목이 메어 시조를 꽃씨처럼 품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봅니다.

사는 내내 큰 스승님으로 모시고 싶은 정완영 선생님께 이 영광을 돌리겠습니다. 덜 여문 씨를 꽃으로 피게 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말 안 해도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잘 알고 계실 ‘나래시조’ 식구들께 큰절 올립니다.

△1962년 김포 출생 △ 2003년 ‘한국문인’ 신인상, 2005년 ‘나래시조’ 신인상 수상 △현재 충북 진천 덕산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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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문학 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향일암(向日庵)
양태지

신선이 머물던 자리 알 순 없지만
사바의 노여움은 저만큼 달아나네
하늘로 뻗쳐 오르는 저 바다의 용솟음

일만의 햇살이 번뇌를 잠재우랴
구름은 암석불 사이에 모로눕고
옷자락 저미며 가는 바람도 쉬어간다

오가는 사람마다 머뭇대는 바윗틈
님 향한 버거운 길 오롯이 떨치고서
보살은 속세를 나선 듯 염화시 합장하네

은은한 풍경소리 태고적 그대론데
남해라, 돌산에 갓 향기 매섭고요
해조음 드믄 암자에 독경만이 흘러라.

※향일암 : 해를 향한 암자란 뜻, 여수 소재. 바다의 일출이 아름답기로 유명함.

[심사평]

기호학적으로 우선 접근해 보면 ‘8’자를 90°로 회전시키거나 혹은 역회전시키면 ∞(무한대)가 된다. 또한 ‘8’자 앞의 ‘0’자 두 개를 합하면 역시 ∞(무한대)가 된다. 이렇게 ‘8’자(팔자)를 눕게 하면 완전히 안정된 상태가 된다. 그렇지 않고 ‘8’자를 세워놓으면 언젠가 기울어질 것 같은 불안정한 상태에서 머물게 된다. ‘0’자도 세워놓으면 불안정해 보인다(즉 해가 서서 떠오르게 되면 불안정하게 보이는 것과 같다).

그런데 그 앞에 2(×)가 있다. 그래서 이를 모두 복원시키면 2×∞×∞가 되어 2∞∞가 되어 이는 역시 2∞와 같다. 이것이 2008년의 의미이다. 기호 ‘0’는 해를 의미한다. 또한 이 ‘0’는 완전을 의미한다. 모든 것을 비우고 난 뒤에 완전함에 이른다(2007년을 완전히 비우고 난 뒤에야 2008년이 온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다 비우고 난 뒤에야 완전한 ‘0’가 되어 둘레에 울타리가 생기기 때문이다. '0' 외의 다른 숫자는 둘레(=울타리)가 없다.

뜬금없이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양태지의 작품이 해와 관계되어 있기 때문에 해의 문을 열어 분석하기 위한 것이다. 향일암(向日庵)의 뜻 속에서 해를 향해 문을 열고 있는 장소를 찾을 수 있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해를 향해 있다는 것’, 이것은 인간 누구나에게 마음 속 깊이 내재해 있는 존재의 바다 깊숙이 가라앉아 꿈틀거리고 있는 욕망의 해, 그 해의 뿌리를 향해서 해의 외출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새해에는 웅장한 일출의 광경을 보기 위해 여수의 돌산도 향일암(向日庵)을 찾는다.

바닷속에서 괴성을 지르며 튀어나온 듯한 다양한 형상의 바위들이 거북이처럼 포복하고 있거나, 태양을 향해 올라가고 있는 이 돌산도는 바다의 뿌리까지 그 몸체를 심고 있다. 즉 돌산도는 굴지성과 굴광성의 방향으로 바닷속에 있는 해를 낚아 올리기도 하고 바다를 탈출하여 하늘로 오르는 해를 연모의 시선으로 채집하기도 한다. 푸른 바다 위에 떠있는 돌산도를 바라보면 바다의 심장이 돌출된 것처럼 보인다. 그만큼 돌산도의 서정은 생명력이 있다. 피끓는 풍경으로 승천하는 해처럼 맑고 찬란한 박진감도 있다.

이 돌산도의 진실을 꿰고 있는 양태지의 시작법은 더 웅장하다. 용(龍)의 심장 박동처럼 힘이 있다. 용솟음치고 있다. 그는 시 속에서 해를 패대기쳐 버린다. 이때 ‘일만의 햇살’들이 무수히 터져나온다. 이것은 무한대의 빛이다. 무한의 햇살이다. 그러니 ‘사바의 노여움, 번뇌’가 뼈빠지게 줄행랑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해는 시간을 의미한다. 해는 365일의 시간 덩어리이다. 2008년의 해도 시간 덩어리이다. 그 무한대의 시간의 보자기, ‘0’가 한 명도 아닌 한 년도 아닌 2008년의 해를 양태지가 패대기치는 시힘에 의해서 그 견고한 시간의 껍질을 터트리고 ‘일만 햇살’, 즉 일만(무한대) 시간으로 터져나는 것이다. 그래서 2007년 동안 오지 않았던 2008년의 햇살이 온 누리에 퍼져 오르게 된 것이다.

일만 햇살의 장엄함 때문에 다가온 구름도 ‘암석불 사이에 모로 눕’는 것이다. 이 모로 눕는 것, 이것은 팔자(‘8’자)가 옆으로 눕는 것이다. 즉 ‘8’자를 90°로 회전시키는 것이다. 이 시각대의 모든 것이, 사 바세계의 자연이 모로 눕는 것이다.

이 태양의 외출 전에 이미 양태지는 ‘하늘로 뻗쳐오르는 저 바다의 용솟음’으로 우리 희망의 존재처럼 상징되는 바다의 골반을 갈라놓았다. 그런 다음에 대우주의 자궁, 그 무한대의 자궁을 열어 청명한 해를 발출시켰다. 그러고 난 다음에 출산한 아이의 볼기를 쳐 내리듯 그 년의 동그란 엉덩이를, 2008년(女ㄴ)의 해의 엉덩이를 여지없이 패대기쳐 버린 것이다.

‘하늘로 뻗쳐오르는 저 바다의 용솟음’의 상태 전에는 뻗쳐오르고 용솟음치게 하는 행위가 전제되어 있음을 내포하고 있다. 하늘로 뻗쳐오르고 용솟음치는 힘은 어마어마한 것이다.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폭탄의 폭발력으로 간주될 수 있는 것인데 그 힘의 분산이 있기에는 더 큰 핵폭탄의 폭발력과도 같은 힘의 뭉텅이가 바다에 가해졌을 경우가 전제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이 시를 창작한 사람만이 아는 것이다. 바다는 가만히 있고 태양도 가만히 있는데 작자가 심상 속에서 그렇게 활유법의 시힘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태양은 지구보다도 큰데 어떻게 지구의 일부분인 바다에서 태양이 나온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바다는 가만히 있는데 어떻게 용솟음친다고 할 수 있는가. 그것이 시의 힘이다. 양태지가 이끌고 있는 시어들의 폭발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시힘이 무엇인들 패대기치지 못할 것이 있겠는가.

양태지가 지니고 있는 그 시의 힘이 태양의 배를 갈라놓아 지금 막 ‘일만 햇살’의 시간들이 광란을 하고 있다. 그래서 ‘번뇌도 잠재우고’, ‘구름도 모로 눕고’, ‘바람도 쉬어’가는 등의 상황들이 오버랩 되며 자연의 힘 앞에서 만물이 경외심으로 숨죽이고 있는 향일암의 역사를 시화한다.

그리고 이젠 시간의 흐름에 따라 3째수와 4째수에서는 일상의 평온함이 깃들고 있다. 이 시의 4연이 모두 기승전결의 형식으로 평화로운 암자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 시는 시조의 기승전결의 형식을 무리 없이 따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거꾸로 이 시의 연을 배치한다고 해도 기승전결의 형식이 이루어지게 되어있다.

그래서 이 시조의 각 수를 거꾸로 배열하면 저녁부터 일출시까지의 광경을 묘사했다고 볼 수 있고, 이 시의 각 연을 지금처럼 배열하면 일출시부터 저녁까지의 남해바다의 아름다운 풍경을 화폭에 옮겨놓았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양태지가 그리고 있는 희망의 시간대는 무한의 시간의 집합체로서 기호로 표시하면 ‘0’이라 할 수 있다. ‘0’은 먼 바다의 시간의 수평선에서 떠오르는 해시계이며, 향일암의 이름에도 들어있는 이 해시계가 양태지의 이름에도 들어있어서 그의 시는 해의 몸통을 품은 막강한 파워를 자랑하고 있다.

첫수 마지막 잣수 3(용솟음), 둘째 수 마지막 잣수 4(쉬어간다), 셋째 수 마지막 잣수 4(합장하네), 넷째 수 마지막 잣수 3(흘러라) 등에서 잣수의 3/4/4/3의 변화에서 시의 꼬리를 풀고 매듭짓는 창작법을 볼 수 있다. 잣수 3에서 매듭짓고 다시 잣수 4에서 풀고 다시 3으로 매듭짓는 것이다. 물론, 이 변화의 묘미를 벗어나서 각 종장 끝을 잣수 3으로 통일하고 의미와 이미지의 신축성에서 파격적인 변화의 내밀함을 시도했다면 더욱 금상첨화일 것은 두말 할 것도 없을 것이다. 시조 문학은 극도로 제한된 절제의 미학을 품고 있다. 정해진 잣수에 따라 극도로 절제된 창작만이 민족성과 문학의 효용성이 마주칠 때 그 시조의 기대치를 극대화 할 수 있다.

양태지가 풀어놓은 이 시조의 배열대로 분석한다면 시조의 끝부분 종장의 처리들은 장엄하고 고요한 평화의 꿈으로 향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시조의 종장들의 첫수에서 ‘저 바다의 용솟음’, 둘째 수에서 ‘바람도 쉬어간다’, 셋째 수에서 ‘염화시 합장하네’, 넷째 수에서 ‘독경만이 흘러라.’ 등인데 첫 번째 수에서 치솟아 오르는 힘의 분출을 표현하고, 두 번째 수에서 힘의 분산을 안정적으로 다스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세 번째 수에서 합장까지 하면서 시간의 요동을 접는다. 이제 네 번째 수에서는 그저 그대로 두어도 될 만큼 안정권으로 진입하여 그대로 두기로 한다. 그래서 마지막 시어 ‘독경만이 흘러라.’도 방임의 자세를 취한다. 이제 이 시조의 임무를 마쳤으므로 마지막 수의 마지막 종장에 와서야 마침표를 기입한다.

그 마침표 또한 해의 알로써 시간의 중지를 뜻하는 것이며 이 시간의 중지는 완전무결한 완전의 상태, 정적의 상태로서 완전한 평화의 상태임을 말한다. 점(마침표)은 한 문장의 완성을 뜻하며 또한 한 문장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이다. 이 해의 알은 시간의 바다에서 알까기를 하며 튀어오를 준비를 하며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물론 출중한 시인이 다음에 또 나타나서 향일암(向日庵)의 의미대로 해를 연모하며 용솟음치는 시어의 폭발력으로 대우주 출산의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함은 두 말 할 것도 없다.

우리에게서 시조가 죽었다고 극언을 하는 사람도 있다. 또한 시조는 시가 아니라고 망언을 하는 사람도 간혹 있다. 시조문학이 홀대받는 이 어려운 시기에 이만큼의 시조를 쓸 수 있는 사람도 흔하지는 않다. 시조로 등단하는 사람들이 어찌된 영문인지 시조를 잘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문예지로 등단하는 작품 속에서 그런 슬픔을 보았다.

양태지는 시조를 알고 있다. 시조의 율격도 알고 있다. 시의 힘을 어떻게 매듭짓고 풀고 품어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그것을 대자연에 얼마나 매치(match)시켜서 응축되고 풀어지는 우주의 음향을 튼튼하게 엮어갈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앞으로 그의 성공의 열쇠가 될 것이다. (박인과 문학평론가)

 

[2009 신춘문예]시조 ‘연어를 꿈꾸다’ -김영희

시작이 끝이었나, 물길이 희미하다
매일 밤 고향으로 회귀하는 꿈꾸지만
길이란 보이지 않는 미망迷妄 속의 긴 강줄기
바다와 강 만나는 소용돌이 길목에서
은빛 비늘 털실 풀듯 올올이 뜯겨져도
뱃속에 감춘 꿈 하나 잰걸음 꼬리 친다
내 다시 태어나면 참꽃으로 피고 싶다
붉은 구름 얼룩달록 켜켜로 쌓인 아픔
흐르는 물속에 풀고 가풀막을 오른다
끝없이 이어지는 도저한 역류의 몸짓
마지막 불꽃이 타는 저녁 강은 황홀하다
비로소 바람에 맡겨 눈감고 몸을 연다

■ 당선 소감
헛헛한 세상 달래줄 수 있는 글 쓰고 싶어

응모 작품을 퇴고하고서 몹시 아팠습니다. 누군가의 가슴에 남는 글을 쓰고 싶었는데, 그렇지 못한 부끄러움과 욕심을 채워주지 못하는 부족한 재능을 탓하며 온몸이 무거웠습니다. 제 마음에 드리워진 무게는 결국 이틀 밤낮을 꼬박 앓게 했지만, 제 마음을 비우게도 했습니다.

신춘문예를 통과하고 문학 내공의 키도 훌쩍 자라 언젠가 시집을 내게 된다면 모든 이가 호응할 시조를 쓰리라 다짐했습니다. 이제 그 꿈을 향해 한발을 내딛습니다. 부족한 저에게 꿈의 문을 열어준 동아일보와 심사위원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시 쓴다는 핑계로 거실이며 안방 여기저기 널브러진 책과 잡동사니들을 기꺼이 눈감아주고 치워주기까지 한 그이와 아들 지성, 지강을 뜨겁게 포옹해주고 싶습니다. 시조의 세계로 이끄시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윤금초 선생님, 시의 깊이를 일깨워주신 이지엽 선생님, 처음 시조를 접하게 해준 주영숙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격려와 관심으로 용기를 북돋워준 민족시사관학교 선배 문우들, 함께 습작한 친구들과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헛헛한 세상과 쓸쓸한 영혼들을 달래줄 수 있는 글을 쓰기 위해 열심히 나를 채찍질하며 부지런히 주어진 길을 걷겠다는 다짐으로 오늘의 벅찬 희열을 대신합니다.

△1967년 대구 출생 △열린시조학회 회원

■ 심사평
낡은 글감 전혀 다른 새것으로 곱게 빚어내

새로 태어나는 모국어를 위해 시조는 오래 숨겨온 가락의 새 목청을 뽑는다. 응모작들에서 껍질을 깨려는 사나운 부리를 본다. 다만 발상의 자유로움과 형식미를 찾아내는 데에 끝까지 돌파하지 못함이 눈에 띄었다. 예년에 비해 당선권에 들어선 작품들이 높은 기량을 갖춰 당선작을 뽑는데 거듭 읽어야 했다.

당선작 ‘연어를 꿈꾸다’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시의 모천(母川)에 이르는 역류가 눈부시다. 회귀를 꿈꾸는 건 연어만이 아니다. 살아 있는 것은 모두 그를 낳아준 어머니의 땅으로 돌아가려 온 몸을 던진다. 오래 두고 써 왔던 낡은 글감을 전혀 다른 새것으로 빚는 일이 쉽지 않음에도, 서두르지 않고 시적 대상을 안으로 끌어들여 차분하게 시의 실마리를 풀어가고 있다. 시조의 틀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익숙하게 운용해 나가는 힘이나 낱말의 쓰임새도 고르게 놓여 있다. “비로소 바람에 맡겨 눈감고 몸을 연다”의 매듭이 더욱 빛난다. 그러나 시의 감도를 높이려면 외연보다는 내면의 공간을 좀더 깊이 천착했어야 했다. 지금부터가 출발점이고 시조의 넓은 수면에 역류의 속도를 더욱 내주기를 바란다.

마지막까지 겨뤘던 작품으론 박해성의 ‘빗살무늬토기’, 배종도의 ‘청자압형수적’, 황윤태의 ‘돌아오지 않는 소리’, 설우근의 ‘흡수불량증후군’, 배용주의 ‘자전거는 둥근 것을 좋아한다’ 등이 실험정신을 곁들인 탄탄한 역량을 보여줬음을 부기한다. / 이근배 시조시인

 

 

[신춘문예 시조 부분- 당선작] 인삼반가사유상 - 배우식

1
까만 어둠 헤집고 올라오는 꽃대 하나
인삼 꽃 피어나는 말간 소리 들린다.
그 끝을 무심히 따라가면 투명 창이 보인다.

2
한 사내가 꽃대 하나 밀어 올려 보낸 뒤
땅속에서 환하게 반가부좌 가만 튼다.
창문 안 들여다보는 내 눈에도 삼꽃 핀다.

무아경, 온몸에 흙물 쏟아져도 잔잔하다.
깊고 깊은 선정삼매 고요히 빠져있는
저 사내, 인삼반가사유상의 얼굴이 환하게 맑다.

3
홀연히 진박새가 날아들어 묵언 문다.
산 너머로 날아간 뒤 떠오르는 보름달,
그 사내 침묵의 사유가 만발하여 나도 환하다.

[신춘문예 시조 부분- 심사평] 잘 구워낸 소리와 빛깔 / 이근배·시인

오늘의 시조가 어디까지 왔는가는 신춘문예 응모작품들이 내비게이션으로 보여준다. 분명한 것은 시조가 앞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이 빨라지고 행렬이 늘어간다는 사실이다. 아직도 모국어의 경작을 꿈꾸는 천재들이 시조에 눈을 돌리거나 형식을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일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지 않은 속에서 새 모습의 시조를 들고 나오는 신인을 만날 때 그 기쁨은 더하게 된다.

장은수씨의 ‘새의 지문’ 변경서씨의 ‘일몰 앞에서’ 배종도씨의 ‘천마도장니’ 배우식씨의 ‘인삼반가사유상’이 각각 새맛내기의 솜씨를 보인 작품들이었다. ‘새의 지문’은 암사동 선사유적지에 있는 빗살무늬토기에서 새 한 마리를 꺼내들고 시간과 공간을 누비고 있는데 그만큼 한 깊이와 무게를 채우는데 틈이 있었다. ‘일몰 앞에서’는 지는 해가 연출하는 스펙터클을 강렬한 채색으로 그리고 있으나 사람의 그림자가 깃들어 있지 않음이 걸렸다. ‘천마도장니’는 너무 사실(史實)에 매달려 더 넓은 시야를 갖지 못했음이 시를 가두었다.

당선작 ‘인삼반가사유상’은 오래 흙 속에서 사람의 모습을 하고 태어난 인삼뿌리에 생각을 입혀서 소리와 빛깔을 알맞게 구워내고 있다. 쉽게 찾아지지 않는 글감을 골라 자연의 섭리와 인간의 사유를 명징한 이미지로 엮어내는 시적 기량이 믿음직스럽다. 앞으로 붓끝을 더 날 새워 시조의 틀을 새롭게 짜고 시상의 자유로움을 열어가기 바란다.

[신춘문예 시조 부분- 당선소감] "시조만을 껴안고 살아온 지난 시간들…"

신춘문예 당선! 전화기를 잡은 내 손에는 어느새 햇살이 가득 쥐어져 있었습니다. 내 마음 너무 환해 잠시 머뭇거리다 조심스럽게 한 발짝을 옮기며 잠깐 뒤를 돌아봅니다. 3년 전 우연히 서점에서 시조집 몇 권을 읽으면서 나는 약간의 제한된 틀 속에 자신을 구심점으로 모아 담는 현대시조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날 밤 집으로 가는 길에는 달 같은 시조와 함께 환하게 걸었습니다. 접었다 일시에 날개를 펼치고 비상하는가 싶다가도 어느새 시행에 다시 앉아 날아오를 자세를 취하는 긴장과 절제의 시조는 내게 정말 매력덩어리였습니다. 꿈속에서조차도 여백의 미에 흠뻑 빠져있는 내 삶은 온통 시조뿐이었습니다. 시조만을 껴안고 살아온 지난 시간들, 오늘은 시조가 나를 껴안아줍니다. 이제 다시 한 발짝을 옮기며 고마우신 분들의 이름을 가만히 불러봅니다.

존경하는 문덕수 선생님과 따뜻하게 격려해주시는 김규화, 최은하 선생님, 시조의 세계로 맨 처음 이끌어주신 윤금초 선생님, 고맙습니다. 열정적으로 가르침을 주시는 감태준, 이승하, 박제천 선생님, 늘 응원해주시는 이동희, 김명배, 박숙희 선생님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두 손 가득 환한 햇살을 쥐어주신 심사위원 이근배 선생님께 큰 절을 올립니다. 친구 송병록님, 변학섭님, 유경님, 그리고 격려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이렇게 고마움을 전할 수 있어서 오늘, 참 기쁩니다. 이 기쁨을 아내 박영자님, 아들 현성, 현중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1952년 충남 천안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졸업

 

[2009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그해 겨울 강구항
박미자

극(劇) 끝난 화면처럼 다 쓸린 해안선 따라
더 이상 참지 못해 안부 묻는 비릿한 초설(初雪)
복숭뼈 아려오도록 길을 모두 감춘다

흰 이빨 드러낸 파도 밤새 기침 해대고
사연 낚는, 집어등 즐비한 환한 횟집
화끈히 불붙는 소주로 동파의 밤 데워간다

가출한 갈매기 떼 돌아오는 아침이다
풍향계 돌려대는 바람은 신선하고
풀리는 뿌연 입김에 인화되는 흑백 한 컷


[당선소감]
소띠해는 분명 희망입니다

코끝이 싸한 삶을 연출하던 무대의 바다. 납작하게 엎드린 한 어촌을 집어삼킬 듯, 산만큼이나 배가 불러오던 아침해.

손 마디마디 옹이 진 늙은 어부는 찬바람 마시며 아직도 찢어진 그물코를 꿰매고 있을까. 아득하지만 생생한 빛바랜 흑백 필름 몇 컷을 되돌려 보면 아픔으로 잘려나간 NG 없는 단편적인 부분들, 아 아버지…. 이젠 고향엔 가지 않으리.

춥다. 만나는 사람마다 힘들고 어렵다고들 한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래도 살아 볼 만한 이 땅이 아닌가. 정녕 우리를 춥게 하는 건 삶의 구차함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돋아나는 불신의 독소일 것이다.

정신없이 돌아간 묵은해의 몇 달 동안 따뜻하게 손 내밀어 준 여러 지인님, 학부모님, 늘 부모님을 대신한 큰 언니, 고맙습니다. 그리고 극한 상황에서도 제 역할을 잘해 준 다혜 병곤아! 우리 모두 아빠의 빠른 쾌유를 빌자.

문학의 허기 앞에 목을 축여 준 울산 남부도서관 문예창작반 선생님, '문학' '글쌈' 선후배님, 무엇보다 설익은 작품을 선해 주신 심사위원님께 정진의 자세 잃지 않겠다는 말로 인사를 대신합니다.

제일 먼저 당선 소식을 전해 주신 기자님! 소띠해는 분명 희망입니다.

◆ 약력
▶1965년 경북 영덕 출생 ▶제32회 샘터시조상 장원 ▶ 2007년 유심시조백일장 장원 ▶ 중앙일보 시조백일장 2008년 6월 장원▶ 제2회 좋은생각 생활문예대상 금상 수상 ▶ 한국방송통신대학 유아교육과 졸업 ▶ 현재 한우리 독서·논술 지도사

[심사평]
시어 선택 신선하고 표현 뛰어나

현대시조 100년이 지난 오늘 시조가 현대시의 그것과 결코 다르지 않음은 금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조 응모작품들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난 현상이었다. 결코 자유시에 못지않은 비유와 상징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 만큼 높은 수준이었다.

최종 당선권으로 압축된 작품은 천강래 '노고단, 어느 날', 김상민 '쇠똥구리', 전해수 '겨울 꽃밭', 변경서 '써래질하는 사내', 이태호 '그 해 달월역', 배승우 '봉숭아', 나동광 '무화과나무 아래서', 조명수 '옹관 속으로', 송필국 '낡음에 대한 경의', 박해성 '그리운 사과에게' 그리고 당선작으로 뽑힌 박미자 씨의 '그해 겨울 강구항'이었다.

이 중 김상민, 이태호, 전해수, 변경서, 나동광, 송필국 씨의 작품이 완성도 면에서 제외되었고, 배승우, 조명수 씨의 작품 역시 음보의 불확실성이 지적되었다. 마지막으로 천강래 '노고단, 어느 날', 박해성의 '그리운 사과에게', 박미자 '그해 겨울 강구항'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 만큼 시적 성숙도가 다른 작품들에 월등 앞서 있었다. 그러나 박해성 씨와 천강래 씨의 경우 안정감은 있었으나 시를 끌고 가는 힘이 당선작에 비해 다소 부족했다.

당선작 '그해 겨울 강구항'은 다소 언어의 상충성이 없지는 않았으나 시어 선택이 다른 응모자의 작품들보다 신선하고 첫 수와 셋째 수 종장 표현을 현대시조의 시학적 관점에서 높이 평가했다. 당선자에게 축하와 함께 깊은 신뢰를 보낸다. / 심사위원 유재영

 

우도댁 - 김정숙

다단조로 내리던 게릴라성 폭우도 멎은
성산포와 우도사이 감청색 바닷길에
부르튼 뒤축을 끌며 도항선이 멀어져.

이 섬에도 저 섬에도 다리 뻗고 오르지 못해
선잠을 자다가도 붉게 일어나는 아침
어떻게 흘러온 길을, 제 무릎만 치는고.

눈 뜨면 부서지는 것쯤 타고난 팔자려니
젖었다가 마르고 말랐다가 또 젖는
짭짤한 물방울들에 씻기다만 저 생애.

[심사평]

시조의 품격은 정형이 빚는 정제미와 가락이 이끌어내는 긴장미에 의해서 정해진다. 형식이 주는 절제미란 언어 뒤에 숨겨진 공간의 여유와 어우러질 때 비로소 하나의 생명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결코 물리적인 언어의 분절이나 과도한 시상의 나열로는 감동에 이르게 할 수가 없다. 따라서 심사의 기준 또한 이런 맥락에서 접근하였다.
전체적으로 이번 응모작들의 수준은 상당한 기량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고심 끝에 마지막까지 남은 네 편의 작품은 쉽게 순위를 가릴 수 없을 정도로 각기 장단점을 지니고 있었다. 「겨울 강구항」 「우도 댁」과 같은 '가슴으로 쓴 시'와 「겨울, 랩소디」와 「몽자류 소설처럼」과 같은 '머리로 쓴 시'가 곧 그것이다.
박미자의 「겨울 강구항」은 발상과 언어의 구사능력이 돋보였으나 수식어의 선택과 종장처리가 미숙하였고 박해성의 「몽자류 소설처럼」은 풍부한 이미지와 시상의 범위에 호감이 갔으나 주제의 통일성을 잃은 아쉬움이 있었다.
마지막까지 남은 황윤태의 「겨울, 랩소디」와 김정숙의 「우도 댁」을 두고는 우열을 가리기가 쉽지 않았다. 「겨울, 랩소디」는 투명한 언어감각과 시상을 전개하는 역량이 돋보이는 작품이었으나 지나친 작위성으로 인해 이미지의 선명도가 떨어지는 흠이 아쉬웠다.
그에 비해 당선작으로 뽑은 「우도 댁」은 '우도'라는 섬의 태생적 한계를 온몸으로 이겨내는 한 여인의 아픈 삶을 리얼하게 형상화시켜 완성도를 높인 작품이다. 비록 그 처방까지 제시하지는 못했지만 섬과 바다와 우도 댁과 시인을 일체화시킨 체험적 진솔성과 절망을 극복하는 따뜻한 시선이 신뢰를 갖게 하였다.
좋은 시조는 사색과 사유를 넘어 통찰에 이른 작품이라고 보았을 때 앞으로 당선자는 이를 과제로 삼아 그 신뢰를 채워주기를 기대한다.

민병도(시조시인)

 

[2009년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우수 무렵 / 변경서

쑥 물 드는 을숙도엔 여백이 남아있다
스스로 몸 낮추며 드러누운 저 강물
나란히 일렬횡대로 명지바람* 불어오고

쓰다듬고 매만지면 상처도 꽃이 된다
떠났다가 때가 되면 다시 드는 밀물 썰물
웃을 일 슬픈 일들이 찰랑찰랑 뒤척인다

등 돌리면 공든탑도 모래성 되는 세월
겨울은 정이 들어 떠나기가 어려운지
갈대밭 하구를 따라 멈칫멈칫 걷고 있다.

▶명지바람 : 보드랍고 화창한 바람을 뜻하는 순 우리말.

[2009년 신춘문예] 시조 심사평
이미지의 교직과 의미화의 묘미

설레는 마음으로 한동안 작품을 읽게 된다.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기쁜 마음이다. 선자의 합의에 의해 '용강리 64번지'(오영민), '폭포'(김호), '우수 무렵'(변경서), '구름의 초상'(박해성), '요철의 법칙7'(이은암), '알'(김지송), '가랑잎 랩소디'(김상민) 등이 예선을 통과했다. 시어의 선택이 예사스럽지 않고, 율격도 나무랄 데 없다.

절제된 언어와 함축미, 적절한 비유와 활달한 시상, 전체적인 짜임과 흐름을 살피면서 숙고에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폭포'와 '용강리 64번지', '우수 무렵' 등을 가려놓고 거듭 읽게 된다. 오랜 시간 논의를 거듭한다. 김호의 '폭포'는 긍정적 인식에 의한 시어의 구사가 참신하고, 호흡의 흐름이 유장하여 공감을 사고 있으나, 짜임이 느슨하다. 오영민의 '용강리 64번지'는 추락해가는 고향 정서와 농촌의 현실 문제를 아프게 조명하고 있으나, 참신성이 요구된다.

변경서의 '우수 무렵'은 을숙도의 정경을 적절한 시어로 정갈하게 묘사하고 있다. 자연의 순환과정을 사람의 삶에 비겨 감칠맛 나게 묵히고 삭혀 숙련된 공력을 느끼게 한다. 이미지가 교직되면서 싱싱하게 살아 움직인다. 탄력성 있는 상의 전개와 감각을 의미화하는 능력이 돋보여 당선작으로 합의했다. 언어를 아름답게 직조하는 가인이 되리라 믿는다. / 본심 심사위원 임종찬(시조시인·부산대 교수) 김복근(시조시인)

 

[경상일보 신춘문예 -시조부문 당선작]

흰소를 타고 / 송지원
-이중섭의 일기

한밤을 새고 나면 절벽 같은 아침 온다
안개에 젖은 생각 무지개로 걸어도
화판 속 내 아이들은 웃을 줄을 모른다.

사부랑한 삶의 고리 다부지게 조여 본다
직강으로 쏟는 햇살 또 튕겨져 나가는 꿈
그리움 건너지 못한 바다 끌어안고 눕는데

거미보다 낮은 몸에 까마귀 떼 날아온다.
아이들 울음소리 경문처럼 박혀 와서
늘품 진 황소를 타고 무명으로 떠나는 길

어디로 갈 것인가 흰 뼈대만 있는 길을
천근의 무게 업고 뚜벅뚜벅 걸어가면
마침내 또 다른 문이 어둠속에 열린다.

[● 심사평]표현·구성 빼어나

17명의 작품 71편이 예심을 거쳐 최종심사 대상이 됐다. 여기서 다시 당선권으로 압축된 작품은 여섯 편. ‘감은사지에 와서’ ‘반구대 기행’은 형식과 시적 수사에서 평가받기에 충분했으나 ‘후학들 눈 틔운 포은 학이 되어 날아갔고’(반구대 기행)나 ‘남은 생, 지척에 모시는 시종이나 될까보다’(감은사지에 와서)와 같은 낡은 표현들이 작품의 완성도를 크게 떨어뜨렸다.

‘새소리 귀에 젖다’의 경우 ‘해 진다 서글퍼 않고, 달 뜬다 갈채도 없이’(새소리 귀에 젖다)와 같은 평이한 표현들이 시의 균형을 깨트리고 있었고, ‘가는 정 오는 정’의 경우에는 작품을 다루는 솜씨가 부분적으로 뛰어났으나 당선작으로 밀기에는 정서의 일관성이 부족해 보였다. 같은 이의 작품 ‘五色川 訃音’ 역시 소재의 특수성에 비해 성급하게 다룬 점이 무엇보다도 아쉬웠다.

마지막으로 남은 두 작품은 일장일단이 있었다. 우선 ‘칼 가는 사람’은 손색이 없을만큼 구성이 탄탄하고 전개가 활달했다. 또 아버지를 등장시켜 감성적 밀도를 높이는데 성공을 거두고 있었으나 ‘푸르죽죽 거친 손에 때 묻은 낙엽 몇 장’과 같은 표현은 첫수 전체의 구도상의 문제로 지적됐다.

당선작 ‘흰 소를 타고’는 표현과 구성면에서 앞선 작품들에 비해 나무랄 데가 없었다. 특히 넷째 수의 생동감 넘치는 표현은 응모자의 시적 신뢰를 갖게 했다. 그러나 ‘칼’(칼 가는 사람)의 참신성에 비해 ‘이중섭’(흰 소를 타고)이라는 소재가 너무 흔하고 식상한 것이어서 소재의 참신성이냐 완성도냐를 두고 최종 결정을 망설이게 했지만 결국 ‘흰 소를 타고’를 당선작으로 뽑은 것은 응모자의 다른 작품들도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시인으로서 성장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더 커보였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이다.

앞으로 소재의 다양성과 표현의 섬세함을 더 한다면 분명 우리 곁에서 기억에 남을 좋은 시인 하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 심사위원 유재영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허 균(許筠)/박성민  

 

때늦은 여름밤에 그대 마음 읽는다

지금도 하늘에선 칼 씌워 잠그는 소리

보름달 사약 사발로 떠 먹구름을 삼켰다 

 

어탁(魚拓)처럼 비릿한 실록의 밤마다

먹물로 번져가는 모반의 꿈 잠재우면 

뒷산의 멧새소리만 여러 날을 울고 갔다

 

 

 

심사평 - 압축된 정형미… 탄탄한 짜임새  

 

감상적 아나키에 휩싸인 듯이 감정이 과잉 소비되는 요즘,쉽게 뜨거워졌다가 다시 쉽게 식어 버리는 마음들이 넘친다.이처럼 정서의 기복이 심한 초고속 감정의 현대에도 오랜 전통의 시조가 어울리는 까닭은 정형의 틀로 어지러운 생각을 추스르고,운율 안에 서정이 담긴 고유 미학 때문이다.   

 

 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 응모작은 천년 역사를 지닌 시조의 현대적 진화를 개척하고 있다.그런 만큼 당선작을 1편이 아니라 20편가량 선정하고 싶을 만큼 수준 높은 완성도를 보였고,시적 호흡을 길게 하면서도 짜임새를 잃지 않은 3~5수에 이르는 작품들이 많았다.정형시의 구성을 지키면서 저마다의 해석을 가미하여 운율의 묘미를 살렸고,글감의 다양성이 발상의 실험에 그치지 않고 노련한 창작으로 이어져 현대 시조에 대한 이해가 새로워지고 있음도 확인되었다.

 당선작 박성민의 ‘허균(許筠)’은 무엇보다 압축된 정형미가 돋보인다.3수 이상이 주를 이루는 응모작들 사이에서 ‘허균(許筠)’은 2수로 되어 다소 간결하게 보이나,구성의 부피감과 상관없이 탄탄한 짜임새가 작품 전반에 힘을 실어 주고 있다.역사 속의 인물 ‘허균’을 소재로 삼으면서 이야기 서술로 흐르지 않고 내적으로 승화시켜 역량을 발휘하며,빼어난 이미지 형상화까지 더해져 시조의 품격과 날카로운 감수성을 함께 갖춘 절창이다.

 

 최종심에 오른 김문정의 ‘환한 그늘’,최순섭의 ‘가을 흰 나비’,황윤태의 ‘외도,보타니아의 저녁’,천강래의 ‘겨울비-어느 탈북 미망인’,방승길의 ‘흙 한 줌도 뜨거운,-무용총 수렵도’ 또한 남다른 착상의 시어와 매끄럽게 재단된 표현이 뛰어난 연륜을 보였다.다만,심상의 이미지 전환,그리고 각각의 연과 언어의 흐름이 만들어 내는 시적 리듬에 있어 아쉬움을 남겼다.이들과 더불어 응모작들 편편마다 시조의 밝은 앞날을 예시하고 있는 것이 장르의 기쁜 수확이라 여겨진다.

 

 

[2009 영주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소방수첩 2 / 강경훈

한 달 넘는 수색에도 못 찾던 그 소녀를
개가 찾아냈다. 수확 끝난 과수원에서
개만도 못한 이 세상, 내가 내게 침 뱉는다.

용서하라, 이 땅의 남자들을 용서하라.
얼음장 같은 땅을 깨고 나온 복수초
서귀포 노란 봄날을 다시 한번 묻고 싶다.

[당선소감]

사진작가 김영갑 선생은 용눈이 오름에서 ‘이어도를 봤다’고 했다.
나는 용눈이 오름을 오를 때마다 그가 봤다는 용눈이 오름이 어느 쪽 방향일까 하는 1차원적 생각만 했다. 둘러봐도 허허벌판에 오름들만 몇 개 솟았을 뿐인 것을.

그 오름들 중에서 유난히 우뚝한 오름이 있었다. 언제 한 번 그 오름에 가 봐야 되겠다는 생각만 늘 되뇌이고 있었다.
오늘 마침내 그 오름에 올랐다. 당선통보를 받은 시각, 왜 내가 그곳으로 갔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 오름이 바로 다랑쉬다.

사실 다랑쉬는 품새도 좋고, 높아서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데 오늘에야 이 곳에 올 수 있었던 것은 내 삶의 전환점에 좋은 인연이 되고자 함은 아니었을까.

직장에 첫 발을 내디뎠을 때 어느 선배가 말했다.
‘소방관에게 포기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포기라는 건 생명을 담보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의 눈에도 서귀포의 어느 봄날은 분명 슬픔과 절망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그냥 있기엔 세상을 향해 내리쬐던 봄볕이 너무도 따뜻했었다.
오늘은 이 곳에 와 내년 봄 얼음새꽃이 환하게 피어나기를 기도해 본다.

다랑쉬 오름에 함께 올라주신 정드리 가족 여러분께 고마운 마음을 전해야 하겠다.
추호도 흐트러짐 없이 갈 작정이다.

부족한 글을 뽑아 올려주신 심사위원 선생님, 그리고 뉴스제주신문사에 큰절을 올린다.
이쯤에서 내 가족들에게도 ‘사랑한다’는 귓속말을 전해야겠다.

▲주소: 제주시 연동 1965-4번지 신광아파트 807호
▲연락처: 017-699-1882

1975년 제주시 애월읍 상가리 출생
‘정드리사람들’ 회원
제주소방서 근무

[심사평]

흔히들 시조를 민족시․겨레시라고들 한다.

다양한 우리민족의 정서를 절제된 언어의 묘미로 담아낼 수 있는 운율적 구조(형식)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현대시조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이러한 전통적 특성을 어떻게 현대적 감각을 가미하며 계승 발전 시켜 나가느냐 하는데 있다 하겠다.

본심에 올라온 다섯 편의 시조 즉, 단풍책(김형태), 겨울 속초에서(김화섭), 학교 공사장을 지나며(나동광), 제주 물영아리오름 습지(이우식), 소방수첩․2(강경훈)의 작품은 저마다 신인다운 패기와 실험성을 지니고 있지만, 이 땅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명징하지가 않았다. 읽고 나서 무릎을 친다거나 진한 감동으로 코끝이 찡해지는 그런 작품들이 드물다는 뜻이다.

‘겨울 속초에서’와 ‘학교 공사장을 지나며’는 경제적으로 힘든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지만, 완성도가 약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소리도 없는 것이 아쉬웠다.

‘제주 물영아리 습지’는 생태 환경적인 측면을 다루고자 했지만, 시상 전개가산만한 게 흠이었다.

‘단풍책’은 다소 동시풍이고 4수를 한 편의 시로 끌고 가는 솜씨도 결코 녹록치 않다. 특히 선자는 넷째 수에 주목했다.

‘달랑 남은 마지막 단원마저/읽혀져 나가고 책의 올곧은 뼈대와 영혼이 오롯할 때까지/ 가을은/ 쉬지도 않고 읽고 또 읽어낸다’는 표현들은 돋보인다.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앞서 지적한 대로 메시지의 명징성의 결여가 문제였다.

결국 마지막 남은 「소방수첩․2」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무릎을 칠 정도는 아니지만, 읽고 나면 뭔가 코끝이 찡해지는 메시지가 다가온다.

아마 응모자는 소방관련 부서에서 일하는 사람인 것 같다. 제목이 암시하듯, 현장에 출동해서 사건 사고를 마무리 하고 그것을 일기 쓰듯 표현해 나가고 있다는 사실이 그가 보낸 소방수첩 연작시 여러 편으로 입증된다. 직업이 소방관이라면 이런 작업도 신선한 시도로 받아들일 수 있다.
축하하면서 대성을 빈다. <심사위원 정인수>

 

찔레의 방 / 오영민 (2010년 국제신문)



병원 문을 나서다 하늘 올려다 본다

아기인 듯 품에 안긴 찔레 같은 어머니

기억의 매듭을 풀며 꽃잎 툭툭, 떨어지고 


잔가시 오래도록 명치끝 겨누면서

수액 빠진 몸뚱이로 물구나무 서보라며

먼 바다 어느 끝으로 내몰리는 나를 본다 


파도 끝 수평선은 붉은 줄 내리 긋고

굽 닳은 하루해가 출렁이다 멈춰 선 곳

익명의 불빛이 와서 꽃잎으로 흔들린다


[당선소감]


모든 분들이 달아주신 이 아름다운 날개


잊고 살았었다. 습관처럼 서점에 들러 시집을 사던 버릇을 고치고 난 후, 모두 잊고 있었다.

다시 펜을 들었을 때는 서른을 훌쩍 넘긴 적지 않은 나이였고, 남편도 아이도 있었다.

그렇게 꿈은 잠시 숨어있다 다시 고개를 쑤욱 내밀어 내 앞을 서성이며 조롱하듯 글을 쓰게 만들었고, 나는 신기하게도 시조 속으로 빠져들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 일들이 내겐 많았었기에, 당선전화를 받고서도 나의 눈물은 서러웠는지 한참을 멈추지 않았다. 당선 전화를 받던 날은 생일이 이틀 지난 오후였다. 세상에 그렇게 멋지고 화려한 선물이 또 있을까. 온전하게 내 몫으로 다가온 이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은 분들이 너무 많다.


아직 덜 여문 열매에 단비를 내려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리며, 이 멋진 날개를 달기위해 허둥거리던 지난 몇 해 내게 달디 단 가르침을 주신 이승현 시인님. 변현상 시인님. 서정택 시인님. 그리고 인터넷 문학클럽 시로 여는 이-좋은 세상의 회원님들과 권갑하 시인님 께 감사드린다.


신춘을 준비하면서 몇 달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내로 만들어 달라고 했던 약속을 지켜준 남편에게도 감사하며, 저의 당선작 속 주인공이신 어머님께도 이 기쁨을 전하고 싶다.


모든 분들이 달아주신 이 예쁜 날개에 절대 흉터가 남지 않는 좋은 글 쓰도록 노력하리라 다짐해 보며, 오늘의 기쁨이 자만이 되지 않도록 다시 나를 다듬어 본다.


〈약력〉 ▷1972년 경남 창원 출생 ▷인터넷 문학클럽 '시로 여는 이-좋은 세상' 부설 현대시조 아카데미에서 시조공부를 함


[심사평]


현대인의 정체성을 품격 높은 시조로 잘 살려


400여 편의 많은 응모작도 근래에 보기 드문 양이려니와 작품들의 질적 수준 또한 하나같이 만만치 않아 최종심 몇 편을 고르는 일조차 그리 녹록한 일은 아니었다.


그 중에서 시조의 멋과 맛을 동시에 지니면서 시대에 대한 작가의 예리한 통찰이 엿보이는 작품으로 '눈 밖에 나다', '아프리카 대륙 서쪽 세네갈이란 나라 있지', '수련은 수련 중이다' 그리고 오영민의 '찔레의 방', '구두' 가 결심에 올랐다.

'눈 밖에 나다'는 서편제에 등장하는 주인공 '송화'의 삶이라는 설화적 모티브가, ' 아프리카 대륙 서쪽 세네갈이란 나라 있지'라는 작품은 시공(時空)을 뛰어넘는 인류애가 돋보였지만 시조의 품격과 치열한 시정신이 아쉬웠다.


선자들의 시선을 끝까지 붙든 작품이 '수련은 수련 중이다'와 오영민의 '찔레의 방'이었다. 시어를 갈고 닦는 솜씨와 이미지를 빚어내는 기교가 둘 다 탁월했지만 수련의 개화 장면을 '환상의 발레리나'로, 자연친화적 장면을 '환상의 세레나데'라고 읊은 상투성이 눈에 거슬렸다. 오영민의 '찔레의 방'은 팽팽한 시적 긴장 속에서 파편화의 길을 가는 현대인의 현실적 고뇌를 집요하게 시조화한 점이 빼어나다. 특히 운명에 무덤덤해질 수밖에 없는, 인간답지 못한 현대인의 정체를 암시와 상징으로 냉철히 응시한 점이 새롭다. 대성을 빈다. (이우걸 전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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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산란/배경희 (2010년 서울신문)


모든 것이 사라져도 바람은 존재한다

수천 년 살아있는 혼들의 화석처럼
떠돌며 우리의 삶 속에 잔뿌리를 내린다 
 


당신은 허공 속의 자궁에서 태어난다

힘들고 지친 자들의 울음을 파먹으며

온몸을 먹구름 속에 수없이 휘어가며  


밤새 비 쏟아지고 나무를 두드렸던

바람 새들 불러 모아 한바탕 쓸고 간

마당엔 햇살 물고기 푸륵푸륵 뛰논다


[당선소감]


“방황하는 난 늘 뒤에 있었다”


현재 진행형, 내면의 방황을 하면서 늘 나는 뒤에 있었습니다. 어릴 적 대추나무 아래서 어머니를 온종일 기다렸던 시간들, 먼 한천 내를 바라보면서 질경이를 질기도록 뜯었던 시간들, 한천 둑방길을 끝없이 걸었던 시간들, 그러한 기억들이 저를 있게 한 힘이었습니다.

지금도 어렴풋이 생각이 납니다. 아무도 없는 마당 위 햇빛 재잘거림과 나무의 그림자가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한낮은 구름 양떼를 이끌고 돌아온 하늘 집이었습니다.

그 그리움으로 외로움을 지탱하며 시를 습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 시절 도종환 선생님, 송찬호 선생님께서 큰 힘을 주셨습니다. 그 길을 근근이 걸어 온 10년이라는 세월, 저의 시는 더뎠습니다.


우연히 정수자 선생님 시조를 읽고 느낀 시조의 깊이와 여백의 미. 그것은 큰 나무가 되기 위해 잔가지를 치는 것 같았습니다. 시조는 격이 있는 나무였습니다. 그 격조와 함께하고 싶었습니다. 취미 삼아 그림 붓질을 해온 터이지만, 시조는 그림과 다른 위안과 힘을 주었습니다. 시조는 길가에 핀 들풀이나 풀잎에 맺힌 물방울, 그 안에 숨은 우주를 보는 것, 징을 울릴 때의 파문, 울림 같은 것이었습니다.


파편 속에서 전체를 볼 수 있는 마음을 기르겠습니다. 갈 길이 멀지만 그만큼 더 노력하겠습니다. 부족하고 더없이 부족한 저를 격려하고 이끌어 주신 수자 선생님, 그리고 보이지 않게 성원해준 우리 가족과 부모님께 감사드리고, 선정해주신 심사위원님들과 서울신문사에 감사드립니다.

■ 약력

-1967년생 충북 청원 출생

-2009년 7월 중앙일보 시조 장원


[심사평]


이미지와 정형미의 융합


문단의 지형도에 첨예한 서슬과 싱그러운 기세를 불어넣는 것이 신춘문예이다. 시조 부문에서는 해마다 응모작이 수적으로 늘어나고 문학적 성취도 높아지고 있다.

가장 반가운 움직임은 견고한 천년의 내력을 간직한 시조에 바로 지금 시점의 생기 도는 감각을 선사함으로써 새로운 심미를 탐색하고 있는 시도들이다.

당선작에 선정된 배경희의 ‘바람의 산란’은 감수성이 흐드러진 시상을 펼치는 가운데 시조만의 정형 또한 탄탄하게 지키고 있다.

이러한 조합을 기반으로, 시적 이야기를 매끄럽게 전개시킨 것도 주시할 만하다. 인간의 삶을 ‘바람’으로 투영하는 과정에서, 실체 없는 심상을 선연한 이미지로 옮기고 있어 부단한 생각의 깊이와 무게가 느껴지며, 가락을 유희하는 듯이 구성한 정서의 흐름이 노련하다.

최종심에 오른 후보작은 강연숙의 ‘청자상감범나비-애벌레의 꿈’, 송필국의 ‘새하얀 삘기꽃만 눈발처럼 흩날리고-장 프랑수와 밀레의 이삭줍기’, 장은수의 ‘새의 지문’, 김대룡의 ‘우항리를 지나며’, 이상근의 ‘그림 일기’ 등이다.

이미 각자 뛰어난 특질을 갖추고 있으므로, 내면 세계에만 머무르지 않는 소통의 시어를 찾으며 장르에 부합할 정형미를 가다듬고, 소재와 묘사에 접근하는 발상을 과감히 바꾼다면 모두가 시조 시단의 놀라운 기량이 될 것으로 믿는다. (한분순,·이근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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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혹은 목련 / 박해성 (2010년 동아일보)



앙가슴 하얀 새가 허공 한 끝 끌고 가다

문든 멈춘 자리

매듭 스롯 풀린 고요

콕 콕 콕

잔가지마다 제 입김 불어넣는


그 눈빛 낯이 익어 한참 바라봤지만

난시가 깊어졌나.

이름도 잘 모르겠다

시간의

녹슨 파편이 낮달로 걸린 오후


은밀하게 징거맸던 앞섶 이냥 풀어놓고

곱하고 나누다가

소수점만 남은 봄 날

화르르!

깃 터는 목련, 빈손이 사뿐하다


[당선소감]


지독한 불면의 실마리 이제야 겨우 잡힐 듯


아침에 눈을 뜨고 냉수 한 컵 마십니다, 비수처럼 서늘히 가슴에 꽂히는 한강 줄기! 웅녀가 마셨던 그 강물이 내 몸을 깨웁니다. 이제야 겨우 잡힐 듯한 지독한 불면의 실마리, 그게 바로 시였습니다. 신전의 대리석 기둥같이 나를 지탱해주는, 아니 저항할 수 없는 견고함으로 나를 압도하는 나의 천국, 나의 지옥 그리고….


아버지, 당신의 바람 같은 자유를 증오했고 출구 없는 가난을 저주했으며 타협할 줄 모르는 우직함을 원망했었지만 대책 없이 당신을 닮은 딸이 이 허허한 벌판에 맨발로 섰습니다. 오늘은 따듯한 그 등에 업혀 아이처럼 실컷 울고 싶습니다.


나의 첫 번째 독자이자 절대 팬인 남편 이조훈 님에게 이 영광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딸 명휘 승휘, 아들 승규와 새로이 가족이 된 티머시 미드와 배지현에게 부끄럽지 않은 시인이 되리라 다짐합니다. 6년의 습작기간을 채찍질해 주신 지도교수님과 동행한 문우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내 문학의 모태가 되어준 경기대학교 국문학과에 빛이 있기를!


졸작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합니다. 고루한 편견 없이 평등의 정의를 실천하는 동아일보에서 희망을 읽습니다. 누군가에게 빛과 소금이 되는 ‘사람’이고자 노력하겠습니다.


[심사평]


모국어의 가락을 가장 높은 음계로 끌어올리는 시조의 새로운 가능성을 신춘문예에서 읽는다. 올해는 더욱 많은 작품이 각기 글감찾기와 말맛내기에서 기량을 보이고 있어 오직 한 편을 고르기에 어려움을 겪는 즐거움이 있었다.


‘에세닌의 시를 읽는 겨울밤’ (이윤훈)은 서른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러시아 시인의 이름을 빌려 자작나무 숲이 있는 겨울 풍경 속으로 끌고 들어가고 있는데 시어의 새 맛이 덜 나고 ‘새로움에 대한 사색’ (송필국)은 고려의 충신 길재의 사당 ‘채미정’을 소재로 생각의 깊이를 파고들었으나 한문투가 거슬렸다. ‘널결눈빛’ (장은수)은 해인사 장경판전의 장엄을 들고 나왔으나 글이 설었으며 ‘빛의 걸음걸이’ (고은희)는 말의 꾸밈이 매우 세련되었으나 이미지를 받치는 주제가 미흡했고 ‘도비도 시편’ (김대룡)은 지금은 뭍이 된 내포의 한 섬을 배경으로 역사성을 갈무리해서 완성도를 보였으나 내용과 형식의 새로운 해석을 얻지 못했다.


당선작 ‘새 혹은 목련’(박해성)은 ‘왜 시조인가?’에 대한 분명한 답을 주는 작품이다. 역사적 사물이나 자연의 묘사가 아니더라도 현대시조로서의 기능을 오히려 깍듯이 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활짝 열고 있다. 감성의 붓놀림과 말의 꺾음과 이음새가 시조가 아니고는 감당 못할 모국어의 날렵한 비상이 맑은 음색을 끌고 온다. 더불어 시인의 힘찬 날갯짓을 빈다.

(이근배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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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토머리 강가에서 / 김환수(2010년 부산일보)


갯버들 가장귀에 물구나무선 눈먼 햇살

풋잠 든 하얀 잎눈 이따금 들여다본다.

도톰한 봄의 실핏줄, 돋을새김 불거지고. 


물비늘 풀어헤친 낯익은 수면 위로

명지바람 건듯 일어 빗살무늬 그려내고

웅크린 이른 봄날을 종종걸음 재우친다. 


귓가에 기웃거리는 자갈밭 여울물 소리

백일 남짓 어린애가 옹알이하듯 재잘대고

산그늘 조금씩 끌어당겨 정수리를 덮고 있다. 


몇 겹의 물굽이가 수만 번 날을 세워야

딱지 앉은 상처처럼 푸른 문신 새겨낼까

겨우내 숨죽인 강물, 접힌 허리 쭉쭉 편다.


[당선소감] 자그마한 꽃대 하나


갑자기 몰아닥친 한파가 살을 에는 늦은 오후에 한 통의 당선 전화를 받았습니다. 우리 민족의 고유한 문학양식인, 전통과 조화를 이룬 현대시조가 3장 6구 정형의 틀 속에 언어의 압축미를 통해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어 가는 그 매력에 푹 빠졌습니다. 시조와 함께한 지난 4년이 너무나도 빨리 지나간 것 같습니다. 노숙자 무료 급식소에 관한 작품을 써놓고 직접 현장에 가서 자원봉사를 하던 일, 여름날 산과 들로 나가 여우비 맞던 일, 박물관에 들러 유물을 관찰하던 일 등등 시조가 내 몸속에 자리 잡고 자그마한 꽃대 하나를 물어 올리고 있는 것을 이제야 알겠습니다.


지난 5월에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무척 납니다. 3년 반의 투병 생활을 하면서 힘든 모습을 한 번도 내색하지 않고 몸을 낮춰 행동하라고 늘 당신보다 자식 걱정만 하던 아버지를 생각하며 큰 소리로 부르고 싶습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설익은 작품을 뽑아주신 부산일보사와 심사위원 선생님, 저에게 시조의 길로 인도해주시고 이끌어주신 윤금초 교수님께 고개 숙여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민족시사관학교 선배 문우들께 영광을 돌리고 싶고 시골에 홀로 계신 어머님과 말없이 지켜봐준 가족들과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김환수 / 1962년 경북 고령 출생. 에스엘㈜ 근무. 민족시사관학교 회원.


[심사평] '언어예술' 원론적 명제 충실


우리 모국어가 시조의 형식미학의 천착을 통해 더욱 아름답게 정제되기를 바라면서 부일신춘문예 심사에 임했다.


올해의 응모작 350여 편을 꼼꼼하게 다 읽고 난 후 네 편을 뽑아들었다. '매화'(이성배), '새우'(서상규), '구상나무, 적멸에 들다'(김봉집), '해토머리 강가에서'(김진우)가 최종심에 오른 작품이다. '새우'는 착상과 상상력의 전개가 이채롭다. 새우가 지닌 C자형의 모양과 웅크린 노숙자의 잠자는 자세에서 유사성을 찾아 현실문제를 부각시킨 점을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시의 메시지가 좀더 명료한 이미지로 직조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더욱 정진하면 좋은 시조시인이 될 것 같다. '매화'의 작가는 시적 감수성은 뛰어나지만 아직 표현의 미숙성이 가시지 않고 있다. 그러나 '매화는 겨울의 뼈로 녹여 만든 꽃망울'과 같은 이미지는 그의 시적 재능을 가늠케 한다. 마지막까지 남아서 경합한 작품이 '구상나무, 적멸에 들다'와 '해토머리 강가에서'이다. '구상나무, 적멸에 들다'는 선이 굵고, 깊은 사유와 정신의 기개를 느끼게 하며 시적 에너지가 충일한 반면, '해토머리 강가에서'는 보다 섬세한 감성으로 언어미감에 충실하며 이미지의 조형이 탁월했다. 시는 언어예술이라는 원론적 명제에 성실하게 맥이 닿아 있다. 다시 말해 주제의식의 예술적 형상화가 시조의 그릇에 넘치지 않도록 축조했다. 당선을 축하드리며 정진을 당부한다. (정해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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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나물 일기/ 조민희 ( 2010년 조선일보)



하지 무렵 짧은 고요 어둠에 잠겨 든다.

별꽃 뜬 어둑새벽 그믐달과 살을 섞고

쟁쟁한 징소리 내며 두 손 밀어 올린다.


노굿이 날개 접고 지어가는 고치 속에

갇혔다 튕겨진 몸, 바람에 여위어 가고

이제는 못 삭힌 열망 갈증으로 남는다.


눈물로 녹여낼까? 꺼내어 든 물음표

외발로 등 기대고 소통의 문을 연다.

화들짝 개나리 피어 또 한 생이 열리고.


번잡한 영등포역 문 헐거운 국밥집에서

인력시장 줄 선 사내 빈속을 달래 주는

그렇게 열반에 든다, 누추한 시대 성자처럼…


[당선소감]


도전의 활 시위 당길 수 있게 독려해 준 분들께 감사


늦게 김장을 담그던 날, 당선 통보를 받았다. 반가움보다는 떨림이 앞섰다. 칠순을 넘긴 나이에 웬 욕심으로 신춘문예에 도전했느냐는 질책을 받을 것 같은 두려움이 내면에 도사리고 있었나 보다.
65세에 조선대 평생교육원 문창과에 입학해 시 쓰기를 시작했고 4년 만에 당선의 기쁨을 안게 됐다. 50년 전 내 고교시절 담임이셨던 조복남 선생님의 권유가 아니었다면 지금 이 순간은 없었을 것이다. 친정 백부이신 조설현은 립운동가 신석우가 1920년대 조선일보를 인수할 때 참여했던 분이어서 조선일보를 통한 등단이 내겐 더욱 큰 의미를 지닌다.
  나를 시의 세계로 이끌어 주신 문병란 교수님, 젊은 분들 사이에 끼어 공부할 수 있게 허락하시고, 시 분석의 즐거움을 맛보게 해 주신 전원범 교수님, 정원철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말부림의 멋과 현대시조의 광맥을 찾아가는 민족시사관학교 윤금초 선생님과 문우와 함께 이 기쁨을 나누고 싶다. 사랑과 행복한 삶을 실천하는 복음교회 목사님과 교우들의 가르침을 받아서 따뜻한 시와 시조로 보답하련다. 도전의 활시위를 당길 수 있게 독려해 준 박현덕 시인, 이보영 시인에게 감사하고 심사위원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조민희

▲1940년 전남 영광 출생

▲조선대 가정학과


[심사평]


서정의 화법으로 선보인 현대적 운율 돋보여


올해 시조 부문의 응모작들은 재기 넘치는 시도들이 저마다의 완성도를 겨루었다. 낱말의 시각적 배치로 확보하는 신선한 형식미, 고시조의 강박을 벗어나 다양화된 소재, 현시대와 소통할 만한 말랑하며 친밀한 서술로 돋보이는 수작들이 많았다.

그러나 응모작들 가운데 그럴듯한 시어들의 기계적 나열에만 그치는 것도, 초장 중장 종장의 글자 수를 교과서 같이 맞춰서 리듬감을 잃는 것도, 모두 운율의 묘미를 살리지 못한 작품도 눈에 띈다. 최종심에 오른 작품들은 '그 밤의 타클라마칸' '난(蘭)의 겨울' '무' '노래하는 돌'이다. 이들 모두 당선될 만한 역량을 지녔으나, 난해한 수사법이 몰입과 이해를 가로막고, 처연한 독백에 머물러 긍정의 혜안으로 전환되지 않은 미비함이 보인다. 또한 시조의 결정적 아름다움, 다시 말해 종장의 수려한 마무리를 놓치고 있다.


당선작은 조민희의 '콩나물 일기'이다. 삶의 소소한 편린에서 착안한 진정의 공감을 바탕으로, 시조의 형식 미학을 지키면서 틀에 구애되지 않는 현대적 운율을 구사한다. 그리고 세밀하게 흐르는 기승전결이 뚜렷한 형상화와 어우러져 여향을 남긴 결구까지 서술과 서정이 조합된 화법을 보이고 있다.

앞으로 현대 시조의 범주를 새롭게 확장시킬 솔깃한 기질의 발견이라 여긴다. (한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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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바다 / 조춘희 (2010년 경남신문)



아버지,

수면을 두드리지 마세요

수평의 긴장을

간신히 지탱하는

해저의

섬과 섬 사이

안간힘을 보세요


아버지,

낚싯줄을 던지지 마세요

거멀못 박아둔 자리

새물이 차올라

파도는

푸른 비린내

바다를 토막내어요


아가야,

염려말고 바다를 보아라

달을 안고 뒤척이는

바다의 설렘을

지금 막

사랑을 품고

마음 붉어지는 찰나란다


[당선 소감]


파도의 리듬을 닮은 시조 쓸 것


바다가 잉태한 섬, 그 섬에 태생을 둔 저는 바다의 언어로 서정을 배웠습니다. 문학을 하겠다고 무작정 뭍으로 나왔으나 바다의 언어는 자주 길을 잃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는 문학을 하겠다는 당찬 자신감마저 잃은 채 휘청거리기도 했습니다. 바다의 언어만으로는 세상과 소통할 수 없겠다는 좌절을 느낄 즈음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건 흡사 나의 서정도 소통될 수 있다는 천명(天命)을 받은 것처럼 설레는 일이었습니다. 아마도 그 순간, 사량도의 바다도 출렁, 했겠지요? 무덤 속의 할머니도 덩실, 춤을 추셨겠지요?


제가 여전히 뭍에서 바다를 말할 수 있는 것은 바다의 태생을 물려주신 부모님께서 아직도 그 섬, 사량도에 계시는 덕분입니다. 제가 누릴 기쁨이 있다면, 그것은 온전히 딸의 느린 걸음에도 재촉하는 법이 없으신 부모님께 돌려야 할 몫일 겁니다. 늘 문학을 꿈꿨으나 현실의 짐과 바꿀 수밖에 없었던 언니와 이제 막 결혼을 한 오빠, 그리고 내 동생 영석과 형부의 응원에 감사합니다. 뭍에서 사는 법을 일러주시는 민병기 교수님과 김정자 교수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멋모르던 어린 시절 시조의 존재를 일러주신 김형진 선생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 멈춰 서 있던 제 삶에 신발을 신겨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설렘 한편에는 팽팽한 긴장감 같은 것이 있어 덜컥, 겁이 나기도 하지만, ‘파도의 리듬을 닮은 시조’, 그 다양한 소통방식을 모색해서 좋은 작품을 쓰는 ‘건강한’ 작가가 되겠습니다.


△1980년 통영 사량도 출생 △부산대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2002년 창대문학상(시) 당선 △2003년 동아문학상(소설) 당선 △2004년 부대문학상(소설) 당선 △현 창원대 강사


[심사평]


음보와 운율 솜씨 있게 갈무리


새해 벽두, 한국시조단의 축하 속에서 미래를 열어갈 또 한 사람의 신예를 배출한다는 생각에 심사는 진중할 수밖에 없었다. 경남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문인들은 경향각지에서 나름의 빛깔과 개성으로 괄목할 만한 활약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전통 계승과 한국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갈 신예를 뽑는 일이라는 점에서 어깨가 더욱 무겁다.

대부분의 응모작들이 일정부분의 성취를 보이고 있었고 치열한 습작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심사위원의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군계일학의 작품에 대한 갈증은 여전히 남는다. 신춘의 고고성을 울리며 기존의 시조단에 무거운 질문을 던지거나 날카로운 필치로 폐부를 파고드는 신인다운 패기를 기대한 때문이다.

시조는 응축의 문학이다. 짧은 3장 6구라는 정형 속에 얼마나 알맞게 시상을 가다듬느냐 하는 것이 관건이다. 시상은 넓게 원심력을 그려야 하고, 언어는 구심력에 의지해 내적으로 단단한 구성을 취해야 한다.

마지막까지 선에 오른 작품은 ‘오래된 것에 대한 변명’, ‘겨울나무의 수사학’, ‘아버지와 바다’ 세 편이었다.

‘오래된 것에 대한 변명’은 신춘문예의 특성에 근접한 작품이다. 우선 낡은 음풍농월에서 벗어나 현대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것이 좋았다. ‘유효기간 지난 지갑’ 같은 따뜻한 시선이 눈길을 끌었으나 앞서 말한 시어의 중복이 전체적인 탄력을 얻지 못한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겨울나무의 수사학’은 상당한 내공이 엿보인다. 섬세함과 강건함을 동시에 지니는 장점들이 있어 충분한 가능성이 엿보였으나 ‘그날 그 짙은 그리메 낮달 뒤로 사위고’ 같은 추상적인 표현들이 거슬렸다. '아버지와 바다’는 3수의 작품으로 퍽 안정된 느낌을 준다. 첫 수에서 섬과 섬 사이의 안간힘이 수평의 긴장을 지탱하는 동력임을 말하고, 둘째 수에서는 낚싯줄로 잔잔한 바다의 균형이 깨지는 상황을 연출한다. 다시 셋째 수에서는 길항 관계인 아버지와 바다가 서로를 품어 안으며 화해를 시도한다. ‘바다의 설렘’, ‘사랑을 품고’ 같은 직설적 언어가 거슬리긴 하지만 음보와 운율을 갈무리하는 솜씨에 신뢰가 간다.
심사위원은 이 세 편 중 조춘희씨의 ‘아버지와 바다’를 당선작으로 민다. 당선자에게는 축하를 보내고, 선전한 두 분에게는 재도전의 발판이 되길 빈다. (김연동, 이달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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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두고(兩頭鼓) - 유현주(2010년 대구매일신문)



어우르던 장구가 더운 숨을 토한다

생사의 경계선을 이랑인 듯 넘어와

울음을 되새김하여 소리로 환생한 소

옹차던 속 들어 낸 여섯 치 오동나무에

조임줄로 다시 묶여 코 뚫림을 당할 땐

북면을 힘껏 조이며 공명통을 안는다

사포를 쇠 빗 삼아 쓸어주는 조롱목

완강하던 고집이 세마치로 조율되고

긴장한 소릿결들이 평온하게 풀릴 즈음

옻 밥을 먹은 소가 밭갈이를 나선다

열채로 엉덩이를 가볍게 두드리자

덩더꿍, 변죽을 울리며 타령을 끌고 간다


[당선소감]


혼자 아닌 가족들의 힘으로 영광얻어


시조를 시작하고 나서 한 삼년 두문불출하고 살았습니다. 처음엔 다독을 하다가 나중엔 무진 쓰기에만 매달렸는데 그 몰두가 독학을 가능케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가끔은 포기하고 싶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시 같지도 않은 글들을 시라고 우기며 긁적거리던 것과는 다르게 시조는 그 매력에 비례하는 힘겨움을 주었고 길이 아닌가 싶게 뒷걸음질치게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쉼 없이 정형의 틀에 자신을 꿰맞추고 있는 것을 알았을 때 이왕이면 목표를 정하자고 생각한 것이 신춘문예였습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많은 이들이 줄 서 있음에도 저에게 이 단단한 문을 열어 주신 매일신문사 측에 감사드립니다.


당선 소식을 들었을 때는 혼자서 꿈을 이룬 것이 대견하였는데 다시 생각하니 이것은 모두 가족의 힘이었다는 걸 알겠습니다.

먼저 오늘이 있기까지 말없이 지켜봐 준 사랑하는 남편과 두 아들에게 감사함을 전합니다. 또한 평생을 시조창으로 살아오신 친정 아버지와 그 뒤를 그림자처럼 보필하신 어머니께 큰 절을 올립니다. 아버지의 학 같던 춤사위가, 지나던 달빛을 잡아두던 시조 가락이, 손수 파신 오동나무로 장구를 만들던 어린 날의 기억이 지금의 제게 너무도 큰 재산이 되어 있습니다. 그 시간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던들, 아버지의 감성을 오롯이 물려받지 않았던들 이 영광은 절대 없었을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오래 오래 건강하시어
앞으로의 저를 지켜봐 주십시오.


지인께서 어떤 글을 써 보고 싶으냐고 질문하셨을 때 겁도 없이 신춘문예 당선 소감을 써 보는 것이라고 한 것을 기억합니다. 드디어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부단히 노력했지만 아직은 많이 섭니다. 열어주신 이 문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가면 지금까지 부딪치지 않았던 어려움과도 만나게 되겠지요. 그럴 때마다 힘들었던 어제를 생각하겠습니다. 겸손하고 바르게 한발 한발 내딛으며 열매를 익힐 것입니다.

부족한 글을 선하여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 고맙습니다. 정진하여 보답하겠습니다.


유현주

▷1967년 충남 서산 출생 ▷2007년 4월 중앙시조백일장 장원 ▷2008년 2월 중앙시조백일장 장원 ▷2009년 7월 중앙시조백일장 차상


[심사평]


활유의 기운 넘치고 정서 조율 솜씨도 자별


투고한 작품들은 저마다 한 송이씩의 꽃이라는 생각이다. 피봉을 뜯는 순간 서둘러 벙근 꽃들이 선자의 손에 이르자 일제히 만개한다. 그 향기와 빛깔의 다툼이 현저할수록 고선의 고통은 커진다. 안타까운 것은 그 많은 꽃 중에서 오직 한 송이만이 독자한테 다가갈 수 있다는 점이다. 익명의 꽃이 실명의 꽃으로 바뀔 때, 또 한 사람의 시인이 우리 곁에 온다.


올해도 경향 각지에서 고른 투고가 이어졌다. 섣부른 판단이 끼어들 여지가 없을 정도로 치열한 각축 양상이다. 지르잡아 읽고 다잡아 읽는 몇 번의 숙고 끝에 마지막까지 선자의 손에 남은 작품은 강은미씨의 「민들레의 잠」, 배경희씨의 「나무의자의 기억」, 백점례씨의 「고요한 강」, 그리고 유현주씨의 「양두고(兩頭鼓)」 등 네 편이다.


「민들레의 잠」은 대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각이 강한 여운을 남긴다. 어쩌다 화분에 날아온 민들레를 입양아에 빗댄 감각 또한 신선하다. 「나무의자의 기억」은 존재의 사유를 밀고 가는 안정된 호흡이 강점이다. 나무의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톱날과 대팻날의 신산으로 풀어내고 있다. 「고요한 강」은 낚시터의 상념이다. 차분한 어조로 세상 속에 낚싯대를 드리운 생존의 풍경을 그려낸다. 이들 작품은 당선권에 바짝 다가섰으나, 정서의 깊이나 얼개의 치밀함에서 아쉽게 깍지가 풀리는 느낌이다.


올해의 선택은 「양두고(兩頭鼓)」를 들고나온 유현주씨다. 작품의 전편에 활유의 기운이 넘친다. 감각과 상상력의 결속이 뛰어나고, 긴장의 밀도를 다져가는 적절한 비유가 돋보인다. 사물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정서를 조율하는 솜씨 또한 자별하다. 장구는 북편과 채편의 양두를 가진 악기다. "더운 숨을 토하"던 소는 가죽으로 남아 생전의 "울음을 되새김"한다. 소의 "완강하던 고집이 세마치"장단으로 환생하면서 "공명통을" 울리는 감동에 닿는다. "옻 밥을 먹은 소가 밭갈이를 나선다"는 표현은 마지막 칠을 마치고 연주에 들어가는 모습이다. "열채로" 두드리는 "엉덩이"는 장구의 채편일 터. 그럴 때 궁글채는 북편의 "변죽을 울"릴 것이다. 그렇게 장구는 세속의 신명 속으로 "타령을 끌고 간다.'' 당선의 영예에 매몰되지 않는 각고와 성찰로 정형미학의 완결성을 높여주길 바란다. (박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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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고치 - 이상선 (경상일보)

 
할머니 지문 찍힌 뽕잎마다 이랑진 삶
넉 잠 든 잠실에 들면 반투명 누에들이
큰스님 넉넉한 손처럼 가진 것 죄 내줄 때.

이따금 명주실같은 부드러운 바람결이
자디잔 물비늘을 은어 떼로 풀어놓고,
풀벌레 달빛 속에서 반짝반짝 울고 있다.

지는 꽃의 뒷등마냥 적막한 누에고치
길을 버린 누에들은 곡기마저 물리친다,
폭폭한 제 속울음도 다 퍼내지 못하고.

마분지 빛 흐린 날의 장막 한 겹 걷어낸다.
얼음박힌 동치미국, 할머니 손맛 되새기며
시렁 위 채반에 올라 가만가만 숨 고른다.

호박벌은 귓전에서 풀무 소리잉잉대고
가느스름 눈 뜬 채 장엄 열반 꽃 둥지 엮는,
한 살이 터억 매조지한 울 할머니 뒤태 같다
 
 
[심사평]말부림과 말 엮음 능력이 ‘탁월’
 

 

 
 
  
 
예심을 거쳐 선자의 손
에 넘어온 작품은 59편이다. 부풀려 말하면 헤모글로빈 냄새 풍기는 용호상박(龍虎相搏)의 격전장을 방불케 한다. 저마다 다채로운 언어풍경을 펼친 작품 가운데 다섯 편을 놓고 적잖이 고민을 하였다. ‘황태’, ‘지슬리, 보리베다’, ‘바다슬픔을 모른다’, ‘배다릿집 어부 아재’, ‘5월, 누에고치’가 그것인데, 이들 시편은 어느 작품을 골라도 좋을 만큼 색다른 개성과 성취를 보이고 있다.

‘황태’와 ‘지슬리, 보리 베다’는 시조의 형식미학과 구문법을 오롯하게 갖춘 빼어난 작품이다. 그러나 시를 끌고 가는 힘이랄까, 저력은 유지하고 있는데 아직 내공(內攻)이 부족한 탓인지 강렬한 주제의식과 세련미를 엿볼 수 없다. ‘바다는 슬픔을 모른다’와 ‘배다릿집 어부 아재’를 주의 깊게 살펴봤다. 두 작품은 어디 한 군데 흠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자연스러우며, 흡인력 또한 넘쳐난다. 하지만 상징과 은유가 때로는 겉돌며, 발상법이 기발하지만 그 재치가 경이로움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아쉬움을 떨쳐버릴 수 없다.

당선작 ‘5월, 누에고치’는 ‘관조의 총혜(총명하고 슬기로움)’를 읽을 수 있다. 보는 각도에 따라 약간 예스런 정서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삶에 대한 남다른 통찰과 이해가 녹아 있는 ‘5월…’은 ‘말 부림과 말 엮음 능력’이 탁월하다. 넉 잠 든 누에들이 “큰스님 넉넉한 손처럼” 가진 것 다 내주고, “한살이 터억 매조지한 울 할머니 뒤태 같다”는 대목은 시조 특유의 그윽한 맛을 우려내고 있는 것이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내며 오늘의 영광이 글쓰기의 피리어드가 아닌, 시조시학을 새로 경영하는 첫 삽질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흔들림 없이 정진하기 바란다.

윤금초

● 프로필

시조시인

1941년 전남 해남 출생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196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안부’ 당선

제11회 현대불교문학상(시조부문, 2006)

작품 <어처구니 없는 소득(所得)>(아리랑·1971), 시집 <어초문답>(지식산업사·1978)

 

 [출처] 아련한 가슴시린 추억때문에.... 작성자 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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